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의 카프카 (상)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춘미 옮김 / 문학사상사 / 200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사실 하루키의 소설은 처음 접해 보았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작가이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일정수준 독자층을 확보한 작가. 내가 카프카를 읽기 전에 하루키에 알고 있는 전부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의 작품 중 몇몇은 읽어보지는 않았어도 대강 이러이러한 작품을 쓰고 작품의 내용들은 어찌어찌 하다는 것 정도는 대강 들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간 그의 소설은 어렵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고, 쉽게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는 편견 때문에 쉽사리 읽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매번 읽어보아야지 생각했다가 처음으로 접한 하루키의 소설이 카프카였던 것이다.

 처음 접한 하루키의 소설은 뭐랄까. 말그대로 정말 난해했다. 분명 읽어내려가기 쉬운 소설이고 빠르게 읽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책을 다 읽고 나서 '이 소설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는 '글쎄...' 라는 답이 돌아오곤 했다. 아마 사람들이 얘기하는 카프카 소설의 난해함이라는 것이 이러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하지만 그러한 난해함이 그의 사상적인 우월함이라기 보다는 지나치게 많은 상징 속에 그 해답이 있는 것 같아 아쉬움을 자아낸다. 분명 어렵지 않은 얘기일텐데 상징적인 장소 상징적인 사건의 연속으로 독자들의 머리를 어지럽게 한다는 생각이 든다. 현대를 살아가는 15살의 하루키. 하지만 나의 15살과 비교했을 때 그의 15살은 지나치가 철학적이고 관념적이다. 어쩌면 50대의 하루키가 자신의 과거 (꼭 15살이 아니어도 좋다.) 를 염두에 두고 쓴 것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러한 느낌은 카프카 소년의 숲 속의 어떠한 장소를 찾아가는 데서 절정을 이룬다. 그것이 상징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하게 느낄 때쯤 그것은 현실이 되어 버리니 독자로서는 적잖이 당황할 수밖에...

 하루키는 분명 이 소설에서 15살 (혹은 그 이상. 아니면 인간 전체일수도...) 의 고민을 좀 더 철학적으로 풀어쓰려 한 것 같다. 그 나이 때쯤 느끼게 되는 어머니나 누나에 대한 성적 환상. 아버지에 대한 막연한 미움. 새로운 것에 대한 열망. 그러한 것들을 좀 더 극적이고 추상적으로 표현하려 했으리라. 하지만 대개 15살을 넘긴 독자들은 쉽게 와닿지 않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과연 내가 15살에 저런 고민을 했던가? 나는 그 나이에 저렇게 철학적이었던가? 

 분명 하루키가 말하려는 바의 의도는 알겠지만 그 핵심을 알기 힘든 그런 소설인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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