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지음, 안정효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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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환상을 가진다. 환상은 대부분 그냥 스쳐지나가는 기억의 파편이 된다. 그리고 사람은

파편을 부여잡고 여전히 살아간다. 


자그마치 1932년이라는 아득한 기억의 저편의 언젠가에 출간된 책은 미래 과학 운명이라는 독특한

주제를 가지고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이야기하며 당시에 상상할 없었던 미래를 향한 발을 내딛으며

세대에 만연한 풍조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저자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예술적 자책감에 빠져 허우적

거리는 유혹에 저항하며,차라리 좋은점과 나쁜점을 그대로 내버려 두고 다른 이야기를 하는 쪽을

선택한다. 물론 선택은 독자들의 몫이다. 


34층짜리 잿빛 건물, 잉태, 탄생. 여기까지는 정상적이다. 그런데 난자가 움트고, 발육하고, 분열한다.

난자 하나에 태아 하나라는 일반적인 공식이 아닌 무더기로 싹이 생겨나고 태아가 되고 어른이 된다.

인간은 모든 인간을 공유한다는 지침과 태어나면서 이미 어떻게 성장하고 교육할지가 정해진 사회.

인간의 존엄성은 아예 존재하지 않고 다만 만들어진 물건이며 사회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된 세계. 모든 인간을 공유한다는 개념에 따른 자유로운 성생활을 즐기지만 어디에서도 생명에

대한 존엄과 가치 그리고 무게감은 보이지 않는 세계. 스스로 의식과 생각을 제어하지 못하고 '소마'라는

약물에 의지해야 하는 그런 사람들이 사는 세계. 세계는 태어 부터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엡실론이라는 계급이 부여되는 아이러니한 세계이다. 어차피 기계적 생산에 의해 태어나는 것인데

여기서 계급이 나뉜다는 것은 무작위 추출인가 아니면 동일생산체계 속에 발생되는 우성과 열성의

차이인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계급사회의 신분 구조는 기계화 문명에서도 어쩔 없는 현실이라는

생각이 들자 조금 마음이 착잡해졌다. 


여기에 이방인이자 이질적 존재인 그들에 의해 '야만인'이라 불리는 존이 찾아온다. 인간의 본성을

대로 간직한 존은 그들에게 '진기한 구경거리'였고 관심의 대상이었지만 정작 존은 '야만인'이라는

타이틀이 어울리지 않게 세익스피어와 성경을 읽으며 삶과 죽음에 대해 고민하고 위험과 죄악을

탐닉하며 인간 본성대로 살며 죽음마저 선택할 있는 자유를 원한다. 어쩌면 존의 등장부터 불행은

시작된것일수도 있다. 


책의 절정에 해당하는 존과 무스타파 몬드와의 대화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지만

안락함을 원하지 않습니다. 나는 신을 원하고, 시를 원하고, 참된 위험을 원하고, 자유를 원하고,

그리고 선을 원합니다. 나는 죄악을 원합니다.'라고 말하는 존에게 '사실상 당신은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하는 셈이군요'라고 대답하는 무스타파 몬드, 여기에 '나는 불행해질 권리를 주장하겠습니다'라고

담담히 그러나 당당하게 말하는 . 이들의 대화에서 물질 만능과 쾌락에 빠진 우리에게 던지는

저자의 메세지를 읽었다. 자유를 위해 안락함을 포기하는 용기와 진정한 행복을 위해 기꺼이 불행을

선택하는 결단력과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찾기위해 스스로를 포기하는 존을 통해 인간의 가치가

무엇이며 인간이 인간으로 대접받고 인정받는 것이 얼마나 행복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책의 말미에 등장하는 광기서린 축제의 현장은 인간이길 포기한 이들의 '도살제' 같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장면 전에 등장하는 '멕베스', '햄릿', '리어왕' 구절들은 도살제의 전주곡인양 절묘했고 군중들의

