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얼은 왜 가난한가 - 불평등에 분노하는 밀레니얼, 사회주의에 열광하다
헬렌 레이저 지음, 강은지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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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얼 시대는 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출생한 세대를 지칭하는 말로 정보기술(IT)

능통하고 대학진학률이 월등히 높다는 특징을 가지나 2009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사회에 진출해

고용감소, 일자리 저하등의 어려움을 겪었고 평균 소득이 낮고 대학 학자금 부담을 안고 있고

이러한 경제적 부담 때문에 결혼, 출산, 내집마련을 미루는 경우가 많은 세대이다. 지난 100년을

통틀어 역사상 가장 가난한 세대라고 불린다. 이와 같은 구조적 문제로 인해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는

삶에 실증을 느낀 젊은 세대들 사이에 '마르크스' 부각되는 현실 앞에 저자는 '군살이 빠진'

사회주의를 이야기한다. 


어떤 상상도 완벽하지는 않다. 만약 자신들의 사상이나 이념이 완벽하다고 한다면 광신도이거나

이상주의자일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자본주의는 위대하지 않다고 말한다. 물론 마르크스 주의자들도

수많은, 그리고 엄청난 실수들을 저질러 왔다. 그들의 이념에 반하는 행동들을 서슴없이 저지르기도

했고 심지어 그들은 평등을 주장하면서 인종차별과 성차별을 태연하게 저질렀다. 다만 그들은 '세상이

위대하다'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자본주의는 이보다 열악한 이상주의다. 막연한 이상을

가졌기에 이상을 꿈꾸며 취하느라 앞에 놓인 현실 상황을 외면하거나 혹은 못본척한다. '개인적

책임' 주장하지만 정작 어느 누구도 책임 지려고 하지 않는 불합리한 구조가 자본주의의 현실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여전히 세상이 위대하다고 떠들며 꿈을 꾼다. '개인의 책임' 대한 마르크스

주의자들의 주장은 '지금 순간 역사를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인간 개개인, 그리고 모두가 동참해야

한다'이다. 


사업을 하는 목적은 이윤이다. 선하게 보이는 이들의 동기도 바로 이윤이다. 자본주의는 물질적 부의

추구를 가장 구체적인 동기로 삼고 움직인다. 결과 지구상의 가장 가난한 절반이 가진 것보다 많은

부를 여덟명이 소유하는 아이러니를 만들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마르크스 주의자들의 사업 역시

이윤 추구가 목적이다. 이론상으로 개인의 이익이냐 공공의 이익이냐가 나뉠뿐 실질적인 목적은 이윤의

극대화이다. 

책은 마르크스 이론의 가장 중요한 부분만을 골라 우리 시대의 언어로 마르크스주의의 핵심을 전한다.

대학시절 유독 관심이 가던 분야가 마르크스가 이야기 하는 '소외' 관한 부분인데 간략하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우리가 만들어 생산물에서 소외되었기에 이를 소유할 없고, 우리는 우리가

생산하는 것들의 생산양식에 개입하거나 접근하지 못하므로 이에 소외되었고, 우리는 마르크스가

생산자로서 우리의 '정수'라고 (우리 인간은 만들고, 일하고, 계획하는 것을 좋아한다)으로 부터

소외되었으며, 우리는 우리의 동료들과 물리적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그들을 경쟁 상대로 보아야 하기에

동료 노동자들로부터 소외되어 있다. 결국 이와 같은 소외는 자주적 결정권이 박탈 당하며 집단행동에

대한 기본적 의무 마저 꺽어 버리고 결국 물질에 종속되게 만든다. 그리고 그가 180여년전에 예언한

 '소외' 지금 이순간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가열차고 집요하게 적용되고 결국 노동이 노동자의

소외를 만드는 슬픈 현실이 반복된다. 희망은 '#희망'이라는 해시태그를 단다고 찾아 오는 것이 아니다.

마르크스의 이야기처럼 우리 스스로를 위한 희망을 생산양식에 넣을 비로소 희망을 기대할 있게

된다. 

