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또 땅 끝으로 간다. 그곳에 하나님께서 계시니 당연히 가는
것이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이 가야 한다. 77p

'너 뭐하다 왔니'라는 질문 앞에 잠시 멈춰선다. 지금 나에게 이렇게 물으신다면 나는 무어라 대답할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숨이 멎는것 같다. 마땅히 드릴 말이 없다. 무어라 대답하기에는 조금 부족해 보이고
모자라 보인다. 뭔가 하긴 열심히 한것 같은데 딱히 드러내기는 뭔가 아쉽다. 이런 나에게 저자는
'순종하다 왔습니다'라고 담담히 대답한다. 이렇게 대답할 수 있는 저자의 삶이 궁금하고 기대가 되어
서둘러 책장을 연다.
언젠가 TV에서 하는 '차마고도'이야기를 보며 막연히 저들에게도 복음이 전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중국의 차와 티벳의 말을 교환하기 위해 개통된 옛길이란 의미의 '차마고도'는 기원전
2세기 경부터 존재한 고대 무역로로 해발 4000미터가 넘는 험준한 길과 설산이 펼쳐진 세상의 문명과
가장 동떨어진 곳이다. 저자의 말대로라면 '이런 곳에 사람이 살 수 있을까'라는 그곳에도 사람은
살고 있었다. 그런 그곳에서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이 '소금'인데 저자는 소금보다 더 귀한 '복음'을
가지고 담대히 나가며 '영혼구원'이라는 사명에 목숨을 걸고 그렇게 최선을 다하고 이것을 '그리스도의
마음'이라고 말한다. 2-3일씩 걸어오면서 눈이나 비가 오면 산속에 웅크리고 있다 다시 걷고, 저녁이
되면 산등성이 길 한쪽에서 쪽잠을 자면서도 그들은 '예배'를 드린다. 이런 그들을 보며 복음이 가지는
능력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본다.
중국 선교지에서 만났던 한번의 집회를 참석하기 위해 6개월간 일을 한다는 자매나, '복음이 울다'를
통해 만난 천길 낭떠러지 산길을 올라 예배드리고 다시 그 밤에 그 길을 내려가면서도 행복해 하는
이들과 새벽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밤길을 재촉하시던 우리 선배 신앙인들의 복음에 대한 열정과
간절함이 참 많이 닮았다. 복음은 그런것 같다. 어느새 자신도 모르는 힘에 의해 이끌려 지는 것,
그래서 그 이끌림에 순종하고 순응하는 것, 이것이 진정한 복음의 능력이 아닐까 싶다.
저자도 이것을 경험했다. 기도는 내가 원하는 것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것을 묻고
기다리는 행동이다. 구체적으로 기도하란다고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내가 원하는 것을 달라고
떼쓰는 우리, 내 생각대로 그림 다 그려놓고 이대로 해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은 기도가 아니라 억지고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우리의 잘못된 기도는 하나님의 결정과 선택마저도 바꾸려고 한다. 하나님이
어떤 그림을 주셔도 '아멘' 할 수 있는 것이 진짜 기도다. 기다림의 시간은 항상 지루하고 힘들다.
당연히 지친다. 처음 먹었던 열정과 간절함이 서서히 퇴색되기도 한다. 이 순간 잊지 말아야 할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시간은 같다는 것과 그분이 신실하시다는 것이다. 기다림의 시간 동안 무엇을
기다리는가, 누구를 기다리는가에 따라 같은 시간도 다르게 느껴진다. 그래서 저자는 하나님의 일을
기대하고 기다리기로 결정한다. 왜냐하면 하나님 그분은 산실하신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잠시 머물며 나의 기다림을 생각해 보았다. 조급함 때문에 그분의 계획을 바꾸려 하지는 않았는지,
조금의 불편함 때문에 그분의 결정에 반기를 들지는 않았는지, 약간의 어려움 때문에 그분의 선택에
불순종하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보니 다시 고개가 숙여진다.

생명의 위협을 감수하면서도 복음의 길을 여전히 걷고 있는 저자는 자신의 사역을 '하나님 말씀 가운데
한 걸음 한 걸음 묵묵히 걸어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벼랑 끝에서도 '할렐루야'를 외칠만큼 주님을
신뢰하고 남은 날 동안 머리 둘곳 없는 사람처럼 살면서 언제든 부르심에 응답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이런 그의 평생의 고백은 '순종'이다.
이 책에서 존 비비어의 '순종'과는 다른 '순종'을 만났다. 전폭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한 저자의 고백이
신뢰도, 희망도, 의지도 없이 맹목적 신앙 행위에 몰두하는 현대 종교인들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 책은 신앙의 위기에 처한 이들이 꼭 읽어 보고 힘을 얻고 도전을 받았으면 좋겠다.
주님 만날 그날 '너 뭐하다 왔니'라고 물으시면 무언가 이야기 할 수 있는 그런 신앙인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