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의 기억

줄리언 반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8월


줄리언 반스의 책을 연이어 네 권 읽었다. "플로베르의 앵무새",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시대의 소음", "연애의 기억"...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에 대해서는 개인적 소감이지만 내용상의 미진함이(개연성 부족, 억지 꿰맞추기식의 전개와 논리 등) 맨부커상 수상이라는 타이틀을 무색하게 만든다고 평하고 싶다.
 하지만 나머지 세 작품 전부에 대해서는 작품 각각마다 개성이 뚜렷하고 내용과 주제가 확연히 달라 작가의 넓고 깊은 세계가 드러나고 만다. 방대한 경험과 철학과 지식을 머리와 가슴에 한치의 오차도 없이 지도화한 지성인이라 할 수 있겠다. 반스의 책은 장마다 밑줄그은  문장들이 너무나 많아서 다시 읽어보지 않고는 어디가 가장 좋았다는 말도 하기 힘들 정도이다. 밑줄을 긋고 그 문장들을 음미해보느라 독서시간이 더 걸렸다. 많은 걸  배우고 생각하게 한 작품들이었다. 하지만 그 내용과 사유가 과연 내 머리속에 자리잡았을까 또 드는 의문... 어쩌겠는가. 읽는 내내 그 사유를 따라간  것만으로, 그 소중한 추억으로 만족해야지. 아니다. 시간이 날 때 또 읽으면 된다. 그럼 내 머리나 가슴 어딘가에 몇 문장쯤은 남겨지겠지...

원 제목을 해석하면 이 책은 "단 하나의 이야기"쯤이 될 것이다. 거기에 거추장스러울 정도의 애정을 담아 좀 더 직역하면 "오직 하나의 이야기"라고 이름붙일 수도 있겠다. 비슷하지만 나로선 '오직'이 붙으면 더 이 소설에 적합하다고 여겨진다. 화자의 긴 인생에서 볼 때, 더욱 그렇다. 그는 오십 년 전의 일을 기억하고 반추하면서 나래이션화하고 있다. 
열아홉 살 나이에 서른살이나 많은 나이의 유부녀를 만나는 기억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러브스토리치고 서술 방식이 녹록치만은 않다. 반스 특유의 서사 위주의 서술보다는 기억에 입각해 장면장면이 모자이크처럼 펼쳐진다. 그리고 늙은 화자의 회한어린 사유는 사랑의 보편적 감성과 감정을 의지하지만 한편으론 철학적이고 개성적인 정서가 계속 깔리고 덧씌운다. 

폴은 대학 1년을 보내고 방학을 맞아 어머니의 권유로 테니스 클럽에 가입하게 된다. 거기서 그는 '추첨식 혼합복식' 대회를 위해 제비로 짝을 정하는데, 서른살 더 나이많은 유부녀인 수전 매클라우드와 짝이 된다. 그녀는 상당히 테니스를 잘 치는 여자다. 그녀는  곧 그의 코치가 되고  함께 클럽을 나와 그녀의 집으로 놀러가는 짝꿍이 된다. 
그는 곧 그녀의 언행에 매료되는데, 그녀는 누구보다 어떤 생동감을 가진 여자이다. 보통의 주부들과 다른, 그녀만의 독특하고 충분한 매력이 돋보인다. 그녀는 폴에게 자신은(자신들은) "다 닳은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누구나 그렇지 않은가, 그렇게 말할 때, 그 말하는 사람은 그런 사람들 속에 속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기(못하기) 때문에 그런 말을 제 삼자처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녀의 성격이 어쩌면 평범한 부르주아 주부로서의 일상을 방해할 수도 있다는 전제를 독자는 미리 엿볼 수 있다. 

