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나쁜 일 오늘의 젊은 작가 37
김보현 지음 / 민음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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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현 작가의 [가장 나쁜 일]을 읽었다. 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37번째 작품이다. 그동안 읽었던 젊은 작가 시리즈 중에 가장 분량이 많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는데, 다양한 인물의 등장과 더불어 촘촘하게 얽힌 사건들을 전개하고 마무리되기까지 쉴틈없는 서사에 흠뻑 빠져들었다. 제목에 담긴 의미처럼 ‘가장 나쁜 일’, 살아가면서 내가 겪은 가장 나쁜 일은 무엇이었을까 돌아보게 만든다. 혹자에게는 한 평생 열심히 모든 돈을 사기를 당한다거나, 믿었던 지인을 위해 보증을 섰다가 전재산을 날리는 일을 겪는다던지, 몸을 아끼지 않고 일하다가 중병을 앓게 된다던지, 사랑하는 사람에게 처절히 배신당한단던지, 큰 사고를 당해서 몸을 다치게 된다던지 하는 일들이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인생의 가장 나쁜 일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남의 불행을 보고 순간적인 위로를 받는 이기적인 인간이 되고 싶지는 않지만, 때때로 가까운 사람들의 불행한 소식을 들을 때면 나약하게도 지금의 상황을 감사하게 된다. 


소설의 주인공 정희는 3년 전에 사랑하는 아들을 떠나보냈다. 아들의 갑작스런 발병에 남편 성훈과 발버둥치며 심장이식을 받으려 노력하지만 첫 번째 이식이 부작용을 일으키고, 기적적으로 잡은 두 번째 이식은 수술 비용을 마련하지 못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고 만다. 자식을 먼저 앞세운 슬픔은 그 어떤 것으로도 견줄 수 없다고 하는데, 설상가상으로 정희의 눈 앞에서 남편 성훈과 어떤 여자가 함께 사라지고 성훈과는 더 이상 연락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성훈과 정희의 이야기가 펼쳐지기 앞서 한강 다리 위에서 어떤 여자와 남자가 투신을 하고 여자는 죽고 남자만 살아서 나오게 된다. 그 여자와 남자는 누구일까 라는 궁금증을 갖고 정희의 여정을 따라가게 된다. 정희는 아들의 죽음 이후 우울증과 심한 신경증을 겪으며 남편과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다시 마음을 잡고 직장을 구하기 위해 면접을 보고 나오며 남편 성훈과 전화통화를 하지만 성훈은 어디선가 본듯한 여자와 사라진다. 그리고 이야기는 성훈의 이란성 쌍둥이 동생 지애의 남편이 찾아오면서 미궁으로 빠지게 된다. 어딘가 계획된 듯한 이미지를 풍기는 지애의 남편 김영호는 정희를 찾아와 아내 지애의 행방을 수소문 한다. 지애의 남편을 처음 본 정희는 의구심을 품지만 영호의 지략으로 정희는 더 이상 의심을 품지 않게 된다. 성훈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여기에 표철식이라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는 성훈과 함께 투신했던 성록혜의 남편이다. 철식은 성훈이 아내 록혜를 죽게 만들었다는 생각으로 성훈을 납치, 감금, 폭행하며 진실을 토로하게 만드는데, 이 모든 것은 영호가 탈북자 서점례와 계획해서 만든 일이었다. 영호는 철식이 성훈을 죽일 것이라 예상했지만, 철식은 성훈이 진실을 털어놓자 그냥 놔주게 된다. 계획이 틀어진 영호는 성훈을 자신이 바지원장을 내세워 실제 주인이 된 병원으로 끌어들여 마치 투신 자살을 한 것처럼 꾸민다. 성훈이 투신 자살을 한 것처럼 병원 9층에서 떨어질 때 때마침 마당에 서 있던 치매를 앓던 노인과 부딪혀 죽게 되고 성훈도 얼마 후 죽게 된다. 


아들을 떠나보낸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한 정희는 남편의 죽음에 몸부림치지만 장례식장에서 그녀에게 다가와 말을 건네 경찰의 이야기는 너무나도 충격적이다. 남편이 내연녀와 불륜관계를 이어오다 변심한 내연녀를 죽이고 죄책감에 괴로워하다가 투신 자살을 했다는 말이다. 정희는 자신의 남편이 그럴리 없다고 도리질하지만 영호의 계획은 차근차근 이루어져갔다. 슬픔과 좌절 속에서도 정희는 철식과 관련된 단서를 알아내고 철식의 집을 찾아가 전모의 발달을 얻게 된다. 만일 철식이 서점례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아내 성록혜에게 또 다른 탈북 남자가 있다는 것을 인정했더라면 정희는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철식은 정희와 마찬가지로 배우자에 대한 마지막 실낱같은 희망으로 영호의 계획에 차질을 빗게 만든다. 정희가 영호의 병원을 찾아가 다시 납치되고 그곳에서 탈출하며 혹시나 모를 위험을 예방하기 위해 최형사에게 예약 메시지를 보내는 장면은 흡사 첩보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려졌고 악마와도 같은 영호의 최후의 순간은 무척이나 비참했지만 그가 계획했던 모든 일의 가장 나쁜 순간은 다행히 이어지지 않았다. 


등장 인물들의 다양한 서사와 배경은 한 인간의 삶이 이토록 저주스러울 정도로 불행할 수 있을까란 안타까움과 더불어 탈북자들의 불안한 일상이 그려져 씁쓸한 마음은 배가 되었다. 영호가 이토록 잔악한 수법으로 많은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이유가 어린 시절 아버지의 우연한 선행이 엄청난 보험 보상금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로 비롯되었다는 것 또한 착잡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인간이 존엄성을 가질 수 있기 위해서는 마치 그 어떤 순간에도 돈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구성원으로서 그들에게 가장 나쁜 일은 죄를 지어 누군가를 미궁에 빠트리는 것이 아니라 그 나쁜 일이 성공하지 못해 다시금 수렁속으로 빠져드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더욱 서늘하게 다가온다. 


“그녀는 희망이 없다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이제부터 상황이 어떤 식으로 치달아 갈지 역시 감히 확신할 수 있었다. 가슴이 조여왔다. 정희는 손으로 눈을 가린 채 조용히 흐느꼈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 모르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도 이것은 끝이 아니며 가장 나쁜 일도 아니고,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일들은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다는 걸 차마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다.(207)”


“칼바람이 부는 벌판을 홑껍데기만 걸치고 걸어야 했을 때, 사방에서 안광을 번뜩이며 두 사람을 노리는 산짐승들을 피해 기어서 산을 너머야 했을 때…. 의식은 흐려지고, 의지는 산산이 흩어지고, 희망은 전부 바닥에 떨어져 다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철식이 록혜에게 말했었다. 마음속에 못 하나만 박아. 그럼 다시 하나, 둘 걸 수 있다. 떨어진것을 먼저, 흩어진 것을 그다음에, 나중에는 흐려진 것도 붙잡아 걸 수 있게 된다고…(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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