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발견 - 나의 특별한 가족, 교육, 그리고 자유의 이야기
타라 웨스트오버 지음, 김희정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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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신고를 한적이 없기 때문에 학교에 가야 하는 어떠한 의무와 권리를 가지지 못했고 당연히

주정부와 연방정부에게는 존재 하지 않는 아이, 그러나 그녀는 존재했고 자연과 대지라는 거대한

공간 속에 숨쉬면서 살아있었다. 정부의 간섭과 생존 그리고 종교적 신념을 위해 출생신고조차 하지

않지만 결국 생활을 하고 살아야 하기에 제도권 아래로 나올 밖에 없으나 마저도 자신과의

적절한 타협으로 무마하고 넘기는 가족들. 모순이긴 하지만 출생증명서의 출생일에 대한 논란이나

어쩌다 동네 유일의 산파가 엄마 이야기는 재미있는 시트콤을 보는 흥미롭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자신이 존재한다는 법적 증거인 '출생증명서' 받아드나 사실 이마저도 날자가 정확하지

않다. 본인들은 모르지만 외부인 대부분은 그들을 허상과 피해망상으로 만들어진 덫에 둘러싸여

점점 고립되어 간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추억을 먹고 산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추억이 희망이 되어 조금씩 조금씩 추억을 탕진하며

산다. '라떼는 말이야'라는 요즘 우스개 소리 마냥 뭔가 거창하고 대단한 일을 한것 마냥 으스대기도

하고, 기억의 면을 부여잡고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저자도 그랬다. 저자가 가진 외할머니에 대한

추억은 특별하다. 외부와 단절된 일상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편이 되어주고 마음 놓고 얘기 있는

그런 존재였다. 물론 할머니도 돌아가셨다. 장의사들이 잘못 칠해 놓은 입술을 그대로 간직한 .

화장실을 다녀온 손을 씻어야 한다는 할머니와 손에 오줌을 싸지 말라고 가르치는 아빠 사이에서

저자는 혼란스러울 법도 한데 이쪽 저쪽 적응한다. 여기서 배운 적응력이 그녀를 자립적이고

독립적으로 성장시켰는지도 모른다. 


책은 1부에서는 태어나면서 17세에 ACT 시험에서 28점을 획득해 브리검 대학에 합격하기까지를 

2부에서는 1 보다 파란만장하고 스펙터클한 대학생활이 그려지고 3부에서는 캠브리지 트리니티

칼리지에서의 석사와 하버드에서의 박사과정이 소개된다. 트리니티 칼리지의 입구는 돌문으로 막혀

있고 돌문에는 작은 나무문이 달려 있어 문으로 들어서야 칼리지 안으로 들어 있다. 이곳에

방문객도 손님도 아닌 자신의 이름이 문에 페인트로 있는 서류로도 이곳에 속한 사람이 저자의

경이로움과 기쁨은 '캠브리지는 여전히 기억 속에 있던 대로 오래되고 아름다웠다' 말로 충분히

표현된다. 그리고 속에 자주 등장하는 중세 시대의 흉벽은 마음의 쉼터이자 편안함을 제공하는

안식처였던것 같다. 누구나 그렇게 바라보는 무언가가 존재한다. 


'과거는 영향을 끼칠 없는 대단치 않은 유령에 불과했다. 무게를 지닌 것은 미래뿐이었다'

저자의 삶의 자세를 말해주는 문장이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물론 과거가 존재하기에 현재도 미래도

존재하지만 과거가 현재와 미래에 대해 책임질 있는 것은 없다. 그렇기에 현실에 충실해야 하며

충실한 현재가 미래를 가져오는 것이다. 