저널리스트들은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진실은 허상에 불과하다. 현재 자본주의

언론에서 '진실' 가장 가까운 내용은 엄청난 이윤을 논하는 금융란이나 어쩌다 나오는 미담에서나

찾을 있고 이마저도 대부분이 허상이다. 민중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싶다면 그들이 일하는 것을

들여다 보아야 제대로 있는데 그냥 밖에서 대충 살펴보고 글을 써대니 기사가 허상일 밖에 없다.

여전히 소외 받은 이들, 여전히 착취 당하는 이들, 여전히 핍박받고 고통 당하는 이들이 존재함에도 이를

묵인하거나 방조 한다면 저자의 표현처럼 쓰레기이며 악마의 똥구멍을 핥는 용도로나 쓰는게 나은

혓바닥이다. 

저자는 자신을 늙고 실패한 마르크스주의자라고 말하며 밀레니얼들에게 자신들이 평생을 떠들어도 여전히

'철저한 쓰레기'(우리 자신을 '표현할' 필요성, 우리의 경이롭고 경계를 모르는 유동적인 정체성을 선언할

필요성, 우리의 자존감, 우리의 목소리를 전할 필요성) 대해 전하며 진정한 공산주의는 한번도 시도된

적이 없기 때문에 완전히 실패했다고 말할 없으므로 밀레니얼들에게 공산주의라는 작은 혼란 속으로

도전 것을 권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99% 당신은 100% 세계를 얻을 있다. 

가서 쟁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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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은 1%의 기적 - 치열하게 살아온 전여옥의 인생후반전
전여옥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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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가치는 엄청나고 대단하고 거창한 것이 아니다. 다만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만족에 감사하며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 어쩌면 이것이 가장 삶의 가치일 것이다. 인생의 절반을 지나고 '하프타임'

맞이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의 동일하게 느끼는 감정인 이것은 거의 틀리지 않고 저자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같다. 


' 프라이버시는 내가 지켜야 한다'

현실 세상에서 절실하고도 절실한 말이다. 나의 절친이 혹은 누군가가 지켜줄것이라고 생각 하는가.

착각하지마라. 아무도 지켜주지 않는다. 가장 친하다고 생각하는 조차도 어느새 등에 비수를

꽂으며 득의한 미소를 짓는 세상에서 프라이버시에 성역은 없다. 그래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세상이 알아도 될만한 것을 제외하고는 프라이버시에 대해 스스로 지켜라'


저자는 직설적이고 논쟁적인 사람이다. 예전 어느 포럼에서 만난 그녀는 저돌적이고 도전적이었다.

자신의 것에 대해 공격 받거나 침해받는 것을 못견뎌하며 오히려 공격적인 어조와 어투로 장면을

넘어가던 모습이 꽤나 인상적이어서 포럼을 마친 식사 자리에서 이렇게 물어 보았다. '굉장히

공격적이시네요' 그때 그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저를 지켜야지요' 그럴수도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방어기제를 가지며 그것은 결정적인 상황에서 자신을 지키는 유일한 무기가 된다. 그때 만난

전여옥과 지금 책으로 만나는 그녀는 많이 다르다. 세월이, 세상이, 사람이 그를 다르게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느껴지는 기운이 다르다. 예전의 그가 '날카로운 무언가'였다면 지금 만나는 그는

여전히 날카로움을 가지고 있으나 여간해서는 드러내지 않는 '감춰진 ' 같다. 그러다 보니 글에

따스함과 인간미가 묻어난다. 그런 그가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인생은 생각보다 길고 행복은

멀리 있는 파랑새가 아니었다' 아마도 그녀를 아는 사람에게 말은 낯설것이다. 마치 내일 지구의

끝이 오는 처럼 저돌적이고 직설적이었던 그녀가 인생이 멀고 길다고 말하고, 앞에 보이는

이익과 목적을 위해 거친다고 서슴지 않았던 그가 행복은 멀리 있는 파랑새가 아니고 지금 이곳

소소한 일상 속에 있다고 말한다. 


