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는 어렵다. 우리의 통념이다. 아니 정말 어렵다. 클래식 만큼이나 어렵다. 듣기 좋고 부르기
편하라고 만든 곡이 점점 더 어려워진다. 그래서 우리는 재즈와 거리를 두게 되고 저 먼 나라의
음악이 되어 버렸다. 그런 우리에게 인문쟁이 선생님이 책 제목도 그럴싸하게 '어쩌다 보니 재즈를
듣게 되었습니다'라는 책을 출간했고 어떤 방법으로 접근하고 이해시킬지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감이 들었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재즈를 이해하기 위해 미국의 역사와 상황 정도는
이해해야 한다는 말부터 마음에 들고, 'Jazz'가는 단어가 얼마나 매력적으로 생겼는지 모른다는
설명도 마음에 든다. 그런 그가 소개하는 첫번째 뮤지션은 바로 '욕쟁이 거장'이다.
우리는 흔히 거장이라면 이름에 걸맞는 품격과 지성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욕쟁이는
우리의 그런 기대를 여지없이 부숴버린다.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 1926-1991)가 그런 인물이다.
재즈가 방향성을 잡지 못해 갈팡질팡 할 당시 비밥, 쿨 재즈, 하드밥, 퓨전 재즈라는 장르를 한 사람의
경력으로 모두 설명 가능케한 인물이 바로 그다. 그래서 세인들의 그를 '재즈의 왕(King of Jazz)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의 삶에 대해서는 이견이 분분하다. 당시 예술가의 전형적인 삶을 살았다고 하는
부류도 있고 오만하고 괴팍하고 욕을 입에 달고 살았던 약쟁이라고 폄하하는 부류도 존재한다.
음악적인 면에서도 그의 트럼펫은 분명 찢어질 듯 날카로운 음색을 가져 처음 듣는 이들에게는
거부감을 줄 수도 있지만 정적인 즉흥 연주와 만난 욕쟁이 트럼펫터의 날카로운 음색은 마일스
데이비스만의 서정미를 주기에 충분하다. 이런 거장 마저도 페르소나(Persona, 가면)을 써야 했다.
거장이라는 타이틀을 지키기 위해, 흑인에 대한 차별이 극심했던 시절에 그들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거칠게 보이는 방법을 택했고, 흑인이 만들어 낸 재즈라는 장르를 백인들에게 빼앗기는 장면을
목격하면서 오만이라는 가면을 선택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날이 '가면을 쓴 정체성' 만이
살아남은 시대, 페르소나의 시대이듯 당시의 그들도 그렇게 격렬하게 살아냈다.
또 하나의 음반을 만난다. 저자의 맥주캔을 네 개나 따게 만든 빌 에번스(Bill Evans, 1929-1980) 트리오의
'Sunday at the Village Vanguard'이다. 피아노와 베이스가 경쟁을 벌이는 듯한 연주라든지 현장감을 너무
살려 어쩌면 오히려 손해를 볼 수도 있는 현장 녹음이라던지 대체로 트리오에서 피아노가 전체를
리드하기 마련인데 베이스에게 길을 열어주는 느낌의 연주등은 재주를 좋아 하는 사람 대부분이
빌 에번스를 왜 좋아 하는지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변화무쌍한 빌 에번스의 피아노 연주는 원곡의
궤를 뛰어 넘어 자기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하는 수준이고, 과감한 스콧 라파로(Scott LaFaro)의 연주는
보통 피아노 뒤에서 백킹(Backing)으로 리듬을 이끌어 가는 베이스의 역할에서 벗어나 자유로이
자신만의 연주 세계를 유영한다. 아마도 이 둘만 있었다면 서로간의 치열함이 너무 강해서 음악적으로
많이 부딪쳤을텐데 여기에 절묘하게 드러머 폴 모션(Paul Motian)이 자리하면서 서로의 치열함을
연합으로 이끌며 조화를 이루어 낸다. 특히나 그의 브러시 연주는 베이스와 피아노의 치열함을
'착착'하는 소리로 감싸 안으며 산으로 가려는 배를 수면 위로 향하게 한다. 그러나 정작 이 앨범의
진가는 관중들이 만들어 내는 소음에 있다. 'Alice in Wonderland'를 듣다 보면 쉴새 없이 잡담 소리가
들리고 심지어 어떤 여성은 고성을 지르기도 하고 어떤 관객은 기침으로 박자를 맞추기도 하는데
이게 연주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저자는 이게 재즈의 진면목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재즈는
점잔을 떨면서 고상하게 듣는 음악이 아니라 지친 노동자들이 술집에서 술을 마시며 편하게 듣던
음악이다. 연주자는 연주자 나름대로 '그래. 너네는 떠들어라. 우리는 우리것을 하련다'하고 연주를
했을것이고 관객들은 그 연주를 안주 삼아 하루의 피로를 날리는 수다에 집중했을 것이다. 이 생생한
현장감을 담은 이 음반은 소장할 가치가 있다.
인문쟁이 국어 교사의 재즈 수업이라는 독특한 방식을 택한 저자의 접근이 신선하다. 딱딱하고 지루하고
어려운 국어를 가르치는 사람이 복잡하고 난해하고 어려운 재즈를 가르친다는 편견과 선입견을 저자는
여지없이 깨버린다. '재즈는 배우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다'는 말처럼 그냥 있는 그대로 느끼고
즐기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즐기다 보면 자연스레 자신의 독특한 세계에 도달하게 될 것이고 그로인해
재즈라는 음악을 접하는 귀와 마음이 넓어지게 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