'채찍질을 보고 싶다' '죽여라' 외침은 예수를 십자가에 받으라고 소리치던 유대인들의 광기와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그는 광기의 희생양으로 사라지며 또한 여운을 남긴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책은 1932 그때 이미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어떻게 변해 갈지에 대해 이야기하며 인간 스스로 자존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에 대해 경고한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분명 예전에 비해 많아

달라졌고 훨씬 편해졌다. 겉으로 보기에는 잡을데 없이 완벽하고 너무 멋진 신세계지만 이마저도

정답은 아니다. 현대 문명은 우리가 꿈꾸던 것들을 벌써 이만큼 가까이 가져다 놓았다. 그리고 문명은

우리에게 희망과 좌절을 동시에 안겨준다. 책은 분명 1932년에 2540년을 꿈꾸며 허구적인

소설이지만 풍자와 사실적 묘사라는 독특한 방법으로 우리에게 거듭 경고한다. 우리 선조들이 달을 보며

속에 토끼가 살고 있을거야라고 막연히 생각했던것 같이 막연한 미래이지만 영화 이퀄리브리엄

(Equilibrium, 크리스찬 베일 주연, 커트 위머 감독, 2003)처럼 벌써 이만큼 앞에 와있는 가까운 현실이

될것 같다.

 

솔직한 심정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가 상실된 세상을 맞이할 자신이 없기에 변화의 시기를 보기 전에

생을 마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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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엠 바운즈 기도전집 - 『기도의 능력』 포함 8권의 기도서 완역 합본
E. M. 바운즈 지음, 김원주 옮김 /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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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는 주문이 아니다. 기도는 내가 원하는 것을 주문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원하시는 것을 묻고

기다리는 행동이다. 그래서 기도는 계속 되어야 한다. 인스턴트에 익숙해진 우리는 기도 마저도

1회용 내지는 필요할때만 잠간 사용하는 '자판기' 혹은 '마법의 방망이' 착각 한다. 그러다 보니

자신이 원하는 일이 더뎌지거나 이루어지지 않으면 기도의 절대 주권자의 능력 마저도 의심한다.

그리고 다른 신을 찾는다. 종교 인스턴트화의 아주 작은 단면이다. 

책에서는 이런 우리의 종교적 현실을 예견이라도 하듯 이렇게 말한다. 

'기도를 조금 하는 것이 아예 하지 않는 것보다 악하다'


기도는 전인(全人) 관계한다. 말은 기도는 인간의 존재, 지성과 영혼과 육체가 필요하다는

의미이며 모든것 안에서 관계하며 이루어짐을 의미한다. 기도는 사람 전체가 필요하며 사람 전체에게

영향을 미쳐서 은혜로운 결과를 낳는다. 인간의 모든 것이 기도를 통해 유익을 얻는 것이다. 사람

전체가 기도로 자신을 하나님께 드려야 하며 기도의 가장 풍성한 결과는 자신과 자신의 모든것을,

그리고 자신에게 속한 모든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사람에게 찾아 온다. 이것이 바로 온전한 헌신의

비밀이며 응답 받는 기도와 가장 풍성한 열매를 가져다주는 기도의 조건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도

조금 충성하고 세상과 자기자신에게도 충성하는 사람은 합당한 기도를 드릴 없다. 주인을

섬길 없는 처럼 말이다. 


사람 전체로 기도해야 한다. 전인(全人). 생명과 마음과 정신을 기도에 쏟아야 한다. 이것들

하나하나가 전부 기도에 관여한다. 의심과 마음을 품는 것과 마음의 분열, 이것들이 기도를

방해한다. 간절하고 신실한 기도가 있는 곳에서는 몸은 언제나 영혼의 상태에 가장 알맞는 형태를

취한다. 다니엘이 하루 세번 기도의 무릎을 꿇었고, 솔로몬이 성전을 봉헌하며 무릎을 꿇었고, 주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땅에 엎드리셨던것 처럼 기도할 몸은 영혼과 결합한다. 


