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칸 푸드 : 난 슬플 때 타코를 먹어 띵 시리즈 19
이수희 지음 / 세미콜론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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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희 작가의 [멕시칸 푸드: 난 슬플 때 타코를 먹어]를 읽었다. 세미콜론 띵 시리즈 19번째 책이다. 타코, 브리또, 케사디야 등 멕시코 음식을 누구나 한 번쯤은 먹어보지 않았을까 싶다. 나도 호기심으로 멕시코 음식점을 몇 번 간 적이 있어서 흥미롭게 또띠야에 부재료를 넣고 살사를 바르고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어쩌다 한 번, 아니 또 누군가가 강력한 제의를 한다면 모를까 저자처럼 내일 또 타코를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저자의 책을 읽으며 마리 데 키친이라는 멕시코 음식점이 이렇게 가까이 있었다는 너무나도 감사한 정보와 더불어 포솔레라는 처음 듣는 멕시코 전통 스튜를 맛보고 싶어졌다. 특히나 이렇게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이면 한 여름이라도 뜨끈한 국물 한 모금에 눅눅했던 기분이 순식간에 날아가버리니까 말이다. 


글에는 냄새도 침샘을 자극하는 사진도 없지만 묘사된 내용을 상상하며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자극을 유발한다. 아니 오히려 후각과 시간을 자극하는 각인된 대상이 없기에 무한한 상상을 증폭시켜 언젠가 맛볼 음식에 대한 기대를 더욱 높이게 된다. 그래도 저자가 소개하는 음식들이 대체 어떻게 생긴 것일까란 궁금증을 물리칠 수 없어 검색사이트를 열게 된다. 남미에 가본 적이 없지만 베로나에서 머물 때 가끔 멕시코 음식점을 가곤 했다. 파스타에 물리고 지친 날 우리 음식처럼 매콤한 맛은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은 자극적인 맛을 기대하며 타코를 주문하곤 했다. 우리가 흔히 멕시코의 술 하면 테킬라라고 생각하지만 더 전통적인 술은 메스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메스칼이란 용설란(agave)의 수액을 발효시켜 만드는 멕시코의 증류주다. 용설란 표면에 붙어 사는 나방 유충을 아가베 웜이라 부른다.(119)" 


베로나의 멕시코 음식점에서 메스칼을 마셔볼 수는 없었지만, 대신에 테킬라 붐붐 이라는 일종의 술 장난을 알게 되었다. 실제 메뉴 판에도 테킬라 스트레이트 한 잔, 테킬라 붐붐 이라고 표시되어 있어서 이건 뭘 말하는 것일까 궁금했다. 처음 같이 갔던 지인이 그날따라 술이 땡겨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재미있는 걸 보여주겠다며 테킬라 붐붐을 주문했다. 곧이어 테킬라 석 잔이 테이블 위에 놓여지고 술을 가져다 준 분은 갑자기 호르라기를 입에 물었다. 지인이 한 잔을 들어 마시기 시작하자 호르라기는 쉴 세 없이 큰 소리를 내며 식당의 모든 사람을 주목시켰다. 난데없는 호르라기 소리에 깜짝 놀란 나는 이게 하나의 퍼포먼스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웨이터는 호르라기 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곧이어 지인이 두 번째 잔을 원샷하고 마지막 잔까지 다 비우고 나서야 호르라기 소리는 멈추었다. 조금은 어이없는 퍼포먼스가 끝나자 다른 테이블의 손님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아 이게 테킬라 붐붐이구나 진짜 섣부르게 주문했다가는 바로 뻗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과 더불어 이걸 누구한테 써먹지라는 얍삽한 마음이 들었다. 얼마 후에 후배가 방학을 맞이해 장시간 기차를 타고 온 터라 그 멕시코 음식점을 데리고 갔다. 그리고 필살기 테킬라 붐붐을 한 번 시켜보라고 제안했다. 후배는 의아해하며 순순히 내 말을 따랐고 그 이후는 뭐 말하지 않아도...


