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도의 악몽 - 소설보다 무서운 지구온난화와 환경 대재앙 시나리오
마크 라이너스 지음, 이한중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이제 안전한 곳은 어디에도 없는 것 같다 (p.75)


나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검은색 산을 배경으로 하여 건물은 지붕 부분만 남겨놓고 모두 물에 잠겨 있다.
한쪽에서는 억수같은 비가 내리는 가운데 높은 파도의 바닷물이 도시를 덮쳤다.
이 책, [6도의 악몽]은 그야말로 악몽과 같은 표지로 먼저 눈길을 끈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내내 인류가 혹시 천천히 데워져 가는 물 속의 개구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처한 환경의 변화가 목숨을 위협하는 데에도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고 현실에 안주하다가 결국에는 뜨거운 물 속에서 죽음을 당하는 개구리의 이야기처럼,
인류도 역시 서서히 종말을 향해 가는 환경에 너무도 둔감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 말이다.

한 30여년 전, 그러니까 1980년대 초반기에 ‘국딩’이었던 사람들은
아마도 지금의 날씨가 그 때와 무척이나 다르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나는 아직도 그 시절 겨울이면 한강물 위로 얼음을 타고 강 중간까지 가봤던 아찔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당시에만 해도 얼어 붙은 한강 위에서는 동그란 구멍을 뚫고 물고기를 잡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제 한강에 살얼음만 얼어도 예년보다 며칠 늦게 얼었느니 하면서 뉴스까지 장식하는 기사거리가 되었다.

난방시설이 발달하여 겨울이 더 이상 춥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반론할지 모르겠다.
좋다. 하지만, 분명히 겨울철 서울에 내리는 눈의 빈도나 양은 줄어들었다.
요즘엔 언론매체마다 겨울 가뭄이 극심하다는 보도를 본다.
저수지가 바닥을 드러내고, 겨울 농작물이 말라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어릴 때만 해도 보리는 쌓인 눈 아래에서 겨울을 보낸다고 알았다. 눈이 소복히 덮힌 들판이 원래 모습인 것이다.
사실 겨울 가뭄이란 것도 10여년 전부터 이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지 않은가.

우리나라는 UN이 정한 ‘물부족 국가’란다. 여름이면 그렇게 비가 많이 오는데도.. 왜?
<장마→무더위, 가끔 태풍>이라는 전통적으로 익숙했던 여름 날씨에 비해
요즘의 여름은 ‘국지성 집중 호우’라는 다소 생소한 원인으로 물난리를 매년 겪는다.
이렇게 일년 강수량의 대부분을 여름 짧은 시기에 쏟아내고 나면 다른 때는 전체적으로 가물다.
여름에는 많은 수량을 홍수조절을 위해 내보내야 하지만, 겨울에는 아무리 물을 모아놓으려 해도 점점 수량은 줄어든다.

이런 날씨의 변화는 우리나라에만 적용되는 현상이 아니다.
이제 TV만 켜면 지구촌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기상이변과 자연재해 소식이 빠지는 날이 별로 없을 지경이다.
인도네시아를 덮쳤던 쓰나미, 허리케인 카타리나로 인한 미국 남동부의 파괴,
갈수록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사하라 사막과 고비 사막을 비롯한 사막 지대,
폭염으로 수많은 노인들이 죽음을 맞았던 프랑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가뭄과 홍수, 폭설과 폭염,
호주, 캘리포니아 등지에서 자주 발생하고, 또 한 번 발생하면 잘 꺼지지 않는 산불,

마크 라이너스의 [6도의 악몽(six degrees)]은 이런 기상이변들이 갈수록 그 정도가 심각해지고 있는 ‘지구온난화’에서 상당 부분 기인하고 있으며,
그 온난화 정도가 심해짐에 따라 자연계와 우리의 생활, 인류의 생존에 어떤 변화가 있을 것인지를 그야말로 악몽처럼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다.

지구의 평균기온이 1도 상승하면,
대륙의 서부에는 가뭄이 닥치지만, 동부와 남부는 홍수가 빈번하게 일어난다.
대륙 중심의 초지들에서는 사막화가 진행되고,
킬리만자로와 알프스의 만년설은 녹아내려 산사태는 물론이고, 인근 지역의 가뭄을 초래한다.

지구의 평균기온이 2도 상승하면,
가뭄과 홍수는 그 정도가 심해지고, 또한 더욱 빈번하게 발생한다.
과거 온대지방에는 여름마다 열파가 닥쳐서 노인들의 사망률이 증가하고,
과도한 이산화탄소는 바닷물을 산성으로 변화시켜 바다속의 생태계를 파괴한다.

지구의 평균기온이 3도 상승하면,
아마존을 비롯한 열대 우림은 파괴당하고, 기상이변은 이제 더 이상 ‘이변’이 아닐 정도로 일상적이 된다.
이 때부터 문제는 온난화의 속도가 더욱 빨라진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제 사람들은 굶어죽지 않기 위한 대이동을 시작한다.

지구의 평균기온이 4도 상승하면,
남극의 빙하는 완전히 녹아 내리고, 세계의 해안선 모양은 완전히 달라진다.
가뭄, 홍수, 열파로 인해 생태계는 파괴된다.