기도는 인간의 일이다. 그래서 기도는 참된 사람을 필요로 한다. 기도는 경건한 일이기에 기도하기

위해서는 경건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온전히 기도에 전념하는 사람은 경건한 사람이다. 기도에

대한 E. M 마운드의 고백은 이렇다. 

'무릎 꿇는 것으론 족하지 않고 

마디 기도의 말하는 것으로도 부족한 것은

마음과 입술이 하나가 되어야 함이니

다른것은 기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기도는 인간의 도덕적이고 영적인 본질을 모든 힘을 필요로하기에 결코 수월한 일도 시시한 일도 아니다.

전심으로 하나님께 기꺼이 가는 일이며 하나님을 땅으로 모셔 내리는 일이다. 이렇게 기도하는 영혼이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도록 주는 것은 겸손한 마음이다. 겸손은 드러내지 않으려고 스스로

삼가는 것이며 자기를 낮추는 것이다. 겸손은 자기 안으로 물러 나는 것이다. 결코 남들 앞에서 자신을

높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도 높다고 생각하지 않기에 오히려 남을 칭찬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겸손으로 입는 사람들이며 이런 이들이 드리는 기도가 겸손의 기도이다. 겸손은 진실한 기도의

필수적인 조건이다. 겸손은 그리스도를 닮은 신앙이 필요로하는 처음이자 마지막 자질이며 그리스도를

닮은 기도에 있어야 처음이자 마지막 조건이다. 겸손이 없이는 그리스도인은 없고 겸손이 없이는

제대로된 기도도 없다. 성경이 말하는 '세리와 바리새인의 기도' 그것을 정확히 보여준다. 


기도의 본질 중요한 한가지는 '경건'이다. 경건은 가장 합당한 기도에 유익하고, 기도는 경건한 마음을

불러 일으키는 자세이다. 성령의 모든 은혜는 경건으로 조성 환경에서 더욱 풍성해지고 커진다. 이와

같은 경건은 우리 마음을 기도로 이끌고 우리는 이끌림에 따라 기도한다. 경건이 없는 기도는 텅빈

모양에 지나지 않으며 헛된 말의 반복인 주문에 불과하다. 아쉽게도 지금 우리는 경건의 모양도 제대로

갖추지 않았기에 그저 주문만 외우는 것이다. 마치 하늘나라 쓰레기통에 가득찬 그런 주문들 말이다.

경건의 영은 종교를 얄팍한 겉치레에서 끌어내어 우리 영혼의 생명과 본질을 옮겨 놓아 땅에서의

천국을 맛보게 한다. 


책은 무려 844면이다. 페이지 마다 저자의 의도와 목적은 분명하다. 기도는 하나님께 드리는 자신의

모든 것이며 기도를 통해 분은 일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알면서도 기도를 조금 하는 것은

기도를 전혀 하지 않는 것보다 약하다고 분명히 말한다. 모든것에서 거룩하고 온전한 ' 제사'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며 이는 자기를 완전히 부인하는 ,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권위를

기꺼이 인정하는 , 그리고 모든것을 정직하게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진실한 기도는 그것을

가능케 한다. 


책은 비록 두껍고 어렵지만 곁에 두고 여러번 읽어 충분한 가치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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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 클래식 2 - 클알못에서 벗어나 클잘알이 되기 위한 클래식 이야기 이지 클래식 2
류인하 지음 / 42미디어콘텐츠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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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들을 아는 보다, 듣고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말하는 류인하 작가를 조금 일찍

만났더라면 아마도 나에게 클래식은 무겁고 어렵고 복잡하고 지루한 음악이 아닌 다른 모습으로

자리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으로 책을 연다. 


책에서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 1860-1911) <피아노와 현악을 위한 4중주 A단조> 만난다.