저자의 멕시코 음식에 대한 사랑은 코로나 시국임에도 불구하고 멕시코 현지를 방문해서 타코 음식 거리를 거닐게 만들었고 스타벅스의 오르차타는 실제로는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그 맛을 재현하는 주문 방식으로 맛보고 싶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야기의 말미에 등장한 푸올이라는 고급 멕시코 레스토랑에 대한 묘사는 그야말로 저자의 멕시코 음식에 대한 열정에 보답한 타고신의 아량처럼 여겨진다. 몇 달 전에 예약을 해야만 가능한 다이닝 코스를 마치 저자를 위해 빈 자리가 생기기라도 한 것처럼 여행 기간에 그곳을 방문할 수 있는 행운은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이 책이 나오기까지 숭고한 마음으로 타코와 브리또와 케사디야를 만들어 먹으며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충실한 시간을 보낸 이들만이 받을 수 있는 선물이 아니었을까 싶다. SNS에 범람하는 유사한 화려함이 아니라 이렇게 자신이 좋아하는 무엇을 향해 투신할 수 있는 이들의 애정이 부럽고 또한 그 뜨거움을 이렇게 책으로나마 나눌 수 있어서 좋다.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일은 뭘까? 나는 '결핍'을 채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갖지 못한 것, 나에게 없다고 느껴지는 것을 구경하는 일이 가장 재밌다. 옷을 사고 싶을 때는 눈이 빨개지도록 쇼핑몰을 구경하고, 여행이 가고 싶을 때는 온갖 여행 후기를 읽는다. 유튜브의 알고리즘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현대 기술과 마케팅은 개개인의 결핍을 판별하고 욕망을 제안하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다.(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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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나쁜 일 오늘의 젊은 작가 37
김보현 지음 / 민음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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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현 작가의 [가장 나쁜 일]을 읽었다. 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37번째 작품이다. 그동안 읽었던 젊은 작가 시리즈 중에 가장 분량이 많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는데, 다양한 인물의 등장과 더불어 촘촘하게 얽힌 사건들을 전개하고 마무리되기까지 쉴틈없는 서사에 흠뻑 빠져들었다. 제목에 담긴 의미처럼 ‘가장 나쁜 일’, 살아가면서 내가 겪은 가장 나쁜 일은 무엇이었을까 돌아보게 만든다. 혹자에게는 한 평생 열심히 모든 돈을 사기를 당한다거나, 믿었던 지인을 위해 보증을 섰다가 전재산을 날리는 일을 겪는다던지, 몸을 아끼지 않고 일하다가 중병을 앓게 된다던지, 사랑하는 사람에게 처절히 배신당한단던지, 큰 사고를 당해서 몸을 다치게 된다던지 하는 일들이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인생의 가장 나쁜 일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남의 불행을 보고 순간적인 위로를 받는 이기적인 인간이 되고 싶지는 않지만, 때때로 가까운 사람들의 불행한 소식을 들을 때면 나약하게도 지금의 상황을 감사하게 된다. 


소설의 주인공 정희는 3년 전에 사랑하는 아들을 떠나보냈다. 아들의 갑작스런 발병에 남편 성훈과 발버둥치며 심장이식을 받으려 노력하지만 첫 번째 이식이 부작용을 일으키고, 기적적으로 잡은 두 번째 이식은 수술 비용을 마련하지 못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고 만다. 자식을 먼저 앞세운 슬픔은 그 어떤 것으로도 견줄 수 없다고 하는데, 설상가상으로 정희의 눈 앞에서 남편 성훈과 어떤 여자가 함께 사라지고 성훈과는 더 이상 연락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성훈과 정희의 이야기가 펼쳐지기 앞서 한강 다리 위에서 어떤 여자와 남자가 투신을 하고 여자는 죽고 남자만 살아서 나오게 된다. 그 여자와 남자는 누구일까 라는 궁금증을 갖고 정희의 여정을 따라가게 된다. 정희는 아들의 죽음 이후 우울증과 심한 신경증을 겪으며 남편과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다시 마음을 잡고 직장을 구하기 위해 면접을 보고 나오며 남편 성훈과 전화통화를 하지만 성훈은 어디선가 본듯한 여자와 사라진다. 그리고 이야기는 성훈의 이란성 쌍둥이 동생 지애의 남편이 찾아오면서 미궁으로 빠지게 된다. 어딘가 계획된 듯한 이미지를 풍기는 지애의 남편 김영호는 정희를 찾아와 아내 지애의 행방을 수소문 한다. 지애의 남편을 처음 본 정희는 의구심을 품지만 영호의 지략으로 정희는 더 이상 의심을 품지 않게 된다. 성훈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여기에 표철식이라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는 성훈과 함께 투신했던 성록혜의 남편이다. 철식은 성훈이 아내 록혜를 죽게 만들었다는 생각으로 성훈을 납치, 감금, 폭행하며 진실을 토로하게 만드는데, 이 모든 것은 영호가 탈북자 서점례와 계획해서 만든 일이었다. 영호는 철식이 성훈을 죽일 것이라 예상했지만, 철식은 성훈이 진실을 털어놓자 그냥 놔주게 된다. 계획이 틀어진 영호는 성훈을 자신이 바지원장을 내세워 실제 주인이 된 병원으로 끌어들여 마치 투신 자살을 한 것처럼 꾸민다. 성훈이 투신 자살을 한 것처럼 병원 9층에서 떨어질 때 때마침 마당에 서 있던 치매를 앓던 노인과 부딪혀 죽게 되고 성훈도 얼마 후 죽게 된다. 


