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를 부탁해 소설x만화 : 보이는 이야기
박서련 지음, 정영롱 만화 / 문학동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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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련, 정영롱 작가의 [제사를 부탁해]를 읽었다. ‘소설*만화 보이는 이야기’ 시리즈 첫 번째 책으로 제사상 코디네이터라는 특이한 직업을 가진 주인공과 그의 뻥쟁이 친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동안 유명해진 소설이 나중에 만화로 재탄생되는 경우는 간혹 본 적이 있어도 이렇게 소설과 만화가 동시에 같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은 처음 접하게 되었다. 뒤에 부록처럼 첨부된 창작일지를 보니 소설과와 만화가와 편집자가 함께 의견과 아이디어를 나누며 새로운 형식의 책이 나오게 된 것이다. 어찌보면 동일한 스토리라인을 따라서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서로가 추구하는 이야기의 전개방식이나 등장인물들의 개성이 통일되기 어려운 장애물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사실 창작의 과정에서 협업은 혼자 하는 것보다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하다. 혼자 작업을 할 때에는 과정에 대한 미더운 마음과 결과물에 대한 의구심이 밀려드는 것을 극복해야 하는 과제가 지속되기는 하지만 본인이 원하는 방향으로 얼마든지 수정이 가능하기에 불필요한 감정적 소모는 덜 할 것 같다. 하지만 누군가와 함께 창조물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때로는 나의 생각과는 정반대의 의견을 수렴해야 할 때가 반드시 있다는 뜻한다. 동의할 수 없는 의견이나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성향 등은 협업을 피로하게 만들고 심지어 괜히 시작했다는 하지 말아야할 생각에까지 이르게 만들곤 한다. 하지만 그런 감정적 소모를 잘 견디어내고 서로를 존중할 수 있다면 혼자 작업할 때와는 색다른 매력을 가진 작품이 탄생되기도 한다. 

‘제사상 코디네이터’라는 색다른 직업을 소재로 하고 있기에 이야기는 당연히 누군가의 죽음을 담고 있다. 주인공 수현은 제사를 준비할 수 없거나 제사를 지낼 수 없거나 하지만 제사를 지내지 않으면 찜찜한 이들의 제사를 대신 차려 주고 예를 거행한다. 유교문화의 일환인 제사는 우리나라 명절과 죽은 이를 기리는 예식에서 필수적인 전례였다. 하지만 제사의 예식을 유심히 살펴보면 단지 유교의 사상에만 입각한 것이 아니라 영혼에 대한 불교적인 해석과 더불어 샤머니즘적 요소가 다분히 포함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지방에 쓰인 신을 부르는 문구나 음식을 차려놓고 죽은 이가 와서 먹기를 기다라며 자정에 맞춰서 방문을 열어 놓았던 관행은 조상신이 자손을 잘 보살펴 주기를 바라는 미신적 요소가 많이 담겨 있다. 아무리 종교적 신심이 강하다 할지라도 불행한 숫자와 요일에 대한 강박이나 손없는 날에 이사를 가는 게 좋다는 말을 완전히 무시하기란 쉽지 않다. 종교 이전에 문화적인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제사는 종교적 신념과 맞지 않아 행할 수 없는 이들조차도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제사상을 차려달라는 유언을 남기게 되면 그 말을 무시할 수 없게 된다. 

제사상 코디네이터 수현은 이렇게 제사를 대신해주며 문화의 영향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이들의 근심을 누그러트린다. 소설 속에 등장한 새로운 직업이지만 언젠가는 이러한 직업이 보편화될지도 혹시 지금 어디선가에서는 실제로 그런 일을 하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박서련 작가의 짧은 소설을 읽을 때에는 수현과 정서의 관계 그리고 정서의 딸과 함께 1주기 기일제사를 지내는 모습을 막연히 상상하게 된다. 사춘기 딸의 무심한 태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정서가 가장 좋아했을 불량식품 쥐포를 준비해온 수현은 자신이 알지 못했던 정서의 아이돌 취향에 대해서 알게 된다. 그리고 정서의 딸에게 정서가 좋아했던 아이돌의 정보를 검색하던 수현은 갑작스럽게 밖으로 뛰쳐나가며 소설은 끝을 맺게 된다. 수현은 왜 갑자기 밖으로 뛰어나간 것일까? 아직 상점이 닫히지 않길 바라는 마음을 내비친 수현은 무엇을 사러 나갈 것일까? 수현과 정서의 이야기에 가장 중요한 화두를 담고 있는 것 같아 몹시 궁금하면서도 혹시나 소설을 읽는 동안 놓친 부분이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았다.

이어지는 정영론 만화가의 이야기를 읽으며 소설 속에 드러나지 않은 장면들이 펼쳐졌다. 글로써 연상되는 주인공들의 모습이 말풍선을 담은 실제의 인물로 눈앞에 그려지니 좀 더 생생하게 그 둘의 과거와 현재를 그려볼 수 있었다. 특히나 소설 속에서는 언급되지 않았던 정서가 유령처럼 수현과 정서의 딸이 제사를 지내는 주위를 맴도는 모습은 우리가 흔히 상상해온 모습이어서 친근하기도 했다. 소설 속에서는 수현과 정서의 딸이 제사를 지내는 도중 갑자기 방문이 닫히는 장면을 만화 속에서는 정서를 유령으로 등장시킴으로써 남편의 부재에 화를 내는 모습으로 그려내 재미를 부각시켰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궁금했던 부분인 수현이 갑자기 밖으로 뛰어나간 이유는 정서에 대한 그리움을 제대로 기리기 위함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수현이 맡은 제사상 코디네이터나 장례식장에서 일하는 분들은 일상이 죽은 이들의 예를 기리는 절차를 밟는 것은 도와주는 것이고 슬픔에 젖은 이들을 지켜보는 일이기에 죽음에 대해서 무덤덤해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수현도 그 일을 계속 해나갈수록 점점 더 그런 생각에 빠졌을 것이다. 겉으로는 적절한 복장을 갖추고 제사를 대행하며 진중한 말과 행동을 기계적으로 수행해 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수현은 얼토당토 되지도 않는 말로 어릴적 자신을 위로했던 정서를 제대로 기억하기 위해 그녀가 좋아했던 아이돌의 생일케익을 제사상에 올리기 위해 밖으로 뛰어나간다. 결국 예의니 도리니 하는 말로 절차와 형식을 중요했던 종교적 문화적 제례식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죽은 이를 기억하는 마음이라는 것, 그리고 그 마음이 내 안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는 것이리라.

“제사를 모시는 게 직업이어서, 제사상이라면 지겹도록 차려봐서 이 일에 익숙해진 줄 알았다. 남들의 마음을 대신해 내 마음을 바치곤 해서 내 진짜 마음은 한참 전에 닳아 없어진 줄 알았다. 아니야, 착각이었지. 마음이란 것을 어떻게 정말 다 갈아 없애겠어. 꼭꼭 잘 숨겨두고는 없어졌다고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쳤던 거지. 그걸 갑자기 깨달아버린 나는 지금, 뛰지 않을 수 없다.(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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