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크 - 21세기를 지배하는 네트워크 과학
알버트 라즐로 바라바시 지음, 강병남 외 옮김 / 동아시아 / 200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생판 처음 만나는 사람과 이야기하다가 두 사람 모두가 알고 있는 누군가가 떠올라 ‘세상 참 좁구만!’이라고 느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그 사람의 동생이 내 후배였다거나 하는 경우이다. 아마 누구나 경험해 보았을 것인데, 이 때 처음 만난 두 사람 사이에는 후배(동생)라는 중간 매개가 있어서 눈에 보이지 않는 링크(link)가 형성되어 있는 셈이다.

미국의 영화배우인 케빈 베이컨의 이름을 딴 케빈 베이컨 게임(Six degree of Kevin Bacon)이 미국 대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케빈 베이컨과 함께 영화에 출연한 관계를 1단계라고 했을 때, 할리우드 배우들이 케빈 베이컨과 몇 단계만에 연결될 수 있는가를 찾아내는 것이 이 게임의 룰이다. 재미있는 것은 대부분의 할리우드 배우들이 여섯 단계 이내에 케빈 베이컨과 연결되더란 사실이다. 우리나라 배우 중에 안성기씨를 놓고 한 번 이 게임을 해보면 어떨까? 모르긴 몰라도 2-3단계 정도면 모두 연결되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이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네트워크(network) 속에서 타인과 링크를 맺으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존재에 대해서는 경험적으로 어렴풋하게 느끼는데 비해 그 실체와 위력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는 것이 바로 이 네트워크이다. A.L. 바라바시의 [링크(LINKED)]는 네트워크 이론과 네트워크의 특징을 설명함으로써 우리의 일상에 내재되어 영향을 미치는 네트워크의 위력을 새삼 깨우쳐 주는 책이다. 저자는 미국 노트르담 대학의 물리학과 교수이다. 따라서 이 책은 기본적으로는 교양과학책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네트워크 이론이 분자의 연결(물리학)에서 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사회학, 정치학), 웹(정보통신), 세포(생물학), 마케팅(경영학) 등의 영역으로 무한대로 확장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네트워크에 속하여 네트워크를 이루는 각 주체를 노드(node)라고 한다. 예를 들어 ‘한국고등학교’의 전교생이 100명이라고 한다면 ‘한국고등학교’ 네트워크 안의 노드는 100개가 있는 셈이다. 그리고 노드들은 저마다 연결되어 있다. 서로 알고 있는 학생들끼리 선을 이어서 노드에서 뻗어나가는 관계망을 그려보자. 아마 아래와 같은 형태의 그림이 될 것이다.
 




[링크]에서 바라바시 교수는 여러 가지 네트워크를 등장시킨다. 우리가 인터넷을 켜기만 하면 연결되는 웹(web)이라는 네트워크, 전력선의 네트워크, 종교 전파의 네트워크, 질병 전파의 네트워크, 항공노선의 네트워크 등등. 네트워크가 가지는 중요성은 단순히 관련성 있는 노드들의 2차원적 연결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네트워크의, 그리고 그 네트워크 속에 포함된 노드들의 가치는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네트워크는 계속하여 확장되면서 중첩된다.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가 세포분열을 통해 계속 확장하는 것과 비슷하다. ‘한국고등학교’의 재학생 한 명이 새로운 친구 한 명을 사귀었다고 하자. 그러면 두 노드 사이에 새로운 연결망이 그려진다. 이러한 횡적 확대 뿐만 아니라 네트워크는 다차원적으로도 확대된다. 예를 들어 어떤 학생은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들의 네트워크에 속하면서 동시에 같은 동아리 활동을 하는 네트워크에 속할 수 있다. 만약 노드의 모집단이 전세계 인구라거나 인터넷 상의 홈페이지들이라면, 이들이 이루는 네트워크가 얼마나 커질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네트워크의 확장은 단순히 링크가 몇 개 추가되는 양적인 확대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네트워크의 모든 구성원들은 각각 몇 단계를 거치느냐의 문제가 남겠지만 기본적으로 서로 ‘링크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어떤 배우는 케빈 베이컨과 일면식도 없지만 그와 함께 출연한 다른 배우를 알게 되어 케빈 베이컨과의 새로운 네트워크가 발생한다. 이론적으로는 대한민국 서울에 사는 나와 아프리카 정글에 거주하는 추장과의 네트워크도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내가 아프리카의 추장이나 북극의 에스키모 중 한 사람과 빠른 단계 내에서 연결되어 있을 확률은 대단히 낮다. 왜? 여기서 네트워크의 두 번째 가치가 나온다. 좀 매정한 얘기일지 모르겠지만 네트워크 상에 존재하는 구성원, 즉, 노드들은 평등한 지위를 가지지 못한다. 네트워크에서 각 노드들은 평등한 관계보다 위계질서를 갖춘 층위관계를 형성한다.
다시 위의 그림을 보자. 딱 보기에도 A, B, C, D는 다른 노드들과 달라 보인다. 이들은 다른 노드들과 연결되어 있는 빈도가 많다. 즉, 이들을 중심으로 네트워크가 구성되어 있다. 반면 주변을 보면 단 하나의 연결선만 가지고 외롭게 떨어져 있는 노드들도 발견된다. 관계망의 중심에 선 구성원과 따로 떨어진 구성원. 자.. 이제 네트워크에 어떤 특징이 내재되어 있는지 쉽게 잡아낼 수 있을 것이다. 많은 노드들과 연결되어 있을수록, 많은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을수록 power는 더 커진다.
내가 새로 책을 낸 출판사 직원이라고 가정해 보자. 인터넷 이용자들에게 공짜로 책을 주고 서평을 부탁하고 싶은데 어떻게 할까? 블로그 이웃이 100명인 사람과 달랑 1-2명에 불과한 사람 중에 누구에게 책을 보내주는 것이 좋은 전략인지는 자명하다. 포털사이트나 온라인서점 사이트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에 붙여진 ‘파워(power) 블로그’라는 명칭은 그냥 아무렇게나 붙인 말이 아닌 셈이다.