아들을 떠나보낸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한 정희는 남편의 죽음에 몸부림치지만 장례식장에서 그녀에게 다가와 말을 건네 경찰의 이야기는 너무나도 충격적이다. 남편이 내연녀와 불륜관계를 이어오다 변심한 내연녀를 죽이고 죄책감에 괴로워하다가 투신 자살을 했다는 말이다. 정희는 자신의 남편이 그럴리 없다고 도리질하지만 영호의 계획은 차근차근 이루어져갔다. 슬픔과 좌절 속에서도 정희는 철식과 관련된 단서를 알아내고 철식의 집을 찾아가 전모의 발달을 얻게 된다. 만일 철식이 서점례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아내 성록혜에게 또 다른 탈북 남자가 있다는 것을 인정했더라면 정희는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철식은 정희와 마찬가지로 배우자에 대한 마지막 실낱같은 희망으로 영호의 계획에 차질을 빗게 만든다. 정희가 영호의 병원을 찾아가 다시 납치되고 그곳에서 탈출하며 혹시나 모를 위험을 예방하기 위해 최형사에게 예약 메시지를 보내는 장면은 흡사 첩보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려졌고 악마와도 같은 영호의 최후의 순간은 무척이나 비참했지만 그가 계획했던 모든 일의 가장 나쁜 순간은 다행히 이어지지 않았다. 


등장 인물들의 다양한 서사와 배경은 한 인간의 삶이 이토록 저주스러울 정도로 불행할 수 있을까란 안타까움과 더불어 탈북자들의 불안한 일상이 그려져 씁쓸한 마음은 배가 되었다. 영호가 이토록 잔악한 수법으로 많은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이유가 어린 시절 아버지의 우연한 선행이 엄청난 보험 보상금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로 비롯되었다는 것 또한 착잡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인간이 존엄성을 가질 수 있기 위해서는 마치 그 어떤 순간에도 돈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구성원으로서 그들에게 가장 나쁜 일은 죄를 지어 누군가를 미궁에 빠트리는 것이 아니라 그 나쁜 일이 성공하지 못해 다시금 수렁속으로 빠져드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더욱 서늘하게 다가온다. 


“그녀는 희망이 없다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이제부터 상황이 어떤 식으로 치달아 갈지 역시 감히 확신할 수 있었다. 가슴이 조여왔다. 정희는 손으로 눈을 가린 채 조용히 흐느꼈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 모르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도 이것은 끝이 아니며 가장 나쁜 일도 아니고,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일들은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다는 걸 차마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다.(207)”


“칼바람이 부는 벌판을 홑껍데기만 걸치고 걸어야 했을 때, 사방에서 안광을 번뜩이며 두 사람을 노리는 산짐승들을 피해 기어서 산을 너머야 했을 때…. 의식은 흐려지고, 의지는 산산이 흩어지고, 희망은 전부 바닥에 떨어져 다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철식이 록혜에게 말했었다. 마음속에 못 하나만 박아. 그럼 다시 하나, 둘 걸 수 있다. 떨어진것을 먼저, 흩어진 것을 그다음에, 나중에는 흐려진 것도 붙잡아 걸 수 있게 된다고…(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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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쿠다 사진관
허태연 지음 / 놀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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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태연 작가의 [하쿠다 사진관]을 읽었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의 여운 때문인지 읽는 내내 후속편을 보는 듯한 감상에 빠져버렸다. 우리나라 어느 지방 사투리도 자세히 들으면 그들이 하고자 하는 말을 대충 알아들 수 있지만, 제주 방언만은 마치 해독기와 번역이 필요한 외국어처럼 들린다. 대체 같은 나라에서 그리고 우리나라가 그렇게 큰 땅덩어리도 아닌데, 단지 바다 건너에 있는 섬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렇게까지 큰 격차가 느껴지는 방언이 생겨난 것일까 항상 신기했다. 그래서 그런지 제주 사투리는 다른 어느 지방보다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를 3년째 견디는 중에 제주에 갈때마다 우리나라에 제주도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매번 감사의 마음을 갖곤 했었다. 