폴은 서서히 그 집의 식객이 되고 둘은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폴과 수전은 2년(정확히는 1년 후쯤인지 잘 모르겠다) 후 도주자금을 챙겨 매클라우드 집을 떠나 헨리 로드에 허름한 집을 사고 그곳에서 동거하게 된다. 폴은 그녀와 살기 위해서는 견실한 직장이 필요하다고 여기고 법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한다. 그는 둘의 사랑을 한 번도 의심하지 않는다.
러나 수전에게는 남편인 매클라우드만이 아니라 폴보다 나이 많은 두 딸이 있다. 가끔 그녀는 매클라우드의 집을 다녀오고 어느 때인가부터 알콜중독자가 된다.그녀의 중독 증세는 점점 깊어지는데 폴은 여러 방법으로 그녀를 구하려 애쓴다. 어느 것도 그녀의 중독증세를 멈추지 못한다. 그는 조금씩 무뎌지려하지만 책임을 다하려 기를 쓴다. 그리고 그에게 여자친구가 생긴다. 새 여자친구는 수전 때문에 떠나간다. 그는 안타까워하지 않는다. 그에게 또 여자친구가 생긴다. 이번에는 사무실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이다. 그는 수전을 인정하고 수전을 위해 그들이 사는 집을 방문하기도 한다. 하지만 새로운 여자친구이며 동료는 수전을 떠나지 못하는 그를 언제까지고 기다릴 수 없다. 그녀도 폴을 떠난다. 그는 괴로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생활은 점점 악화일로를 향해 걷는다. 수전은 폴을 견디지 못한고 폴은 수전을 견디지 못한다. 폴은 헨리 로드의 집을 나와 작은 방을 얻는다. 그러나 사랑은 둘 사이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단지 무뎌지고 날카로워지고 아파지고 해어진다. 

폴은 수전을 만나서 얼마 후부터 서서히 알게 되었다. 매클라우드는 수전에게 폭력을 가한 적이 많았고 그들 부부는 전혀 행복하지 못했다는 것을. 그는 수전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고 구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가 그녀를 구해주려 아무리 노력해도 그녀는 구해질 수 없다. 성장하고 있는 두 딸, 서른 살 어린 남자와의 동거, 남편의 폭력적 성향과 섹스없는 결혼생활이 그녀에게 각인시킨 아픔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절연될 수 없는 어떤 사회적 조건들, 그녀의 활기차고 개방적인 성향. 그녀는 되돌릴 수 없는 지경에 다다른다.

그는 그녀를 구할 수 없음을 자각한다. 그리고 자신도 구해야 한다. 그는 외국으로 자원해서 일을 나간다. 수전의 딸에게 그녀를 넘겨준다. 이제 수전은 누군가의 보호를 받지 않으면 안되는 환자가 되어 있다. 
그는 안정적인 사회인이 되었다. 그는 적당한 관계를 하고 적당한 선에서 헤어지는 남자가 되었다. 여러 여자들이 그의 곁을 스쳐갔지만 그는 어떤 여자와도 진정한 관계를 맺지 않았다. 

어느날, 수전의 딸 마사의 전화가 온다. 어머니를 보러 오라고. 그 곳에서 혹시 그를 본다면 좀 나아질 수도 있을 것 같다고.... 그는 그 곳으로 가기를 무서워한다. 정신병원에 수전이 있다.

그는 이제 노인이 되어간다. 수전의 마지막을 보러 간다. 수전의 이마는 찡그려져 있고, 그녀의 턱은 조금 앞으로 나와있다. 그녀가 자신을 바라보고 느끼고 자신은 그녀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는... 영화같은 장면은 없다. 그녀는 그를 의식하지 못하고, 그는 수전의 한 손을 잡으려다 그만둔다. 그의 머리속에서 아주 잠깐 초록색 테두리를 두른 테니스 원피스를 입은 수전, 텅빈 해변에서 미소를 짓는 그녀 수전,오스틴의 기어를 바꾸다 요란한 소리가 나자 웃음을 터뜨리는 그녀 수전.
하지만 곧 그는 자기도 모르게 차에 기름이 얼마나 남았는지, 주차장을 얼마나 빨리 찾을 수 있는지... 등을 궁금해하고 있다. 그는 일어서서 마지막으로 한 번 수전을 보고, 눈물은 나오지 않는다고.. "나오는 길에 접수대에 들러 가장 가까운 주유소가 어디냐고 물었다. 접수대 남자는 매우 친절했다."

이제는 노인이 된 화자는 자신의 젊은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세월을 반추하는데, 그 중에는 '단 한번 뿐인 이야기'가 누구에게나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친구 에릭에게도 수전의 친구 조운에게도, 수전의 남편 매클라우에게도. 자신의 부모들에게조차도. 단 한 번인 이야기가 있다고...

