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우리에게 닿기를 - 어느 이탈리아 가이드 가족의 팬데믹 일상을 여행하는 방법
김민주 지음 / 제철소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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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주 작가의 [우리가 우리에게 닿기를]을 읽었다. 부제는 "어느 이탈리아 가이드 가족의 팬데믹 일상을 여행하는 방법"이다. 얼마 전 '아무튼 출근'이라는 프로그램에 나온 저자 가족의 일상을 본 적이 있었다. 팬데믹 상황으로 전 세계가 마비만 상태에서 여행은 그야말로 언감생심이니, 여행 가이드의 일상이 어떻게 변해버렸을지는 말해 뭐하겠는가? 로마에 살 때 남쪽을 가보고 싶긴 한데, 개인적으로 가는 게 엄두가 안나서 자전거 나라의 남부 투어를 신청한 적이 있다. 그동안 일명 패키지 여행을 통해 몇 번 경험한 가이드로 인해서 인지, 기대를 별로 안하는 편이었는데, 버스를 타고 가며 쉴세없이 이탈리아와 일정에 대한 설명을 전해주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동안 내가 만났던 가이드와는 완전히 다른 진짜 가이드를 만난 기분이었다. 특히나 아직도 잊히지 않고 오랜 시간 기억에 남는 말을 전해주었던 가이드! 아말피 해안도로에 들어섰을 때, 수신기를 통해 김동률의 '출발' 노래를 들려주며 전해주었던 말은 아주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아름다운 곳을 볼 때마다 떠올랐다. 그리고 감동에 젖은 나를 순식간에 무너뜨리기를 작정이라도 한듯이 '거기 오만식 닮으신 분'이라는 말에 화들짝 놀랐던 기억도~ 내가 만났던 가이드가 이 책을 쓴 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렇게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생계의 위협을 느끼는 가운데에도 로마의 삶을 이어나가고 있음에 응원을 보내드리고 싶다. 


유튜브 '로마 가족'을 통해서 한산한 로마 시내를 볼 때면 팬데믹이 가져온 그 여유로움이 너무나도 신기하게 다가온다. 새벽 시간이 아니고서는 그렇게 한산한 로마 시내를 걸어본 적이 없었는데, 그리고 바티칸 박물관의 복도에서 주저앉아 그림을 그릴 수 있다니, 이건 정말 기적같은 일이 아닐까? 멋지고 아름다운 곳과 유서깊은 유적을 보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사람에 치이다보면 어서 빨리 그곳을 벗어나고만 싶어지니 말이다. 우리나라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단계별로 시행하기는 했어도 봉쇄라는 상태까지는 가지 않았기에, 한 달 넘게 집에 갇혀 외출이 불가능했던 이들이 어떻게 이 시기를 견뎌냈는지 감히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드디어 봉쇄가 풀리고 집 앞의 BAR가 열리는 소리를 듣고 뛰어내려갔다는 말에 '그렇지'라고 무릎을 칠 수 밖에 없었다. 이탈리아에 살면서 BAR가 없는 삶을 상상할 수나 있을까? 카페와 카푸치노와 꼬르네또 없이 아침을 맞이할 수 있을까? 너무나도 일상적이고 당연했던 수순들을 단숨에 앗아가버린 바이러스의 만연은 누구에게라도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게 만든다. 


특히나 이번 사태를 통해 아시아인들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넘어서는 폭력이 발생했다는 뉴스 보도를 들을 때마다 어쩌면 체면과 우월함이 가득한 자만에 감춰진 배타적이고 공격적인 의식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터져나온 것은 아닐까 우려가 되곤 했다. 인종 차별적인 말투와 작은 행위에도 막상 그 대상이 될 경우에는 꽤나 큰 상처를 받게 되는데, 거기에 생명에 위협을 가하는 폭력까지 당할 때에는 그야말로 패닉 상태에 이르게 될 것이다. 저자의 가족이 이탈리아에 사는 이방인으로서 언제든 당할지 모를 아시아인들에 대한 혐오의 두려움을 고백한 내용은 점차 이주민이 늘어나는 한국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그런 혐오의 마음과 행동을 한 적은 없었는지 돌아보게 만들었다. 


팬데믹이라는 불가항력의 시간을 통해 오히려 온전히 자기 자신에게 제대로 된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다는 내용은 이 어려운 시기가 단지 고통만을 주는 것은 아니라는 희망을 갖게 만든다. 