‘우리들의 블루스’에서도 해녀들의 이야기가 나와서 막연하게 생각했던 해녀들의 물질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 조금은 알게 되었고, 올해 제주로 연수를 갔다가 우도로 가는 선착장 근처에 있는 오래된 해녀 탈의실을 개조하여 공연과 음식을 먹을 수 있는 ‘해녀의 부엌’이라는 프로그램을 관람할 수 있었다. 연극하는 청년들이 현지의 해녀분들과 함께 해녀들의 삶을 그린 연극을 공연하고 이후에 해녀분들이 채취한 해산물을 직접 맛볼 수 있는 특색있는 프로그램이었다. 연극 배우들은 실제 상군해녀가 겪은 슬픈 이야기를 형상화했고, 연극이 끝나고 실제 이야기의 주인공인 80세가 넘은 고령의 해녀 분의 인터뷰 시간이 이어졌다. 지금 제주도에서 볼 수 있는 해녀복은 고무로 된 전신슈트이지만, 70년대 이전에는 박물관에서 본 듯한 하얀 저고리와 검은 반바지를 입고 차가운 바닷물에 입수를 했다고 한다. 소설에서도 주인공 제비가 한 겨울에 대왕물꾸럭마을 축제의 사자가 되어 고무슈트가 아닌 옛날 해녀복을 알몸에 입고 차가운 바다에 들어가야 하다는 사실에 기겁을 하지만, 목포 할망의 말처럼 생존을 위해서 해녀들은 살을 에는 듯한 추위를 견디며 물질을 해야만 했다. 


사실 도시에서는 신선하고 맛이 좋은 문어를 맛보기가 쉽지 않다. 값이 비싸기도 하거니와 잘못하면 질긴 문어를 먹게 되지 않을까 염려가 되어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주에 가면 돌문어와 대왕문어를 맛볼 수 있다. 심지어 문어가 들어간 해물라면을 그리 비싸지 않은 가격에 먹을 수도 있다. ‘해녀의 부엌’에서 해녀들이 바로 채취한 뿔소라 회를 먹노라니 아무런 잠수장비 없이 그저 숙련된 다이빙으로 전복하나, 소라하나 이렇게 거둬들여 가족들의 생계를 이어갔다는 할머니 해녀의 말씀이 마음으로 느껴졌다. 그들의 프리 다이빙 실력은 숙련된 다이버들도 흉내낼 수 없는 숨비소리를 만들어냈고 그러한 독특한 호흡법으로 오랜 시간 물 속에서 해산물을 채취할 수 있었던 것이다. 


소설의 주인공 제비는 나중에 그의 슬픈 사연이 드러나지만 연인에게 이별을 통보받고 미혼모가 되어 아이를 입양기관에 맡긴 상처를 갖고 있다. 기댈 가족조차 없이 새로운 삶을 기약하기 위해 떠나온 제주 여행을 끝마치는 날 바닷가에서 핸드폰을 물에 떨어뜨려 길을 헤매다 ‘하쿠다 사진관’에까지 이르게 된다. 제비가 사진관 주인 석영과 만나 그곳에서 직원으로 채용되어 목포 할망의 집에 하숙하게 되는 과정은 조금은 작위적이지만, 이어지는 이야기를 위한 어쩔 수 없는 플롯이라고 가정한다면 실제로도 그러한 우연이 우리 삶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하지 않을까 동의하게 된다. 하쿠다 사진관을 중심으로 연제비, 이석영, 고양희 그리고 양희의 아들 효재, 목포 할망과 대왕물꾸럭 마을 사람들까지 모두가 쉽게 말하지 못할 내면의 상처를 갖고 있었다. 그럼에도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단언을 실천하는 것처럼 가슴속에 묻어둔 슬픔을 내색하지 않고 등장인물 모두가 씩씩하게 주어진 운명을 헤치며 나아가고 있다. 


