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칼>
단편 전체가 알레고리이고 상징이었다. 문장 하나하나가 관념과 사유의 문이었다.
독후감을 쓰다가(거의 다 썼는데) 날려먹었다. 그래서 대강 쓰고 말아야겠다. ㅠㅠ 12시가 넘어버렸네.
김윤식 문학평론가의 심사평
"강철소리 나는 '생각'의 문체에 주목할 것. 생각이란 무엇이뇨. 이 경우 그것은 관념이 아닐 수 없다. 관념으로도 소설질을 할 수 있을까. 있다고 말할 수밖에. 있되, 아주 우뚝 서 있다고. 서구어로 번역될 수 있는 근거도 여기에서 오는 것."(12)
놀라운 반전과 완벽한 충격.
"칼이 없으면 벌써 오래전에 아버지에게 갈 수 없었을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런데도 칼의 도움 없이 가야 했다면 자기는 불안과 절망 때문에 아마 죽었을 거라고, 아직 죽지 않은 것은 칼 때문이라고, 칼은 불안과 절망과 죽음을 이기고 그의 내면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것이지 누군가를 해치고 위협하고 죽이기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라고 그는 말했다. 그러니까 칼은 아버지에게 가는 길을 막는 장애물이 아니라 아버지에게 가는 길이라고. 그런데 아버지는 그걸 거꾸로 알고 있다고."(68)
누구나 어떤 칼 하나를 숨기고, 지니고 다니는 건지도 모른다.
"칼이 없어도 불안하지 않은 사람은 칼을 가지지 않고도 잘 살지만, 칼이 없으면 불안한 사람들은 칼이라도 지녀야 겨우 살 수 있다고. 실제로 그 사람들은 칼을 가지고도 애초에 칼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들보다 잘 살지 못한다고 그는 말했다. 칼을 수집하는 사람들에 대해 선입견을 갖지 말라는 말을 하면서 한 말이었다"(65)
고용인은 커틀러스를 몸에 숨겨지니고 아버지를 찾아간다. 그는 아버지가 어려서부터 자신을 죽이려 했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칼이 없으면 아버지가 자신을 죽일지도 모른다고... 그런데 아버지는 아들의 칼이 너무나 두려워서, 그가 자신을 죽일거라는 피해망상에 어둠 한 점도 견디지 못하는 노인이 되었다.
이 엄청난 오해와 불신, 그리고 공포와 두려움. 칼이 필요한 아들. 칼이 끔찍한 늙은 아버지. 누구의 잘못으로 시작된 기이한 관계인지, 그래도 그 시원은 아버지의 잘못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들이 어려서부터 아버지가 자신을 죽이려 했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는 걸 보면....
단편, <무슨 일이든, 아무 일도>
한 가정의 아주 오래 전부터의 붕괴. 아버지는 이 붕괴를 전혀 모르고 있다. 그는 전국 각지를 다니며 건물을 짓고 파는 일을 하느라 식구들의 정황을 모른다. 어머니가 죽고 일 년 후 아버지는 새어머니와 결혼했었다. 새어머니는 미용사였는데 아버지를 만나 백평 넘는 미용실을 내고 미용협회 회장이 된다. 그녀는 늘 협회일로 바쁘고 며칠씩 들어오지 않을 때도 있다.
딸은 동생 상규를 돌보고 지켜주고 있다. 상규는 학교를 졸업하기 전부터 문제가 있었다. 새어머니는 자신이 아는 갱생원에 아들을 보냈었다. 상규는 그곳에서 완전히 영혼이 빈 사람처럼 변해 돌아왔다.
어느날 상규는 집이 흔들린다고 말한다. 십자가에 박힌 사람처럼 바닥에 누워서 밥도 먹지 않고 흔들린다고... 자신을 갱생원에 보내달라고 한다.
