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C 살인사건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6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유명우 옮김 / 해문출판사 / 199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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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줄거리 포함) 크리스티를 믿는 여러 독자들은 실망시키지 않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여느 추리소설에서 맛볼 수 없는 독특한 구조가 그 바탕에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 소설 또한 독특한 구조를 취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특이할만하다는 것은 범인을 먼저 누구인지 밝힌다는 데 있지 않나 생각한다. 범인으로 보이는 사람의 행적을 다루면서 일면으로는 추리소설의 범인 쫓는 재미를 독자에게서 뺏어간 느낌이 들면서도 단서를 흘리는 중요한 구실을 한다. 하지만 앞에서 계속 언급된 그가 범인이라고 단정짓는 것은 크리스티의 소설을 읽어왔던 독자라면 범할 수 없는 실수가 아닌가 생각한다. 적어도 뒷 부분에는 무언가 있겠거니 생각하게 되는 것이 크리스티 소설의 힘이고 'ABC 살인사건'의 힘이다.

'ABC 살인사건'에서도 여타 크리스티의 소설에서와 같이 제 3자의 눈에서 그려진다. (물론 모든 크리스티의 소설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포와르의 눈을 빌리자면 그의 통찰력을 너무 쉽게 독자들에게 노출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크리스티는 언제나 독자와 같은 지능을 가진 -어떻게 보면 매우 평범한- 그러나 사건에 뛰어들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서술자를 등장시키는 것이다. 'ABC 살인사건' 에서는 헤이스팅스 대위가 그 역할을 맡는다. 보통사람의 지식을 가지고 있고 충분한 용기가 있는 역할로 군인만한 게 없는 것 같기도 하다. (크리스티 소설에 군인이 서술자로 많이 등장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지 않나 생각한다.) 하지만 여타 다른 서술자와 다른 점은 포와르에 반감을 가진다는 것이다. 포와르를 인정하면서도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포와르를 곱지 않는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포와르에 대항한다. 나중에 밝혀지지만 헤이스팅스의 말이 사건을 푸는 열쇠가 된다는 점에서 크리스티가 깔아놓은 복선의 넓은 범위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범인이 잡히는 과정이나 범인의 실체가 너무 의도적인 틀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물론 포와르가 기상천외한 생각을 하고 알 수 없는 행동을 한다고 하더라도, 이번에 범인을 찾는 방법이나 범인을 심문하는 과정이 너무 쉽게 묘사된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다. 독자의 허를 찌르는 범인이 나왔을 때의 탄성이 조금 수그러드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그러한 느낌은 분명 다른 크리스티의 소설보다 그 신비감이 떨어질 뿐 'ABC 살인사건' 자체의 결함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이 소설은 범인을 밝히는 그 자체보다는 그 과정과 범인이 왜 연쇄살인을 저질렀나 하는 점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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