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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마음 - 나를 돌보는 반려 물건 이야기
이다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2월
평점 :
이다희 작가의 [사는 마음]을 읽었다. 부제는 "나를 돌보는 반려 물건 이야기"이다.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에는 당연히 '살다'라는 동사가 활용된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부제를 살펴보니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물건을 산다는 뜻이 담긴 제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본문의 내용을 읽다보니 제목에는 '살다'와 '산다'의 이중적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지금처럼 현대화된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소비에 무관심한 삶을 살기란 불가능하다.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삶을 선택하지 않은 이상, 아니 그렇게 외딴 곳에 살려고 해도 최소한의 생필품은 어디선가 구입을 해야만 한다. 원시 문명은 맛조차 보지 못한 이미 근대화된 세계에 길들여진 몸은 편의를 제공하는 수많은 물건들의 도움을 받아 살아왔기 때문이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듯 어떤 특정한 물건을 사용하다보면 같은 용도를 가진 여러 종류의 물건에 관심을 갖게 되고 더 좋거나 자신에게 맞는 물건을 개별적인 기준에 맞춰 구입하게 된다.
성인이 되기 전 부모님께 받은 용돈을 아끼고 아껴 장바구니에 쟁여두었던 것을 몇 달 만에 사고 나서 소소한 기쁨에 만족해 하던 시기는 미래에 대한 걱정이나 계획이 필요하지 않은 때이다. 하지만 막상 직업을 갖고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소비는 어린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만족감을 가져다주기도 하고 그로 인해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생기기도 한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자의 글에 나온 것처럼 뭔가를 사기 전에 비슷한 고민에 빠지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뭘 사기 전에 자주 고민한다.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딜레마에 놓이는 것이다. 선택지는 두 가지. 1) 당장 죽을지도 모르고 죽으면 돈을 가져갈 수 없으니 돈을 쓴다. 2) 언제까지 살아야 할지 모르니 돈을 쓰지 않고 아낀다. 하지만 일관된 입장에서 모든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둘 사이에서 줄타기를하면서 미래에 대한 준비도 하고 현재도 즐기곤 한다. 뿐만 아니라 선택지는 두 가지에서 그치지 않는다. 3) 오래 살지 모르는 데 돈을 써야 하는 경우도 있다. 삶에 필수적인 물건들, 가령 집 같은 것을 살 때는 거기 오래오래 살지도 모르기 때문에 더 많은 돈을 사들여 더 철저히 준비해야 할 수도 있다.(194-195)"
어떤 물건을 사고 소비하는 것을 즐기는 것을 죄악시하고 속물처럼 여기는 때가 있었다면, 이제는 과감하게 플렉스를 즐기고 타인에게 보란듯이 과시하는 것을 동경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심지어 어떤 셀럽은 돈다발이나 금괴를 가득 고급 스포차카에 채우고 자신을 숭배하라는 듯 물신주의의 팽배를 보여준다. 검소와 절약은 어느덧 꼰대의 잔소리의 영역에 속한 진부한 표현이 되어버린 것 것만 같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 유효기간이 지나버린 윤리적 개념의 잣대를 무작정 들이대기보다는 적정한 소비의 자세를 갖추기 위해 참고할 모델들이 필요한 때이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유아들에게 애착인형이 보편화되어가는 것 같다. 꼭 인형이라고 볼 수는 없고 아끼는 베개일수도 이불일수도 아님 손때와 고유한 냄새가 새겨진 물건을 말한다. 아이들의 정서적 안정을 위해서 도움이 된다고 하고, 잘 보관하기만 한다면 나이가 들어서 과거의 시간을 떠올리며 향수에 젖어 시름을 덜어낼 수 있는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생각해보면 유아기 때에만 어떤 특정한 물건에 애착을 갖는 것이 아니라, 성인이 되어서도 애착을 갖는 물건이 한 두가지 정도는 반드시 있다. 그래서 저자는 부제에 '반려 물건'이라는 표현을 쓴 것이 아닐까 싶다.
