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할리스 대장 1 니코스 카잔차키스 전집 6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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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미할리스 대장.
최근에 읽은 소설의 등장인물들 가운데 가장 묵직한 무게감으로 다가온 인물이었다. 굳이 비교하자면 [태백산맥]에서 염상진이라는 인물을 연상시키는 인물이다. 물론 두 사람의 성격은 정반대라고 할만큼 상이하다. 신념을 위해 목숨까지도 가볍게 여기는 강한 사람이라는 점에서 같지만, 염상진에게서는 섬세하고 부드러우며 진중한 사람이라는 인상이 강한 반면에 미할리스 대장에게서는 부러질지언정 굽히지 않는 굳건함과 불같은 고집을 느낄 수 있었다.

먼저 소설의 시대적 배경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미할리스 대장]은 19세기 후반, 터키의 지배를 받고 있던 크레타 섬을 배경으로 한다. 당시 크레타에는 기독교도들인 크레타인(피지배층)과 이슬람교도들인 터키인(지배층)이 섞여 살고 있었다. 그리스와 터키가 전통적인 앙숙 관계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인데, 이들이 바다로 둘러싸인 폐쇄적 환경(섬)에서 함께 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게다가 낭만주의와 민족주의가 풍미했던 19세기 유럽의 상황이 겹쳐진다면?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크레타에서는 ‘무장봉기’가 반복적으로 일어났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피가 피를 부르는 복수와 살육이 반복된다. 지배를 받던 크레타인들의 외침은 이 한 마디로 간결하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고향은 잘 알려진대로 바로 이 곳 크레타이며, 작품의 배경인 1889년 무장봉기를 6세 때 직접 경험한 바 있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서는 억압받는 민족이 분출하는 독립과 자유에의 열망을 잘 느낄 수 있다. 중과부적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목숨을 내놓고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무장투쟁에 나선 우리 민족의 독립군 이야기와 흡사하다. 그래서 미할리스 대장을 비롯한 크레타인들이 달아날 곳이 없는 산 속에서 목숨을 내놓고 전투에 임하는 모습은 숭고하고 장엄하기까지 하며, 그들의 최후에는 긴장감과 더불어 울컥하는 분노, 그리고 희생 앞에는 고귀함과 숙연함을 느끼게도 한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는 다음과 같이 아무 일도 아니란 듯이 미할리스 대장의 최후를 그리면서 끝을 맺는다.

미할리스 대장은 조카의 머리털을 잡고 머리를 깃발처럼 쳐들었다. 그의 얼굴에서 괴이한 광채가 감돌았다. 인간의 것이 아닌, 형용할 수 없는 환희가 떠올라 있었다. 긍지, 끝없는 저항, 아니면 죽음에 대한 멸시? 아니면 크레타에 대한 영원한 사랑? 미할리스 대장은 포효했다.
“자유가 아니면.....”
그러나 그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총알 하나가 그의 입을 꿰뚫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그의 관자놀이를 관통했다. 뇌수가 바위 위로 튀어 올랐다. (p.628)

미할리스 대장을 비롯한 크레타인들에게 그들이 살고 있던 크레타는 단순한 땅이 아니었다. 이 땅은 선조들의 기억이 맺힌 곳이요, 부모님과 자신들의 피와 땀이 맺혀서 된 땅이요, 이제 후손들이 영원히 자유와 평화를 누리며 살아야 할 곳이다. 그래서 카잔차키스는 크레타인들의 입을 빌려 자기 고향이 가지는 의미를 다음과 같이 감동적으로 역설한다.