제비가 석영의 사진관에서 일하며 홍보 활동을 열심히 해서 조금씩 고객들이 늘어나고 사진관을 방문한 이들의 에피소드가 펼쳐지며 이야기는 점점 흥미진진해진다. 특히나 제비와 석영이 콤비를 이루어 의뢰자들이 원하는 컨셉으로 하루종일 사진을 찍고 사진관에서 식사를 하며 그날 찍은 사진을 관람하는 코스는 꽤나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고 싶다면 그리고 여행지에서 그런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을 만날 수 있다면 누구나 한 번쯤 가보고 싶은 곳이 아닐까. 소설의 말미에 대왕물꾸러마을의 평안을 위해 사자의 역할을 맡게된 제비가 물숨을 들어마시는 고통을 감내하며 대왕물꾸럭을 바다속으로 인도하는 장면은 입양보낸 밤톨이를 위한 극한의 인내에서 비롯되었음을 알기에 무척 감동스러웠다. 그리고 사자로서의 임무를 완수한 제비에게 목포 할망이 건네 한 마디, “기여. 혼 번 사자는 영원한 괸당이주. 이녁은 앞으로 어떵살코저들지 말라.(그래. 한 번 사자는 영원한 괸당이야. 너는 앞으로 어떻게 살까 걱정하지 마.)” 기댈 가족 하나 없는 제비에게 이 말처럼 든든한 말이 또 있을까? 괸당이라는 혈연과 지연으로 얽히지 않은 이들을 매몰차게 외면하는 배타적인 공동체의 모습에서 나온 것 같지만, 목포 할망의 말에서 인간이 인간을 필요로 한다는 것은 결국 마음과 마음이 통할 때 세상의 모든 장애물이 무너져 내릴 수 있음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제비야, 어떤 사람들은 돈과 예술이 별개라고 생각해.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돈과 바꿀 수 있는 것만 진짜 예술이라고 생각하지.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사람의 생명 다음으로 중요한 게 돈이니까. 그런 돈하고 바꿀 가치가 있어야만 예술이 되는거야. 비쌀수록 더 가치가 있는 거고.(142)”


“만일 물꾸럭 신이 있어 사람에게 길흉을 가져온다면, 그리고 네가 잠수에 실패해 액운을 당한다면, 그때 너는 후회할 거야. ‘아 물에 들어갔어야 했는데. 무슨 일이 있어도 해냈어야 했는데,’ 그런 다음 울겠지. 지금처럼 서럽게. 하지만 네가 잠수에 성공한다면, 언젠가 네게 액운이 닥쳐도 후회하진 않을 거야. 그러니까 수영을 배워. 살아보니 그렇더라. 뭔가를 위해 무슨 일을 하다 보면, 계속 하다 보면, 그게 언젠가 너를 구하는 거야.(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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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에 대하여 - 박상영 연작소설
박상영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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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영 작가의 [믿음에 대하여]를 읽었다. 연작 소설로 ‘요즘 애들’, ‘보름 이후의 사랑’, ‘우리가 되는 순간’, ‘믿음에 대하여’ 이렇게 4편이 수록되어 있다. 각 단편마다 화자인 주인공의 이름이 표기되어 누군가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연작소설을 읽을 때마다 특히 박상영 작가의 소설은 대부분 연작소설집으로 묶여 나오기에 매번 놀라게 되는 점이 있는데, 바로 각 단편의 주인공들의 시선으로 읽을 때와 그 주인공들이 다른 단편에서 상대방이나 주변 인물로 나올 때의 시선이 너무나도 다르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주인공의 시선으로 소설이 진행될 때에는 주인공이 처한 상황과 감정에 단숨에 몰입되어 모든 정황이 주인공을 힘들게 한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가 이렇게 고난을 겪고 난처하게 된 것은 주인공의 탓이라기 보다는 세상이, 그리고 주인공의 주변 인물들 때문이 아닐까라라는 어느덧 주인공의 가족이나 부모가 된 것처럼 그의 편을 들게 된다. 하지만 이어지는 또 다른 단편에서 등장한 전편의 주인공은 새로운 단편의 주인공의 시선에서 바라보았을 때 허점이나 모순이 너무나도 많은 인물이다. 그가 주인공일 때에는 모든게 납득이 되던 상황들이 새로운 주인공의 시선으로 바라보니 어쩌면 모든 문제의 원인은 전편의 주인공 때문이 아닐까란 막연한 추측에 다다르게 한다. 