"코로나19는 지금 누구나 겪고 있는 일이잖아. 바꿀 수도 없고 바뀔 수도 없는 사실이야. 그런데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우리의 시간과 속도로 살 수 있는 순간이 아닐까? 우리가 등반할 준비가 되었음을 믿어 보자. 어려움과 함께 머물 용기가 있음을 믿어야 해. 자, 그럼 네가 지금 하고 싶은 것은 뭐야? 후회도 두려움도 없이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게 뭐지? 멀리, 빨리 날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름답게 날기 위해 지금 네가 도전하고 싶은 것이 뭐야?(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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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 (양장) 소설Y
이희영 지음 / 창비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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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영 작가의 [나나]를 읽었다. ‘나’에게서 ‘나’로 돌아갈 시간, 단 일주일! 이라는 뒷표지의 문구처럼 제목 [나나]는 바로 자기 자신을 뜻한다. 지금은 때와 장소에 따라서, 아니 웬만해서는 멍석을 깔아줘도 ‘진지빤다’는 요샛말처럼 ‘삶의 의미’와 같은 철학적인 내용을 담은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어쩌면 극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고는 내 마음을 잘 표현하지 않아서 새로운 친구 관계가 형성되지 않는 것은 아닌가 싶다. 그런데 고등학생 때에는 의외로 심각한 얘기를 하는 것을 좋아했다. 성당 고등부 교리 시간에 어떤 주제를 중심으로 각자의 의견을 나누는 시간이 많았다. 이사를 가고 성당이 바뀌면서 교리반 친구들이 모두 바뀌어서 어색하고 재미없었고 무엇보다도 양아치 같은 애들이 너무 싫었다. 친해진 애들이 거의 없었음에도 꾸준히 교리반을 나갔다. 그리고 나눔 시간이 되면 다른 애들이 말을 하던지 말던지 나의 솔직한 생각을 조리있게 말하기 위해 머리속으로 미리 준비하곤 했다. 심지어 어서 내 차례가 와서 나의 생각을 다른 이들에게 전해주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인간에 대한 공부를 시작하면서 오히려 반대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실없는 말과 행동이 절반이고 나머지는 엉뚱한 상상의 나래를 펴느라 어린 철학자의 모습의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앞으로 과학이 얼마나 발전할지 모르겠지만 인간의 영혼에 대한 검증은 절대로 완벽하지 이루이지 않을 것이다. 형이상학적 존재에 대한 완벽한 수학적 결론이 날 수 없는 것처럼, 우리의 육체적 죽음 이후에 인간 영혼에 대한 문제는 논리적 접근이 불가능하기에 우리는 신앙이라는 또 다른 길로 다가설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신을 믿지 않는다는 불가지론자들도 귀신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나 재수와 운명을 따르는 기복적인 행태를 보이곤 한다. 그리고 도저히 우리가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참담한 상황을 접하게 되었을 때, 절대자에 대한 간절한 마음이 자신도 모르게 생겨나곤 한다. 믿음이라는 것은 때로는 잘못된 신념이 되어 인간관계를 망치고 기함을 금치 못하는 만행을 저지르는 원천이 되기도 하지만,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야만 하는 우리에게 믿음은 신뢰의 바탕이 되고 내가 편히 기댈 수 있는 존재 하나만으로 죽음의 구덩이에서 벗어날 힘이 솟아나기도 한다. 


살아있는 영혼을 사냥하는 ‘선령’이라는 신선하면서도 섬뜩한 조력자를 등장시켜 주인공 한수리와 은류가 자기 자신을 찾아나서는 일주일 간의 에피소드는 10대 때의 에너지 넘치는 모습이 떠오르게 만든다. 완벽한 여고생이라고 말할 수 있는 수리는 공부도 잘하고, 친구들과도 잘 지내고, 유행에도 민감하다. 남들이 보기에는 부러울 정도이지만 실제로 수리는 보여주기 위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닌가란 회의감이 밀려온다. 은류는 동생 완이를 먼저 떠나보내며 자책하는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다 영혼을 잃어버리게 된다. 어릴때부터 아팠던 완이를 돌보는 엄마를 위해 일찌감치 철이 들어 예스맨이 된 류는 자기 자신에게도 노우 라는 말을 하지 못한다. 크리스마를 앞둔 일주일 동안 수리와 류는 영혼이 떠난 육체만 남은 수리와 류 자신을 바라보며 영혼과 육체의 만남을 가로막는 결계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서서히 깨달아 나간다. 


