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교실
손창섭 지음 / 예옥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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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속소설에 현실비판의 요소를 접목한 근대소설 작가가 손창섭 뿐이었던 것은 아니나, 깨어있는 시선으로 세태를 바라본 자는 손창섭이 유일무이할 것이다.

 

 

 

 

현실에는 영 외면한 듯 자식, 자식, 하고 새끼들만 싸놓는걸 볼때 마흔이 다 된 씨 자신 어름어름하다간 천수를 다하지 못하고 굶어죽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은근히 들기도 하거니와, 어린아이들이 장차 살아가기 위해서는 지금의 몇십 배 혹은 몇백 배 비참한 투쟁을 겪어나가야 할까를 생각하면, 세상에 태어난 것이 도리어 불쌍해 보이기조차 했다. -p109

 

자식을 낳지 못하는 것을 죄악에 가깝게 취급하던 무려 60년대 한국 사회에서.

불임인 아내와 사는 것에 거리낌이 없는 주인갑씨의 말이다.

합리적인 작가의 사고방식은 주인공 주인갑씨의 입을 빌어 남권 위주의 한국사회에 깊이 뿌리박은 썩은 남성 우월주의에도 여지없이 철퇴를 내리친다.

 

 

청년은 아까부터 여자란 이상하다고 하더니 이젠 나까지 이상하게 뵈는 모양이지만, 정작 이상한 건 청년 자신이구 청년과 비슷한 세상사람들이에요.

아 유부녀와 간통을 해놓곤 어쭙잖게 참회니 재생이니 도덕이니 하고 군인성자가 어쩌다가 그만 깜빡 실술 한 것처럼 말하는데 그게 당한 소리야? 왜 버젓한 난봉꾼이요 방탕아다 이렇게 시인을 안하느냐 말요? 뭐 오입쟁이가 따로 있는 줄 알아? 그것이 소위 남성측의 그리고 독선과 위선자들의 에고이즘이야.

 

한때 왜 가정주부가 외간남자와 놀아난 끝에 집안을 망신시키고 자식을 망친 일이 신문에 보도되어 화제를 일으킨 일이 있었지. 그 당시 소위 식자라는 것들이 신문이나 잡지에 쓴 글 좀 봐요.

 

대부분 부도가 땅에 떨어졌느니 어쩌고 하고 여자 쪽을 공격하는 담화요 기사였는데, 도대체 지아비 부 자의 부도(夫道)는 어디 두고, 며느리 부 자의 부도(婦道)만을 내세우느냐 말야?

남편은 계집질을 해도 괜찮지만 마누란 서방질을 해선 안된다는 거야? 온 개똥 같은 소리 좀 말래. 남편들이 계집질을 했으면 마누라들의 서방질을 묵인해얄 거 아냐. 마누라들의 서방질을 인정할 수 없으면 남편들도 계집질을 하지 말란 말야. 그래 내 말이 틀렸어? -p195

 

 

 

 

이것이 벌써 반백년 전의 소설이라는 것에 놀라움을 금할 길이 없다.

유난히 여성에 대한 뿌리 뽑기 힘든 혐오의 정서를 간직한 한국에 이런 깨어있는 눈으로 세태를 바라보는 작가가 존재했다는 것이 말이다.

 

 

 

 

 

근대 소설사에 손창섭이 크게 조명되지 못했던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폭력의 정치사와도 무관하지 않으리라.

 

 

 

"그러나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운 게 현실입니다. 특히 우리 대한민국 사회는 더욱 그렇습니다. 고문 선생님께서도 주먹이 약하기 때문에 제가 보기엔 바지저고리에 불과한 서가 따위에게도 봉변을 겪지 않으셨습니까?"

하기야 준법정신이 투철해야 할 정계에도 폭행이 난무하기 일쑤요 심지어는 정부에서 폭력배를 양성한 일조차 있었으며 법에 의해 치러야 할 선거를 폭력이 좌우한 우리나라였으니 더 말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p315

 

 

인간교실은 통속소설로 교묘히 위장한 사회비판 저항소설에 가까워 보인다.

작가는 이야기 첫 머리에 굳이 "주인갑 씨가 자기 집 옆방을 세놓기 시작한 것은 6.10화폐개혁 이후부터의 일" 이라고 밝히고 있듯이. 통화개혁이 구악일소와 경제개발을 명분으로 앞세웠지만 실상은 국민의 생활에 오히려 주름살을 만든 몰가폭등의 원인이 된 정책임을 비판함으로서 도입부 부터 이 소설의 정체성을 명확히 하고 있다. 

 

더 나아가 작가는 5.16 군사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국가재건최고회의 체제에서 민정체제로의 변화가 이루어진 시기. 제한적이나마 자유선거 원리가 작동하고 있던 제3공화국이 사실은 민간복을 입은 군인들이 통치하는... 사실상 폭력의 시대가 끝난 것이 아닌 또다른 폭력의 시대의 연장이었다는 것을... 3공화국 박정희 정권이 구시대의 썩은 정치인 경제인 기득권층의 약접을 잡아 협박해 그 위에 탄생한 삼정학원, 더 나아가 그 삼정학원의 주체인 미스터 안 또한 그가 비판하던 썩은 기득권 층들과 다름 없이 결국 폭력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는...과 같음을 통해 노골적으로 빗대고 있는 것이다.  

 

 

 

 

 

 

 

 

 

 

눈 먼 장님들의 땅에서 눈 뜬 자 손창섭이

한국을 탈출해 도일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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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무라이스 잼잼 2 - 경이로운 일상음식 이야기 오무라이스 잼잼 2
조경규 글.그림 / 씨네21북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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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나 식도락 만화... 그 이상이다. 이미 웹연재로 다 본 내용임에도 오무라이스 잼잼을 들춰볼 때면 맥도날드 해피밀 시리즈의 장난감을 뜯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 되곤 한다. 수집 중인 작고 예쁜 식완피규어들을 주섬주섬 꺼내보는 것과도 비슷한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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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무라이스 잼잼 - 경이로운 일상음식 이야기 오무라이스 잼잼 1
조경규 글.그림 / 씨네21북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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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섭취하는 건 정말 귀찮은 일이다. 나는 캡슐식사 같은 게 실제 식사를 대체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차고 넘치게 쏟아져 나오는 맛집이나 미식, 음식얘기 책들을 정말 넌더리나게 싫어한다. 그런 내가... 이 시리즈는 열심히 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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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생문 (라쇼몽) - 1915년 초판본 오리지널 디자인 소와다리 초판본 오리지널 디자인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지음, 김동근 옮김 / 소와다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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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본 디자인만 보고 구매한 책임에도 다른 판본과 비교했을 때 걱정했던 만큼 번역이 나쁘지 않다. 읽는 내내 할아버지댁 다락방에서 누렇게 변색된 세로쓰기 책들을 뒤적여 읽던 어린시절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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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가 돌아왔다 - 2판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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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작은 강렬한 제목에 비해 피시식 김이 샌다. 나머지는 대체적으로 좋다. 시시할 것 같은 제목에 비해 의외로울만치 강렬한 단편들. 작가님 네이밍 센스가 별로신 듯. 하나같이 제목이 흥미유발을 못함. 결말을 제목으로 들이대는 느낌. 김영하의 책을 한권만 소장하라면 이 단편집을 소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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