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예전에는 꼴찌에 대한 인식이 낙오자라는 하나의 단어로 대체될 수 있었다. 지금도 그러한 인식에 큰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논쟁의 대상이 되고, 수면 위로 올라와 재평가 받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만큼 사회가 많이 변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적어도 1등이 아닌 나머지를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는 게 꼴찌 열풍이 가지는 의미라고 할 수 있겠다. 예전에는 그야말로 1등 위주의 사회였다. 극단적으로 꼴찌만을 언급 했을 뿐이지, 2등 이하 순위권 밖은 꼴찌나 다름없는 대우를 감수해야했다. 하지만 냉혹한 현실 앞에서 무릎 꿇을 수밖에 없는 그들에게 요즘은 희망을 주는 말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그야말로 꼴찌에게 희망을 주는 세상이 된 것이다. 삼미 슈퍼스타즈는 그 중심에 있다. 최근에는 영화까지 개봉해서 그 위력을 과시한 바 있다. 작가를 비롯한 관련된 사람들이 모두 놀랐을 만큼 그 열풍은 대단했다. 실제 주인공이 저녁 뉴스에 소개되는가 하면, 인터넷에서는 꼴찌 클럽이라는 내용을 알 수 없는 클럽들도 생겨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바람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지금의 꼴찌 열풍이 과연 모든 사람들에 눈을 돌리는 여유로운 자세에서 나온 것일까.

 

 원래의 ‘꼴찌에게 희망을’ 이라는 생각은 엘리트주의의 부정이나 1등 지향주의를 배타하는 데에서 시작했을 것이다. 서열화 된 세상에 대한 반발, 단편적인 평가 이면에 감춰진 다른 능력을 발견할 수 없는 지금의 제도들 속에서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은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불만의 화살은 그러한 제도를 만든 사람보다는 그 제도를 용케 뚫고 나온 엘리트들에 맞춰지는 경우가 많았다. 몇 점 차이나지 않는 수능 점수로 인생이 결정되는 대학입시, 영어라는 기준 하나에 취직의 당락이 바뀌는 현실. 그러한 기준에 맞추지 못한 사람들은 낙오자라는 평가를 받으면 좌절의 나날을 보내야했다.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것이 그런 사람들인 만큼 다른 방식으로의 평가를 원했고, 그러한 과정에서 일반적인 기준에는 부합하지 않지만 나름의 기준으로 재평가 받고 있는 꼴찌들에 포커스가 맞춰지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이러한 과정은 어떻게 보면 지극히 자연스럽다. 점점 난해해지는 대학입시, 아무리 노력해도 뚫릴 생각을 하지 않는 취업문. 이런 상황에서 한두번쯤 좌절을 맞본 사람은 그런 희망가에 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선발된 소수에 들지 못한 사람들은 꼴찌라는 일종의 욕구 불만 창구를 만든 셈이다. 자기보다 더 못한 사람을 만들어 놓고 ‘그나마 내가 낫지’ 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꼴찌 열풍’ 의 정도에 다소 당황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단순한 시대적 흐름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하기에는 그 파급효과가 무섭다. 그저 꼴찌라는 이유만으로 관심을 받고 심지어 사랑을 받기도 한다. 그 이면에 숨겨진 노력이나 꾸준함과는 상관없이 그저 꼴찌이기 때문에 관심을 받게 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야말로 주객전도의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꼴찌 자체에 정당성을 부여해준 셈이 된 것이다.  ‘난 이거 하면 되니까, 다른 것은 포기해도 돼.’ 꼴찌 열풍 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자신의 무능함을 정당화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정당화의 이면에는 적잖은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과연 그 사람이 노력이란 것이 수반되었느냐 하는 것이다. 


 분명 꼴찌에 대해 어김없는 찬사를 보내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그 노력과 과정에 열렬한 박수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꼴찌를 하곤 있지만 그 꾸준함, 열정이 다른 사람들을 매료시킨다는 데서 꼴찌의 정당성을 비로소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그저 꼴찌이기 때문에 인정받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삼미 슈퍼스타즈가 지금까지 사랑을 받는 것은 그들이 꼴찌를 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끝까지 싸워주었기 때문이다. 무기력한 플레이로 일관하면서 팬들을 맞이하는 프로였다면 애초에 마지막 팬클럽이라는 것은 성립할 수 없다. 팬들은 이미 그들을 떠난 이후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1등만을 기억하는 현실이 불공정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1등은 1등으로서의 대우를 받아야 한다. 적어도 1등이 되기 위해 흘려야했던 땀방울에 대한 의미는 놓치지 말아야 한다. 노력이란 것은 1등이든 꼴찌든 모두에게 값진 것이다. 1등의 노력과 꼴찌의 노력이 다를 수 없고, 그 의미 또한 다르게 부여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꼴찌 치켜세우기는 다소 위험해 보인다. 자칫 1등을 죽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꼴찌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보다 그 이면에 있는 굴하지 않는 자세, 끊임없는 노력이 관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1등은 1등으로서의 가치가, 꼴찌는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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