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터십 다운의 열한 마리 토끼 (양장)
리처드 애덤스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사계절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이 유명한 동화책(?)을 예전에 중고책방에서 구해 모셔만 두다가 이번 설연휴 기간에 읽게 되었다. 특별히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어쨌거나 ‘토끼의 해’에 읽은 첫 번째 책이 토끼 이야기가 된 셈이다. 먼지 쌓여가던 묵은 빚을 청산하려던 것이 자연스럽게 새로운 시작으로 이어진 것이니 나름 탁월한 선택인 것 같다. ㅎㅎㅎ  

평화로운 토끼마을인 샌들포드에서 살던 파이버는 엄청난 재앙이 마을에 다가오고 있다는 예지를 느낀다. 이 사실을 마을 족장에게 이야기했지만 돌아온 것은 무시와 경멸 뿐. 우여곡절 끝에 파이버의 예지를 믿은 헤이즐과 빅윅, 블랙베리, 실버, 댄더라이언 등 11마리의 토끼들만이 고향을 떠나 새로운 정착지를 향한 모험에 나선다. 이들은 여우, 족제비, 고양이, 올빼미, 인간 등 천적의 눈을 피하고(혹은 싸우고), 생소한 거주지역의 환경을 이겨내야 하는 어려운 조건들을 극복하면서 워터십 다운에 새로운 토끼 마을을 개척한다. 그리고 자기 마을의 존속과 번식을 위해 주변 지역의 최대 권력자이자 독재자인 에프라파의 운드워트 장군과 맞서게 된다.

[워터십 다운의 열한 마리 토끼]를 읽는 즐거움 1: 미지의 세계를 향한 모험과 개성 강한 등장토물(登場兎物)

[워터십 다운의 열한 마리 토끼]는 전형적인 ‘집단 성장 소설’이다. 원래 집단에서 떨어져 나온 소수의 무리가 온갖 역경과 난관을 극복한 끝에 마침내 새로운 땅에 정착하고 (그 과정에서 사랑도 찾고) 평화와 번영을 이루는 (그리고 주인공은 영광된 죽음을 맞게 되는) 구조에 충실하다. 패망한 트로이를 탈출한 아이네이아스가 길고 긴 여행 끝에 로마를 건설한 것이라든가, 고구려를 떠나온 온조가 새로운 국가인 백제를 세우고 왕이 된 것을 이런 집단 성장의 사례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정든 고향인 샌들포드를 떠나는 열한 마리의 토끼들은 목숨을 내걸어야 하는 무수한 난관과 모험을 돌파하면서 새로운 동료를 만들고, 마침내는 평화를 얻어 번성하는 마을을 건설한다.

집단 성장 소설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재미가 다양한 개성을 가진 구성원의 존재이다. 토끼를 호시탐탐 노리는 적들에게 맞서 싸우면서 정착 및 종족번식이라는 과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토끼들은 각자의 특기와 개성을 발휘한다. 다른 토끼들보다 뛰어난 점은 부족하지만 구성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약자를 배려하여 결국에는 지도자의 권위를 얻게 되는 헤이즐, 불굴의 용기를 가지고 물러서지 않고 적에게 맞서는 용사 빅윅, 숱한 난관을 극복할 수 있는 책략을 짜내는 꾀주머니 블랙베리, 예지력을 갖춘 예언가 파이버, 타고난 입담으로 잠시나마 동료들에게 공포와 절망을 잊게 하고 새로운 힘을 불어넣는 이야기꾼 덴더라이언 등이 그들이다.

겨우 한 고비를 넘어가나 싶으면 새롭게 다가오는 위기, 그리고 그 위기를 ‘토끼답지않은(?)’ 지혜와 용기를 발휘하여 이겨내고, 그 과정에서 뜨거운 동료애를 보여주어 마침내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토끼들의 활약상은 이 책을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워터십 다운의 열한 마리 토끼]를 읽는 즐거움 2: 토끼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

[워터십 다운의 열한 마리 토끼]는 첫 장을 펼칠 때부터 독자를 토끼로 변하게 하는 마법을 부린다. 그래서 이 책을 읽어나갈수록 인간의 눈높이에서 토끼를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초원과 관목숲으로 덮이고 작은 강이 흐르며, 때때로 신작로와 철길을 만날 수 있는 영국 남부의 언덕지대에서 살아가는 자연 속의 토끼의 눈과 귀로, 토끼의 다리로 함께 보고 듣고, 함께 뛰어다니고, 함께 모험에 나서고, 함께 싸우고, 함께 적으로부터 도망다니는 생생함을 경험하게 된다. 작가는 “먹는 것, 살아남는 것, 교미하는 것 외에는 거의 관심이 없는” 토끼들의 생태, 먹이를 찾는 습성, 굴을 파서 숨는 습성, 위험에 몰렸을 때 발톱과 뒷다리로 공격하는 습성 등을 철저히 연구한 문헌을 활용하여 개연성이 풍부한 동물 판타지를 창조해 냈다.

아마 이 책을 보면서 귀여운 토끼의 모습이 상상이 가면서 저절로 미소가 떠오를 사람도 적지 않으리라. 토끼가 풀을 뜯는 장면을 볼 때마다 그 묘사가 얼마나 사실적인지 모른다. 시골에 살면서 산토끼를 쫓아다녀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토끼가 굴에서 나오면 얼마나 조심스럽게 풀을 한 번 뜯고 뒷다리로 서서 귀를 쫑긋 한 채로 사방을 경계하다가 다시 풀을 뜯고, 또 경계를 반복하는 지를 말이다. 그러다가 순간적으로 작은 소리라도 들리면 후다닥 달아나서 굴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내며 들판으로 토끼굴로 토끼사냥을 다녀봤던 사람이라면 저 묘사의 정확함과 생생함에 무릎을 칠 것이다.

