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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에 대하여 - 박상영 연작소설
박상영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7월
평점 :
박상영 작가의 [믿음에 대하여]를 읽었다. 연작 소설로 ‘요즘 애들’, ‘보름 이후의 사랑’, ‘우리가 되는 순간’, ‘믿음에 대하여’ 이렇게 4편이 수록되어 있다. 각 단편마다 화자인 주인공의 이름이 표기되어 누군가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연작소설을 읽을 때마다 특히 박상영 작가의 소설은 대부분 연작소설집으로 묶여 나오기에 매번 놀라게 되는 점이 있는데, 바로 각 단편의 주인공들의 시선으로 읽을 때와 그 주인공들이 다른 단편에서 상대방이나 주변 인물로 나올 때의 시선이 너무나도 다르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주인공의 시선으로 소설이 진행될 때에는 주인공이 처한 상황과 감정에 단숨에 몰입되어 모든 정황이 주인공을 힘들게 한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가 이렇게 고난을 겪고 난처하게 된 것은 주인공의 탓이라기 보다는 세상이, 그리고 주인공의 주변 인물들 때문이 아닐까라라는 어느덧 주인공의 가족이나 부모가 된 것처럼 그의 편을 들게 된다. 하지만 이어지는 또 다른 단편에서 등장한 전편의 주인공은 새로운 단편의 주인공의 시선에서 바라보았을 때 허점이나 모순이 너무나도 많은 인물이다. 그가 주인공일 때에는 모든게 납득이 되던 상황들이 새로운 주인공의 시선으로 바라보니 어쩌면 모든 문제의 원인은 전편의 주인공 때문이 아닐까란 막연한 추측에 다다르게 한다.
소설 속에서는 이렇게 자신의 주관적 입장이 아닌 타인의 시선으로 좀 더 객관적으로 사건과 정황을 살펴볼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이런 생각이 자주 든다. 내가 봤을 때 저 사람은 정말 이상한데, 저 이상한 사람에게도 친한 사람이 있고 심지어 사람들이 그 이상한 사람을 칭찬하고 좋아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일들이 반복될 때면 혹시 내가 이상한 사람이 아닐까란 생각마저 든다. 만일 내가 판단하는 것처럼 저 사람은 괜찮은 사람, 이 사람은 이상한 사람이라는 결론이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면 내가 혹평한 누군가는 죽을 때까지 외롭고 쓸쓸하게 살아가며 온갖 비난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나의 시선과 판단이 절대로 옳을 수가 없고 나의 호불호가 누군가에게는 정반대의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무척이나 다행스러운 것은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나를 몹시도 좋아해주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이다. 저자의 소설을 읽을 때면 이렇게 다양한 시선으로 주인공들의 삶을 바라보며 편견과 선입견에 휘말려온 시간들을 돌아보게 만든다.
우리나라 퀴어 문학의 대표 주자 중의 한 명인 저자의 소설에는 언제나 게이 동성 커플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번 연작 소설에는 김남준, 고찬호, 유한영과 황은채, 임철우 이들의 팍팍한 직장생활 분투기와 더불어 ‘요즘 애들’이라는 시대적 반복어가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소설의 심장부를 가로지르는 사건은 실제로 제작년 팬데믹 초기에 발생한 ‘이태원 발 코로나 확진자의 거짓말’을 모티브로 삼고 있다. 사실 그 일이 뉴스를 통해 보도되었을 당시만 해도 확진자의 동선 거짓말로 인해 무고한 학원생들의 집단 확진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었다. 지금과 비교하면 말도 안될 정도로 확진자의 수가 적었음에도 생소한 전염병에 대한 두려움이 증폭되었던 터라 확진자의 동선은 개개인의 동의 없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사생활 침해 및 인권 유린에 대한 위험성이 조심스럽게 대두되던 때였다. 하지만 인권이고 사생활이고 간에 사람 목숨 살리는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우리나라 사회에서 확진자가 거짓말을 했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고 모든 언론들의 집중포화로 그 학원강사를 이미 만신창이를 만들어버렸다. 시간이 흐른 후에 그가 거짓말을 했던 이유는 성소수자임이 드러날까 두려웠기 때문임을 알게 되었다. 그가 성소수자임이 밝혀지자 소설에 나온 것처럼 이태원 클럽이 마치 온갖 더러운 것들의 온상인양 비아냥거리고 혐오하는 이들이 이때다 싶은 듯이 그들을 짓밟는 거친말을 서슴없이 내뱉었다.