소설 속에서는 이렇게 자신의 주관적 입장이 아닌 타인의 시선으로 좀 더 객관적으로 사건과 정황을 살펴볼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이런 생각이 자주 든다. 내가 봤을 때 저 사람은 정말 이상한데, 저 이상한 사람에게도 친한 사람이 있고 심지어 사람들이 그 이상한 사람을 칭찬하고 좋아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일들이 반복될 때면 혹시 내가 이상한 사람이 아닐까란 생각마저 든다. 만일 내가 판단하는 것처럼 저 사람은 괜찮은 사람, 이 사람은 이상한 사람이라는 결론이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면 내가 혹평한 누군가는 죽을 때까지 외롭고 쓸쓸하게 살아가며 온갖 비난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나의 시선과 판단이 절대로 옳을 수가 없고 나의 호불호가 누군가에게는 정반대의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무척이나 다행스러운 것은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나를 몹시도 좋아해주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이다. 저자의 소설을 읽을 때면 이렇게 다양한 시선으로 주인공들의 삶을 바라보며 편견과 선입견에 휘말려온 시간들을 돌아보게 만든다. 


우리나라 퀴어 문학의 대표 주자 중의 한 명인 저자의 소설에는 언제나 게이 동성 커플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번 연작 소설에는 김남준, 고찬호, 유한영과 황은채, 임철우 이들의 팍팍한 직장생활 분투기와 더불어 ‘요즘 애들’이라는 시대적 반복어가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소설의 심장부를 가로지르는 사건은 실제로 제작년 팬데믹 초기에 발생한 ‘이태원 발 코로나 확진자의 거짓말’을 모티브로 삼고 있다. 사실 그 일이 뉴스를 통해 보도되었을 당시만 해도 확진자의 동선 거짓말로 인해 무고한 학원생들의 집단 확진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었다. 지금과 비교하면 말도 안될 정도로 확진자의 수가 적었음에도 생소한 전염병에 대한 두려움이 증폭되었던 터라 확진자의 동선은 개개인의 동의 없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사생활 침해 및 인권 유린에 대한 위험성이 조심스럽게 대두되던 때였다. 하지만 인권이고 사생활이고 간에 사람 목숨 살리는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우리나라 사회에서 확진자가 거짓말을 했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고 모든 언론들의 집중포화로 그 학원강사를 이미 만신창이를 만들어버렸다. 시간이 흐른 후에 그가 거짓말을 했던 이유는 성소수자임이 드러날까 두려웠기 때문임을 알게 되었다. 그가 성소수자임이 밝혀지자 소설에 나온 것처럼 이태원 클럽이 마치 온갖 더러운 것들의 온상인양 비아냥거리고 혐오하는 이들이 이때다 싶은 듯이 그들을 짓밟는 거친말을 서슴없이 내뱉었다. 


누군가를 비난하고 평가절하하는 것은 너무나도 쉬운 일이다. 실제로 그가 어떤 사람인지 검증할 필요도 없이 그냥 느낌대로 그럴 것이라는 가정을 부풀리고 상상하여 팩트로 단정짓듯이 자신있게 말하면, 그 말을 들은 누군가가 거기에 자신의 생각을 더 보태어 비난의 대상을 더욱 형편없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렇게 여러 사람의 입에 오르내린 사람은 마주한적도 없는 이들의 입에서 온갖 더러운 것들이 묻어난 씹던 껌처럼 되어버리곤 한다. 하지만 반대로 누군가를 칭찬하고 추앙하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사람들은 누군가에 대한 호감어린 말을 귀담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칭찬은 재미없고 루즈하며 뭔가 이유가 있어서 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대체 뭘 받아먹었길래 라는 의구심어린 눈빛으로 칭찬하는 사람을 겸연쩍게 만든다. 그래서 험담보다 칭찬을 할 때 더욱 신경이 쓰인다. 팬데믹으로 인해 전지구적인 고통을 받는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이 겪는 불편함은 생활고를 겪거나 성소수자처럼 동선이 드러나기를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걸린 사활과는 도저히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그럼에도 재난과 같은 상황이 벌어졌을 때 그 상황을 이겨내기 위한 해결의 절차는 가진 것이 없는 이들과 소수자의 수준에서 맞춰지기 보다는 있는 자들의 머리속에서 그려낸 것으로 결정될 때가 많다. 가진 것이 많을 때에는 그것을 놓치고 싶지 않아 시선이 좁아질 수 밖에 없다. 저자의 연작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다양한 시선은 그래서 지금처럼 예민하고 날카로운 시대에 더더욱 시의적절하지 않았나싶다. 