물론 [워터십 다운의 열한 마리 토끼]는 동물도감이 아니기 때문에 토끼의 생태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그치지 않는다. 작가는 사실적인 토끼의 생태라는 ‘그릇’ 속에 토끼만의 언어와 토끼만의 신화, 토끼만의 계급체계, 토끼만의 책략 등 온갖 신기한 이야기들을 버무려 생동감을 부여하였다. ‘엘-어라이어’라는 토끼의 조상이 등장하는 신화 이야기는 그 자체로 재미있는 동화의 주제가 되며, 처음에는 좀 생뚱맞던 토끼의 언어는 반복하여 나오면서 어느새 익숙해져서 날씨가 따뜻해지면 ‘실플레이(밖에 나가서 풀을 뜯는 일을 의미하는 토끼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워터십 다운의 열한 마리 토끼]를 읽는 즐거움 3: 인간세상과의 비교, 자연의 천적 인간

[워터십 다운의 열한 마리 토끼]를 단순한 아동용 동화책 수준에 머물지 않도록 하는 이유중 하나는 인간 문명이 보여주는 오만함과 어리석음에 대한 예리한 비판과 풍자가 놀랍기 때문이다.
열한 마리의 토끼들이 정든 샌들포드를 떠나 모험에 나선 후 실제로 샌들포드의 토끼들이 참혹하게 몰살당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그런데 그 재앙이란 가뭄이나 홍수와 같은 자연재해도 아니었고 천적의 침략이 아니었다. 바로 샌들포드 마을이 있던 구릉지대를 사들인 부동산회사가 그곳을 고급주택지로 개발하기 시작한 것. 이 과정에서 인간은 들판의 토끼굴 구멍을 모두 막은 채 동굴 속으로 독가스를 퍼뜨렸고, 토끼들은 가스에 중독되거나 이리저리 몰려다니다가 곳곳에서 떼죽음에 이른다. 운좋게 막히지 않은 구멍을 찾아 들판으로 나온 토끼들 역시 인간의 총알을 피하지 못했다. 인간들이 담배 몇 대 피울 정도의 시간에 번성하던 한 마을이 완전히 짓밟힌 것이다. 인간의 고급 주택을 지을 터를 마련하기 위해서.

이 책은 헤이즐을 비롯한 열한 마리의 토끼들이 새로운 마을인 워터십 다운을 이루면서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그렇지만 과연 이들과 자식들인 아기토끼의 미래는 장미빛일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 같다. 몇 킬로미터 떨어지지 않은 샌들포드에 고급주택지가 들어선 이상 아마도 조만간 워터십 다운에도 굴삭기가 들이닥치고 토끼들의 마을에 총알세례와 독가스살포가 이루어질 것이다. 다른 동물이 생태계를 이루고 있거나말거나 자연을 경영의 대상으로 여기면서 인간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어떤 파괴도 서슴지 않는 오만과 탐욕이 사라지지 않는 한 말이다. 강줄기마다 개발의 삽을 꽂고 생태계를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아시아 동쪽 어느 나라의 현재 모습이 오버랩되지 않을 수 없다. 이 쯤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말을 다시 생각해 본다.

동물을 사랑하시오. 신은 동물들에게 근심 없이 생각하고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자질을 내리셨습니다. 동물을 괴롭히지 말고, 곤경에 빠뜨리지 말고, 행복을 빼앗지 마시오. 신의 뜻을 거스르지 마시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직접적으로 인간의 오만함을 비판하는 것 외에도 [워터십 다운의 열한 마리 토끼]에 나오는 토끼 마을들은 인간 문명이 만들어낸 정치체제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처음 마을인 샌들포드에서는 대부분의 토끼들이 몸을 키워서 지배집단(아우슬라)에 들어가기를 희망한다. 이들 아우슬라 토끼들은 토끼사회에서도 지배층인 셈이다. 또한 중간에 만나는 카우슬립 마을의 토끼들은 주위 인간들이 주는 맛있는 음식과 쾌락에 빠져서 자연 속의 토끼로서의 생명력을 잃어버린 채, 동료들을 희생제물로 삼아 자리를 유지한다. 카우슬립 마을 토끼들에게 인간이 설치한 덫이란 동료들에게 알려서 함께 조심해야 할 함정이 아니라, 동료를 인간에게 바치게 함으로써 자신의 안전을 조금이라도 연장하는 수단일 뿐이다. 그러니 여기서 덫이나 올가미의 위치를 말할 수 있는 ‘어디’라는 단어는 터부시되는 금칙어가 되어 버린다. 운드워트 장군이 통치하던 에프라파 마을은 강력한 통치조직과 억압기제로 유지되는 전체주의 사회라고 할 것이다.

토끼는 약한 동물의 상징과도 같은 동물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생각이 바뀔 지도 모른다. 토끼들은 그렇게 무기력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물론 여우나 고양이와 같은 포식자들을 두려워하긴 한다) 지혜롭고,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을 이용해서 싸우는 장면에서는 맹수의 모습까지도 보여준다. 재미있는 모험으로 가득하면서 마음을 포근하게 해주는 토끼들의 이야기를 읽는 순간만이라도 자연의 일부로 돌아가 생명에 대한 경건함과 대자연에 대한 겸손함을 배워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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