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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만이 과일은 아니다 ㅣ 민음사 모던 클래식 10
재닛 윈터슨 지음, 김은정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1.
기도와 선교에 편집증적으로 집착하는 한 어머니가 어린 여자아이를 입양한다.
그리고 입양된 딸에게는 ‘하느님께 바쳐져 살아갈 것’을 인생의 목표로 주입시킨다.
충실히 하느님의 어린 양으로 자라는 것 같던 딸은 어느 날 시장에서 한 소녀를 만나게 되고 뜻하지 않은 사랑에 빠진다.
엄격하고 보수적인 기독교 문화에서 절대로 용납할 수 없었던 동성애.
악마가 들었다는 비난과 손가락질 끝에 마침내 딸은 집과 교회를 떠나 독립한다.
2.
“오렌지만이 과일은 아니다”
복잡하게, 오래 생각할 필요도 없다.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 않은가.
세상에 철따라 나는 과일이 얼마나 많은데...
그 뿐이랴. 듣도 보도 못한 요상한 형체의 나무열매가 ‘열대과일’이란 이름으로 내 눈과 입을 자극하는 세상에서 오렌지만이 유일한 과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어디가 좀 이상한 사람이 분명하다.
그럼 다음 단계. ‘오렌지’와 ‘과일’ 대신에 다른 말을 넣어 보자.
“코끼리만이 동물은 아니다” 당연한 말. “장미꽃만이 꽃은 아니다” 이것도 당연한 말.
소개념(오렌지, 코끼리, 장미)과 그 개념을 내포하는 대개념(과일, 동물, 꽃)으로 이루어지는 이러한 문장은 상식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 문장이다.
(그냥 보통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이런 문장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비트겐슈타인이 이런 걸 비꼬아서 다르게 봤다는 건 좀 다른 얘기니 여기선 따지지 말자.)
그럼 이 문장은 어떤가? “기독교만이 종교는 아니다”
음... 갸우뚱. 근본주의적이고 보수적인 일부 독실한 분들 중에는 분명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도 계실 거다. (실제로 봤다.)
“아니야. 기독교만이 진실한 종교지. 다른 종교에는 구원이 없어. 성경은 무오하고, 일점일획도 틀리지 않아.”
이런 사고 방식은 비단 종교의 영역에서만이 아니라 우리 주위의 정치경제, 사회적 현상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비일비재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혹자는 여기에 ‘독선’, ‘독단’이란 말을 붙여 표현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상식은 종교논리와 이데올로기논리 앞에서 허물어진다.
3.
소설이 사회적 현상을 반영하고, 또한 사회적 논의를 이끌어내는 상호작용을 한다고 할 때,
[오렌지만이 과일은 아니다]의 가장 큰 강점은 개인에 대한 가족과 지역사회, 종교의 독단에서 비롯되는 ‘거대한 괴물’ 3종 세트의 억압기제를 가감없이 드러내었다는 점에 있다.
특히 지금보다 전반적으로 사회가 보수적이고 폐쇄되었던 1980년대 대처 정부 시기에 쓰여졌다는 점에서 더욱 그 의미가 적지 않다.
작가 자신의 성장경험이 그대로 소설의 배경이 되어 버린 이 책은(그래서 작가와 책 속 주인공의 이름이 동일하다)
개인이 성 정체성을 깨닫는 단순한 동성애 코드의 소설이나 성장소설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개인에 대한 사회적 억압을 고발하는 소설로 한 단계 나아간다.
이는 주인공 지넷의 인생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입양에서부터 잘 나타난다.
지넷의 어머니가 가지고 있는 입양목적에서 아이의 미래에 대한 고려는 빠져있다.
그녀의 목적은 단 한 가지, 신을 위해 복무하는 ‘신의 자녀’를 만드는 것 뿐이다.
그녀는 자신을 성모 마리아와 동일시한 것이다!!!
