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가 숨어 있는 세계 - 언어치료사가 쓴 말하기와 마음 쌓기의 기록
김지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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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호 언어치료사의 [언어가 숨어 있는 세계]를 읽었다. 부제는 “언어치료사가 쓴 말하기와 마음쌓기의 기록”이다. 흥미와 재미를 유발하여 속독이 가능한 내용이 아니다. 읽는 동안 몇 번이나 멈추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집중이 잘 되지 않을 때도 있었다. 저자가 아이들에게 쓴 편지를 읽는 동안 몇 번이나 눈시울이 붉어져 그냥 끝까지 읽기를 포기할까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 책을 한 편에 접어두고 다른 소설책을 읽으며 정말로 내가 외면하고 싶은 것이 무엇일까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저자가 만났던 대부분의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어디선가 살아가고 있을텐데 그리고 가족들은 여전히 그 아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며 온전한 시간을 견디어내고 있을텐데. 내가 알지 못하는 이들이라고 나와 상관없는 이들이라고 외면하면 그만이라고 눈을 감아버린 것은 아니었는지, 갑작스럽게 가슴 한 구석이 아려오는 것처럼 아파와 눈물이 맺히는 것 또한 순간적인 위선은 아닌지 부끄럽기만 한 며칠이었다. 


저자가 만났던 수많은 아이들과의 치료 과정을 읽으면서도 전혀 기억하지 못했는데,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 완전히 잊고 있었던 과거의 몇 장면들이 떠오른다. 그래 나에게도 심각한 장애가 있는 먼 친척이 있었다. 자주 볼 기회도 없었고 그 집을 가야만 볼 수 있었던 나보다 몇 살 많아보인 그는 마치 유아기 아이처럼 거대한 보행기 안에서 몸을 의지한 채 괴상한 소리를 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어린 마음에 그가 무섭게만 느껴졌고 소통이 전혀 되지 않아서 얼른 지나쳐 버리곤 했었는데. 어쩌면 나의 친척도 저자의 책에 나온 유형의 아이들과 비슷한 어려움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피한방울 섞이지 않은 완전한 남남이었지만 어떤 우연이 겹쳐 우리는 친척 관계라는 울타리 안에서 만나게 되었고, 그가 더 오래살았다면 몇 번 더 지속되었을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유년기의 스쳐지나가는 기억의 한 장면에 그치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혈연관계를 넘어서 우리는 언제든 소통이 불가능한 이들과 함께 살아가야만 하는 당위를 안고 태어났음을 부정할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유기적 생물체인 인간 또한 언제나 완벽한 구조로 태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이유와 원인 때문인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모자람과 불편으로 여겨지는 것들의 인식을 부정하는 것이다. 상대적 고통과 어려움에 견주어 자신의 삶을 위로받는 치사함이 유혹을 무시하고 우리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세상의 의미를 직시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다. 


저자가 만났던 다양한 유형의 말하기의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을 교육하는 과정을 살펴보며 또 다시 부끄러운 과거의 단편이 떠오른다. 이렇게 물리적 거리에서 멀리 활자를 통해 느껴지는 공감과 연민의 마음은 실제로 그런 상황을 맞딱뜨렸을때는 제대로 작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외면했고 때로는 무시하기도 했다. 그러고 나면 마음이 좋지 않아 다음에 만나면 인내심을 갖고 이야기를 들어줘야지 하고 다짐하지만, 막상 다시 마주하게 되면 또 다시 짜증이 나거나 어서 빨리 이 상황을 마무리짓고만 싶어진다. 나는 왜 이렇게 이기적일까란 자책을 하고 싶지 않아 먼 길을 돌아가는 것처럼 부디 소통이 어려운 이들과의 만남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기도 했었다. 


언어치료사란 어떤 은총을 받았기에 이토록 지리멸렬한 싸움을 잘 해낸다 말인가란 주제넘은 감탄에 빠지게 된다. 저자가 매 순간 만난 아이들을 떠올리며 정성스럽게 쓴 편지글은 경탄과 존경을 자아내며, 나와 같은 부족한 수많은 어른들을 대신하여 이 세상의 어긋나고 빈틈을 열심히 메꾸어 주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치료를 마치고 더 이상 만나지 못하는 아이들을 끊임없이 응원하며 어디선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거침없이 말을 하면서도 매 순간 후회하고 자책해온 나의 하루를 따뜻하게 위로해주는 것만 같다. 그래서 그런지 저자의 마음이 매 페이지마다 따뜻하게 느껴져 익명의 독자인 나 또한 힘을 얻어간다.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 나는 그 말을 진실로 믿지만 한 번도 내 인생에서 무언가를 결정지어야 할 가치 기준이 되리라고는 생각 못 했다. 자기 희생이, 생명의 소중함과 내 삶을 맞바꿀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상황에 직면하리라고는 생각 못 했다. 그러니까 그동안 ‘생명의 소중함’이란 나와 상관없는 먼 나라에서 통용되는 ‘좋은 말’에 불과했던 거야. 그래서 태이야, 지금 이 순간에도 너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잘생긴 네 형은 그 당연한 가치를 온몸으로 실천하고 있는 거라는 말을 꼭 하고 싶었다.(143)”


“장애는 본인은 물론 가족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처음 장애가 있음을 알게 되었을 때, 가족이 느꼈을 불안과 두려움을 나는 헤아릴 수 없다. 그나마 삶의 파도를 헤쳐 가는 사람들과 오래 함께 일하며 하나 깨달은 게 있다면 동정과 연민은 행복을 향해 항해하는 사람들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장애가 있는 아이에게는 힘내라는 말보다 묵묵히 그 옆자리를 지키는 게 더 큰 힘이 된다. 그리고 또 하나, 장애라는 말에 압도당하지 않으려면 익숙해지는 수밖에 없다. 아마도 주니네 가족은 이미 그 일을 해냈는지도 모른다.(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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