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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시를 향하여 ㅣ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3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가형 옮김 / 해문출판사 / 1989년 12월
평점 :
'0시를 향하여' 는 실로 독특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크리스티 스스로도 자신의 10대 추리 소설 안에 이름을 올렸을만큼 그 작품성은 인정할만 하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으면서 (의례 그렇지만) 다른 크리스티의 소설과 비교했을 때 추리의 기법이라든가 기발함은 다소 떨어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포와르나 마플 양 대신 나왔다고 할 수 있는 배틀 경감은 자주 포와르를 언급하기만 할 뿐 포와르의 추리 기법에 접근하지는 못한다. 스스로도 그 점을 인정하고 '포와로의 생각을 따라야 해' 하고 말하는 듯 하다. 게다가 여타 크리스티의 소설이 '빠른 살인' 에 이은 '치밀한 추리' 가 그 바탕에 있었다면 이 소설은 '치밀한 살인' 에 이은 '빠른 추리' 가 그 바탕에 있다고 하겠다. (물론 배틀 경감은 추리를 매우 신중하게 한 것이지만 지면에서 독자가 느끼는 속도감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 때문에 일부 독자에게서 지루하다느니 재미없다느니 하는 말이 나오지 않았나 생각한다. 실제로 기존의 크리스티풍의 소설에 익숙해진 독자라면 충분히 그런 생각이 들 수 있으리라.
하지만 이 소설에서 눈여겨 봐야 할 것은 그것이 아니다. 제목에서 암시하고 있는 것처럼 어느 한 정점을 향해닫는 사건의 추이를 지켜보는 맛이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줄거리를 언급할 수는 없지만) 하나하나의 요소들이 결국엔 살인사건의 실마리로 떠오르고 하나의 반전의 틀을 제공한다. 그러한 요소들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다소간에 시간이 지체되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지루하다는 느낌을 받은 독자에게는 빠른 속도로 소설을 다시 읽어보기를 권유한다. 자신이 모르고 넘어갔던 소설의 치밀함을 여러 군데에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비단 살인 사건 과정만이 정점을 향해닫는 것은 아니다. 앞 부분의 프롤로그와 첫번째 장만 다시 읽어보더라도 이 소설이 얼마나 치밀하게 구성되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배틀 경감과 딸 아이의 이야기. 맥휘터의 이야기. 네빌과 오드리, 케이와의 갈등구조. 모든 것이 정점을 향해 닫고 있다. 사건은 이렇게 치밀한 모든 것들이 엮에서 하나의 실마리를 구성하게 되고 해결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