“서른한 살, 벌써 네번째 신입 사원이 된 나는 스물세 살에 잡지사에 들어와 내 나이 무렵에 이미 팔년 차 직장인이었던 배서정의 삶에 대해 생각한다. 나도 모르는 새 내 삶에 옮겨붙은 어떤 안간힘의 궤적을 말이다. 그리고 이제 나는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배서정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던 만큼 배서정 역시 자신의 방식으로 나와 황은채를, 요즘 애들이라고 이름 붙여진 불가해의 영역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사실을. 어떤 종류의 이해는 실패하고 나서야 비로서, 삶의 자세로 남기도 한다. 내게는 그 시절이 그랬다.(62)”


“모든 게 서럽고 원망스러웠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누군가의 탓을 하는 시대에 나는 누구를, 무엇을 원망해야 할지 몰랐다. 하루에 십수 명이 확진될 땐 세상이 무너질 것처럼 야단하며 확진자 동선을 낱낱이 공개하고 술집 영업을 제한하더니 이제는 하루에 몇십만 명이 걸려도 아무런 통제도 하지 않는 정부를? 이태원 상권이 싸그리 몰락한 이 판국에도 단 한 푼도 빼먹지 않고 꼬박꼬박 임대료를 받아 챙기는 건물주를? 아니면 딱 요맘때 이태원을 헤집었던, 기남시 55번 환자를? 최초로 한국에 이 병을 들여온 사람을? 아니면 어머니가 그토록 믿는 신을 탓해야 하나? 아무것도 믿지 않는 나는 도통 무엇을 탓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저 나 자신의 탓으로 돌이기로, 이 모든 것들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나 자신을 비난하기로 하는 수밖에 없었다.(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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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브
손원평 지음 / 창비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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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원평 작가의 [튜브]를 읽었다. 어릴때 물놀이를 갔다가 죽을 뻔한 기억이 있다. 그것도 실외 수영장에서 말이다. 지금 생각해도 이상한 구조의 수영장이었는데, 아마도 좁은 공간에 애, 어른을 한 번에 수용하기 위한 방편이었을 것이다. 초등학생의 어린 나이에 어울리는 높이였던 수영장이 몇 발자국 내밀자 갑자기 몸 전체가 물속으로 빠져들었다. 당황해서 물을 연거푸 마시고 팔을 휘적거리다 누군가의 머리를 누르고 간신히 물 위로 머리를 내밀려는 찰나 다시 몸이 가라앉아 순간적으로 이렇게 허무하게 인생을 마감하는구나라는 찰나의 생각이 스치는 순간, 누군가 내 몸을 들어올렸고 살아났다는 기쁨도 잠시 먹을 물을 토해내느라 컥컥대며 더는 수영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바깥이 멍하니 앉아 있던 일이 있었다. 사실 어릴 때 이렇게 물에 빠져 죽을 뻔한 일을 겪으면 상당수가 트라우마가 생겨 물을 가까지 하려 하지 않게 된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생각보다 빠른 시간에 다시 물놀이를 즐기게 되었고, 바다에서도 수영장에서도 수영을 잘해보려 더 애쓰게 되었다. 하지만 결국 끈기의 부족으로 수영강습을 받다가 그만둬 마스터하지 못한 것은 불쑥 불쑥 솟아나는 물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핑계를 만들어낸다. 


수영이야 뭐 안하면 그만이지만, 우리 삶에는 수영처럼 하다가 만 일들이 꽤나 많다. 워낙에 뭘 배우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인지, 사교육에 대한 알러지 때문인지 새로운 것을 꾸준히 배워서 일정한 수준에 오른 적이 없다. 그래서 언젠가부터는 아예 시작을 하지 않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내가 무언가를 꾸준히 성실하게 잘 해낸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누군가가 농담삼아 한 말이 내 실제의 본 모습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 말은 바로 ‘끈기만 더 있었어도 대학로에 갔을텐데’라는 사실 가능성에 제로에 가까운 농담이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아주 얼토당토 없는 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도대체 어디서 그런 일이 시작된건지 기억이 전혀 나지 않지만, 지금의 나도 가끔 믿기지 않지만 분명한 사실은 내가 연극의 주인공을 했다는 것이다. 한 반에 50명이나 되는 아이들 중에서 평소에는 별로 까불지도 튀지도 않았던 내가 ‘스크루지 영감’을 맡아 꽤 길었던 대사를 어렵지 않게 외우고 나중에는 선생님의 권유로 앵콜공연까지하는 기염을 토하는 연기를 했었다. 그런데 그 이후로는 한 번도 연기 비슷한 것을 해 본적이 없다. 그래서 나의 평소 언행을 보고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끈기만 있었어도 대학로에 갔을텐데’라는 말은 어쩌면 내 마음이 원하는 소리에 진작 귀를 기울였다면 실제로 이뤄졌을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생각을 하게 만든다. 