오래전 보았던 '신사의 품격'이라는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나온 장동건 배우와 김하늘 배우는 서로가 호감을 갖고 만남을 이어가던 차에 남자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여자를 난감한 상황에 빠지도록 만든다. 여자는 그 상황이 납득이 되면서도 골이 나서 남자에게 소심한 복수를 감행하는데, 바로 그 남자가 아끼는 차에 그윽한 향기가 가득 고이도록 말린 오징어를 널어놓아 바닷가의 부두 앞에 방치해버리는 것이다. 차를 찾으러 간 남자는 자신이 아끼던 차가 소금기 가득한 바닷바람을 밤새 맞도록 방치해 둔 것에도 분노가 치밀지만 설상가상으로 차 문을 열자 구린내로 가득한 차 안에서 비명을 지른다. 고소한 여자는 울그락붉그락한 남자에게 한술 더 약올리기 위해 그렇게 아끼는 차에 혹시 고유한 이름을 붙인 것이 아니냐고 묻고 남자는 입을 삐죽 내밀고 아무말도 하지 못한다. 그 드라마를 볼 때만 해도 여자 주인공이 폭소를 터트리며 어떻게 차에 이름까지 붙이냐며 웃는 것처럼 무생물에 불과한 차에 반려 동물처럼 고유한 이름을 붙인다는 게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나도 생애 첫 차가 생기고(비록 중고차임에도) 이래저래 관심을 쏟다보니 어느덧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이름을 붙이는 만행을 저지르고야 말았다. 시간이 흘러 첫차를 떠나보내고 드디어 진짜 새 차를 구입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 신기하게도 떠나보낸 차를 바로 옆 차선에서 보게 되었다. 아니 이런 우연이 또 있을 수 있을까 싶어 번호판을 몇 번이나 확인하고 신호가 바뀌지 않기를 바라며 나도 모르게 그 차의 이름을 크게 부른 적이 있다.
애정을 담는다는 것은 신기하게도 그 물건이 아무런 생명력이 없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면서도 마치 나의 삶을 도와주는 조력자와 같은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하게 만든다. 우리의 이런 마음을 저자는 과거의 나의 삶에 대한 예의라는 말로 설명해준다.
"아무튼 내가 나의 옛 바이올린이나 오래된 자동차 앞에서 말을 조심하거나 미안한 마음을 가지는 것은 물론 내가 나이가 들어 지나치게 감상적이고 주책맞은 중년이 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결국 나의 추억이 깃든 물건에 대해, 궁긍적으로는 나의 추억에 대해 예의를 차리기 위함이다. 국어사전이 정의하는 예의는 '사회생활이나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존경의 뜻을 표하기 위해서 예로써 나타내는 말투나 몸가짐'이다. 나의 추억은 나의 과거이므로 나는 결국 과거의 나에게 존경을 표하고 있는 것이다.
추억에 매달리는 것이 어떤 면에서 건강하지 않을 수 있는지 나는 안다. 하지만 추억에 대해 적절한 예의를 차리는 것은 나를 아끼고 내가 걸어온 길을 긍정하는 일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그래서 내 추억이 어린 물건을 잘 대접하는 태도, 옛것을 함부로 새것으로 교체하지 않는 태도는 단지 물질이나 사물에 대한 숭배의 태도가 아니라 나를 긍정하는 태도라고 본다.(256)"
앞으로도 수많은 물건을 필요에 따라 구입하고 낡은 것을 버려야 하는 때가 올 것이다. 물건에 의지해 도움을 받아 안위한 삶을 사는 것에 익숙해져 낭비를 일삼으며 그 물건의 원천이 되는 자연에 무관심해지지 않기 위해서 저자의 글이 꼭 필요한 것 같다. 나의 추억과 함께 한 물건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것은 새로 함께 할 물건을 구입할 때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어, 물건을 만드는 이의 정성과 그 물건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과 내 손에 이르도록 해준 수많은 이들이 노동이 함께 했음을 기억하는 것 또한 삶에 있어 중요한 예의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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