아슬아슬하게 걸치며 넘어가는 현의 선율이 극의 긴장감과 긴박감을 주는 무겁고 우울한 곡인데

영화 셔터 아일랜드(Shutter Island, 2010, 마틴 스콜세지 감독,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에서

주인공 테드 다니얼스가 자신의 트러우마를 떠올리는 장면에 등장하는데 디하우의 유태인 수용소

장면에서 권총 자살을 시도한 수용 소장의 방에 있던 턴테이블에서 흘러 나온다. 영화를 보며 곡을

처음 들었을 '뭐지, 무슨 곡이지'하며 기억을 떠올리려 했지만 결국 기억나지 않아 일부러 찾아서

들어 봤던 곡이다. 그때의 감정은 레조 세레스(Rezso Seress) 'Gloomy Sunday' 들으며 다시

느꼈던 같다. 없이 가라 앉지만 안에 날카로운 송곳이 숨겨져 있는 그런 긴장감을 유지하는

곡이다. 여기에 구스타프 본인의 삶이 연결되면 느낌은 더욱 강해진다.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평생을 힘겹게 살았다는 사실과 2 세계 대전에서 무참히 살해 당한 유태인들, 수용소에서 처참히

죽은 시체들.....모두가 구스타프 말러의 곡을 더욱 우울하게 만든다. 생전에는 작곡가보다 연주자로

알려졌고 그의 곡은 20세기 지휘자인 레너드 번스타인이 그의 교향곡을 연주하기 전까지는

그리 알려지지 않았던 불운한 작곡가였다. 여담으로 9 교향곡의 저주(베토벤 이후의 작곡가들은

9번을 넘는 교향곡을 작곡하지 못한다는 속설이나 징크스) 의식해서 9번째 교향곡 제목을 '대지의

노래'라고 붙이는 꼼수를 썼지만 역시도 10 교향곡을 작곡하던 세상을 떠난다. 특별히 나는

말러가 6년에 걸쳐 작곡한 교향곡 2 C단조 부활(Symphony in C Miner No.2 'Resurrection')

가장 좋다. 1 교향곡인 '거인' 좋지만 자신의 가족(아버지, 어머니, 여동생) 죽음과 대면한

말러의 심리적 표현이 가장 두드러진 곡은 우울할 때면 더욱 생각나는 곡이다. 


명의 반가운 작곡가를 만난다. 조지 거슈인(Gorge Gershwin, 1898-1937). 디즈니 애니메이션

'판타지아 2000' 덕에 우리에게 친숙해진 '랩소디 블루(Rhapsody in Blue)' 작곡 그는 재즈와

클래식의 경계에 있는 듯한 그의 음악적 위치 때문에 음악계의 평가는 비록 엇갈리나 오페라

'포기와 베스' '피아노 협주곡 F장조' 등에서 보여준 아름다운 선율과 통일성을 보여준 그는 재즈의

요소를 전통적인 고전 음악의 어법과 결합시켜 훌륭하게 완성시켰던 작곡가이다. 특별히 흑인들의

고달픈 삶과 애환을 담아낸 오페라 '포기와 베스' 흑인의 말투, 생각, 생활양식, 흑인 영가등을 통해

진짜 흑인들의 삶을 표현한 수작으로 꼽힌다. 뉴욕에서 보스턴으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영감을 받은

'보헤미안 랩소디' 원래 제목은 ' 대의 피아노를 위한 아메리칸 랩소디'였다. 첫소절의 클라리넷

연주에 묘한 마력이 있는 곡은 당시 음반이 100만장 이상 팔리는 흥행을 거둔다. 저자는 조지

거슈인의 음악을 클래식으로 분류하는 논란에 단호히 그의 음악은 '클래식'이라고 말한다. 비록

재즈의 형식을 띄고 있지만 <피아노 협주곡 F장조> 고전주의 시대의 협주곡 형식인 3악장을

완벽하게 따르고 있고, 오페라 <포기와 베스> 푸치니로 대표되는 '배리스모 오페라(사실주의

오페라)' 성격을 띄고 있으므로 거슈인의 음악을 '클래식'이라고 말할 있다고 이야기 한다.

