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는 집밖에 나가지를 않았다. 금요일 공부를 마치고 나서는 시라노연애조작단을 봐주면서, 참 저런 우연앞에 쉽게 운명을 끼워맞추려는 노력이 가여우면서도 너무나 공감이 갔으며, 어쨌거나 사랑은 하고 볼일인게구나 싶었다.
토요일은 한껏 게으름을 피웠고, 그러다가 너무 방이 지저분하다는 생각이 들어 방의 책장을 모조리 정리했다. 서가 한켠엔 문학, 한켠엔 인문, 한켠엔 만화책. 역시나 읽은 책보다는 안 읽은 책이 훨씬 많았으며, 굿바이누나가 저번에 얘기한 책등으로 책 읽은척하기는 나에게 정확하게 맞아떨아지는 말임을 실감했다.
다행히 정리는 끝났고, 어차피 집밖에 나갈 생각이 없는 나로서는 열심히 만화책부터 읽어대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고 나니 일요일은 이미 지나 월요일이 되었고, 이제 눈을 감았다 뜨면 씻지도 않은 이 누덕누덕+반질반질+풍기문란형 옷차림새에서 참 귀찮은 정장차림으로 집을 나서야 한다는 사실을 떠올렸고, 간만에 쓰는 이 페이퍼가 이런 이유로 여기서 끊기면 안되겠다는 생각 + 이러다 못쓰면 또 안쓰겠지 + 써도 항상 이모냥 이꼴. 이라는 생각이 잡스럽게 섞여 있구나 라는 생각마저 하다보니 세상에, 한문단을 한문장으로 채울 셈이냐 너! 하는 마음에 마침표를 지금 막 찍으려는 마음이 들어 이제 찍으려 한다. 휴, 겨우 찍었다.
내가 살던 용산. 을 막 읽었다. 읽고나면 가끔 눈이 뜨거워지는데, 오늘은 눈이 뜨거워지기 싫었다. 나는 한게 아무것도 없는데, 이 책을 읽고 눈이 뜨거워지는 건 무언가, 자격이 필요할 거라는, 그 자격이 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그 자격이 주어지지 않았을 거라는 부끄러움, 아니 부끄러움이라는 단어도 어울리지 않는 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고 윤용현님의 말이 깊이 울렸다.
'사람이 당하고 나면 생각이 달라지고, 생각이 달라지면 행동이 달라진다.'
물론, 나는 용산과 큰 관계는 없다. 굳이 용산과의 관계를 따지자면, 금요일마다 용산의 원효면옥에서 스터디를 빙자한 공부를 조금 하고, 매일은 아니지만 퇴근할 때 버스를 타면 원효대교를 건너 집으로 향하며 용산구청과 참 여전한 용산의 풍경을 보게 된다. 뭐 좀 더 따지면 용산에서 컴퓨터를 몇번 구입했고, 인턴도 좀 했다는 정도랄까.
어쨌거나 참 오래되고, 절대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용산도 이젠 점차 변해간다. 여의도에서 집에 퇴근하는 길 오른편에 보이던 주상복합아파트는 이미 입주한 상가들의 간판이 반짝인다. 물론 그곳은 4구역이 아니다. 다만 그 주상복합아파트를 가기 한 블럭 전, 그러니 이름은 모르지만 도로를 가로지른 다리를 건너기 전, 항상 전철연이라는 문구와 자신의 사정을 호소하는 나무판의 글씨들, 그리고 언제나 그런 자리에는 항상 있어야 할 것 같이 각인된 승합차 한대가 서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서는 그를 비웃기라도 하듯 주상복합은 올라가고 있었고, 나는 그 기묘한 대치를 항상 신기하게 바라보며 버스를 타고 지나갔다. 전철연은 생소한 단어였지만, 언론을 통해서가 아니라 생활(출퇴근)에서 만난 그 단어는 언론과 방송의 기기묘묘한 보도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을 그렇게 편향적으로 만들지는 않았다. 그렇다, 내가 용산에 대해 가진 생각은 딱 이정도였다.