유체이탈이라는 신비로운 경험을 하지 않고서는 자기 자신을 완전히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는 없다. 내가 누군가를 험담하고 비판하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나를 바라본다면 쥐구멍이 당장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비겁한 나와 부끄러운 나의 모습을 모르고 사는 게 편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자주 든다. 하지만 선령을 통해 자기 자신을 찾은 수리와 류의 이야기가 보여주듯이, 편한게 좋다고 남의 눈치 볼 필요 없다고 뻔뻔하게 자기 행복만 찾으면 된다며 생각하고 선택한 삶은 결국 언젠가 자신의 영혼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영혼이 1도 없다’라는 요샛말이 진짜 나의 삶이 되면 안되겠지!


“인간은 느낌을 사실로 여기는 멍청한 오류를 자주 범해. 귀신이 나올 것 같으면 멋대로 흉가라고 단정 짓고, 맛있어 보이는 음식이 입에 맞지 않으면 속았다고 해. 나랑 통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으면 쓸데없는 배신감을 느끼지. 모두 사실이 아닌 느낌인데 그 느낌이 진실이라 굳게 믿는다고.(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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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떠나온 세계
김초엽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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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엽 작가의 [방금 떠나온 세계]를 읽었다. 저자의 두 번째 소설집으로 “최후의 라이오니”, “마리의 춤”, “로라”, “숨그림자”, “오래된 협약”, “인지 공간”, “캐빈 방정식” 이렇게 7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전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의 소설집에서도 그랬듯이, 김초엽 작가의 소설은 우주와 물리학의 소재들이 대부분이라 어려울듯 하지만 과학의 문외한이라도 이야기의 맥락을 따라가는데에는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우주와 과학에 대한 소재들로 마치 공상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소설의 배경들은 신선한 매력을 느끼게 해 주었다. 


아직 인류는 지구를 벗어나 달에 발을 딛어 본 것 외에는 그 어떤 우주의 공간에서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없다. 그저 막연한 상상으로 우주의 어딘가에 우리와 비슷한 인지 능력을 가진 새로운 종이 존재하지 않을까 그려볼 뿐, 그래서 그런지 SF영화에는 유독 새롭게 발견한 행성에 인간의 모습과 유사하지만 귀나 눈이 이상하게 생긴 우주인이 등장하곤 했다. 그렇게 만난 우주인과 갈등을 겪기도 하며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기도 한다. 우리는 아직 그 누구도 그 가상의 존재를 마주한 적이 없기에 그저 우리와 비슷한 모습으로 우주인을 그려낼 뿐이다. 


이번 소설집에도 지구와 아주 멀리 떨어진 어느 행성의 이야기가 배경이 되는 이야기가 나온다. 공통적으로 지구는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되어버렸고, 지구를 기억하는 사람마저 다 죽게 되어 소설의 등장 인물들은 도서관과 같은 곳에서 자료를 통해서만 희미해져 가는 지구를 기억해 낼 뿐이다. 사실 요즘처럼 환경오염과 자연재해가 빈번해지는 것을 보면 영화에서처럼 우리가 더 이상 지구에서 살지 못하는 때가 오는 것이 아닌가란 두려움이 생겨난다. 특히나 “숨그림자”라는 단편에서 원형 인류라는 말이 나오고, 인류는 더 이상 지표면에 살지 않고 지하의 어느 곳에 머물며 숨그림자의 사람들은 더 이상 소리를 통해 소통하지 않고 입자를 통해 의미를 해석한다는 설정이 무척 독특했다. 단희와 조안의 안타까운 우정의 만남은 비록 의미통역기를 통해서만 가능했지만, 원형 인류에 해당되는 조안이 입으로 소리를 내고 냄새를 맡은 입자의 의미가 단희에게 특별한 기억으로 남을 수 있다는 사실은 공통된 인간 본성으로부터 비롯된 유사한 감각들을 소유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은 아닐까? 


저자가 다른 “오래된 협약”에서도 이정과 노아의 안타까운 이별을 그려내는 근원 또한 전혀 다른 종의 모습으로 우주의 어딘가에서 만난다 하더라도 소통이 가능하고 관계를 맺을 수 있다면, 인식이 불가능한 여타의 비인간 종들과는 다르게 소멸되는 순간까지 서로를 기억하려고 할 것이다. 오브의 행성인 벨라타에 살고 있는 노아와 같은 이들이 일찍이 생을 마감하고 마지막에는 정신적 착란의 고통을 겪으면서도 그들이 처한 상황에 순응하는 이유는 그들에게 삶의 공간을 내준 오브와 공존하기 위함이었음을 끝내 이정에게 설명하지 않는다. 