새상에는 가짜가 많다. 가짜가 많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진짜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어딘가에

진짜가 존재하기에 수없이 많은 가짜들이 자리를 엿보며 흉내를 내는 것이다. 그러나 가짜는

어쩔 없이 가짜다. 저자는 자신이 겪은 가짜들의 진절머리나고 어설픈 행동들을 지적하며 우리에게

묻는다. '내가 세상을 속이는 것은 없나?'


남한테 속고 싶지 않으면 나부터 누군가를 속이지 않으면 된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부터

속이지 않는 것이다. 넘쳐나는 가짜들 속에서 진짜로 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나 만큼의

가치가 있는 삶이기에 저자는 넘쳐나는 가짜로 살지 말고 유일한 진짜로 살라고 조언한다.

 

사람은 역시 변하는가보다. 세월이 흐른 지금 부쩍 많이 유해지고 인간미 넘치는 그녀를 책을

통해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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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흐름이 보이는 회계 이야기 - 회계의 탄생부터 이론, 재무제표 속 회계용어를 한 권으로 읽는다
구상수 지음 / 길벗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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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 어렵다고 생각하는 우리에게 저자는 회계학적 사고를 통해 기업의 재무재표 분석과 삶을

살아가는 경제 생활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있다고 말하며 딱딱한 숫자 이야기가 아니고 역사,

인문, 사회를 연결해서 쉽고 익숙한 회계의 세상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경영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피터 드러커(Peter F Drucker) '측정하지 못하면 관리하지 못한다'

말에서 있듯이 기업은 현재와 과거와 미래에 대한 정확한 가치와 데이터가 필요하며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이 회계이다. 회계는 재무 정보를 파악하기 위한 재무회계와 세금을 계산하기 위한

세무회계, 조직의 경영자가 의사결정을 내리는데 필요한 회계 정보를 파악하기 위한 관리회계로

나뉜다. 기업은 재무, 세무, 관리회계를 통해 항상 성과를 측정하고 관리한다.


회계는 재무상태를 파악한 시간의 경과에 따라 이것이 어떻게 변동해 가는지를 기록및 관리하는

일련의 작업이다. 기원전 2040년경 메소포타미아 우르 왕조의 재무상태표가 발견됐을 정도로 회계의

역사는 깊고, 13세기부터 복식부기를 사용했다는 이탈리아 상인들 보다 200년이나 앞선 11세기 부터

개성상인들은 '사개치부법'이라 불리는 복식부기를 사용했다는 기록도 존재한다. 소설 '베니스의

개성상인' 등장하는 개성상인이 선조로 부터 배운 복식부기를 그들에게 알려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기도 한다. 


책은 회계에 대한 기초부터 고급까지를 망라한다. 그동안 어렵고 복잡하다는 생각에 배울 생각

조차 하지 않았던 복식부기에 대한 설명을 보면서 ' 진작 배우려고 하지 않았을까'하는 의문마저 가질

정도로 쉽다. 차변은 받을 (자산)이고 대변은 갚을 (부채)이라는 파치올리의 도식을 통해 쉽게

이해할 있었고, 차변을 굳이 왼쪽에 두는 이유는 대부분 시계를 왼쪽에 차는 오른손 잡이의 습관처럼

자금의 흐름이 오른쪽(대변)에서 시작(조달)해서 왼쪽(차변)으로 흘러가는 것이 자연스러워서 일거라는

저자의 설명이 쉽게 수긍이 간다. 


또한 하나의 상품이라 하더라도 쓰임새에 따라 회계처리가 달라진다는 대목은 눈길을 끈다. 예를 들면

닭이라는 상품이 회사가 식용으로 판매하기 위해 보유한 것이면 재고자산, 달걀이라는 수확물을 얻기

위해 보유한 것이면 생물자산, 동물원 등에서 입장 수익을 얻기 위해 보유한 것이면 유형자산으로

회계처리를 해야 한다. 역시 회계는 어렵다. 친절한 설명으로 조금은 이해하는 싶었는데 여전히

어렵고 복잡하다. 