어찌되었든 우리에게는 다양한 재능과 관심이 있고 천부적으로 타고나는 것도 어느 정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일은 스스로의 선택과 기나긴 노력이 이어진 시간으로 판가름된다. 소설의 주인공 김성곤 안드레아는 그냥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실패한 가장이다. 아내 란희와 결혼해 아영을 낳을때까지만 해도 그의 삶은 순탄했다. 하지만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연이어 사업에 실패하자 김성곤의 영혼은 점점 피폐해져갔고 차마 해서는 안되는 말을 아내에게 내뱉으며 루저가 되어갔다. 사업 실패와 아내와의 갈등, 늘어난 빚을 안고 별거 생활을 시작한 김성곤은 한강 다리 위에서 자살 시도를 하다가 낮과는 다르게 차가운 기운에 그만 삶을 놓아버릴 용기마저 다음 기회로 미루게 된다. 그리고 그가 2년 전에 시도했던 자살 시도의 순간으로 돌아가 무용한 2년의 시간을 보낸 과정이 펼쳐진다. 그가 우연한 계기로 허리를 곧추세우며 자세를 바꾸는 시도를 통해 지푸라기 프로젝트를 구상하게 되고 행운처럼 다가온 교통사고는 거대한 상업자본과 손을 잡고 비상하게 된다. 하지만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행운의 요소들은 다 소진되어버리고 다시금 불행의 기운이 스멀스멀 김성곤을 원래의 있던 자리로 돌이켜놓는다. 결국 김성곤은 절대 변하지 않은 루저에 불과한 것인지 자포자기 할 무렵 김성곤의 지푸라기 프로젝트는 쓸모없는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낸다. 


진짜로 인생에서 성공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완전히 알지 못한다. 성곤의 어릴적 성당 친구 규팔의 모든 것이 다 변한 것 같은데도 뭔지 알 수 없는 기시감을 느끼게 만든 것은 여전하다는 내용에서, 모든 것은 결국 사고 파는 과정이라는 성곤에게는 용납될 수 없는 규팔의 생각으로 인해 김성곤은 사회적 성공을 이루지 못한 것은 아닐까. 피자가게 사장과 직원의 관계에서 오피스텔을 공유하는 전사장과 초보 유투버인 성곤과 진석의 재회는 지푸라기에 잔뜩 부풀어 올라 튜브처럼 물 위로 자신들을 떠오르게 만들어 줄 것이라는 황당한 희망조차도 진심을 다해 응원하게 만든다. 이들이 바닥부터 다시 시작하는 장면은 우리는 모두 응원받을 자격이, 가치가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오늘 본 란희의 얼굴엔 아무런 감정이 남아 있지 않았다. 커다란 체에 좋은 것들, 그러니까 즐거움, 애정, 행복 같은 걸 탁탁 거르고 다시 한번 분노와 슬픔을 툭툭 걸러낸다. 마지막으로 온갖 앙금과 미련과 애증이 말라비틀어질 때까지 모든 감정을 시간의 태양 아래에 말린다. 그러고 나서 남은 흔적 같은 게 아까 자신을 바라본 란희의 얼굴에서 본 표정이었다. 그 체의 역할을, 란희에게서 그 모든 것을 앗아간 건 다른 누구도 아닌 김성곤 안드레아 자신이었다.(133)”


“세상에 던져졌으니 당연하지요. 태어나길 원하지도 않았는데 좁은 배 속에 꼼짝없이 갇혀 있다가 갑자기 발가벗겨진 채로 세상에 던져졌잖아요. 인간은 탄생부터가 외롭고 불안한 거예요. 그러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슨 수로 알겠어요. 아무거나 손에 잡히는 대로 일단 쥐어보는 거지요. 쥐었던 게 운 좋게 잘 풀리기도 하고, 이건 아닌데 싶지만 쥐었던 걸 놓을 용기는 없어서 울며 겨자 먹기로 꼭 쥐고 있기도 하죠. 그러다가 누군가가 그걸 빼앗아 가면 다시 세상에 던져진 어린아이처럼 울면서 불안해하는 겁니다. 손에 잡히는 것도, 의지할 데도 없이 발가벗겨진 채로 버둥거리고 있으니까. 다들 그러고 삽니다.(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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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책장 2022-09-12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제코루 2022-09-12 13:48   좋아요 0 | URL
축하 인사를 받고 뿜뿜해지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