누나는 한 남자를 만났고 가끔 모텔에 드나들었는데, 어느 날 상규를 의식하지 않고 집에 남자와 들어와 문을 닫고 섹스를 했었다. 상규가 갱생원에 보내달라고 한 건 그 후의 일이었다. 어쩔 수 없이 누나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하지만 아버지는 바쁘다고 얼른 끊으라고 한다. 엄마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기억이 안남).
어린이 대공원의 코끼리들이 우리를 탈출한 날, 누나는 남자친구의 도움으로(그는 상규를 보내는 것에 반색한다) 상규를 갱생원으로 보내준다. 누나는 가끔 상규를 찾아간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 앞으로도 모를 것이다.
누나는 가끔 남자를 집근처 모텔에서 만난다. "그리고 아직은 밥을 잘 먹었다. 세상은 불안한 채로 잘 굴러갔다. 무슨 일이든 일어났지만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도 했다."
단편, <첫날>
여기도 한 가정이 주인공이다. 아버지와 어머니, 아들, 딸이 가족인 건 위 작품들과 같은데, 삼촌 한 사람이 더 있다. 4만 몇천 몇십일인가가 태양의 수명이다. 어제 다섯 번째 태양이 졌고, 오늘 여섯 번째 태양이 뜨는 역사적인 첫날이다.
다섯 식구는 해맞이를 위해 희생제물이 될 염소 한마리를 짐칸에 싣고 밤중에 떠난다. 그러다 가로수를 들이받는 작은 사고가 나고 사고 제공자인 남자와 아버지가 한길에서 다투는 것 같다. 아니다. 전혀 다투지 않고 남자가 뒷좌석에 탄다. 아들인 나는 남자에게 쫓겨나 뒷칸의 양 옆에 앉아 여정을 계속한다.
남자는 도살자. 남자의 네모난 가방엔 수많은 도살에 필요한 기구들이 들어있다. 관능적이고 아름답고 철없는 여동생은 남자에게 가방을 보여달라며 남자에게 교태를 부리지만 아무도 말리지 않는다. 자동차 안에는 어떤 긴장과 압박감이 흐르는데, 남자가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여동생은 그의 칼로 자신의 원피스를 찢고 너덜너덜한 채 목적지에 도착한다.
도살자가 짐승을 단번에 잡아 제물을 삼는다. 수많은 짐승이 도살되어 그 피가 바위에 흐르고 핏물이 흘러내린다. 바다도 보이지 않고(사실은 사막) 하늘은 뗏장구름으로 태양은 떠오르지 않고 있다. 피에 취한 사람들이 난무를 춘다. 아무나 붙들고 몸을 비비고 노래를 부른다.
아름다운 여자가 수많은 사람들에 둘러싸여있다. 그녀는 그의 동생. 그녀의 옷은 사람들에 의해 찢겨지고 나체가 되어 사람들에 의해 공중에 들려져 이리저리 떠다닌다. 마침내 그녀는 짐승들의 피로 붉어진 바위에 뉘여진다.
돌아오는 길. 아버지가 운전을 하고 어머니와 삼촌과 내가 앉아있다. 엄청난 폭우가 내린다. "나는 이러다가 세상이 쓸려나가는 거 아녜요?" 라고 말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사람씩 잠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세 작품 모두 상징성이 뛰어나 읽는 내내 모순투성이인 이 세계와 인간 전체에 대한 성찰을 안할 수 없었다. 작가의 이야기가 처음부터 독자를 작중 "첫날" '도살자'처럼 지배한다. 작품 끝까지 긴장이 유지된다. 두 말이 필요 없는 이승우다. 이 정도의 작가라면 세계적인 작가들에게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고 여겨진다. 이승우 작가가 조금 더 분발해서 노벨상을 받기를(근데 그 상을 못 받는다해도 상관 없지 않을까, 그래도 우리 작가가 한 번쯤 받기를 바라는 이 마음, 어쩔 수 없는...). 정말 좋은 작품들이었다. 작가 중의 작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