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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츠제럴드 단편선 2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99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한은경 옮김 / 민음사 / 2009년 1월
평점 :

1920년대는 그야말로 미국에게는 황금기였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세계역사의 주도권은 직접적인 전쟁의 피해를 입지 않은 미국에 돌아오게 되었고, 이것은 곧 세계의 부(富)를 좌지우지하는 지위로까지 이어졌다.
러시아 혁명이 성공하여 사회주의 국가 소련이 들어섰다고는 하나 볼세비키들은 아직 내부의 반혁명 세력과 투쟁하느라 미국과 체제경쟁을 벌일 힘도 없었다. 곧 외부의 위협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던 시대였다.
전쟁을 거치면서 발달한 산업은 연일 풍족한 물자를 내놓았고, 이 물자들은 전쟁 이후 재건에 힘쓰던 유럽에 지원되어, ‘완전 공급, 완전 수요’의 선순환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런 안정은 당연히 풍부한 물자와 엄청난 부의 축적이란 결과로 나타났다.
피츠제럴드의 작품은 일차적으로 이런 시대 속을 살다간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따라서 [위대한 개츠비] 및 그의 단편 소설들 속에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들은 바로 그 시기의 특수성을 구현하고 있다.
그의 작품에는 거의 예외없이 성공하여 엄청난 부를 축적한 남성이 등장하고, 아름다면서도 당돌한, 때론 철이 없을 정도로 자유분방하면서도 소비욕이 강한 여성이 등장한다.
이들은 부유했고, 능력이 넘쳤으며, 잘 생기고,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다.
이들은 유럽을 모방한 것이 분명한 미국식 ‘사교계’를 형성하였고, 무엇이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충만하였다.
이들에게 ‘리츠 호텔보다 큰 다이아몬드’는 상상에만 있는 것이 아닌 현실이었고,
사랑을 얻기 위하여 ‘해적’이 된 것처럼 자신을 꾸며도 재기발랄하다는 평은 들을지언정, ‘철없다’라는 말은 듣지 않는다.
몇 십년을 아프리카-유럽을 돌아다니며 살아도 어느 한 구석 인생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걱정했다는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
그런데 피츠제럴드가 말하고자 한 바는 여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란 점이 중요하다.
그리고 피츠제럴드가 특정한 시대의 작가를 뛰어넘어 현재까지도 높은 평가를 받는 ‘보편성’이 바로 여기서 출발하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90여년 전의 작가가 창조한 이야기가 현재에도 널리 회자되고 끊임없이 읽히기 위해서는 독자들이 가지는 보편성에 호소하는 무엇인가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피츠제럴드는 일면 화려한 물질적 성공을 보여주면서, 어느 순간엔가 세속적 성공으로 얻지 못할 것들을 교직시켜 성공 이면의 허무함을 독자들 가슴에 새겨 넣는다.
외양의 젊음과 아름다움이 내면의 아름다움으로 승화되어 조화되지 못할 때 그 젊음과 아름다움은 하룻밤 피고 지는 꽃처럼 얼마나 빨리 사그라들어 버리는가를 보여준다.
세상의 재산과 성공은 얻었지만 그토록 원하던 데이지의 사랑을 얻지 못하고 배신만 당한 ‘위대한’ 개츠비가 그러했고(위대한 개츠비),
시간까지도 거슬러 영원한 젊음을 누릴 것과 같았던 벤저민 버튼도 내면의 노화와 죽음까지 막아내지는 못했다(벤저민 버튼의 기이한 사건).
살인을 저지르며까지 지키고자 했던 리츠호텔보다 거대한 다이아몬드와 재산은 오히려 파멸의 원인이 되었으며(리츠 호텔만한 다이아몬드),
수십년간 유럽에 거주할만큼 부유했으나, 그 낭비적인 삶이 스스로의 건강과 생명까지도 갉아먹는 일종의 ‘도플갱어’였음은 심신이 지치고 병든 다음에야 깨닫는다(해외여행).
언뜻언뜻 보이는 이 시대의 ‘성적인 타락’ 역시 화려한 밤거리의 뒷골목과도 같은 지저분함을 보여준다(집으로의 짧은 여행, 해외여행 등).
미국의 1920년대 황금기는 바로 직후인 1930년 세계대공황으로 이어진다.
풍요로 쌓아올린 돈은 그 가치가 떨어지면서 휴지조각으로 변해 버렸고, 수많은 사람들이 한 끼 먹을 빵을 구하기 위해 거리를 헤매야 했다.
유럽을 모방하여 만든 미국식 사교계는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거품처럼 꺼진 황금시대는 그들이 경험한 첫 번째 전쟁보다 더욱 비참한 제2차 세계대전을 배태한 하나의 원인이 되었다.
우연이었을까. 피츠제럴드 개인 역시 1920년대의 전성기를 보내고 1930년 아내인 젤다가 신경쇠약으로 처음 입원하면서 고난의 인생을 시작한다.
물질적 성공에 대한 기대가 어느 때보다 컸던 시대. 그 물질로 세상의 어떤 것도 얻을 수 있으리라던 자신감이 충만했던 시대.
피츠제럴드는 생명력과 정력이 넘치던 그 시대가 바로 뒤이어 찾아오는 몰락과 결핍의 전주곡이었음을 그의 소설을 통해서, 그리고 그의 인생을 통해서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어쩌면 물질적인 풍족함 끝에 경제위기로 떨어진 작금의 모습도 피츠제럴드의 작품과 인생에서 이미 선행되었던 것은 아닐까. 그런 시기는 역사에서 계속 반복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