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먼 나이트, 정아영, 다른
김연수 산문, 문학동네
며칠 사이에 두 권의 책을 읽었지만 기억나는 게 별로 없다. 사실 많은 부분은 읽지 않아도 될 내용이었다(그간 여러 권의 책에서 비슷한 내용을 많이 읽은 편이다). 하지만 이상하게 글쓰기에 관한 책은 언제나 재미있다. 재미(흥미)는 자신이 관심이 있는 분야라면 장르랑은 상관이 없나보다.
데이먼 나이트의 <단편 소설 쓰기의 모든 것>은 실제로 소설을 쓰는 독자들을 겨냥한 텍스트라 두고두고 자신이 무엇을 헷갈리고 있는지, 어느 지점에서 헤매고 있는지를 알기 위해 한쪽에 꽂아두고 뒤적여 볼만한 책이다. 나는 플롯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 같아 이 책을 구매했는데 그래도 플롯에 대한 확실한 이해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하지만 오히려 플롯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내 나름의 확신은 이번에도 견지된 편이다.
인물과 갈등이 있고 사건이 있다면, 그리고 이야기의 도입과 전개, 절정과(이 전에 위기라는 것도 필요할 때가 있지만) 결말만 제대로 개연성있게 연결된다면 그 자체가 플롯이라는 걸 알 것 같다. 나는 아무래도 미리 플롯을 짜고 분량을 정하고 에피소드들을 하나하나 배치하는 식의 완전한 플롯을 천성상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두 장 쓰다보면 그때부터 희미했던 이야기가 모습을 갖추고 나타나는 식이다. 쓰면서 점점 이야기가 커져가고 의미가 만들어진달까. 이런 작가들이 의외로 있다는 것에 위로를 받은 적이 있었다.
<소설가의 일>은 김연수가 자신의 경험을 거울삼아 아마추어 창작자들에게 작가가 되는 비밀(비결)을 일러준다. 그런데 그런 작가 자신의 노하우를 알려주는 것도 도움이 되지만 그의 평범하면서도 비범하고 유쾌한 지적 수다는 에세이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 문장마다 김연수의 재기가 반짝거리고 탁월한 필력이 독자를 맘대로 끌고 다닌다. 솔직히 창작론적인 면에서는 아는 내용이라 내겐 김연수의 수다스런 이야기들이 훨씬 더 재미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뇌리에 새기고자 밑줄을 그으며 읽은 부분도 있었다. 무엇보다 핍진성의 문제. 왜, 어떻게를 끊임없이 물으면서 이야기를 진전시키라는 것. 그리고 일인칭 소설이라해도 이인칭 인물을 염두에 두고 자기만의 주관에 빠지지 말라는 충고. 작가는 자신 이외의 모든 인물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정말 그럴 수 있다면 소설가는, 완전한 사람이 되든지 아니면 언제나 회의하면서 세상을 꿰뚫어보고 사람 하나하나에 관심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쉽지 않은 일이고 오지랖 넓은 일이다. 한 인간으로 산다는 건 '대충'으로는 어림없는 일이다. 그리고 작가로서 산다는 건 그 이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타인을 이해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거기에 가 닿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이해하려고, 가 닿으려고 노력할 때, 그때 우리의 노력은 우리의 영혼에 새로운 문장을 쓰기 시작할 것이다."(26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