저자는 책의 말미에 '교육' 대해 이야기하며 '자아' 말한다. 때로는 변신, 탈바꿈, 허위, 배신이라고

불리는 이것은 변화된 자아이며 성장한 자아이고 그녀는 이것을 '교육'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녀는

책을 비망록(잊지 않으려고 중요한 골자를 적어둔 )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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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알고 있다 - 꽃가루로 진실을 밝히는 여성 식물학자의 사건 일지
퍼트리샤 윌트셔 지음, 김아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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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위대함과 신비는 무수히 이야기 되어 왔다. 흔적과 신호를 통해 상황에 대해 말하며 증거를

제공하는 자연은 자체로 훌륭한 단서가 되고 유의미한 재료가 된다. 그것을 파악하고 파헤치고

탐구하는 이에게 . 저자는 법의학이라는 학문 '법의생태학' 선구자로 죽음에 대해 하나의

억울함도 없게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작은 알갱이 하나하나, 작은 흔적 하나하나의 인과 관계를

아내서 많은 억측과 가설을 부수고 보이지 않던 흔적을 끄집어 낸다. 

죽음 이후에 삶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죽음 안에는 언제나 삶이 있다. 법의학은 바로 죽음 안에

있는 삶의 흔적을 찾는 학문이다. 어떠한 모습으로든 남게 되는 삶의 흔적을 찾아 죽음의 이유와

원인들을 밝혀 조금이라도 진실에 가깝게 다가가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법의학의 선구자로 불리는

에드몽 로카르(Edmond Locard, 1877-1966) '모든 접촉은 흔적을 남긴다'라는 '로카르의 교환법칙'이라는

절대 명제를 남겼다. 

저자는 화분학(Polynology)이라는 '먼지에 관한 연구' 하는 학문(좀더 쉽게 설명하면 공기, , 퇴적물,

토양, 실생활에서 수집할 있는 꽃가루, 포자를 비롯하여 현미경으로 관찰할 있는 크기의 화분 분석과

미립자에 관한 연구를 말한다) 공부했고, 어느날 살인사건 때문에 찾아온 형사에게 도움을 주면서

법의학에 관심을 갖게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이며 풀리지 않던 수수께끼에 대한 놀라운 정확성, 호기심,

겸손 그리고 진실에 대한 열정으로 '법의학의 여왕'이라 불린다. 


사이먼 베킷의 말처럼 책은 실화가 소설보다 놀라울 있고 긴박하고 스릴이 넘친다는 것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사건들 마다 진실을 찾는 (저자인 페트리샤 윌트셔의 애칭) 모습은 읽는 이의 모든 감각을

집중시킨다. 혹여 바람이라도 불면 날아갈듯한 조각조각들을 하나씩 모으고 찾아내는 그녀의 모습은

장엄하기까지하다. 다이슨에 의해 살해된 조앤의 사체를 찾을때도, 삼합회에 의해 살해된 남성의 증거를

찾을 때도, 강간을 저지른 소년의 증거를 찾을 때도, 요크셔 광산층에서 미이라화 되어 발견된 시신의

흔적을 찾을 때도 그랬다. 


어떤 표본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꽃가루와 포자의 종류와 양은 환경의 변수에 따라 달라지는데 이것을

'화석생성론적요인'이라고 부르고 화분학에서 화석생성론적요인은 '특정 시간, 특정 장소에 어떤 화분

화석이 발견될지 여부를 결정하는 모든 요소들' 그것이며 모든것은 절대적인 것이 거의 없고 확률적이다.

때문에 법의학자는 모든 가능성을 고려해야 하며 모든 가능성이 대해 항상 열려 있어야 한다. 

'자연과 죽음의 매혹적인 진실'

책을 정의하는 줄이다. 여기에는 자연이 주는 진실과 죽음에 대한 저자의 경험이 그대로 녹아있다.

자연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자연은 자신의 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감추려 하지 않는다. 저자는

이러한 자연이 던져주는 메시지를 통해 실마리를 발견하고 하나의 '억울한 죽음' 생기지 않게 하려고

최선을 다해왔고 일흔이 넘은 지금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런 저자에게 어머니가 임종을 앞두고

남긴 말이 가슴에 닿는다. 