75쪽 수전이 폴에게 하는 대화체의 문단에 밑줄을 긋고 페이지 옆에 별 스티커를 붙여놓았다. 나중에 어디선가 꼭 필요한 이야기가 될 것 같아서다.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 어쨌든 절대 잊지 마세요, 폴 도련님. 모든 사람에게는 자기만의 사랑 이야기가 있다는 걸. 모든 사람에게. 대실패로 끝났을 수도 있고, 흐지부지되었을 수도 있고, 아예 시작조차 못 했을 수도 있고, 다 마음속에만 있었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진짜에서 멀어지는 건 아니야. 때로는, 그래서 더욱더 진짜가 되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대의 소음
줄리언 반스 지음, 송은주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5월

 

 

 

 

 

 제목이 주는 어지러운 시대가 예견됐지만 이런 내용인 줄은 몰랐다. 반스는 러시아의 20세기 대표적 작곡가인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생애에 대한 다큐식 소설을 썼다. <시대의 소음>은 그러니까 실존했던 인물인 쇼스타코비치가 자신의 복잡하고 내밀한 심리를 독백하는 일기식의 소설이다. 계속되는 그의 나레이션 때문에 전후가 연결되는 서사보다 모자이크식의 장면장면이 진술된다. 독자로서는 도입부터 아무렇게나 나열하는 짧은 파편적 기억들 때문에 의아하고 가독에 어려운 면이 있었다.

 그러나 곧 그가 러시아라는 스탈린 치하의 모든 국민들처럼, 유명 작곡가임에도 그 자신과 주위의 사람들이 언제 죽을지, 어떻게 살아남을지 알 수 없음에 불안과 공포를 견디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 때부터 이 소설은 읽기가 쉬워지고 평범한 내가 위대한 작곡가에게 연민과 안타까움을 느끼고 만다.

 

"쇼스타코비치는 소련의 국가정책을 적어도 겉으로는 반대하지 않고 수용하는 모습을 보였고, 나아가 이를 외부에 선전하고 홍보하는 모습까지 보였기 때문에 체제의 요구에 순응한 예술가, 혹은 기회주의자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음악의 복잡성과 난해성이 그의 비판적 성향을 감추기 위한 것이었으며, 그가 엄혹한 체제 아래서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보호하고 최소한의 창작 활동의 자유를 보장받기 위해 가면을 썼다는 새로운 평가가 이후 그에 대해 지배적인 해석이 되었다. 이 소설 또한 그러한 관점을 취하면서 자유와 속박, 영광과 치욕, 예술과 정치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예술가의 내면을 소설적으로 복원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옮긴이의 말 중) 

 

전체주의적 사회에서 처하는 예술가의 곤경, 야심찬 오웰식의 알레고리-체제와의 공모에 의문을 던질 때조차 초현실적인 현실과 씨름하려는 두려움에 찬 인간의 노력을 그린 카프카적 우화... 반스의 책은 이러한 논쟁을 내면화하고, 쇼스타코비치 자신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대화로 바꾸어놓는다. 한편으로는 살아남고 가족을 지키려는 그를 옹호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를 비겁한 벌레로 비난한다.--뉴욕타임스

 

콘체르토처럼 우아하게 구성되었다.... 타협의 대가와, 한 인간과 그의 양심이 얼마만큼의 대립과 양보를 견딜 수 있는가를 탐색한, 생각할 거리를 주는 또 하나의 훌륭한 작품--내셔널 퍼블릭 라디오

 

반스는 작곡가의 갈등에 찬 내면 상태를 훌륭하게 포착하고, 이는 결국 "끝없는 공포보다는 죽음이 낫다"는 무시무시한 깨달음에 이른다....<시대의 소음>은 만나기 쉽지 않은 감정적 펀치들로 가득 찼다--타틀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3월

 

 

 

수십 년 전, 젊은 시절의 기억, 그 기억은 얼마나 당시의 사실에 근접해 있을까. 혹시 그 기억의 많은 부분이 구부러지고 색이 바래서, 이젠 펴질 수 없고 잔뜩 덧칠된 기억이라면 살아온 삶은 무엇으로 보증해야 하는가. 가상의 진실이 진짜처럼 생의 마지막에 늙은 노인을 조롱한다면 그의 인생은 헛된 공염불이라고 아니 할 수 없을 것이다. 