물론 논란의 여지는 여전히 존재하나 그의 음악은 분명 클래식에 가깝다.


책의 목적은 분명하다. '클알못'에서 '클잘알' 되기위한 최후의 도전이다. 그런데 성공이다.

책을 읽는 내내 ' 정도면 어디가서 잘난척 해도 되겠는데'하는 자신감이 생겼다. 머나먼 나라

이야기이던 '클래식' 권으로 부쩍 가까와 진것 같다. 누군가의 처럼 책에는

클래식에 대한 저자의 마음과 노력, 그리고 작가의 힘이 담겨있다. 이런 힘이 나로 하여금

'이지 클래식1' 주문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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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뭐 하다 왔니?
이은상 지음 / 두란노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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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또 땅 끝으로 간다. 그곳에 하나님께서 계시니 당연히 가는

것이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이 가야 한다. 77p


' 뭐하다 왔니'라는 질문 앞에 잠시 멈춰선다. 지금 나에게 이렇게 물으신다면 나는 무어라 대답할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숨이 멎는것 같다. 마땅히 드릴 말이 없다. 무어라 대답하기에는 조금 부족해 보이고

모자라 보인다. 뭔가 하긴 열심히 한것 같은데 딱히 드러내기는 뭔가 아쉽다. 이런 나에게 저자는

'순종하다 왔습니다'라고 담담히 대답한다. 이렇게 대답할 있는 저자의 삶이 궁금하고 기대가 되어

서둘러 책장을 연다. 


언젠가 TV에서 하는 '차마고도'이야기를 보며 막연히 저들에게도 복음이 전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적이 있다. 중국의 차와 티벳의 말을 교환하기 위해 개통된 옛길이란 의미의 '차마고도' 기원전

2세기 경부터 존재한 고대 무역로로 해발 4000미터가 넘는 험준한 길과 설산이 펼쳐진 세상의 문명과

가장 동떨어진 곳이다. 저자의 말대로라면 '이런 곳에 사람이 있을까'라는 그곳에도 사람은

살고 있었다. 그런 그곳에서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이 '소금'인데 저자는 소금보다 귀한 '복음'

가지고 담대히 나가며 '영혼구원'이라는 사명에 목숨을 걸고 그렇게 최선을 다하고 이것을 '그리스도의

마음'이라고 말한다. 2-3일씩 걸어오면서 눈이나 비가 오면 산속에 웅크리고 있다 다시 걷고, 저녁이

되면 산등성이 한쪽에서 쪽잠을 자면서도 그들은 '예배' 드린다. 이런 그들을 보며 복음이 가지는

능력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본다. 


중국 선교지에서 만났던 한번의 집회를 참석하기 위해 6개월간 일을 한다는 자매나, '복음이 울다'

통해 만난 천길 낭떠러지 산길을 올라 예배드리고 다시 밤에 길을 내려가면서도 행복해 하는

이들과 새벽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밤길을 재촉하시던 우리 선배 신앙인들의 복음에 대한 열정과

간절함이 많이 닮았다. 복음은 그런것 같다. 어느새 자신도 모르는 힘에 의해 이끌려 지는 ,

그래서 이끌림에 순종하고 순응하는 , 이것이 진정한 복음의 능력이 아닐까 싶다. 


저자도 이것을 경험했다. 기도는 내가 원하는 것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것을 묻고

기다리는 행동이다. 구체적으로 기도하란다고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내가 원하는 것을 달라고

떼쓰는 우리, 생각대로 그림 그려놓고 이대로 해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은 기도가 아니라 억지고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우리의 잘못된 기도는 하나님의 결정과 선택마저도 바꾸려고 한다. 하나님이

어떤 그림을 주셔도 '아멘' 있는 것이 진짜 기도다. 기다림의 시간은 항상 지루하고 힘들다.

