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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이엔 오해가 있다 ㅣ 총총 시리즈
이슬아.남궁인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7월
평점 :
이슬아 * 남궁인 작가의 [우리 사인에 오해가 있다]를 읽었다. 두 작가가 1년간 지속해온 서간문의 모음집이다. 책이 나올 무렵부터 익히 보아온 제목이지만 선뜻 손이 가지 않아 읽을 기회를 놓쳤다가 이번에도 김소영 작가의 [무뎌진 감정이 말을 걸어올 때]를 통해서 만나게 되었다. 카톡과 DM과 댓글이 넘쳐나는 순간접속의 시대에 서간이라니 마치 지하철 공사를 위해 땅을 파다가 우연히 마주친 고대 유물의 흔적처럼 이미 인간의 역사에서 저만치 사라진 기억을 작가들만의 전유물처럼 지속해온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요즘은 군대에 가서도 부모님께 편지를 쓰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훈련소를 비롯한 부대의 장교들의 중요한 일과 중의 하나가 사병들의 안위를 가족들이 볼 수 있도록 카페나 블로그와 같은 형식의 웹사이트에 업로드 하는 것이라고 하니, 그리고 무엇보다도 일과가 끝난 후에는 자유롭게 개인 휴대폰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하니 대체 편지를 쓸 이유를 찾을 수 있을까? 계속 이런 식이라면 진짜 편지는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갠톡이든 단톡이든 톡방에서 메시지를 주고받다 보면 가끔은 상대방의 메시지에 대한 오해가 생길 때가 있다. 특히어설프게 아는 사이라면 더욱 그렇다. 반대로도 마찬가지라서 행여나 공격적인 감정의 요소가 담기지 않을까 염려하며 진중하게 메시지를 보내기도 한다. 그냥 통화하면 편할텐데, 메시지에 길들여지면 나도 모르게 폰포비아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통화는 바로 연결되지 않아도 메시지를 남겨 놓으면 언제든 여유가 생길때 대답을 해줄테니 그것 또한 편리한 소통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점점 더 직접적인 통화의 어려움이 커져간다. 단답형의 인스턴트 메시지에서는 이런 오해가 빈번히 일어날 수 밖에 없지만, 1년에 걸쳐 정성스럽게 쓴 서간문을 주고받은 작가들의 책 제목마저 [우리 사이엔 오해가 있다]니 어쩌면 이 책의 주된 요지인 ‘오해는 흔하고 이해는 귀하다’는 말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일깨우는 것이 아닌가 싶다.
사실 몰라도 되는 사전 정보이겠지만 두 작가가 주고받은 편지를 읽다보니, 두 분은 서로 어떻게 알게 된 것일까? 책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배를 타고 함께 한 여행은 무엇이었을까? 궁금해졌다. 일간 이슬아를 시작으로 전업작가의 대열에 들어선 이슬아 작가와 의사이자 응급의학과 전문의인 남궁인 작가의 만남은 어쩌면 시작부터 화제가 될 수 밖에 없는 구조이다. 어찌보면 각자의 자리에서 핵인싸인 두 분이 이렇게 솔직담백하게 불호령을 내리고 변명을 하고 용서를 하고 이해하고 또 다름을 주장하는 서간의 연속은 물리적으로 떨어진 누군가에게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편지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편지를 쓰며 편지를 받은 수신자를 생각하다보면 어느덧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 볼 수 있게 된다는 말과 수신자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려고 자기 자신을 생각하다보니 수신자를 비롯한 다른 사람을 생각하게 된다는 말은 정반대이면서도 닮아 있다.
아마도 몇 주간에 걸쳐 주고 받은 서간의 내용을 읽다보니 자연스럽게 두 작가의 일상도 엿볼 수 있었는데, 과연 사람에게 바쁘다는 말이 통용될 수 있는 것일까란 의문이 들었다. 앞서 말한 사전 정보에 해당되는 부분일텐데 두 작가는 서로가 서로의 글을 모조리 다 읽어서 그런지 지나온 삶의 흔적들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두 분 다 보통 바쁘게 사는 사람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아무리 구독료를 받고 쓴다고 해도 매일 매일 독자들을 만족시킬 일정 분량의 글을 쓴다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이래저래 다른 일도 분명 있을테고 사람도 만나고 휴식도 취해야할텐데 말이다. 글을 쓰는 것에 마치 중독된 사람처럼 말하는 또 다른 저자는 의사이고 그것도 응급실에서 근무를 하는데 퇴근을 하고 파김치가 된 몸으로 이렇게 많은 글을 쓸 수 있다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이슬아 작가의 남궁이 작가의 강인한 체력을 칭송하며 전업작가로 살아가기 위해 필수적인 코어의 힘을 강조한다. 체력의 재분배를 통해서 하고 싶다고 해서 다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담념할 수 있다는 것은 앞으로도 지속적인 좋은 글을 쓰기 위한 현명한 선택이 아닌가 싶다. 특히나 서간의 마지막에 이르러 이슬아 작가의 통계 논문과도 같은 서로의 서간문을 비교하는 내용은 누군가 내가 보낸 편지를 이토록 정성들여 분석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동적이면서도 약간은 뒷통수를 맞은듯한 느낌을 선사한다. 두 작가의 이전 작품과 앞으로 나올 새로운 책들이 기대되며 서간문의 매력에 흠뻑 빠진 시간이었다.
“지난 크리스마스에도, 새해 첫날에도 저는 응급실에 있었습니다. 그런 날들의 응급실은 어떨 것 같습니까. 병원 밖 보통 사람들은 행복한 날이지요. 대신 응달에 남겨진 사람들은 얼마나 처절하게 불행에 떠는지 모릅니다. 모두가 들뜬 세상의 변방에서 벌어지는 파괴와 고독을 목격하는 일입니다.(73)”
“아무래도 자신의 사연이 소진될 때가 글쓰기의 진정한 시작일 겁니다. 글을 쓰는 사람은 자신의 세계를 확장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무엇을 말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우리는 조금 더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의 입장에 설 수박에 없습니다. 반성하고 주위를 되돌아보고 읽고 이해하는 것이 글쓰기를 계속하는 행위니까요.(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