 

2011년 맨부커상을 수상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이 소설은 노년에 접어드는 시점에 어쩌다 과거의 사건을 만난 남자 토니가 자신의 왜곡된 기억을 뒤집어야 하는 상황을 그리고 있다. 그는 아내와 이혼하고 혼자 살아가고 있다. 겉보기에 그는 편안하고 적당히 혼자 사는 삶을 그런대로 의미있게 지내는 것 같다. 이혼한 아내 마거릿과는 가끔 만나 식사를 할만큼 격의 없는 사이이다. 그는 친구처럼 아내를 만나고 결혼한 딸 수지와도 잘 지내는 편이다.

어느날, 그에게 대학 때 여자친구였던 베로니카의 어머니 포드 여사의 유증이 전해진다. 500파운드와 대학시절 친구인 에이드리언의 편지가 유증이라고 한다. 40년 전, 베로니카는 토니의 연인이었다가 둘의 결별 이후에는 에이드리언과 사귀게 되었다. 토니가 베로니카와 헤어지고 몇 달 가까이 미국여행을 다녀와보니 그 사이에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나 있었다. 에이드리언이 자살을 했다는 놀라운 사실.... 그러나 토니와 친구들은 에이드리언이 베로니카와 사귀다가 어떤 상황에서 자신의 철학적 사유로 그에 합당한 마지막을 택했을 거라고 생각했고 서서히 잊어갔다.

그러나 이 상황 때문에 40년 만에 베로니카를 만나게 되면서 그의 과거의 기억은 완전히 왜곡되었음이 서서히 드러난다. 그는 파렴치한 젊은 날의 사실을 은폐하고 정반대의 진실로 기억을 덮어버렸던 것이다.

이제 초로에 들어선 그에게 자신의 젊은 날의 불순한 편지는(에이드리언과 베로니카에게 보냈던)  어이없는 행위로밖에 비치지 않는다. 그는 회한을 곱씹고 자신의 편지 때문에 일어난 일 앞에서 사죄와 용서를 원한다. 하지만 자신의 편지는 그 시절 저주의 주문이 되었었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경솔함과 부도덕함이 적나라한 젊은 시절 한 장의 편지. 그의 회한은 통렬하다.

 

 세월이 흐르면서 세상은 점점 변해간다. 남겨진 사람에겐 세월을 되짚을 수 있는 기억이라는 머릿속 공간이 있다. 수십 년 후, 그러나 기억은 오롯이 보존되지 않는다. 좋은 기억도 나쁜 기억도 퇴색되고 변색되고 왜곡되어 있다. 그 때 나는 누구인가. 기억이 완전히 사라져버리면 그 때 나는 삶을 산 것인가, 죽은 것인가. 기억만큼 정체성에 깊이 관여하는 인간의 항목이 있을까. 뒤죽박죽 되더라도 자신을 믿을 수 있게 최선을 다해 바른 삶을 살아야 오히려 기억을 잃어버려도 마음이편할 것 같다. 물론 치매 후에 마음 편하다는 것도 어불성설이지만..... 그래도 잘 살고 볼 일이다. 어느 상황에서도 거짓되지 않게, 누군가에게 불행을 선사하지 않게, 행복하게 살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플로베르의 앵무새
줄리안 반즈 지음, 신재실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줄리언 반스는 처음 읽는 작가이다. 물론 처음이라서 그의 작품이 낯설을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초면인 것과는 전혀 상관 없는 게 그의 <플로베르의 앵무새>이다. 이 작품은 소설 텍스트로써 너무나 모던한, 포스트모던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 한 권의 책은 15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각이 독립적인 장이라고 말해도 좋을 만큼 서로 긴밀하지 않고 아주 느슨하게 간신히 연결되어 있으며, 정통소설과 달리 형식이나 내용면에서 파격적이고 흥미롭다. 문체 또한 직설적이고 시원시원하면서 유머와 조소를 담고 있어 나름 어떤 쾌감을 독자에게 선사하기도 한다. 또 작가의 엄청난 학식과 지식, 그리고 플로베르에 대한 열정적인 탐구심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냉정한 시각을 끝까지 견지하려는 태도에 독자는 매혹당하지 않을 수 없는 것 같다.