회계는 차변과 대변의 평형(균형) 추구한다. 그리고 복식부기는 대차평형을 이루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우리 삶도 비슷하다. 알랭 보통(Alain de Botton, 1969-) 그의 저서 '우리는

사랑일꺼'에서 다변하고 급변하는 우리의 모순적인 마음을 차변과 대변에 비유하며 친절하게 설명하고

우리의 삶에도 평형(균형) 필요하다고 말한다. 대차의 균형을 요구하는 회계학적 사고는 인생을 보다

균형적으로 살기 위한 좋은 길잡이가 될것이며 균형을 요구하는 판단과 결정의 순간에 유용한 수단이

될것이다. 헤르만 헤세는 이것을 '진리의 대차 균형'이라고 말한다. 


책은 어렵다. 비록 저자가 독자들이 쉽게 이해하도록 친절을 베풀지만 사실 여전히 어렵다. 그런데

읽어보면 술술 읽혀진다. 말은 우리가 굳이 회계사가 되거나 회계관련 업무를 할것이 아니기에

암기를 하거나 완벽한 이해를 요구하지 않고 그냥 읽으면 된다. 저자는 이러한 우리의 상황적 요구를

알기에 친절하게도 무수한 예와 첨언들을 통해 이해를 돕는다. 책은 현재를 살아가는 모든

경제활동가들이 한번 읽어 보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저자의 말을 적어 본다.

'인간은 회계를 통해 자신의 잘못을 참회하고 반성함으로써 종교의 영역에서 계속 머물 계기를 찾듯이,

기업들은 회계를 통해 과거의 성과를 측정하고 관리하는 방식으로 존속할 동력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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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셰프 서유구의 꽃음식 이야기 임원경제지 전통음식 복원 및 현대화 시리즈 5
서유구 외 지음 / 자연경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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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멋을 아는 민족이었다. 멋은 자체로 이미 품격을 드러내며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말이고 이는 여전히 우리가 추구해야 최선의 태도이기도 하다. 뚜렷한 사계절과 삼면이

바다로 이루어진 자연으로 인해 음식문화를 발달된 우리 민족은 잘차려낸 음식상과 멋스러운 음식을

상대방에 대한 예로 여겼을 정도로 맛을 아는 민족이었고 맛은 주로 상류층에서 누리는 '사치'였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급속한 산업화를 거치며 맛과 멋을 담은 우리의 전통음식 대부분이 사라지게

되었고 대량 생산된 음식들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모든것이 흐르고 반복되는 것처럼 여전히 우리의

것을 지키려는 노력은 계속되었고 근래에 들어 자연과 멋을 동시에 담은 '꽃음식' 주목 받기 시작 했다.

저자는 이러한 우리의 기대에 부응하기라도 하듯 '정조지' 속의 꽃음식을 통해 매화부터 국화에 이르는

20가지의 토종 꽃으로 만든 꽃음식을 찾아내는 보물찾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꽃이 사람의 생명을 유지하고 오감을 만족시키는 음식에 더해져서 '자연주의' 동력이 되며, 꽃음식은

자체를 생으로 또는 다양한 방식으로 조리하여 먹거나 기존의 음식에 더해서 만드는데 효용 범위가

광범위하다. 책에는 정조지 39가지의 꽃음식, 전통 꽃음식 13가지, 정조지 속의 꽃음식을 재해석한

꽃음식 32가지. 도합 94개의 꽃음식이 소개된다. 


책은 출발부터 신선하다. 세계 최고 요리사 10명이 운영하는 식당을 취재하며 그들의 삶과 요리에

대한 철학, 요리에 담고자 하는 의도를 알아가던 , 결국 최고의 요리사들이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접시에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담는 것이라는 것을 발견하면서 부터이다. 그리고 작업은 숨이

멎을 엄숙하다. '화룡점정' 찍듯 더해지는 꽃의 마력은 자체로 이미 예술이 된다. 이와는

반대로 '꽃음식' 유행처럼 번지면서 무분별하고 무식(서로간의 상생도 모르는)하게 합해서 만들어낸

정체불명의 꽃음식들 때문에 '아무 음식이든 꽃만 넣으면 꽃음식이네'라는 혹평을 듣기도 한다.