아이의 미래에 대해 관심없는 부모가 어디 있겠냐마는 그 관심이 부모의 일방적 요구, 또는 아이가 가진 다양한 가능성의 제한으로 발현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리고 그 와중에서 지넷의 아버지는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하는 무능함만을 보여준다.
지넷이 겪게 될 고초의 근원은 가족에 그치지 않는다.
지역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며, 지넷이 나름대로 충실하게 몸담고 있던 교회와 성직자, 신도들에게도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권은 멀고 먼 안드로메다 이야기일 따름이다.
지넷의 동성애적 성향이 밝혀지자마자 이 지역공동체는 그녀에게 비난을 퍼붓고, 다른 사람과의 접근을 막는 한편, 마침내는 축출한다.
그들에게는 <동성애=마귀의 유혹>이란 단순한 도식이 진리였고,
이 진리에 따르지 않고 회개하지 않는 자의 종말은 추방과 ‘지옥행’임을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마지막 장면에서 다소 어정쩡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가출하여 생활하던 지넷은 결국에는 어머니에게로 돌아오게 되는데,
이러한 행동은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일종의 ‘화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지넷의 이러한 ‘회귀’는 과거 자신의 정체성을 짓밟고 획일성만을 강조하였던 가족과 교회의 변화와 반성이 전제되지 않은 복귀라는 점이 아쉽다.
물론 선교단체와 성직자들의 비리는 그들의 힘을 잃게 만들긴 하였으나, 이는 지넷의 적극적 투쟁의 결과라기 보다는 자체적인 모순이 더 큰 원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4.
이 책에서 눈에 띄는 형식상의 특징은 장 구분을 구약성서에 따라 하였다는 점이다.
즉, <1부/창세기 2부/출애굽기 3부/레위기 4부/민수기 5부/신명기 6부/여호수아 7부/판관기 8부/룻기>와 같이 내용을 구분하여 놓았는데,
아마도 기독교라는 종교적 권위에의 도전이라는 작가의 주제의식이 반영된 것과 아울러 각 장의 내용을 함축적으로 나타내기 위한 일종의 이중적 장치로 여겨진다.
예를 들어 <1부/창세기>.
널리 알려져있다시피 구약성서 창세기는 인류, 죄, 이스라엘 민족 등의 ‘기원(genesis)’에 대한 책이다.
[오렌지만이 과일은 아니다]에서 1부는 지넷 가정의 기원과 지넷이 장차 범할 죄악, 즉, 동성애의 기원을 암시해 두고 있다.
<2부/출애굽기>는 지넷이 최초로 어머니의 영향력을 벗어나는 ‘학교’라는 곳으로의 탈출(Exodus)을, <6부/여호수아>에서는 자신의 성정체성을 확고히 함으로써 견고한 여리고(Jerico) 성의 붕괴 내용을 담고 있다고 여겨진다.
마지막 장인 <8부/룻기>에서 룻은 이방인임에도 시어머니에 대한 효성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 따라서 이 장에서 ‘죄인’이란 이방인이었던 지넷은 다시 어머니에게로 돌아오게 된다.
또 하나 중간중간에 들어있는 ‘원탁의 기사’ 이야기와 ‘위닛과 마법사’에 대한 이야기 역시 재미있는 형식이었다.
지넷 윈터슨은 이러한 고전적인 이야기들을 통해 자신에게 익숙해 있던 절대적 영역으로부터의 일탈과 회귀는 영원히 반복되며 변주되는 주제임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려 한 것 같다.
5.
‘정상’과 ‘비정상’, ‘진실’과 ‘거짓’의 경계는 어느 지점일까?
“오렌지만이 과일은 아니다” 즉, 다양성과 개성 보장은 인간관계와 사회의 건강함을 유지하기 위한 중요한 요인이 된다.
남이 나와 다르며, 나 역시 남과 반드시 같아져야 할 필요는 없다는 차이의 인정이 현재 우리 사회가 금쪽처럼 숭상하고 있는 “사회 통합”의 첫 번째 조건이다.
우리 사회가, 그리고 나 자신도 오렌지만이 과일이 아니라는 명료한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