지구의 평균기온이 5도 상승하면,
해안도시들은 모두 바다 밑으로 가라앉고 내륙지방까지 바닷물이 들어온다.
국제무역 시스템은 붕괴되고 공황이 일어난다.
재해를 피해 이동하는 사람들은 많아지나, 거주가능지역은 한정되어 있다.
결국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시작된다.
이제 바다 속의 메틴하이드레이트라는 메탄가스 함유물질이 분출되고, 이로 인한 지진해일(쓰나미)이 전세계를 덮친다.

지구의 평균기온이 6도 상승하면,
이제 인류를 비롯한 모든 생물이 멸종의 위기를 맞는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지구의 온도는 그렇게 쉽게 오르지 않을 것이라고.. 지구의 평균기온이 1도 오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느냐고.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논리에는 간과하고 있는 것이 두 가지 있다고 생각하는데,
우선 지구온난화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산술급수적으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저자도 온난화의 되먹임(feedback)을 지적했지만,
온난화가 일정하게 진행되어 어느 임계점을 넘으면 그 때부터 온도가 올라가는 속도는 기하급수적이다.
그리고 그로 인한 피해도 기하급수적이다.
또 한가지 문제는 이런 논리가 철저하게 인간중심적인 오만함의 논리라는 점이다.
1도 오르면 인간은 어떻게든 살아남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동식물들에게는 이 1도가 그야말로 생과 사를 결정짓는 차이가 되며,
"인간 때문에 지구 자연계의 생물종들은 자연스러운 멸종률보다 이미 수백 수천 배나 빠르게 멸종하고 있다"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지구온난화의 문제가 중요하긴 하나 더 심각하고 더 시급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냐고.
하지만, 빈곤이나 기아의 문제와 지구온난화의 문제를 선후차를 둔 것으로 파악하는 방식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
뒤집어 말하면, 지구온난화의 문제에만 매달리면 빈곤이나 기아 문제는 해결 못한다는 것인가?
어떤 책에서는 <온난화로 인해 매년 15마리의 북극곰이 희생되지만 인간의 포획으로는 매년 49마리가 사라진다. 그러니 온난화보다 더 관심을 두어야 할 것은 따로 있다>라는 논리를 폈다.
하지만 인간의 포획과 온난화를 모두 적절히 관리하면 49마리가 아니라 64마리를 살릴 수 있다는 것은 왜 간과하는지.
또 <해수면이 올라가는 건 바다의 얼음이 녹기 때문이 아니다. 얼음이 녹아도 물높이는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온난화로 인한 위기는 과장되어 있다>라는 논리도 있다.
그러나 거대한 빙하라는 지구의 온도조절장치가 사라질 경우 초래될 수 있는 해수면 상승 효과는 단순히 물 위의 얼음이 녹는 수준이 아니다.
얼음이 녹아 생기는 수증기는 반드시 어디론가 되돌아 간다.
뿐만 아니라 빙하가 품고 있는 탄소는 그 빙하가 녹았을 때 대기중으로 나와 더 심각한 온난화의 촉진제가 된다.

나는 저자가 처음에 이야기한 것과 마찬가지로 이 책에서 예측한 것들이 실현되는 일이 없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하지만, 인류가 지금까지 쌓아올린 생활을 위한 최소한의 에너지 소비는 필요할 것이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온난화 역시 피할 수 없는 현실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조금이라도 적정한 수준에서 온난화를 조절하고자 하는 실천이다.
그리고 그 실천은 개인차원 뿐만 아니라 국제기구나 각 국의 정부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지구에 대해, 자연에 대해 인간이 가진 오만함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인간이란 존재는... 어쩌면 스스로의 손으로 종의 멸망을 가져오는 첫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
또한 ‘수백만 년에 걸쳐 이 지구상에서 진화해온 생물 종들이 인간의 한 세대라는 시공간 속에서 영원히 파멸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어쩌면 가장 빠를 때일 수 있다.
저자는 탄소배출의 차등화를 주장하고 있으나, 앞으로 탄소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더 실효성있는 대책이 추진되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자의 성실성과 대중적 친절함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저자는 단순히 ‘지구가 따뜻해지면 이런이런 일이 일어나겠지...’하는 상상력에
화려한 필력을 덧붙여서 과장하여 책을 쓰지 않았다.
서론에도 밝혔듯이 저자인 마크 라이너스는 거의 매일 같이 노트북 컴퓨터를 들고 옥스퍼드 대학 레드클리프 과학도서관으로 향한다.
거기서 그는 기상학 관련 전문 저널을 뒤져서 지구의 온도와 기후변화 사이의 상관성을 분석․예측한 전문잡지들을 일일이 찾아냈다.
그리고 이 학술적 정보를 <지구기온 1도 상승에 따른 단계적 변화>라는 누구나 알기 쉬운 방법으로 재구성하여 사례들을 들었다.
이로 인해 [6도의 악몽]은 과학적 객관성과 냉정함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무시무시한 내용의 SF같은 책으로 탄생한 것이다.

저자의 이런 성실성이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고,
더 물이 뜨거워지기 전에 위기를 깨닫고, 박차고 나올 수 있도록 개구리를 깨워주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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