일본여행에서 유명한 벚꽃빵을 먹고 호텔에서 한시적으로 판다는 벚꽃성찬을 즐겨야 일본 여행을

제대로 것이라는 기자에게 진달래화전을 먹어 본적이 있는지 궁금하다는 저자의 말은 속이다

시원하다. 그리고  '정조지' 담긴 꽃음식에서 작은것의 아름다움, 생명의 소중함, 소소함 속에 빛나는

찰나, 선인들의 멋과 낭만과 여유를 느꼈다고 고백한다. 나는 '조선셰프 서유구의 꽃음식

이야기'에서 멋스러움과 맛스러움 그리고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을 느끼며 눈과 마음이

호사를 누렸다. 


우리나라 곳곳에 터를 가리지 않고 자라는 소나무는 푸른 빛을 잃지 않고 자리에 서서 의연함을

가지기에 오래된 소나무를 노우(老友) 칭하며 가까이 한다. 송화는 소나무의 꽃가루이다. 늦봄이면

노란 송화가루로 계곡이 뒤덮히고 색이 수수하지만 고상하고 기품이 있어 여인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본초강목> '송화는 맛이 달고 온하며 독이 없다. 심폐를 ()하고 기를 늘린다. 풍을

제거하고 지혈을 시킨다' 나와 있을 정도로 좋은 재료이다. 이런 송화로 송화다식, 송화주, 송화강정,

송화밀수등을 만드는데 정조지에서는 송화다식을 만드는 방법은 따로 기술하지 않고 송화가루를

효과적으로 얻는 법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고 송화가루를 구하는 일이 송화다식의 전부일 정도로

어렵다고 한다. 어릴적 외가에 가면 해주시던 것이 '송화다식'이었는데 이렇게 귀하고 어려운 것인

알았다면 그때 궁시렁거리고 먹지 말고 한개라도 먹을걸 그랬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 나이가 들어 찾은 외가에서 있었던 것이 '송화주'였다. 이제 먹을 나이(아마 3 겨울

방학인것 같다) 됐으니 한잔 하라고 내주셨던것이 송화주였는데 국화향이 전혀 나지 않았던걸 보면

정조지에 나오는 방법인것 같다. 저온에서 침출해서인지 향이 강하지 않고 은은하나 역시 술은

술이다. 나는 송화주 잔에 만취했었다. 송화만 있으면 누구나 만들어 마시고 신선이

있다는 것이 송화주라면 그날 신선이 되었다.

'정조지' 소개된 절기 음식 꽃을 사용한 음식에는 제비가 돌아 온다는 중삼절(음력 33)

진달래화전과 제비가 돌아간다는 중구절(99) 국화화전이 있는데 내가 처음 화전이

국화화전이다. 내가 맛본 화전은 저자의 생각처럼 노란 국화꽃이 올라간 것인데 정조지에서 소개하는

국화화전은 사뭇 다르다. 국화를 찧어서 노란물을 들이고, 당귀로는 짙은 녹색의, 대추꽃은 어두운

붉은 빛의 물을 들인 반죽을 지진 다음 팥소를 꽃심처럼 넣고 싸서 만드니 생각지도 않은 온갖 색의

국회가 피어난다는 저자의 표현처럼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서유구의 발상은 머릿속에 상쾌한 바람과

함께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그밖에도 요즘도 자주 마시는 국화차, 국화빵이 강해서 취기를 못느끼는

국화주, 말린 국화꽃을 묻힌 경단 등은 강원도 산골에서 자연인으로 살고 있는 지인 덕분에 보았던

것들이라 더욱 반가웠다. 