'내가 이렇게 멋진 딸을 두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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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은 우리 몫이 아닙니다 - 불완전한 삶에 임하는 하나님의 은혜
김경진 지음 / 두란노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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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은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의 삶에 임하십니다. P137


사람은 누구나 완벽을 추구한다. 입으로는 '너무 딱딱하고 인간미가 없다' 말하지만 정작 우리는

어느정도 '완벽중독' 빠져있다. 그런 우리에게 '불완전한 ' 이야기하며 '있는 모습 그대로'

전하는 전하는 저자의 글은 반갑다. 곽선희, 김지철 목사님의 뒤를 이은 소망교회 3 목사라는

점보다 그가 예배설교학자라는 점에서 그가 말하는 '불완전함' 의미가 기대된다. 

누구나 신앙생활을 하면서 주님께 실망할때가 있다. 이때 중요한것은 우리의 반응이다. 성경에 나오는

나사로의 죽음에 대한 마리아와 마르다의 모습처럼 우리의 모습도 분명 갈릴것이다. 오라비 나사로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모습은 사뭇 다르다. 동일하게 실망하고 아쉽지만 그래도 주님 앞으로

나아가는 마르다와 여전히 절망의 자리에서 낙담하며 머무르는 마리아. 둘의 모습에서 세상과

님과의 사이에서 머뭇거리고 방황하는 우리의 현실을 본다. 누구나 어려움을 겪는다. 그리고 어려움은

자에게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이다. 특별히 가족의 죽음은 상실감과 엄청난 고통을 수반하는데

이때 우리의 시선이 중요하다. 쉽지는 않겠지만 무엇을 보며 무엇에 집중하느냐에 따라 혼자뿐만 아니라

개인의 미래 역시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마르다는 절망의 순간 주님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며 다시금

희망을 떠올린다. 우리에게도 이런 믿음이 필요하다. 바라보는 만큼 꿈꿀 있고 꿈꾸는 만큼 이룰수

있다. 무엇을 바라보며 무엇에 집중하느냐는 사람의 현재와 미래를 결정한다. 

저자는 우리의 무분별하고 무지한 '성령받기' 대해 경고하며 '성령 임재의 다양성' 대해 이야기 한다.

성령은 선물이다. 그런데 선물을 자신이 받고 싶은 것으로 받아야만 직성이 풀린다. 그러다 보니

성령의 다양성에 대해 인정하려하지 않고 자신의 경험이나 생각만으로 제한하려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각기 다른 모양으로, 다른 육체로, 다른 속성으로 만드셨기에 어떤이는 극적이고 열광적인 체험을 통해

성령을 허락하시기도 하지만 어떤이에게는 조용하고 잔잔하게 말씀과 기도를 통해 성령을 경험하게

하신다. 어느것이 정답이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 각자가 자신의 기질과 성향에 따라 성령을 받아 들일

있도록 인도하신다. 


성경은 성령 임재의 다양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마가복음에서의 성령 임재는 예수님을 향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자비한 음성을 듣는 것으로 시작하고(1:9-10), 사도행전에서는 성령 받은 사람들이

방언하며 소리치며 밖으로 나가는 모습으로 나타낸다.( 2-3) 곳에서는 '증언'으로 곳에서는

'들음'으로 성령 임재가 나타난다. 들음으로 주님을 만나고 체험한 사람들이 있다. 바울이 그러했고,

어거스틴이 그러했고, 마틴 루터가 그러했다. 그들에게 성령의 임재는 들음에서 시작했다. 


우리는 종종 광야에서 성령의 임재를 체험한다. 광야에서 우리는 배고프고, 지치고, 힘이 빠져있다.