크레타는 말하는 입과 우는 눈이 있는, 따뜻하게 살아 있는 동물이었다. 크레타는 바위와 흙과 나무뿌리로 이루어진 땅이 아니고, 영원히 죽지 않고 주일이면 교회에 모이는 수천 명의 선조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들은 몇 번이고 분노하며 무덤 속에서 자랑스러운 깃발을 펴고 산으로 내달았다. 그 깃발에는 영원한 모국이 오랜 세월의 맹세로 정한 불멸의 글귀가 회색으로 이렇게 수놓여 있었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p.327)

하지만 솔직히 말한다면 읽는내내 가시가 목에 걸린 것처럼 불편하기도 했다. 나는 19세기 크레타가 아니라 21세기 한국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나이를 먹어가는 만큼 내 위치에 안주하게 되었기 때문일까? 만약 조금 더 젊은 시절이었다면 크레타인들에게 일방적인 응원을 보냈을 것이고, 미할리스 대장의 지사적 풍모에 찬사를 바쳤을 것이다. 아마 이들에게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서 해방을 위해 싸운 우리 민족의 모습을 투영했을 지도 모른다.
역사를 통해서 자유나 해방과 같은 가치가 얼마나 고귀하며, 피흘리는 희생이 없이 그것을 성취한 것은 전무후무하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나는 [미할리스 대장]을 보면서 크레타인의 무장봉기에 대해 ‘과연 그렇게 하는 것이 최선이었을까?’라는 방법론에 대한 회의감과 낯설음이 마음 한 구석에서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고백해야겠다.

[미할리스 대장]을 읽어 나가면서 불편했던 것은 역시 두 민족의 대립을 해결하는 방식이 ‘피가 피를 부르고, 복수가 복수를 부르는’ 끊어지지 않는 원한의 고리에 있다는 점이 첫째였고, 학살과 복수가 종교적 차원에서 정당화될 뿐만 아니라 더욱 장려되고 조장되어 진다는 점이 둘째였다.
지배-피지배 관계로만 본다면 크레타인들의 저항에 정당성을 부여해야 마땅하다.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크레타는 터키보다 그리스에 속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명분에도 불구하고 크레타의 불안정한 평화를 먼저 깨뜨린 것은 크레타인이었고, 그것이 종교적이고 인격적인 모욕으로 나타났다는 점에서 아쉽다. 미할리스의 형인 마누사카스는 일부러 술에 취한 채로 나귀를 등에 업고 이슬람교도들이 기도하던 모스크에 들어가서 터키인들과 이슬람교를 모욕했으며, 미할리스 자신도 술에 취하여 터키인들이 모이는 찻집에 들어가 식탁과 의자를 부수고 모든 터키인들을 강제로 내쫓은 후, 혼자서 커피를 마시는 행동으로 모욕을 가한다. 크레타인들이 마누사카스와 미할리스의 행동에 열렬한 박수를 보냈음은 당연하다.

크레타인의 지도적인 가문이었던 세파카스 가문(미할리스 대장과 마누사카스는 모두 세파카스의 아들이다)이 앞장서서 벌인 ‘터키인 모욕’은 바로 복수로 돌아온다. 마누사카스는 살해당하지만 복수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마누사카스의 맏아들인 토도레스는 장관의 조카인 후세인을 살해함으로써 ‘피를 피로 갚는’ 복수를 이어간다. 이러한 행동은 터키인들의 증오감을 부추기고, 결국 터키인들은 기독교 수도원을 공격하여 주교의 목을 매달고, 크레타인들을 보이는대로 살육한다. 결국 크레타인들은 다시 한 번 총을 들고 무장봉기에 나서지만, 유럽과 그리스 본국이 침묵하는 사이, 터키에서 파견된 군대의 힘에 산 속으로 몰려 선택의 기로에 선다. 총을 놓고 마을로 돌아갈 것인가, 끝까지 저항하다 죽음을 맞을 것인가.

지도자로서 미할리스 대장과 마누사카스의 행동은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까? 정말 최선의 방법이었을까? 우리 민족도 독립과 해방을 위해 총칼을 들고 제국주의에 맞서 싸웠고, 나는 그분들의 숭고한 희생과 순수한 애국심에 감사와 존경을 느끼지만, 자신들과 섞여 살아가야만 하는 이웃들을 공개적으로 모욕하고, 이웃들의 소중한 부분을 폄훼함으로써 자유와 해방에 대한 욕구를 발산시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잘 모르겠다. 그래서 온 몸으로 크레타의 자유를 위해 투쟁한 미할리스 대장에게 감동하는 한편으로, 그 방식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는 것이다.