물론 조금 더 보태자면, 나도 공범에 가깝다. 코레일이 용산을 업무복합도시 비스무리 한 것으로 만든다고 할 때, 아, 용산에 이사를 갔어야 하는건데. 라는 생각을 하며 괜히 안타까워 했었으니.이 빌어먹을 꼼수는 나이를 먹을수록 교묘해져 가는 게 참 싫다.
용산을 사실 읽을 생각은 없었지만, 그래도 용산까지 보게 된 데에는 용산과는 조금 다른 설움과 애환이 소소한 행복으로 얇지만 따듯하게 차곡차곡 덮이는 만화인 자학의 시 덕분이었다. 게다가 덤으로 책등으로 모든 걸 추측하는 못된 버릇으로 끝까지 오해했던 사가판 조류도감도 볼 수 있었고.
빈둥대고 싶었음에도, 끝까지 뭐라도 보게 만들었던 데에는 자학의 시가 큰 역할을 했다. 매번 넘어가는 테이블과 매번 엎질러지는 음식물들에도 그녀가 꿋꿋했던 데에는, 그녀에게는 분명 확실한 것이 있었기 때문이고. 그 '때문'의 주인공인 이사오는 비록 말썽+폭력+빚쟁이+경마광+도박중독자 였음에도 절대, 떠나지 않는다는 믿음만큼은 확실히 그녀에게 주고있었기에 그런 듯 싶었다. 항상. 의심외에는 믿을 수 있는 것이 없었던 그녀에게 이사오는 다른 것은 몰라도 믿음. 그 자체만은 되어 주었으니, 그녀는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살아갈 이유가 충분한, 아니 충분해진 것이다.
사실 물수건을 배달하면서도 멋들어지고 간지나게 정장을 입는 남자니까, 이미 자격은 충분하지.
어쨌거나 이러니, 모리타의 이 말이 참, 무게감있게, 그러면서도 흐뭇하게 다가오는 게다.
'행복이든 불행이든 이제 상관없다. 양쪽 모두 가치는 같다. 인생에는 분명히 의미가 있다.'
,는 참 진실된 말.아, 내가 말하기에는 아직도 멀기도 먼 말.
그리고 불편한 경제학. 처음엔 나는 위기의 경제학? 인가하고 리브로 매장을 몇 바퀴 돌다 에라 없나 보네 하고 나왔는데, 출간일 순으로 정리를 하고 찾고 찾다보니 겨우 나왔다.(사실 생각해보니 리브로에도 없었으니 이러나저러나 무식하면 항상 몸이 고생) 개인적으로 저자인 세일러(세일러 문이 아니라 가명)는 잘 모르는 사람이고 글로는 처음접하지만, 적어도 제목만큼 보기 불편한 책은 아니겠지 라는 생각 더하기 생각보다는 두꺼운 경제학 책보다는 이해가 잘 될 것 같다는 마음으로 골랐는데, 역시나 책은 괜찮은 편이다. 적어도 누군가가 스스로 키워온 경제시각을 진솔하게 풀어내었구나, 하는 생각과 적어도 나같이 무지몽매한 자들을 이해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랄까. 1/4밖에는 보지 못했어도, 경제에 워낙 무지한 나에게는 은근 도움이 된다.
게다가, 내가 4년전에 골라놓고 못본 책을, 은근히 볼만한 책이니 보라는 압박도 준다.
뭔가 제목은 값싸보이지만, 결국 안 읽었던 이유는 제목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무식덕이었음을 일깨워준. 내일의 금맥. (그래서 금맥이 뭔지는 과연 알 수 있을런지 항상 의심 산지 4년되었구나ㅠ)
어쨌거나, 우리 어머니와 동생을 책좀 그만 사라고 하시고,
나는 여전히 책등으로 책을 읽으며 살고 있음을 제대로 깨달은 일, 아니 월요일이라니,
벌써 한주의 시작이 믿기질 않고, 왜 올해 개천절은 일요일인지, 어서 대체휴무제가 시행되는 게 옳다는 생각만 잔뜩드는, 그런 밤이니, 휴, 한량의 생활은 쉽지가 않구나. 으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