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사이시 조의 음악일기
히사이시 조 지음, 박제이 옮김, 손열음 감수 / 책세상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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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어 위를 미끄러지듯 지나가는 한 쌍의 남녀가 생각나며 어깨를 들썩이게 만들었던 '인생의

회전 목마'(하울의 움직이는 성 ost), 반복되는 현상 속에 내가 존재하기라도 하는 듯 착각이

들게 만드는 벅찬 감동을 주는 '언제나 몇번이라도'(센과 치히로의 모험 ost), 경쾌하면서 톡 톡 튀

는 연주가 돋보였던 'Summer'(기쿠지로의 여름 ost). 나이가 들어서도 가끔 보게 되는 일본

애니메이션 속 음악의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히사이시 조의 작품들이다.

'나는 작곡가이다'로 시작되는 프롤로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다시 태어난다해도 작곡가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그, 아침에 일어나면 작곡 생각부터 한다는 그는 천상 작곡가이다. 그런 그가

요즘은 클래식을 고전으로만 머물게 하지 않으려면 현대 음악을 연주하는 것을 통해 고전과 현대

음악이 어우러진 자연스러움을 전달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지휘를 시작했다. 그러나 여전히

자신은 작곡가라고 말한다.

이 책에서 산토리 홀(Suntory Hall)이야기를 만났다. 롯데 콘서트홀과 자주 비교되는 산토리홀은

풍부한 잔향과 소리의 전달 면에서 탁월한 곳인데 무대 뒤편을 가득 메우는 파이프 오르간의

웅장함은 관객을 압도한다. 저자는 그곳에서 주빈 메타가 지휘한 이스라엘필 하모닉의 공연을

만난다. 연주자가 모두 서서 연주하는 비발디<네 대의 다른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은 화려한

오프닝을 위한 최적의 곡이다. 산토리 홀 무대 위의 모든 연주자들이 일어 서서 연주하는 광경을

눈을 감고 상상해 보았다. 센과 치히로의 모험의 기차 장면이 오버랩 되며 긴 여운을 남긴다.

저자는 이 책 2, 3, 4장을 통해 음악의 역사와 전문적인 지식, 이론들을 이야기 하는데 사실 조금

어렵다. 그래도 중국과 일본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경험을 통해 전하는 차이점은 흥미로웠다.

일본의 오케스트라는 자신의 존재를 주장하기 보다는 맞추기에 집중하기에 전체적으로 웅장한

느낌이 나오지 않고 정교한데 비해 중국의 오케스트라는 단원 한사람 한사람이 자기 주장을 하기에

웅장한 반면 섬세함에서 조금 떨어진다는 지적을 듣고 그동안 관람했던 공연들을 생각해 보니

어느정도 그런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사람 마음 참 간사하다)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글쓰기가 생각 났다. 깨닫고 생각하고 창작하는 부분이 글쓰기의 그것과

흡사하다. 글쓰기도 그런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누군가는 '짓는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창작이다. 이는 삶과도 닮아 있다. 우리의 삶이 그런 고통과 아픔 그리고 행복과 감격의 편린들의

조합이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 간다.

이 책을 읽으면서 '웰컴 투 동막골'과 태왕사신기'의 음악을 하사이시 조의 곡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태왕사신기는 보지 못해서 모르겠는데 '뱀이가 많아'와 강냉이 뻥튀기로 기억되는 웰컴 투

동막골의 음악이 저자의 작품이라는 사실에 영화를 다시 보며 좀 더 진한 감동을 느끼기도 했다.

작곡가의 눈으로 보는 세상의 모습을 알게 된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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