민족적, 종교적 대립이라는 부분을 제거한다면 크레타섬의 사람들은 세상의 다른 곳의 사람들과 똑같은 삶을 살고 있다. 사랑하고 다투며, 만나고 헤어지고, 처녀와 총각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며 얼굴이 붉어지고, 노인은 과거를 회상하며 누구나 받아주는 허세를 짐짓 부려본다. 유복한 사람도 있고 구걸해야만 먹고 사는 사람도 있으며, 구두쇠도 있고 호탕한 사람도 있으며, 우람한 신체를 갖춘 용사들이 있고 가냘픈 신체를 갖춘 지식인도 있다. 그들은 모두 자기 나름대로의 목적과 뜻을 가지고 살아간다. 여기에는 크레타인과 터키인의 구분이 없으며,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의 차이가 없다. 이렇게 바로 어제까지 얼굴을 맞대고 살아가던 선량했던 이웃들이 나와 다른 언어와 종교를 가진 사람은 지상에서 사라져야 하며, 그것을 위해서 피의 복수는 불가피하다는 생각을 가진 약탈자와 강도로 돌변하는 상황이 마음을 쓰라리게 만든다.

[미할리스 대장]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 중의 하나는 터키인 지도자들이 모여서 크레타인들에 대한 보복방안을 논의하는 장면이다. 여기서 크레타인들에 대한 피의 보복은 코란의 성스러운 명령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터키 총독은 다음과 같은 내용의 말을 한다. “당신이 살육을 바라니 코란에서 그런 명령을 찾는 것이오. 평화를 원하는 이가 보면 평화라는 해답을 얻을 것이니 둘 다 신의 뜻이오.” 결국 모든 정치적 언사와 사회적 사고방식, 종교적 가르침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인간에게 달린 것이 아니겠는가. 물론 평화를 원하는 이가 많다고 하여 반드시 민족간의 비극이 사라질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극단적인 상황을 최대한 피하려는 노력과 실천이 나올 가능성은 조금이라도 더 높아지고, 우리는 그 가능성에 우리의 미래를 걸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런 점에서 [미할리스 대장]의 첫 부분에는 무척 아름다운 장면이 나온다. 크레타인인 미할리스 대장과 터키인인 누리 장관이 젊은 시절 피를 나누고 의형제가 되는 장면이다. 사실 30여년 전의 무장봉기에서 누리 장관의 아버지를 잡아 바위에 머리를 부숴 살해한 사람이 바로 미할리스의 맏형이었다. 복수의 화신이 되어도 부족함이 없을 것 같은 처지였고, 아버지의 망령에 시달리며 괴로워할지언정 그는 크레타인에게 복수하기 위한 칼을 뽑지 않는다. 그는 먼저 의형제인 미할리스 대장에게 화해의 손을 내밀고, 민족과 민족의 다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나름대로 노력을 기울인다. 미할리스 대장의 거칠것 없는 우직한 전진이 자유를 향한 불꽃같은 갈구를 보여주어 비장미를 드러낸다면, 누리 장관의 신중함과 잠시의 모욕을 참아내는 인격은 불같은 증오를 식혀주는 축복의 비와 같은 깊은 숭고미를 드러내어 감동을 더해준다.

그는 이 성스러운 순간을 속된 언어로 타락시키지 않으리라 굳게 결심하고 어둠과 빗속을 걸었다. 기묘하고, 전혀 새로운, 그러나 극히 중요한 감정적 동요가 그를 사로잡은 것이었다. 그는 바위처럼, 크레타의 바위처럼 조용히 그 억수같이 퍼붓는 비를 참아 냈다. 그는 등줄기로, 갈증을 적시는 바위와 대지의 기쁨을 실감할 수 있었다.
비는 고맙게도 터키인들이 그리스인 마을과 수도원에도 지른 불을 꺼주고 있었다. 기독교인들이 파괴 행위의 일환으로 질렀던 터키 마을의 불도 꺼주고 있었다. 터키인들과 기독교인들은 폐허로 돌아가 돌 한 덩어리씩 쌓으며 다시 자기네 집을 지었다. (p.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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