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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하일지 지음 / 민음사 / 2014년 7월
평점 :
저 유명한 경마장 가는 길의 원작자라 하기에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시종일관 읽는게 너무나 힘이 들었다.
본인은 질곡의 근대사... 너도나도 못살던 시절의 우리네 이야기들을 매우 좋아하고 즐겨 읽는 편이다.
그런데 이건 왜 이럴까.
시종일관 무언가가 불편하다.
책장이 넘어갈 수록 짜증이나고 울컥울컥 화까지 치밀어 오른다.
소재도 내용도 분명 흥미롭다. 문장 또한 가독성이 좋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단양의 시골마을, 조금은 순박하던 시절의 이야기.
게다가 아이가 주인공이다.
헌데도 거슬린다. 너무나 거슬린다.
왜일까.
그저 12살 아이의 시골생활. 우리네 푸근한 사는 이야기인데도...
왜이리 읽는 게 힘이 든 걸까.
아마도 같은 산골사람, 같은 계층 이면서도 은근히 선민의식을 내비치며 타인을 멸시하는 주인공 때문일지도 모른다.
고작 12살 아이지만 글을 모르는 급우를 멸시하며 저런 멍청한 아이와 한 반이라는게 부끄럽다고 말하는 주인공.
시골사람이지만 도회지에서 내려왔으므로 자기 아버지는 이 마을 사람들과는 다르고 우월하다 생각하는 주인공. (현실은 밤에 몰래 지게로 나무를 져나르며 불법 매입하는 빈곤층이라도 말이다.)
면장감이란 소리를 들으며 제법 공부를 잘하는 자신은 무식한 동리 아이들과는 다르다는 일화는 또 어찌나 거슬리던지...
같은 시골 이야기더라도 박완서 선생의 어린시절 이야기와는 너무나도 다른 느낌이다.
마치 12살 아이의 입을 빌어 작가가 난 시골 출신이지만 너희들과 다르다는 엘리트 의식을 어필하는 느낌.
그래도 참고 참으며 꾸역꾸역 읽었다.
하지만 같은 반 남자아이들이 여자아이를 때리자. 주인공이 하던 생각...
북어와 여자는 두들겨 패야 맛이 있다는 말이 말해주듯이.
여자들이란 본래 맞으면서 사는 거니까....
더이상 완독은 시간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엔 좋은 책들이 너무나 많은데...
내가 왜 굳이 귀한 여가시간에 이따위 걸 읽으며 시간낭비를 해야 하나.
이 시절을 배경으로 한 소설의 주인공이...
그것도 순수한 12살 아이가 이렇게나 비호감이던 소설이 또 있었던가.
도시에 가서 돈을 벌고 싶어하는 나이 차가 지는 누나를 걱정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못마땅해 하고 건사(?)하려드는 고작 12살인 주인공.(그 이유 또한 장남인 주인공의 상급학교 학비를 벌기 위해서임에도.)
어쩌면 그 생각은 어른인 작가 자신이 하고 있는게 아닐까?
집안 여자는 밖으로 돌리는 게 아니다.
남자인 내가 건사하고 관리해야 할 존재다.
누나는 나이가 많아도 여자이므로 남자인 나보다 미숙하고 어리석어 객지에 있으면 타락하고 더러워질 것이다.
정말 작가는 12살 때 그런 생각을 했을까?
아니면 그런 12살이 어른스럽고 똑똑한 면장감이라 생각하는 걸까?
좋아하는 참한 여자아이 피가영에 대한 동경과, 피가영이 자신만큼 똑똑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도 여자는 너무 똑똑할 필요 없이 그쯤이면 된다고 규정짓던 12살 남자아이는, 관대함을 가장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는 자신보다 못하길 원하는 남성우월까지 은근히 내비친다.
사실은 배고픔이 싫은. 멀건 조죽이 싫은 가난에 대한 혐오.
그럼에도... 모두가 빈곤함에도(또는 자신의 집의 더한 빈곤에도)
무식한 너희들과는 다르다는 천박함을 지식인의 우월감으로 포장하는 교활함.
이 모든게 너무나도 교활하게 12살 아이의 입을 빌어 요소요소 흘러 넘쳐서....
남들은 천박해서 그런데 관심이 있고, 자신은 그런데는 관심도 없지만... 이라고 누차 강조하며, 보지 자지 타령을 그렇게 해대는 12살 아이의 이중성이.
더이상 아이가 아니라 어른인 작가의 찌질하고 이중적인 내면으로 보이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