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묻힌 거인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하윤숙 옮김 / 시공사 / 2015년 9월

 

 

 

 

 환타지 소설. 아서왕 이후의 상황을, 그 중세적 신비와 무지, 사랑이 배경이다.

 하지만 모든 이시구로의 작품들이 그렇듯 이 소설 또한 기억을 주제로 하고 있다. 그리고 기억의 다른 한 쪽, 망각 또한 중요한 모티프이다. 기억과 망각, 기억하면서 공유하고 함께하고, 망각하면서 용서하고 함께 살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책.

 영화라면 몰라도 내겐 환타지 소설이 맞지 않는것 같다. 백 몇 십페이지를 넘기고 그만 책장을 덮었다. 그리고 어제 로쟈샘의 강의를 듣고 그 강의 내용이 너무 좋았기에(늘 항상 훌륭한 강의지만) 기억나는 것 중 일부를 적어두고 싶다.

 

 근대소설의 사랑은 중세 로망스와 완전히 다르다. 중세 로망스가 기사와 Lady(영주의 딸, 또는 부인)와의 완전한 사랑(모든 것을 내어주는, 희생적이고 순결한, 자신의 심장을 꺼내 바치는)을 그리고 있다면 (엑슬은 아내에게 말끝마다 '공주'라고 부른다, 중세적 로망스를 취하고 있다. 기사와 용이 등장하고 안개가 끼어있고 섬으로 부부를 각자 태워주는 뱃사람이 등장한다. 로망스를 도입한 이유는 부부간의 사랑이 그만큼 쉽지 않기에 이시구로가 로망스를 차용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는 샘의 말씀), 근대소설의 사랑은 리얼리즘의 사랑으로 변화된다.

 특히 소설 속 결혼이후의 내용은 불륜, 이혼소설이 될 확률이 농후하다. 하지만 <파묻힌 거인>에서는 중세의 환타지를 통해 노년 부부의 복잡하고 미묘한 사랑을 얘기한다.

 함께 오래사는 부부에게 사랑이란 먼 남들의 이야기에 불과하다. 보통은 그렇다는 뜻이다. 샘은 연애 때는 '열정'으로 함께 하지만 결혼 후에는'열'이 사라지고 '정'만 남는다고 했다. 아주 적확한 표현이다. 모두 씁쓸한 웃음을 웃었다. 이젠 나이가 나이인지라 씁쓸함 속에 어떤 쾌가 섞인 유머로 승화된다. 이 '정'만 남은 관계가 사랑이라는 이름을 얻기는 쉽지 않지만 서로를 끝까지 지켜주고 아끼는 사이로 남으려면 기억의 공유와 더불어 망각이 전제된다.

 또한 기억과 망각은 민족과 역사에서 필요하기도 하고 요구되기도 한다.

 좋은 기억은 기억하고 나쁘고 악한 기억은 망각해야 한다.... 그래야 복수와 전쟁이 덜할 것이고 평화가 존재할 테니까. 그러나 이건 좋은 의미를 가정할 때이고, 잔혹한 기억도 끝까지 기억해야 하는 명제도 분명 존재한다. 정체성이나 진실이 더 중요할 때도 있으니 말이다.

 

책의 말미에서 남편인 엑슬이 말한다. 망각하지 않았다면 그래도 우리가 사랑할 수 있었을까?

요긴한 질문이고 답이었다. 어쩌면 기억은 함께, 망각은 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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