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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현수동 - 내가 살고 싶은 동네를 상상하고, 빠져들고, 마침내 사랑한다 ㅣ 아무튼 시리즈 55
장강명 지음 / 위고 / 2023년 1월
평점 :
장강명 작가의 [아무튼, 현수동]을 읽었다. 부제는 “내가 살고 싶은 동네를 상상하고, 빠져들고, 마침내 사랑한다”이다. 아무튼 시리즈 55번째 책이다. 내가 기억하는 첫 번째 집에는 화장실이 없었다. 그래서 늦은 밤에는 어린 나만 작은 플라스틱 대야에 응가를 처리했고, 낮이면 주인집에 있는 퍼세식 화장실의 문을 빼꼼 열어놓고 신나게 노래를 부르며 응가의 대사를 치뤘다고 한다. 나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재래식 화장실이 무서운데 그 어린 나이에도 아닌척 허세를 떨며 노래를 불렀던게 아닌가 싶다. 지금 사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기에 이미 철거되어 다른 모습을 띄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찾으려고 한다면 그 집이 있던 흔적이라도 찾을 수 있을텐데, 한 번도 시도하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전 어쩌면 태어난 도시를 떠나 처음으로 오래 살았던 타국의 도시를 십년 만에 다시 방문하게 되었다. 몇 번이나 그 나라를 방문했음에도 그 도시만큼은 따로 시간을 내서 찾아가야하는 만큼 기회를 얻지 못했다. 십년이 넘었는데도 성인이 된 다음의 기억때문인지, 아니면 낯선 타국에서 지낸 첫 번째 도시여서 그랬는지 그곳의 삶을 마무리하며 나름 정든 장소를 갈무리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기만 하다.
정말 아름다운 곳이다. 어쩌다 손님이 찾아오면 노을이 질 무렵 때를 맞춰 잔잔한 강물이 흐르는 오래된 다리에 데리고 가곤 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여기가 바로 프로포즈에 딱 맞는 핫스폿이라고 마치 이곳에 내 지분이 어느 정도는 있는 양 자랑스럽게 추천하곤 했다. 사실 그렇게 거들먹거리며 허세를 떨었던 이유는 그 다리의 정경이 나에게는 너무나도 아픈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림같은 절경을 품은 그 다리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온전히 감내해내야만 했던 고독의 시간들이 트라우마처럼 남아 있어서 왠지 모르게 그 다리를 건너면 가슴 한 구석이 아파왔다. 밤이 되어 사진을 찍게 되면 주광색 조명과 붉은 벽돌이 자아내는 로맨틱한 분위기에 휩싸여 대충 찍어도 작품 사진처럼 나온다. 그때 그곳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면 타임랩스를 되감는 것처럼 순식간에 그때의 내가 돌출되는 듯 하다. 그래서 이번 방문은 어쩌면 그 트라우마를 치료하기 위한 기회였는지도 모르겠다. 따로 기차표를 사고 숙박을 정해야 했음에도 그곳을 가자는 나의 권유에 친구는 이렇게 답해주었다. “그래, 나도 네가 살았던 곳에 한 번 가보고 싶었어.”라고.
때마침 응근히 기대했던 크리스마스 마켓도 구경하고 배도 채워서 그런지 친구는 피로함을 호소하며 조금 쉬겠다고 했다. 그런 시간을 기다렸던 것인지, 그런 시간이 오지 않았으면 했던 것인지 호텔방에 잠시 누워있다가 용기를 내서 그 다리를 혼자 걸어보기로 했다. 지난날의 내가 매일 산책했던 시간과 비슷한 때에 찬바람을 맞으며 무작정 그때의 그 길을 걸었고 다리에서 강물을 내려다 보았다. 어디선가 그때 자주 마주치던 사람들이 나타나지 않을까 두리번 거리며 지금도 가슴 한 구석이 아려오는지 가만히 손을 대어보았다.
장강명 작가가 가상의 동네로 명명한 현수동에 대한 책을 읽으며 왜 갑자기 그때의 감상이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나와 비슷한 시기를 겪었을지 모를 후배에게 그곳을 다녀왔다고 하니 눈가에 애처로움이 담아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형은 그곳에 가도 아무렇지 않지요. 저는 아직은 그곳을 가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아요.”라고. 누군가에게는 귀한 시간을 내고 비싼 값을 치뤄 아쉬움을 남기고 오는 곳이 누군가에는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을 만큼 상처를 준 곳이라는 아이러니가 새삼 달갑지 않게 다가온다. 어쩌면 그래서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만족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겠지 라는 수용적 자세에 대한 동의와 더불어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각자의 자리를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생각의 오고감이 반복되는 게 삶이 아닐까.
“무언가 장엄한 것, 신비로운 것을 체험하며 살고 싶다. 영성을 알고 싶다. 때로는 계몽시대 이후의 현대인은 근본적으로 이런 소망을 이룰 수 없는 것 아닌가 두렵기도 하다. 그러나 시야가 탁 트인 곳에서 하늘을 가득 채운 구룸이 시시각각 모양을 바꾸다 점점 붉게 물들어가는 모습만 한참 보고 있어도 압도적으로 거대하고 아름다운 불가사의를 얼마간 경험하게 된다. 풍성하게 살고 싶다면, 그런 체험을 정기적으로 꼭 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71)”
“밤섬은 무엇을 상징할까. 자연의 놀라운 복원력? 억눌러야 할 인간의 파괴력? 기술문명과 환경이 유지해야 할 적당한 거리? 20세기 한국에 살았던 약자들의 아픔? 우리가 저지르는 잘못을 후손들이 바로잡아줄지도 모른다는 희망? 우리 역시 아버지들이 저지른 죄의 대가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것을 바로잡으려 노력해야 한다는 책임감? 인간의 이해를 훌쩍 초월한 섭리와 예상치 않은 구원?
밤섬은 그 모든 것의 상징이고, 우리는 자연의 힘을, 우린 안에 있는 파괴적인 욕망과 우리가 소유하게 된 기술을, 인간의 강함을, 인간의 약함을, 사람들의 고통을, 과거를, 현재를, 미래를, 시간이 해내는 일들을, 아이러니와 불가사의를, 복잡하고 연약하고 중요한 연결들을, 세계의 질서와 그에 대한 우리의 무지를 무섭게 여겨야 한다는 게 내 대답이다.(87-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