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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파괴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남주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적의 화장법'을 읽은 이후 아멜리 노통의 책을 다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적의 화장법' 이라는 책은 소재가 매우 독특하긴 했지만, 그만큼 많이 알려진 소재였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녀의 소설 쓰는 능력 -무어라 꼭 말할 수는 없지만 혹자는 잔인함과 냉소가 그 기본에 있다고 한다- 에 매력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단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 이후에 '오후 네시' 를 읽었고, '사랑의 파괴'가 세 번 째고 접한 노통의 책이다.
처음 노통의 책을 읽을 때의 확연한 (어떻게 보면 한 권의 책으로 작가를 평가하는 우를 범한 것일수도 있지만...) 느낌과는 달리 책을 읽어가면서 점점 알 수 없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각각의 책들이 다른 구성과 다른 소재를 쓰고 있으면서도 깊이 생각해보면 결코 다른 얘기를 하고 있지는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 느낌이라는 게 '정확히 무엇이다' 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은 노통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이 글을 쓰는 필자의 지적 한계이리라...)
'사랑의 파괴' 역시 시작부터 매우 난해하다는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다. 이미 노통의 책을 읽겠다는 생각을 했을 때부터 예상 가능한 것이었을지 모르지만, 쉬운 단어로만 씌여진 소설이지만 생각하기에 따라서 끝도 없이 어렵다. 중국에 사는 외교관의 자녀로서 객관적이면서도 신랄한 언어로 공산주의를 비유한다거나 -공산주의는 선풍기다- 비트겐슈타인을 대놓고 반대의 의견을 내놓을 수 있는 작가는 흔치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랑의 파괴' 는 겉으로 보기에 두 가지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노통은 '전쟁'과 '사랑'을 묘사하는 데 있어서 다른 관점을 취하는 것으로 보인다. (비록 아이들의 그것이라지만) 전쟁을 묘사하는 데 있어서 그녀의 필체는 역겹다는 말이 딱 맞을 정도의 적나라함을 보여준다. 서슴없이 '오줌을 적신 솜'을 '비밀 생화학' 무기라고 말한다거나 (이 부분에서 전혀 꺼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잔인함을 타고 났다고 해도 좋을 듯 싶을 정도로...) 너무도 쉽게 폭력을 행사한 것에 대해서 자랑스럽게 말한다. 그에 반해서 사랑에 대해서는 그러한 잔인한 모습을 찾을 수 없다. 그저 9살 소녀가 또다른 6살짜리 소녀을 사랑하는 것. 그 이상의 또는 그 이하의 것이 아니었다. 9살 소녀는 사랑하는 '그녀'를 위해서 그 좋아하는 '전쟁'에서 공을 세우는 것을 잠시 미룰 정도의 열성을 보인다. 이처럼 이 소설의 중반부까지는 다른 얘기를 하는 듯 전쟁과 사랑을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이 두 가지 요소는 보기좋게 하나의 접점을 찾아나간다. (소설 안에서 그 해답이 등장하지만...) 일리아드의 '헬레네' 에 자신의 사랑하는 '엘레나' 를 빗댄다. 곧 사랑 때문에 전쟁을 일으키게 만든 일리아드의 '헬레네'에 빗댐으로서 자신의 사랑을 전쟁과 무관하지 않은 존재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 둘의 관계는 이게 다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작가가 초점을 맞추는 둘의 접점은 그 파괴성에 있는 것이다. (전쟁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엘레나'는 '나'를 사랑의 포로로 잡아놓고 사랑의 파괴성을 마음껏 느낀다. -마지막에 엘레나 보기 좋게 복수하는 장면은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결국 작가는 '전쟁'과 '사랑' 이라는 완전히 다른 얘기를 하고 있는 듯 싶지만, 결국은 둘의 파괴성이라는 공통분모를 얘기하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