 

1장 플로베르의 앵무새

영국의 퇴역 의사 제프리 브레이스웨이트는 아내가 사망하고 나서 플로베르와 관련된 유적 또는 유물을 찾아 프랑스 루앙을 방문한다. 그 곳에서 그는 플로베르가 <순박한 마음>를 쓸 때 책상 위에 두고 형상화한 박제된 앵무새를 박물관과 시립병원에서 안내받는다.

 

2장 연보

보통의 연보가 아니라 색다른 연보가 등장한다. 일테면 질병, 사랑, 심리 등을 연보로 기록한다.

 

3장 발견한 사람이 임자다.

플로베르와 줄리엣 허버트라는 영국인 가정교사와의 편지를 발견했다는 사람과 만났으나 다 태워버렸다는, 웃지도 울 수도 없는 어이없는 일을 당하는 제프리 브레이스웨이트.

 

4장 플로베르의 동물 열전

곰, 낙타, 기타 등등의 동물들이 플로베르를 닮았거나 작품 속 누군가와 연관이 있거나....

 

5장 닮았잖아!

서로 닮은 플로베르와 그의 작품 속 상황들과 현재에도 미치는 이상하고 신기한 아이러니들.

 

6장 에마 보바리의 눈

 에마 보바리의 눈에 대한 플로베르의 묘사에 대해 저차원적인 공격을 하는 비평가에 대해 일일이 반증하는 브레이스웨이트. 예술의 은유와 문학적 비유를 모르는 비평가는 저급한 사람쯤으로 인식되어도 괜찮을 성 싶다.

 

7장 영국 해협을 건너며

플로베르에 대한 여러 기억과 회상. 그러나 그 회상, 그 기억들은 얼마나 정확할까. 플로베르는 진보를 믿지 않았다 등. 많은 단편적인 사실과 추측, 화자의 여러 생각이 서술된다.

 

8장 철도와 플로베르

플로베르는 진보를 믿지 않았고 철도를 반기지 않았다.

 

9장 플로베르 외전

플로베르가 쓰지 못한 그 밖의 작품들. 작가로서 상상하고 집필을 꿈꿨으나 실현되지 못했던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

 

10장 기소

대작가를 오해하고 음해하는 가설들에 대한 화자의 논박

 

11장 루이즈 콜레의  이야기

플로베르의 연인이었던 콜레가 플로베르에게 하는 말들. 생전의 플로베르가 루이즈 콜레를 표현했던 말들은 진실이었나? 그 대상이었던 루이즈의 입장에서 플로베르에게 했을 법한 사연의 말

 

12장 브레이스웨이트의 통념 사전

A부터 Z까지 대작가와 관계된 사람들과 장소 등에 대한 설명

 

13장 순수한 이야기

화자 브레이스웨이트의 가정사. 아내 엘렌은 에마 보바리처럼 외도를 했다. 그러나 화자는 그녀를 사랑했고 추궁하지 않았다. 앨렌은 자살을 택했고, 남편인 화자는 그녀의 호흡보조 장치의 스위치를 눌렀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다. 우리는 행복했다. 이제 나는 그녀가 그립다. 그녀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우리는 불행했다. 이제 나는 그녀가 그립다"(255쪽)

 

14장 시험지

정말 내겐 너무나 재미있고 파격적이었으며 작가의 재기에 기가 막혔다. 플로베르에 관한 문제를 주관식 서술문제로 낸다. 그 지문이 계속 펼쳐진다. 독자들이여 문제를 풀어보시라. 오! 놀라운 상상력과 발상의 괴물스러움이여!

 

15장 그리고 앵무새.......

그리고 2년이 흘렀지만 어느 앵무새가 진짜 플로베르의 앵무새였는지 알 수 없다. 다시 찾은 루앙. 플로베르 동인협회의 최고령 회원은 자연사 박물관으로 가 보라고 한다. 자연사 박물관으로 가보니 박제된 앵무새 세 마리가 먼지를 뒤집어 쓰고 창고에 남아있다. 이들 중의 하나가 그 문제의 플로베르의 앵무새일지도 모른다.......

