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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은 무엇을 말할 수 있고 무엇을 말할 수 없는가 ㅣ 부키 경제.경영 라이브러리 1
로버트 하일브로너. 레스터 서로우 지음, 조윤수 옮김 / 부키 / 2009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경제학은 무엇을 말할 수 있고 무엇을 말할 수 없는가?”
저자가 책의 제목으로 삼은 질문에 대한 나름대로의 답을 내리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자.
물론 나는 경제학도가 아니니 답변의 정확도에 대해서는 그다지 크게 신뢰하지 않아 주었으면 한다.
내가 보기에 경제학은 첫째,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생산할 것인지의 문제에 대하여
둘째, 경제체계 내의 주체들(가계, 기업, 정부)이 어떻게 대응하며,
셋째, 최대 효율을 위하여 어떻게 자원을 배분하며, 또 결과인 성과물을 어떻게 형평적으로 분배할 것인지에 대한 이론적인 해답을 제공해 준다.
이렇게 경제학의 ‘말할 수 있는 점’에 대한 설명이 책의 제2부와 제3부에 ‘거시경제’ 및 ‘미시경제’라는 제목으로 채워져 있다.
하지만 문제는 경제학으로서는 도저히 ‘말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이렇게 말할 수 없는 한계상황이 현실에서 비일비재하게, 그리고 더 큰 규모로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간단하 예를 들어 수입의 문제만 봐도 이런 면이 나타난다.
즉, 값싸고 질좋은 외국물건이 수입되어 들어오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좋은 일이라 할 수 있지만,
수입품으로 인해 국내 생산이 중단되고 해당 직종의 종사자들이 실업자가 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과연 소비자들이 외국 제품에서 얻은 이익의 가치는 있는 것일까?
지금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여러 가지 현상들을 보아도 그렇지 않은가.
사회 전체적인 부는 과거보다 훨씬 증가했음에도 소득 불균형은 더욱 커졌다.
각 국 정부는 환율을 안정화시키기 위해 기를 쓰지만, 투기 자본으로 경제 전체가 당분간 회복하기 어려운 타격을 입는 경우가 발생한다.
분명히 기술은 진보하고 GDP도 매년 성장한다고 하는데, 고용은 늘지 않고 일자리의 질도 갈수록 저하된다.
전세계가 열병처럼 앓고 있는 현재의 경제위기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위기의 진원점인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과정은 경제주체들이 ‘합리적 존재’임을 가정하는 순수한 경제학으로는 설명하기가 어렵다.
흔히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을 만고불변의 진리인 것처럼 이야기되지만, 보이지 않는 손을 움직일 수 있는 또다른 요인도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마르크스가 ‘정치’와 ‘경제’를 분리하여 파악하지 않고, ‘정치경제학’이라는 상호연관되는 체계 속에서 분석한 것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얻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점에서 저자들이 선택한 사회적, 정치적 설명은 지금이야 그리 특별할 것이 없어 보인다 해도, 당시로서는 그야말로 ‘이단적인’ 설명이었을 것이다.
경제학은 상대적으로 명료하다.
누구나 객관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숫자로 현상을 설명하고 대안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때때로 다소 명료하지는 않아도 사회학적이나 정치학적인 설명이 현상에 대한 보다 깊은 통찰을 제시한다.
이 책의 강점이자 놀라운 점은 ‘경제입문서’를 표방하면서도
마치 잔잔한 수면 아래의 역동적인 흐름을 읽어내는 것처럼,
경제학의 숫자와 이론 아래에 감추어져 있는 정치적, 사회적 결정의 역동성을 정확히 지적하고 있다는 점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 책의 또 한가지 재미있는 점은,
저자들의 기본 입장은 시장주의자 또는 지금의 신자유주의자들의 입장을 상당히 비판하고,
경제의 원활한 흐름에 있어서 국가의 개입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으로 읽힘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또는 미래의 위기 상황에 대한 최선의 해결책으로 ‘자본주의의 변혁성’을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마르크스도 [공산당 선언]에서 언급했듯이, 인류사에서 자본주의는 혁신적인 경제체제였고, 이로 인해 이전의 봉건적인 생산관계는 종식되었다.
자본주의의 변혁성은 두 가지 점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하나는 이윤을 향해 확장하고자 하는 확장성이고, 다른 하나는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한 자율 교정성이다.
자본주의가 위기상황을 타개하여 이윤을 계속 창출하고자 노력하고, 그 과정에서 정부의 개입을 비롯한 방법을 동원하여 문제를 교정하고자 부단히 노력하는 한,
결국 인류는 자본주의 안에서 생존의 해답을 찾게 되리라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확장성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위험성이 있다는 생각이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자본의 확장과 축적이 다소 비정상적인 방법을 통해 이루어져왔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경제위기가 심화되면서 생활의 어려움은 가중되어 가고, 학자들에 따라서는 L자형의 장기불황을 경고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어쩌면 우리 사회에서는 자본의 확장성에 기대하기 보다는 이를 적절히 규제할 수 있는 정부와 시민사회의 개입이 더 필요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