당연히 지친다. 처음 먹었던 열정과 간절함이 서서히 퇴색되기도 한다. 순간 잊지 말아야 할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시간은 같다는 것과 그분이 신실하시다는 것이다. 기다림의 시간 동안 무엇을

기다리는가, 누구를 기다리는가에 따라 같은 시간도 다르게 느껴진다. 그래서 저자는 하나님의 일을

기대하고 기다리기로 결정한다. 왜냐하면 하나님 그분은 산실하신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잠시 머물며 나의 기다림을 생각해 보았다. 조급함 때문에 그분의 계획을 바꾸려 하지는 않았는지,

조금의 불편함 때문에 그분의 결정에 반기를 들지는 않았는지, 약간의 어려움 때문에 그분의 선택에

불순종하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보니 다시 고개가 숙여진다. 

생명의 위협을 감수하면서도 복음의 길을 여전히 걷고 있는 저자는 자신의 사역을 '하나님 말씀 가운데

걸음 걸음 묵묵히 걸어가는 '이라고 말한다. 그는 벼랑 끝에서도 '할렐루야' 외칠만큼 주님을

신뢰하고 남은 동안 머리 둘곳 없는 사람처럼 살면서 언제든 부르심에 응답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이런 그의 평생의 고백은 '순종'이다. 


책에서 비비어의 '순종'과는 다른 '순종' 만났다. 전폭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저자의 고백이

뢰도, 희망도, 의지도 없이 맹목적 신앙 행위에 몰두하는 현대 종교인들에게 울림으로 다가왔으면

좋겠다. 그래서 책은 신앙의 위기에 처한 이들이 읽어 보고 힘을 얻고 도전을 받았으면 좋겠다.

주님 만날 그날 ' 뭐하다 왔니'라고 물으시면 무언가 이야기 있는 그런 신앙인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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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나인 - 9개의 거대기업이 인류의 미래를 지배한다
에이미 웹 지음, 채인택 옮김 / 토트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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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 이미 우리 앞에 있다. 다만 우리가 기대한것 만큼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우리는 산업 혁명 시대와 다르지 않은 의미심장한 전환의 가운데 서있다. 저자는 이를

인공지능 컴퓨터와 클라우드에 기반을 3세대 컴퓨팅 시대(컴퓨터를 기업이나 기관이 주로 사용하는

1세대  컴퓨팅, pc 도입으로 개인이 정보에 접근하는 2세대 컴퓨팅) 부른다. 영화 터미네이터의

'스카이 '으로 언뜻 기억되는 AI 이미 우리의 깊숙한 부분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마치

선조들이 달을 바라보며 토끼를 상상했던 처럼 영화 터미네이터나 매트릭스를 보며 '저게 과연

가능할까'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빠르게 현실화 되고 있다. 


제목인 ' 나인' 지금 AI패권을 쥐고 있는 구글, MS, IBM, 아마존, 페이스북, 애플,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를 지칭하는 말이다. 눈여겨 보아야 할것이 중국의 약진이다. 탈영이출(脫穎而出) 표현되는

중국의 변화는 '곡식 낱알이 껍질을 뚫고 밖으로 나온다' 의미대로 세계에 자신의 실력과 힘을

본격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중국 IT 산업의 패권 기업을 지칭하는 BAT(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의 이니셜 )이다. 이들은 정부의 적극적인 자금 지원과 감독, 그리고 산업 정책을 포함한 서로

다른 규칙과 관습 아래서 움직이며 몸집을 불려 나가고 있다. 그들은 자본화 되어 있으며 고도로 조직화

되어 있는 정부차원의 AI계획 속에서 움직인다. 하나의 국가에 활동적 이용자 10억명을 가진

위쳇(Wechat) '모든 것을 위한 '이라는 별명을 가진 BAT 가장 크고 가장 영향력 있는 기업인

 '텐센트' 소유이다. 텐센트는 'AI 우리의 모든 제품에서 핵심 기술'이라는 모토를 가지고 AI 의해

추진력을 얻거나 AI 기업의 모든 초점을 맞춘다. 이에 걸맞는 텐센트의 슬로건은 'AI 어디에나

있게 하자'이다. 