지나간 진실은 모호하다. 우리는 아무 것도 완벽하게 알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더 이상 무슨 사실을 알 수 있을까. 앵무새 한 마리도 완벽한 그 때 그 앵무새를 가릴 수 없는데, 더 복잡한 다른 진실들은 무엇이었을지 가려내고 드러낼 수 있을까. 왜 아내는 바람을 피웠고 자살을 했을까. 플로베르는 정말 어떤 사람이었을까. 우리는 무얼 얼마나 알고 얼마나 모르고 있을까. 진실은 희뿌연 먼지 속에 떠다니다 흔적없이 사라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묻힌 거인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하윤숙 옮김 / 시공사 / 2015년 9월

 

 

 

 

 환타지 소설. 아서왕 이후의 상황을, 그 중세적 신비와 무지, 사랑이 배경이다.

 하지만 모든 이시구로의 작품들이 그렇듯 이 소설 또한 기억을 주제로 하고 있다. 그리고 기억의 다른 한 쪽, 망각 또한 중요한 모티프이다. 기억과 망각, 기억하면서 공유하고 함께하고, 망각하면서 용서하고 함께 살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책.

 영화라면 몰라도 내겐 환타지 소설이 맞지 않는것 같다. 백 몇 십페이지를 넘기고 그만 책장을 덮었다. 그리고 어제 로쟈샘의 강의를 듣고 그 강의 내용이 너무 좋았기에(늘 항상 훌륭한 강의지만) 기억나는 것 중 일부를 적어두고 싶다.

 

 근대소설의 사랑은 중세 로망스와 완전히 다르다. 중세 로망스가 기사와 Lady(영주의 딸, 또는 부인)와의 완전한 사랑(모든 것을 내어주는, 희생적이고 순결한, 자신의 심장을 꺼내 바치는)을 그리고 있다면 (엑슬은 아내에게 말끝마다 '공주'라고 부른다, 중세적 로망스를 취하고 있다. 기사와 용이 등장하고 안개가 끼어있고 섬으로 부부를 각자 태워주는 뱃사람이 등장한다. 로망스를 도입한 이유는 부부간의 사랑이 그만큼 쉽지 않기에 이시구로가 로망스를 차용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는 샘의 말씀), 근대소설의 사랑은 리얼리즘의 사랑으로 변화된다.

 특히 소설 속 결혼이후의 내용은 불륜, 이혼소설이 될 확률이 농후하다. 하지만 <파묻힌 거인>에서는 중세의 환타지를 통해 노년 부부의 복잡하고 미묘한 사랑을 얘기한다.

 함께 오래사는 부부에게 사랑이란 먼 남들의 이야기에 불과하다. 보통은 그렇다는 뜻이다. 샘은 연애 때는 '열정'으로 함께 하지만 결혼 후에는'열'이 사라지고 '정'만 남는다고 했다. 아주 적확한 표현이다. 모두 씁쓸한 웃음을 웃었다. 이젠 나이가 나이인지라 씁쓸함 속에 어떤 쾌가 섞인 유머로 승화된다. 이 '정'만 남은 관계가 사랑이라는 이름을 얻기는 쉽지 않지만 서로를 끝까지 지켜주고 아끼는 사이로 남으려면 기억의 공유와 더불어 망각이 전제된다.

 또한 기억과 망각은 민족과 역사에서 필요하기도 하고 요구되기도 한다.

 좋은 기억은 기억하고 나쁘고 악한 기억은 망각해야 한다.... 그래야 복수와 전쟁이 덜할 것이고 평화가 존재할 테니까. 그러나 이건 좋은 의미를 가정할 때이고, 잔혹한 기억도 끝까지 기억해야 하는 명제도 분명 존재한다. 정체성이나 진실이 더 중요할 때도 있으니 말이다.

 

책의 말미에서 남편인 엑슬이 말한다. 망각하지 않았다면 그래도 우리가 사랑할 수 있었을까?

요긴한 질문이고 답이었다. 어쩌면 기억은 함께, 망각은 각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