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칸 푸드 : 난 슬플 때 타코를 먹어 띵 시리즈 19
이수희 지음 / 세미콜론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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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희 작가의 [멕시칸 푸드: 난 슬플 때 타코를 먹어]를 읽었다. 세미콜론 띵 시리즈 19번째 책이다. 타코, 브리또, 케사디야 등 멕시코 음식을 누구나 한 번쯤은 먹어보지 않았을까 싶다. 나도 호기심으로 멕시코 음식점을 몇 번 간 적이 있어서 흥미롭게 또띠야에 부재료를 넣고 살사를 바르고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어쩌다 한 번, 아니 또 누군가가 강력한 제의를 한다면 모를까 저자처럼 내일 또 타코를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저자의 책을 읽으며 마리 데 키친이라는 멕시코 음식점이 이렇게 가까이 있었다는 너무나도 감사한 정보와 더불어 포솔레라는 처음 듣는 멕시코 전통 스튜를 맛보고 싶어졌다. 특히나 이렇게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이면 한 여름이라도 뜨끈한 국물 한 모금에 눅눅했던 기분이 순식간에 날아가버리니까 말이다. 


글에는 냄새도 침샘을 자극하는 사진도 없지만 묘사된 내용을 상상하며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자극을 유발한다. 아니 오히려 후각과 시간을 자극하는 각인된 대상이 없기에 무한한 상상을 증폭시켜 언젠가 맛볼 음식에 대한 기대를 더욱 높이게 된다. 그래도 저자가 소개하는 음식들이 대체 어떻게 생긴 것일까란 궁금증을 물리칠 수 없어 검색사이트를 열게 된다. 남미에 가본 적이 없지만 베로나에서 머물 때 가끔 멕시코 음식점을 가곤 했다. 파스타에 물리고 지친 날 우리 음식처럼 매콤한 맛은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은 자극적인 맛을 기대하며 타코를 주문하곤 했다. 우리가 흔히 멕시코의 술 하면 테킬라라고 생각하지만 더 전통적인 술은 메스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메스칼이란 용설란(agave)의 수액을 발효시켜 만드는 멕시코의 증류주다. 용설란 표면에 붙어 사는 나방 유충을 아가베 웜이라 부른다.(119)" 


베로나의 멕시코 음식점에서 메스칼을 마셔볼 수는 없었지만, 대신에 테킬라 붐붐 이라는 일종의 술 장난을 알게 되었다. 실제 메뉴 판에도 테킬라 스트레이트 한 잔, 테킬라 붐붐 이라고 표시되어 있어서 이건 뭘 말하는 것일까 궁금했다. 처음 같이 갔던 지인이 그날따라 술이 땡겨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재미있는 걸 보여주겠다며 테킬라 붐붐을 주문했다. 곧이어 테킬라 석 잔이 테이블 위에 놓여지고 술을 가져다 준 분은 갑자기 호르라기를 입에 물었다. 지인이 한 잔을 들어 마시기 시작하자 호르라기는 쉴 세 없이 큰 소리를 내며 식당의 모든 사람을 주목시켰다. 난데없는 호르라기 소리에 깜짝 놀란 나는 이게 하나의 퍼포먼스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웨이터는 호르라기 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곧이어 지인이 두 번째 잔을 원샷하고 마지막 잔까지 다 비우고 나서야 호르라기 소리는 멈추었다. 조금은 어이없는 퍼포먼스가 끝나자 다른 테이블의 손님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아 이게 테킬라 붐붐이구나 진짜 섣부르게 주문했다가는 바로 뻗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과 더불어 이걸 누구한테 써먹지라는 얍삽한 마음이 들었다. 얼마 후에 후배가 방학을 맞이해 장시간 기차를 타고 온 터라 그 멕시코 음식점을 데리고 갔다. 그리고 필살기 테킬라 붐붐을 한 번 시켜보라고 제안했다. 후배는 의아해하며 순순히 내 말을 따랐고 그 이후는 뭐 말하지 않아도...


저자의 멕시코 음식에 대한 사랑은 코로나 시국임에도 불구하고 멕시코 현지를 방문해서 타코 음식 거리를 거닐게 만들었고 스타벅스의 오르차타는 실제로는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그 맛을 재현하는 주문 방식으로 맛보고 싶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야기의 말미에 등장한 푸올이라는 고급 멕시코 레스토랑에 대한 묘사는 그야말로 저자의 멕시코 음식에 대한 열정에 보답한 타고신의 아량처럼 여겨진다. 몇 달 전에 예약을 해야만 가능한 다이닝 코스를 마치 저자를 위해 빈 자리가 생기기라도 한 것처럼 여행 기간에 그곳을 방문할 수 있는 행운은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이 책이 나오기까지 숭고한 마음으로 타코와 브리또와 케사디야를 만들어 먹으며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충실한 시간을 보낸 이들만이 받을 수 있는 선물이 아니었을까 싶다. SNS에 범람하는 유사한 화려함이 아니라 이렇게 자신이 좋아하는 무엇을 향해 투신할 수 있는 이들의 애정이 부럽고 또한 그 뜨거움을 이렇게 책으로나마 나눌 수 있어서 좋다.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일은 뭘까? 나는 '결핍'을 채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갖지 못한 것, 나에게 없다고 느껴지는 것을 구경하는 일이 가장 재밌다. 옷을 사고 싶을 때는 눈이 빨개지도록 쇼핑몰을 구경하고, 여행이 가고 싶을 때는 온갖 여행 후기를 읽는다. 유튜브의 알고리즘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현대 기술과 마케팅은 개개인의 결핍을 판별하고 욕망을 제안하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다.(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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