누군가를 비난하고 평가절하하는 것은 너무나도 쉬운 일이다. 실제로 그가 어떤 사람인지 검증할 필요도 없이 그냥 느낌대로 그럴 것이라는 가정을 부풀리고 상상하여 팩트로 단정짓듯이 자신있게 말하면, 그 말을 들은 누군가가 거기에 자신의 생각을 더 보태어 비난의 대상을 더욱 형편없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렇게 여러 사람의 입에 오르내린 사람은 마주한적도 없는 이들의 입에서 온갖 더러운 것들이 묻어난 씹던 껌처럼 되어버리곤 한다. 하지만 반대로 누군가를 칭찬하고 추앙하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사람들은 누군가에 대한 호감어린 말을 귀담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칭찬은 재미없고 루즈하며 뭔가 이유가 있어서 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대체 뭘 받아먹었길래 라는 의구심어린 눈빛으로 칭찬하는 사람을 겸연쩍게 만든다. 그래서 험담보다 칭찬을 할 때 더욱 신경이 쓰인다. 팬데믹으로 인해 전지구적인 고통을 받는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이 겪는 불편함은 생활고를 겪거나 성소수자처럼 동선이 드러나기를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걸린 사활과는 도저히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그럼에도 재난과 같은 상황이 벌어졌을 때 그 상황을 이겨내기 위한 해결의 절차는 가진 것이 없는 이들과 소수자의 수준에서 맞춰지기 보다는 있는 자들의 머리속에서 그려낸 것으로 결정될 때가 많다. 가진 것이 많을 때에는 그것을 놓치고 싶지 않아 시선이 좁아질 수 밖에 없다. 저자의 연작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다양한 시선은 그래서 지금처럼 예민하고 날카로운 시대에 더더욱 시의적절하지 않았나싶다.
“서른한 살, 벌써 네번째 신입 사원이 된 나는 스물세 살에 잡지사에 들어와 내 나이 무렵에 이미 팔년 차 직장인이었던 배서정의 삶에 대해 생각한다. 나도 모르는 새 내 삶에 옮겨붙은 어떤 안간힘의 궤적을 말이다. 그리고 이제 나는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배서정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던 만큼 배서정 역시 자신의 방식으로 나와 황은채를, 요즘 애들이라고 이름 붙여진 불가해의 영역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사실을. 어떤 종류의 이해는 실패하고 나서야 비로서, 삶의 자세로 남기도 한다. 내게는 그 시절이 그랬다.(62)”
“모든 게 서럽고 원망스러웠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누군가의 탓을 하는 시대에 나는 누구를, 무엇을 원망해야 할지 몰랐다. 하루에 십수 명이 확진될 땐 세상이 무너질 것처럼 야단하며 확진자 동선을 낱낱이 공개하고 술집 영업을 제한하더니 이제는 하루에 몇십만 명이 걸려도 아무런 통제도 하지 않는 정부를? 이태원 상권이 싸그리 몰락한 이 판국에도 단 한 푼도 빼먹지 않고 꼬박꼬박 임대료를 받아 챙기는 건물주를? 아니면 딱 요맘때 이태원을 헤집었던, 기남시 55번 환자를? 최초로 한국에 이 병을 들여온 사람을? 아니면 어머니가 그토록 믿는 신을 탓해야 하나? 아무것도 믿지 않는 나는 도통 무엇을 탓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저 나 자신의 탓으로 돌이기로, 이 모든 것들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나 자신을 비난하기로 하는 수밖에 없었다.(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