책에는 자연이 주는 멋스러움과 날것 그대로가 주는 소박함, 그리고 상대방을 배려하며 아끼는 마음이

들어 있다. 꽃이 삶기고, 절여지며 다른 아름다움을 갖게되고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꽃음식이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많이는 아니더라도 밀가루에 연꽃잎, 참외즙과 약대를 넣어 만든 누룩으로

빚는 '만전향주' 원추리꽃 잡채, 상추꽃대로 만든 우아하고 감탄할 만한 음식인 상추꽃대볶음은

만들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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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돌아보는 낮은 생각
한성욱 지음 / 42미디어콘텐츠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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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삶이 제대로 묵상일 있는 것은 그것이 자신의 삶의 순간순간이고 흔적이기 때문이다. 책이

그런 책이다. 저자의 삶의 순간순간의 조각들이 주님으로 인해 합해지고 모아져서 하나의 묵상을

만들어 내고 그런 묵상들을 소개하며 하나님의 위로하심과 함께하심의 기쁨을 맛보는 자리에

우리를 초대한다. 

'우리에게 돈이 없지 예수가 없냐'

영화의 대사를 패러디한 글이지만 왠지 가슴이 뜨끔하다. 우리에겐 돈도 없지만 예수도 없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말로는 'Coram Deo' 외치면서 정작 삶의 자리에

예수가 머물 곳은 치워버려 예수가 들어설 공간 조차 허용하지 않고 자기팔을 열심히 흔들며 사는

무늬만 크리스천들이 얼마나 많은가.( 역시도 별반 다르지 않다) 예수가 있는 사람이란 예수의

흔적을 가진 증인일텐데 보고 들은 대로 사실을 말해야 할텐데 우리 입에 걸린 자물통은 견고하다

못해 무적이라 감히 입을 벌려 말하지도 못하거나 입만 살아 있다. 

유행하던 제목이 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나는 책을 보며 마음이 힘들고 불편했었다.

물론 내용은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주지하고자 하는 의도도 안다. 그럼에도 ''라는 의문이 든다.

아프면 안되나. 조금 힘들면 청춘이 아닌가. 청춘이라는 계급장은 누가 얼마나 아프고

고생했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도 아닌데 '청춘이니까 아파도 '라는 처럼 들려 불편했던 기억이

난다. 저자도 그랬나 보다.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아프니까 청년이 아니라 청년이니까 아프지 '


자신들의 삶이 그랬기에 대리만족으로 하는 충고일수도 있고, 정말 힘겹게 살아온 자양분을 통해

쏟아내는 진심어린 충고일수도 있지만 사실 '라떼는 말이야' 꼰대질이다. 그냥 청춘은 청춘 그대로

봐줬으면 좋겠다.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잣대를 들이대며 이러니저러니 하지말고 있는 그대로의

청춘으로 인정하고 받아주면 좋겠다. 


'정죄'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당시의 율법대로 돌로 죽이려고 하는 군중들에게 ' 없는 자가 돌로 치라'

말씀하셨는데 우리는 여전히 손에 '짱돌' 들고 있다.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며 눈치를 보지만 손에

돌멩이는 결코 놓지 않는다. 여차하면 던질 태세다. 정말 죄가 없어서 일까, 아니면 최소한 사람 보다는

깨끗하다는 우월함에서일까, 그도 아니면 뭔가 분풀이 대상을 찾는 것일까. 우리에게 있는 비교의식은

자신을 비참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때론 타인을 더욱 힘들고 고통스럽게 한다. '그래도 저사람 보다는'

이라는 알량한 자존심은 결국 서로를 망가뜨린다. 있는 그대로 보면 된다. 비교하지도 평가하지도 말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내며 상대방을 받아들이면 된다. 


책은 저자의 삶과 하나님과의 교제의 초원이다. 그런 초원을 모두에게 공개하며 함께 기쁨과 은혜를

나누고자 하는 저자의 마음이 고맙다. 분명 누군가 책에 쓰인 묵상들을 보며 힘을 얻을 것이고 도전을

받을 것이다. 그러면 된다. 나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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