그리고 이상 자신의 능력을 의지할 없다고 선언하며 주를 바라 , 바로 그때 함께하시며 일하시는

성령님을 발견하게 된다. 그곳에 성령이 계신다. 하나님의 성령은 강력한 능력이나, 강력한 소리로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다. 마가의 다닥방에서만, 예배 현장에서만, 뜨거운 찬양 가운데만 임재하는 성령이

아니라 힘들게 살아가는 가운데, 하나님이 계신지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자리에, 사탄이 우리를

넘어 뜨리려고 하는 그곳에도 성령이 함께 계시고 우리를 인도하신다. 우리의 영의 눈을 열어 일하시는

그리고 함께하시는 분을 보아야 것이다. 


세상 어느 누구도 완전 수는 없다. 당대 의인이었던 노아(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의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6:9) 역시 그랬다. 세상을 말하려는 하나님의 계획 속에 모든 인류가 죽어도

살아 남아야 사람으로 하나님이 의해 선택 노아. 그는 당대에 하나님의 마음에 만큼 경건한

의인이었고 하나님의 기대에 맞게 사람들이 조롱하는데도 불구하고 산에서 방주를 그것도 무려

120여년 동안 만들었을 만큼 신실한 인물이었다. 그런 노아가 홍수 이후 성경에 드러나는 모습은

'노아는 농사를 시작했고 어느날 포도주를 잔뜩 마시고는 하체를 드러낸채 잠이 들었다' 이야기 뿐이다.

성경은 노아와 같은 위대한 인물, 의인이며 새로운 인류의 조상이자 당대의 완전한 자였던 노아에게도

실수가 있었다는 것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인간은 여전히 완전할 없는 존재이고 실수하는 존재이다.

완전한 사람도 완전한 공동체도 없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 '언젠가는' 불완전한 존재가 되고 만다.

실수 하는 인간, 허물 많은 인간, 속에 빠져 있는 인간, 그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문제는 이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자세이다. '내탓이요'하면서 상대방을 가르키는 오만함이 아니라 눈물로 마음으로 무릎으로

받아들이는 겸손함이 필요하다. 만약 우리가 모두 완전한 사람들이라면 예수는 이상 필요 없는 존재가

된다. 우리의 추하고 부족한 모습 때문에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고 주님은 우리의 모든

죄악을 덮는 구원의 역사를 감당하셨다. 분은 우리의 수치를 덮어 주시며 여전히 우리에게로 향하신다.

 

책은 '완벽'이라는 허상을 쫓느라 심신이 모두 지쳐있는 우리 청년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그들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도 없고 완벽은 우리의 몫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세상을 향했던 시선이

주님에게로 집중되는 삶을 살아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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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페이지 예술가의 일기장 1
서자현 지음 / 작가와비평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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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앓이' 경험한 중년 작가라는 구절이 자꾸 눈에 밟힌다. 중년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가

예사롭지 않다. 무언가 책임져야하고 무언가 앞장서야하며 결정적으로 자신에게 부여된 것들에

허덕이며 겨우겨우 버티기에 돌입한 안타까운 인생을 총칭하는 듯한 '중년'


'쉬운건 없다. 다만 피곤할 '

세상사 쉬운게 어디있을까? 어느것 하나 쉽지 않고 어느것 하나 만만한게 없는 것이 인생인데 늦은

나이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열정을 보이며 도전하는 저자의 모습은 보기 좋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적기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실상 이론 속의 말일 현실은 그리 녹녹치 않다. 늦었다고

생각하면 이미 늦은 것이 현실인 상황 앞에 저자는 자신의 꿈을 향해 묵묵히 걸음을 옮기며 힘이

되어주는 옆지기, 지인, 가족들에게 책을 통해 감사를 전한다. 


저자는 반복의 지루함과 처절함을 말한다. 어쩌면 대부분 중년의 그들 모두의 마음일수도 있다.

몇십년을 반복해온 일상의 지루함, 거기서 오는 회의와 매너리즘, 권태, 우울등은 '중년의 위기'

가져오고 많은 중년들에게 아픔을 준다. 그런면에서 저자의 도전과 열정은 부러울 뿐이다. 