중국은 경제적, 지정학적, 군사적으로 가까운 미래에 세계를 지배한다는 분명한 비전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AI 목표로 가는 통로로 여기며 국가적 사활을 걸고 있다. 어떤 평가 방법으로도 중국은

최대의 시장이며 강력한 경제 세력이다. 그들은 두가지를 힘에 의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드러내고

있고 이는 전세계적인 체인을 가진 메리어트 호텔의 사과 사건에서 드러난다. 메리어트 측이 홍콩,

대만, 마카오, 티벳을 각각 별도의 국가로 분류한 것을 파악한 중국 당국은 메리어트의 모든 중국어

사이트와 애플리케이션을 폐쇄하였고 결국 궁지에 몰린 메리어트는 최고 경영자의 이름으로된

사과문을 올리게 되는데 내용이 상당히 굴욕적이다.  '중국의 주권과 영토 통합을 존중하고 지지합니다.

~ 차례의 어긋나는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집단이나 사람을 선동하거나 고무하려는 어떠한 의도도

없습니다. 우리는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오만하고 당당하던 메리어트의

사과문은 중국정부가 어떠한 생각으로 자신들의 기업과 AI IT 사용하고 통제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중국은 그야말로 모든 것을 여기에 걸었다. 


중국이 BAT 있다면 미국에는 G-MAFIA 존재한다. 구글, MS, 아마존, 페이스북, IBM, 애플을 지칭하는

G-MAFIA 창의력이 풍부하고 혁신적이며 AI 진보에 절대적으로 기여한 폐쇄적 슈퍼 네트워크들이다.

중국에서는 정부가 BAT 통제하지만 미국에서는 압도적인 기술력을 가진 G-MAFIA 정부에 영향력을

발휘하고 압력을 넣기도 한다. 이는 부분적으로는 미국의 시장경제 체제 때문이고, 힘센 정부가

비지니스를 통제하는데 대한 강한 문화적 거부감이 있기 때문이다. '6단계 분리 이론, 하버드 스탠리

필그램 교수가 1967년에 주장한 이론으로 모든 사람은 6명만 거치면 서로 연결 된다는 내용) 통해

살펴보면 우리는 지금 순간도 G-MAFIA 영향권 아래에서 살고 있다. 지난 20여년 사이 살아 있었던

덕분에 우리는 G-MAFIA 서비스나 생산품을 사용하지 않았더라도 그들을 위한 데이터를 꾸준히

창조해 냈고 그들이 만들어 데이터를 생성하는 엄청난 숫자의 장치와 스마트 기기를 사용해 왔다.

G-MAFIA들은 우리가 서비스를 받는 대가로 지속적인 감시를 있게 됐으며 이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감시 자본주의의 훌륭한 모델이 된다.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은 모두 기록에 남는다. 그리고 기록은 정보가 되고 고스란히 운영주체에 의해

수집되고 분석되고 활용된다. 이렇게 형성된 데이터는 빅데이터가 되어 우리의 다음 행동을 예측하게 하며

구매 욕구를 자극 시키는데 사용되기도 한다. 우리 모두는 AI 대해 선택권을 가짐과 동시에 종속권을

넘겨준다. 누림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인데 미래 사회는 누가 많은 데이터를 가지고 있느냐에서

모든것이 판단 될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보는 것을 해석하고, 여러가지 선택 중에서 실행 가능한 것을

선택한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대가를 데이터로 제공한다. 


책은 AI 대한 기대와 위험을 조명한다. 사실 책을 읽으면서도 직접적으로 맞닥뜨린 현실이 아니기에

그다지 절박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우리의 낙관적 생각에 '로봇이 의해 지배되는

세상'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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