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옷
아멜리 노통브 지음, 함유선 옮김 / 열린책들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처음 '적의 화장법'을 읽고 노통에 반해서 소위 말하는 '노통 뽀개기'를 하고 있다. 지금 이 소설이 5번째 읽는 노통의 소설이니 감히 조금이나마 노통을 알고 있다고 할 수 있으리라. 노통의 소설을 읽어오면서 지켜온 철칙하나가 '상상하지 말자' 였다. 그만큼 노통의 소설은 그 상상력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거기에 특유의 잔인함과 유머가 뒤섞여 있는 필체는 독자로 하여금 감히 앞가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런 면에 있어서 이 책은 그 정점에 서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 듯 싶다. 노통 특유의 화법이 고스란히 (거기다 책의 내용 대부분이 대화다. 의도적인 것이겠지만 이만큼 노통의 소설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녹아있는데다, 그 상상력은 독자로 하여금 거듭 자신의 진가를 확인해 주려는 듯 예기치 못한 구석에서 발휘되곤 한다.

하지만 다분히 의도적인 이러한 방식에서 오히려 그 효과가 반감되지 않았나 싶다. 노통은 자신의 잔인하면서도 유머러스한 필체를 마음껏 발휘하고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내세울 수 있었지만 독자는 역겨움을 느낄만큼의 부담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노통이 아직은 자신만의 색깔을 제대로 내지는 못한다는 생각이 든다.

상상력과 위트가 넘치는 것은 인정하지만 '나 이정도로 잘났어.' 라고 말하는 듯한 그녀의 필체는 경험의 부족에서 나오지 않나 싶다. 아직은 독자에게 더 의지하고 독자의 해석을 기대하는 능력이 부족하는 생각이다.

이러한 한계가 있지만 이 소설이 가지는 매력은 충분하다. 노통의 기민한 상상력은 언제나 독자의 머리에 생명수와도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꼭 폼페이의 멸망이 조작이라는 의혹에 경탄하지 않더라도 책 구석구석에서 번뜩이는 상상력은 독자의 혀를 내두르게 한다. 하지만 그 상상력 또한 너무 과하게 분출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과학적인 접근을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그저 앞 뒤 없이 '그럴 수도 있지 않겠냐' 는 식의 소설은 보기 민망할 정도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노통이 이 소설에서 미래의 부정적인 모습을 보임으로써 현재의 모습을 비판하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분명히 그러한 모습이 보인다. 현대에 터부시 되었던 것이 표면화 되는 과정에 대한 묘사가 많이 보이는 것도 한 예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것이 중심 생각이 되기에는 '이길려고 하는 대화' 에 너무 많은 시간을 쏟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노통은 아직 발전 중인 작가다. 물론 그녀의 책은 계속 나올 것이고 지금의 발전 단계라면 분명히 그녀는 한 시대를 가를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좀 더 완벽하고 좀 더 고상한(이건 작가가 바라는 이상적인 작가상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작품을 쓰려면 독자부터 좀 더 지켜봐야 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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