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계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5
시마자키 도손 지음, 노영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요즘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 방송 프로그램이라면 단연 <나는 가수다>가 아닌가 합니다.방송국에서 당초에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나는 가수다>는 현재 우리 가요계의 대세라고 할 수 있는 기획된 상품으로서 가수상(像)에 대한 반격이며 ‘가수’라는 존재에 대한 정체성 찾기의 일환이라는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는 생각입니다.
불과 20여년 전만 하더라도 많은 가수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에서 일가를 이루기 위해 극심한 가난과 가족들과의 갈등을 경험했다고 합니다. 아니면 최소한 ‘딴따라’라는 설움을 참아내야 했습니다. 하지만 과거와는 너무나 달라져 버린 환경과 달라져 버린 유행에서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여지는 별로 없어 보입니다. 시류를 따르느냐 아니면 자신의 세계를 고수하느냐. <나는 가수다>는 대체적으로 후자 쪽의 가수들이 등장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부르는 노래의 뒤편에는 숨겨진 또 다른 목소리가 들립니다. “나는 가수다!”라는 다른 목소리는 결국 자기 정체성의 확인이며, 그 확인이 청중들의 마음을 붙들고 흔들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가수다> 이야기를 꺼낸 것은 문득 시마자키 도손의 [파계(破戒)]가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메이지 유신 이전 막부시대에 일본에는 ‘에타’라는 계층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가축의 도살, 가죽제품의 제조, 죄인의 처형 등에 종사하였는데, 일본 근대사회에서는 인간 취급도 받지 못하던 천민 중에 천민이었습니다. 이들이 당했던 차별은 우리나라의 백정들이 당하던 편견과 차별을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예전에 읽었던 [파계]에서는 원어 그대로 ‘에타’라는 단어를 썼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최근에 다시 읽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에는 ‘백정’이라는 용어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여기서도 ‘에타’ 대신에 ‘백정’이라는 단어를 쓰려고 합니다)
어쨌거나 메이지 유신 이후 ‘해방령’이 반포되면서 백정에 대한 차별이 사라지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명목 상의 평등에 불과할 뿐, 여전히 당시 일본 사회에는 백정 출신이라고 하면 무시하고 멸시하면서 인간 이하의 존재로 취급하던 풍조가 남아 있던 시기였습니다. 그 속에서 당사자들은 체념하거나 설움과 분노 속에서 일생을 보내야 했을 것입니다.

[파계]의 주인공인 세가와 우시마쓰는 학생들에게 신망을 얻고 있는 촉망받는 젊은 교사입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누구에게도 밝힐 수 없는 비밀이 한 가지 있는데, 바로 백정 출신이라는 사실입니다. 일평생을 차별과 비애 속에서 살아야 했던 우시마쓰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그야말로 피맺힌 훈계를 남깁니다.

설령 어떤 경우를 당하더라도, 어떤 사람을 만나더라도 결코 백정이라고 고백하지 마라. 한때의 분노나 비애로 이 훈계를 잊으면 그때는 사회에서 버려지는 거라 생각해라.(문학동네판, p.16)

아버지의 훈계와 반대편에 존재하는 것이 이노코 렌타로의 책 <참회록>의 첫 문장입니다. “나는 백정이다.” 두 어절의 짧은 문장이 울리는 파동은 렌타로의 일생과 조응하면서 높은 파고를 만들어 우시마쓰의 마음을 후려 때립니다. 렌타로는 백정 출신이라는 이유로 학교에서 쫓겨났지만 자신의 출신성분을 결코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히려 세상 앞에 용감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선언한 후, 일본 사회에 만연한 차별과 편견의 구조를 파헤치는 글을 씁니다.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정치인의 당선을 위하여 선거에서 힘을 보태다가 결국 정치테러의 희생범이 되어 목숨을 잃습니다. 그의 죽음 앞에서 우시마쓰는 자신이 지켜오던 아버지의 훈계를 깨뜨리고 마침내 자기 정체성의 긍정을 결심합니다.

‘파계(破戒)’의 뜻은 따라야할 계율을 깨뜨린다는 것입니다. 우시마쓰가 깨뜨린 계율은 단순히 아버지의 유언이 아닙니다. 렌타로와 우시마쓰가 먼저 깨뜨리고자 한 계율은 출신 성분으로 인간을 평가하고, 인위적인 위계질서로 비인간적인 대우를 정당화하며 하층 계급에게 편견과 멸시, 따돌림을 가하는 차별의 계율입니다. 따라서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 앞에서 “정말로 나는 백정입니다, 조리입니다. 불결한 인간입니다. (p.336)”라고 말하는 우시마쓰의 고백은 개인적 차원의 파계가 아니라 사회에 만연한 차별과 절망의 심급을 뛰어넘고자 하는 ‘사회적 파계’일 뿐만 아니라 불합리한 계급/계층 구조의 한가운데로 뛰어들어 그 계율을 깨뜨리려는 사명을 확인하는 분명한 자기 정체성의 수립이기도 합니다. 우시마쓰의 고백이, 그리고 친구와 학생들의 호응과 눈물이 인상깊게 다가오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파계]는 또한 현대 사회에도 근절되지 않는 차별의 잔재를 생각하게 합니다. 일본에는 과거의 하층계급을 일컫는 ‘부라쿠민(部落民 ぶらくみん)’들, 과거 일본의 원주민이었던 홋카이도의 아이누족과 오키나와 원주민들에 대한 마음 깊은 곳 차별의식이 여전히 강하다고 합니다. 우리 동포들인 재일 조선인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도 이 범주에 속합니다.
그런데 마음 아픈 사실은 일본의 이런 모습이 우리 땅에서도 그렇게 낯설지 않다는 점입니다. 일본에서 동포들이 당하는 고통에 분개하고 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이는 외침 뒤편에는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외국인 노동자, 결혼이주여성, 취약계층(장애인, 노숙인, 결손가족 등), 동성애자 등 ‘소수’에 대한 편견이라는 부끄러움이 그림자처럼 남아 있습니다.

앞에서 최근 <나는 가수다>는 가수의 정체성에 대한 확인이며, 이것이 가수상(像)에 대한 논의를 증폭시키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렌타로와 우시마쓰의 “나는 백정이다” 역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모순된 사회적 인식을 파계하는 첫 번째 조건은 당연히 당사자들의 자기발견과 ‘대자적 존재’로의 전환이라는 점에서 여전히 차별과 편견이 만연한 우리 사회에 주는 외침이 작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울러 이들의 자기긍정과 외침에 이웃인 우리가 어떻게 호응하고 함께 올바른 길로 돌아갈 수 있느냐를 반성해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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