물론 우리에게 행복만 있지는 않다. 불안한 시대, 불안한 생각, 불안한 외로움으로 대변되는

현대 사회의 불안은 어느 누구도 피해갈수 없는 현실이고 인생이고 현실은 언제나 우리의 밑까지

쫓아와 우리를 압박하고 짖누른다. 그럼에도 중년은 해야 하는 것들과 피곤함 사이에서 갈등하며

고민한다. 중년은 '관계맺기' 서툴다. 아니 소극적이다. 그만큼 살아왔기에 섣불리 움직이지 않는다.

감정의 골과 이해의 폭을 동시에 가지기에 마주함이 쉽지 않고 그저 머뭇거린다. 머뭇거림으로 기회를

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소극적이고 미온적이다. 이해하는 깊이에 따라 관계도

결정되는 것임을 알지만 이해함에도 가치를 부여하지 않고 머뭇거린다. 가치라는 것은 고통스러움이

따르기에 그만큼 귀하고 어렵다. 그래서 중년은 관계맺기에 서툴다. 


아티스트에게 일상의 기록은 그리는 뿐만 아니라 내리는 모든 기록이 하루의 창작이고 여기에서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책의 제목인 '163페이지' 성장이 멈춘 저자의 키인 163cm 다양한

자신의 삶이 녹아 있는 163 간의 기록을 적어 놓은 것들이다. 변하지 않는 키의 상징성은 인간 육체의

한계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렇게 벗어나려고 애썼던 사회적 틀과 여러가지 모양과 속에 존재하는

견고한 자아이다. 그리고 자아를 둘러싼 여러 상황들 속에 가족의 사랑을 깨닫고 적어가는 저자의

기록이며 종교적 섬세함의 표현이다. 그런 그의 종교적 결론은 이것이다. '사랑 없을 때도,

사랑할 대상이 아닐때도 더욱 사랑해야 하는 '


어쩌면 저자는 그런 삶을 살기 위해서 발버둥치면 묵묵히 자기 길을 걷고 있는 것이며 영원히 풀리지

않을 숙제이지만 어떻게든 풀어 보려 애쓰고 매달리는 것이다. 그런 그녀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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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얼은 왜 가난한가 - 불평등에 분노하는 밀레니얼, 사회주의에 열광하다
헬렌 레이저 지음, 강은지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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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밀레니얼 시대는 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출생한 세대를 지칭하는 말로 정보기술(IT)

능통하고 대학진학률이 월등히 높다는 특징을 가지나 2009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사회에 진출해

고용감소, 일자리 저하등의 어려움을 겪었고 평균 소득이 낮고 대학 학자금 부담을 안고 있고

이러한 경제적 부담 때문에 결혼, 출산, 내집마련을 미루는 경우가 많은 세대이다. 지난 100년을

통틀어 역사상 가장 가난한 세대라고 불린다. 이와 같은 구조적 문제로 인해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는

삶에 실증을 느낀 젊은 세대들 사이에 '마르크스' 부각되는 현실 앞에 저자는 '군살이 빠진'

사회주의를 이야기한다. 


어떤 상상도 완벽하지는 않다. 만약 자신들의 사상이나 이념이 완벽하다고 한다면 광신도이거나

이상주의자일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자본주의는 위대하지 않다고 말한다. 물론 마르크스 주의자들도

수많은, 그리고 엄청난 실수들을 저질러 왔다. 그들의 이념에 반하는 행동들을 서슴없이 저지르기도

했고 심지어 그들은 평등을 주장하면서 인종차별과 성차별을 태연하게 저질렀다. 다만 그들은 '세상이

위대하다'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자본주의는 이보다 열악한 이상주의다. 막연한 이상을

가졌기에 이상을 꿈꾸며 취하느라 앞에 놓인 현실 상황을 외면하거나 혹은 못본척한다. '개인적

책임' 주장하지만 정작 어느 누구도 책임 지려고 하지 않는 불합리한 구조가 자본주의의 현실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여전히 세상이 위대하다고 떠들며 꿈을 꾼다. '개인의 책임' 대한 마르크스

주의자들의 주장은 '지금 순간 역사를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인간 개개인, 그리고 모두가 동참해야

한다'이다. 


