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앞서지도 더디 가시지도 않는다. P122
전능자의 그늘 아래 머문다는 말이 좋다. 머물 공간이 있다는 곳과 머물 자리가 있다는 것은 사람에게
만족감과 위안을 준다. 그곳이 어디든 간에 말이다. 그런데 전능자의 그늘이라니. 이 보다 더 좋은
곳이 어디 있을까하는 생각으로 책을 펴 들지만 마음 한 켠에 남은 여전히 풀지 못한 숙제는 복잡한
내 마음을 그대로 대변한다.

'No Gain, No Pain'. '얻는게 없다면 고통도 없다'는 말로 'No Pain, No Gain'을 뒤집어 놓은 말이다.
저자의 말대로 '그야말로 진리다'. 소망이란 확실하게 얻을 것을 기대하기 때문에 현재의 고통을 참을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것이다. 따라서 고통스러운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소망이 필요하고 우리는
그 소망을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찾는다. 하나님은 그 예수를 소개하는 중요한 역할의 사람으로 타락한
인류 가운데서 노아를, 그의 후손 중 셈을, 셈의 후손 가운데 '아브라함'이라는 인물을 선택하시고 그에게
손을 내미신다. 이러한 하나님의 선택하심과 손 내미심에 아브라함의 응답하고 순종한다. 친숙하고
익숙한 것에서부터 분리 시키시는 전능자의 주권에 그대로 순종한다. 아브라함에게 믿음은 분리
(separation)를 의미했다. 믿음은 철저한 분리를 의미한다. 믿음의 삶은 이쪽과 저쪽에 걸치는 삶이 아니라
철저한 분리를 그래서 한나만 선택하고 그 선택에 최선을 다하는 것을 의미한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이루실 그것을 바라보며 한 방향으로만 걷는 걸음이다.
'회복'. 우리가 언제부턴가 자주 그리고 많이 사용하는 단어이다. 회복이란 '예전에 있던 그것을 다시
찾는다'는 의미를 가지는데 정작 우리에게 그 '예전'의 무엇이 존재 했는지가 문제이다. 가졌던 것이
없는데 무얼 회복한다는 말인가. 청13:3-4에서는 '전에'와 '처음으로'라는 단어를 통해 이에 대해 분명히
말한다. 이렇게 예전의 그 무엇이 있어야 '회복'이 가능하다. 지금의 우리와 같이 아무런 기억조차
없으면서 남들이 하는 말이 좋아 보이니까 쓰는 '회복'은 어울리지 않는다. 아브라함에게 있어 '벧엘과
아이 사이의 그곳'은 처음으로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예배 드렸던 곳이다. 아브라함의 영적 회복이
이루어진 그곳에 애굽에서의 실패를 깊이 깨달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나아오게 된다.
이때부터 벧엘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자리가 된다. 아브라함이 그리고 야곱의 그랬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영적인 '벧엘'이 필요하다. 남들이 다 하니까 말로 하는 '회복'이 아니라 진정한 영적
회복의 장소 말이다.

'하나님의 침묵'. 예전 서슬 퍼런 군부독재 시절 우리는 너무나도 어이없는 상황 앞에 침묵하시는
하나님을 '혀 짤린 하나님'이라고 불렀다. 만약 하나님이 계시다면 지금 우리의 상황 앞에 이렇게
침묵하실리가 없는데 아무런 말씀이 없으신걸 보면 분명 하나님의 혀가 짤리셔서 그럴것이다라고
생각했다.(그래도 차마 하나님이 안계시다는 말은 못했다). 이 책에서 아브라함의 불신앙 앞에
침묵하시는 하나님을 만난다. 다메섹에서 데려온 엘리에셀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몸에서 난 후손을
약속하신 하나님의 언약을 믿음으로 기다리지 못하고 자신들의 방법으로 불순종을 저지른 아브라함에게
13년간 침묵으로 일관하신다. 즉각 잘못을 책망하셔도 될텐데 그냥 내버려두신다. 아브라함에게
이 시간에 영적 광야와도 같다. 하나님은 오래참고 기다리시는 분이시다. 우리의 조급함때문에 그 분의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자신의 길을 가는 것이다. 마치 아무 일도 하지 않으시는 것 같아 보여도
그 분은 조용히, 천천히, 쉬지 않으시고 자신의 일을 하고 계신다.

참된 믿음은 자신의 고집을 포기하는 것이다. 믿음이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실패와 아픔을 그리고
좌절과 고통을 수반한다. 믿음은 길게 보고 걸어가는 여정이다. 그 안에서 선택의 기로에서 하나님을
선택하는 것이 믿음이다. 아브라함과 사라의 웃음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비웃을 수 있다. 그러나 진짜
믿음은 이러한 불순종의 걸음을 멈추고 돌아오는 것이다. 자신의 고집을 포기하고 전적으로 그분의
결정과 선택에 순종하는 것 이것이 믿음이고 아브라함은 이것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C. S. Lewis의
말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 낚시꾼의 모습으로, 고양이의 모습으로, 사냥개의 무리처럼 다가오셔서
우리를 그 분과 조금 더 가깝고 친밀하게 만들어 가신다.
이 책은 요즘 새롭게 시작한 '말밥(말씀은 밥이다, 70세 이상 되신 은퇴하신 장로님, 권사님, 안수집사님
성경 공부) 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인생 노년기를 조금 더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싶어하는 그 분들에게
아브라함의 삶은 큰 도전이 될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