마지막으로 네트워크는 노드의 집합체로 발생하지만 어느 임계점을 넘어서는 순간 구성원(노드)에게 거꾸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강남 엄마들이 만든 네트워크를 생각해 보자. 이 네트워크의 탄생은 모여서 자녀들의 진로를 걱정하고 학원에 대한 정보를 서로 교환하던 모임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 네트워크의 성격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단순한 정보교류의 네트워크가 아니라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지는 새로운 연결망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새롭게 태어난(?) 네트워크는 그 안팎의 구성원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작용을 시작한다. 보이지 않게 우리 일상에 영향을 미치는 Big Brother의 실체는 네트워크의 집합체일지도 모른다!!!
몇 년 전에 한겨레신문에서 서울시 25개 구별로 주민들의 사망률과 질병 유병율을 조사한 특집기사가 실렸다. 그 결과는 사람들이 ‘혹시나’하고 생각하던 예상 그대로였다. 강남 3구 주민들에 비해 강북 지역 주민들의 건강수준과 사망확률은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높았다. 직업과 교육수준, 근로형태가 건강수준에 영향을 준다는 연구결과는 서구와 우리나라에서 공통된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사회경제적 변수들에서 우위를 점하는 소위 한국사회의 지도층이 모여 사는 강남 3구가 구성한 네트워크는 다른 지역에 비해 질높은 보건의료자원을 끌어 들일 확률이 훨씬 높았던 것이다.

신의 주사위와도 같아 보이는 전지전능한 네트워크에 약점은 없을까? 사실 우리는 네트워크의 약점을 잘 알고 있고, 또 그 약점을 이용하여 네트워크를 공격할 수 있음을 알고 있다. 앞서 언급한 네트워크의 두 번째 본질적 모습, 즉, 위계질서를 갖춘 네트워크의 성질을 이용하는 것이다.
만약 내가 인터넷을 마비시키려고 하는 크래커(cracker)라고 생각해 보자.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싶은데 어디를 공격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겠는가. 방문자가 몇 안되는 개인의 홈페이지? 아니면 네이버나 다음과 같은 거대 포털사이트? 당연히 좀 더 힘은 들겠지만 더 큰 power를 갖춘, 그래서 네트워크 상의 상위 사이트를 공격해야 할 것이다.
지난 겨울 우리는 신종 플루 때문에 고생해야 했다. 전염병에 대항하여 싸울 때에는 언제나 동일한 질문이 제기된다. 백신이 개발되어 나왔을 때 누구에게 제일 먼저 접종할 것인가? 사람들마다 사정은 다르겠지만, 역학적으로 판단해 보았을 때 가장 효과가 높은 집단은 역시 학생들이다. 왜냐? 학생들만큼 광범위하면서도 긴밀한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집단이 없기 때문이다. 한 명이 감염되어 다른 사람에게 질병을 전파시킨다고 할 때, 그 최초 전파자에게 예방접종을 시행하는 것만으로도 질병 발생율은 급격히 떨어진다. 100명의 아이들 중 70명만 홍역 예방 접종을 맞아도 홍역이 거의 예방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이게 바로 네트워크의 아킬레스건이다.

개인적으로 네트워크에 대하여 접하면 좀 묘한 생각이 드는 것이 있는데,
노드들 간의 평등한 관계망이란 단순한 경우에나 어울릴까, 좀 더 복잡하고 고등적인 관계망은 예외없이 차별적이고 차등화되어 구성된다는 점이었다. 물론 네트워크의 속성이 그렇다면 그걸 이용하는 것도 사람의 몫. 나는, 그리고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은 이 네트워크의 속성을 어떻게 이용할 수 있을 것인가.

무엇보다 네트워크의 형성 자체에 먼저 주안점을 두어야 하지 않을까. 동일한 지향점과 동일한 관심사를 가진 노드들의 네트워크 구성이 먼저 이루어져야 하겠다. 그리고 그 네트워크가 성장하고 외연이 확장되어야 하는데, 그것을 위해서는 사람들을 네트워크로 끌어들이는 ‘떡밥’이 있어야 한다(이 책에서는 그 떡밥을 document라고 표현한다). 생활에서 나오는 필요성과 요구를 만족시키는 떡밥. 그래서 그 떡밥으로 사회적 논의의 활성화를 이루고 네트워크로 찾아오도록 하는 사람이 많아지게 하는 것.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 할 과제가 아닌가 한다.

p.s.
사실 네트워크 이론은 내가 학위논문에서 ‘집적거려 보고자 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나는 네트워크 상위 위치가 하나의 자본(capital)을 의미하며, 그 자본의 성격과 소유형태, 소유량에 따라 개인의 행동에는 차이가 발생한다고 생각하는데...
문제는 언제 이 논문을 쓸지 모른다는 것. 에헤라~
처음 [링크]를 읽고 네트워크 이론에 관심을 가졌을 때에도 그랬지만, 다시 한 번 읽어도 신선하고 무언가 영감을 주는 책이었다.
참! 네트워크 이론을 좀 쉽게 접하거나 케빈 베이컨 게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정재승 교수가 쓴 [과학 콘서트] 제1장을 보아도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