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테크리스타
아멜리 노통브 지음, 백선희 옮김 / 문학세계사 / 200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다시 아멜리 노통의 소설을 집어 들었다. 매번 '역겹다' 라는 말로 서평을 쓰곤 했던 그녀의 소설에 다시 손을 대고 만 것이다. 하지만 역겹다고 해서 그녀의 소설을 거른 적은 없다. 역겹다는 것이 곧 싫다는 것의 표현은 아니다. 무라 정의할 수 없지만 노통의 매력에 끌린다고 할까. 아니면 마조히스트적인 또 다른 나가 그녀 소설의 또다른 '역겨움' 을 찾아내고 즐기려 하는 것일까. '앙테 크리스타' 의 출간 소식을 듣고 나서 들었던 생각 또한 별반 다르지 않다. 분명히 노통류의 소설임에 분명한데 내가 또 봐야 할까? 하지만 또다른 역겨움을 찾기 위해 다시 책을 들고 말았다.



  역시 노통은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이번에는  16살 소녀들의 이야기이다. 물론 여지껏의 노통이 보여줬던 소설에서와 같이 적(適)도 등장한다. 하지만 이전의 적들과 사뭇 다른 느낌이다. 다른 소설에서 더 어리거나 이미 사회인이 된 주인공을 내세웠기 때문이라고 하기엔, 단순히 나이에 따른 차이라고 하기엔 뭔가 부족해 보인다. 적의 처음 등장이 다르다. 하지만 '나에게만 적으로 느껴지는 현실' 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앙테크리스타에서 적은 아군으로 가장해 다가온다. 적의 의도된 접근이었는지, 아니면 스스로가 악의 화신을 찾아나선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중요한 것은 그들이 만났고, 적은 나를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적은 만인의 적은 아니다. 오로지 하나의 희생양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 준비가 되어 있다. 누가 먼저 파멸하는가를 놓고 줄다리기를 하는 것처럼 둘의 신경전은 독자들의 신경을 자극한다.



  이 부분에서 노통의 전매특허인 '역겨움의 미학' 이 잘 나타난다. 물론 역겨움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표현했지만 그녀의 소설에서 역겨움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자신의 코묻은 휴지를 다시 펼쳐 보는 어린 아이에 대한 역겨움, 언변으로 듣는이로 하여금 구역이 나게 만드는 지적인 역겨움, 작가 자신을 죽여버리는 이해할 수 없는 역겨움.... 이 소설에서도 형태는 달리하지만 역겨움은 존재한다.  아마 그 역겨움은 적이 나를 괴롭힐 때 느끼는 희열이 클수록 독자들은 심하게 느끼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블랑슈가 크리스타에 끊임없이 당할 때 크리스타의 머리를 잡아채고 싶은 심정을 느끼게 되고, 가족들이 결국 블랑슈보다 크리스타에 마음을 뺏겨버릴 때는 책에 대고 소리라도 질러버리고 싶어진다. 크리스타의 행동이 잔인하다기 보단 역겨움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결론을 향해 끊임없이 책장은 넘어간다. 역겨움을 이기기 위해... 짜릿한 복수가 이어질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블랑슈의 복수도 어떤 면에서 보면 상대를 괴롭히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상대가 결핍되어 있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절묘하게 파고들어가 정곡을 찌르는 복수. 하지만 이 부분에서 쾌감을 느낄 수는 없었다. 여전히 무언가 거북하다. '그게다야?' 라는 생각과 함께 '이런 방법을 쓰면 해결이 되는걸까' 라는 생각이 교차한다. 하지만 무언가 응어리진 것이 풀리지 않음은 부정할 수 없다. 



  분명 크리스타는 블랑슈에 있어 최고의 적이었다. 자신의 모든 영역을 침범했고, 자신의 모든 것을 앗아가다. 하지만 냉정히 생각해보면 블랑슈의 성장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것도 크리스타라고 할 수 있다. 키스를 알게 해 주었고, 자신의 몸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해 주었다. 어쩌면 크리스타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멜리 노통이 잊을만하면 꺼내들던 '또 다른 나' , 크리스타가 블랑슈의 또 다른 나는 아니었을까. 16살의 사춘기에 찾아온 정신적 육체적인 혼란을 이기는 과정에서 내가 생각했던 나와 다른 또 다른 나를 발견했을 때의 서먹함.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공존해야 하는 불합리함. 결국 적이 나를 이기고, 내가 이기기 위해서는 적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 결국엔 습관처럼 적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는 자신.



  이러한 과정은 결코 아름다울 수도 없고, 통쾌한 결말을 기대할 수도 없다. 크리스타가 '또 다른 나' 가 아닌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 하더라도 블랑슈는 그녀를 통해 성장했다. 다른 누군가를 통해 자신이 성장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하더라도 이 글의 내용은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결국 숙제는 성장을 위해 나를 넘어서는 데에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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