사업을 하는 목적은 이윤이다. 선하게 보이는 이들의 동기도 바로 이윤이다. 자본주의는 물질적 부의

추구를 가장 구체적인 동기로 삼고 움직인다. 결과 지구상의 가장 가난한 절반이 가진 것보다 많은

부를 여덟명이 소유하는 아이러니를 만들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마르크스 주의자들의 사업 역시

이윤 추구가 목적이다. 이론상으로 개인의 이익이냐 공공의 이익이냐가 나뉠뿐 실질적인 목적은 이윤의

극대화이다. 

책은 마르크스 이론의 가장 중요한 부분만을 골라 우리 시대의 언어로 마르크스주의의 핵심을 전한다.

대학시절 유독 관심이 가던 분야가 마르크스가 이야기 하는 '소외' 관한 부분인데 간략하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우리가 만들어 생산물에서 소외되었기에 이를 소유할 없고, 우리는 우리가

생산하는 것들의 생산양식에 개입하거나 접근하지 못하므로 이에 소외되었고, 우리는 마르크스가

생산자로서 우리의 '정수'라고 (우리 인간은 만들고, 일하고, 계획하는 것을 좋아한다)으로 부터

소외되었으며, 우리는 우리의 동료들과 물리적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그들을 경쟁 상대로 보아야 하기에

동료 노동자들로부터 소외되어 있다. 결국 이와 같은 소외는 자주적 결정권이 박탈 당하며 집단행동에

대한 기본적 의무 마저 꺽어 버리고 결국 물질에 종속되게 만든다. 그리고 그가 180여년전에 예언한

 '소외' 지금 이순간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가열차고 집요하게 적용되고 결국 노동이 노동자의

소외를 만드는 슬픈 현실이 반복된다. 희망은 '#희망'이라는 해시태그를 단다고 찾아 오는 것이 아니다.

마르크스의 이야기처럼 우리 스스로를 위한 희망을 생산양식에 넣을 비로소 희망을 기대할 있게

된다. 

저널리스트들은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진실은 허상에 불과하다. 현재 자본주의

언론에서 '진실' 가장 가까운 내용은 엄청난 이윤을 논하는 금융란이나 어쩌다 나오는 미담에서나

찾을 있고 이마저도 대부분이 허상이다. 민중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싶다면 그들이 일하는 것을

들여다 보아야 제대로 있는데 그냥 밖에서 대충 살펴보고 글을 써대니 기사가 허상일 밖에 없다.

여전히 소외 받은 이들, 여전히 착취 당하는 이들, 여전히 핍박받고 고통 당하는 이들이 존재함에도 이를

묵인하거나 방조 한다면 저자의 표현처럼 쓰레기이며 악마의 똥구멍을 핥는 용도로나 쓰는게 나은

혓바닥이다. 

저자는 자신을 늙고 실패한 마르크스주의자라고 말하며 밀레니얼들에게 자신들이 평생을 떠들어도 여전히

'철저한 쓰레기'(우리 자신을 '표현할' 필요성, 우리의 경이롭고 경계를 모르는 유동적인 정체성을 선언할

필요성, 우리의 자존감, 우리의 목소리를 전할 필요성) 대해 전하며 진정한 공산주의는 한번도 시도된

적이 없기 때문에 완전히 실패했다고 말할 없으므로 밀레니얼들에게 공산주의라는 작은 혼란 속으로

도전 것을 권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99% 당신은 100% 세계를 얻을 있다. 

가서 쟁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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