“캐빈 방정식”은 작년에 테마 소설집[시티 호텔]에서 한 번 읽었던 것이었음에도 현지와 현화 자매의 이야기는 여전히 마음 한 구석이 아려왔다. 그 자매의 이야기는 우리가 같은 시간을 살고 있음에도 누군가에게 무미건조하고 쓸모없이 흘려보낸 시간들이 누군가에게는 정말로 육체적 생존을 위한 전쟁과도 같은 시간이 될 수 있음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도 이제는 분명히 알겠어. 난 여기 속할 수 없는 사람이야.

네가 우주로 떠나서, 다른 인간종을 만나면. 다른 세계로 가면. 그러면 그곳에는 속할 수 있을 것 같아?

단희가 따져 물었다. 조안은 입을 꾹 다물었다. 

어떻게 그걸 확신해? 어차피 우린 다 비슷한 본성을 지녔어. 어떤 세계가 너를 받아주는 게 아니야. 그저 그곳에 너를 받아주는 어떤 사람이 있는 거야. (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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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아내를 위한 레시피
카르마 브라운 지음, 김현수 옮김 / 미디어창비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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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마 브라운의 [완벽한 아내를 위한 레시피]를 읽었다. 외국 작가가 쓴 책을 읽다보면 처음에는 우리와 다른 문화적 배경 때문인지 좀처럼 몰입이 잘 안될 때가 있다. 가보지 않은 곳이기에 책에 묘사된 정황이 그려지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 그리고 이런 모습은 우리와 참 많이 다르구나 라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펼쳐지면서 이야기의 전황은 다를 수 있어도 그 이야기의 핵심이 되는 사람에 대한 본질적인 고찰은 결국 같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번 작품은 1950년대의 넬리와 리처드라는 부부가 살았던 집에 2018년 엘리스와 네이트가 이사오면서 펼쳐지는 부부들의 이야기이다. 미국 맨하튼의 북적거리는 도시 한 가운데에 살았던 홍보 담당자 엘리스는 상사와 그가 담당한 유명 작가의 추잡스러운 행동으로 인해 회사를 그만두게 된다. 항상 미래를 계획해온 잘나가는 애널리스트 네이트는 엘리스와 함께 교외로 나가 여유롭게 살며 아이를 낳을 계획을 한다. 도시에서 항상 바쁘게 살아온 엘리스는 네이트가 고른 낡은 옛날 집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애써 그곳에 적응하려고 한다. 엘리스와 네이트가 고른 집은 오래전 넬리와 리처드가 살았던 집이다. 이야기는 과거로 돌아가 넬리와 리처드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엘리스와 넬리의 교차점은 넬리가 남긴 레시피로 인해서 이어진다. 엘리스는 넬리가 남긴 특이한 레시피에 집중하며 이웃집 할머니에게 전해들은 내용을 통해 넬리에 대한 궁금증이 점점 커져간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1950년대의 미국 사회도 결혼을 일찍해서 아이를 낳아 기르는 여성의 모습이 전형적이었던 것으로 그려진다. 넬리는 그녀의 남편 리처드가 결혼 전 알던 모습과는 판이하게 다른 폭력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어느 날 리처드에게 폭행을 당하게 된다. 넬리는 그녀의 엄마 엘시가 남겨준 비밀 레시피를 갖고 리처드를 대항하기 위한 그녀만의 계획을 세운다. 엘리스 또한 교외의 집에 머물며 예전의 직장생활을 그리워하게 된다. 아이를 원하는 네이트의 바람과는 다르게 엘리스는 자궁 내 기구를 통해 피임을 한다. 모든 사실을 알게 된 네이트는 불같이 화를 내고 엘리스가 감추었던 직장을 그만두게 된 이유도 알게 되며 둘 사이의 갈등은 극에 달하게 된다. 마치 넬리와 엘리스가 쌍을 이루듯 엘리스 또한 넬리처럼 네이트에게 복수를 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리처드는 넬리를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했고, 네이트는 리처드만큼은 아니지만 엘리스에게 상의하지 않고 이사계획을 세우게 된다. 


엘리스는 넬리가 지하에 남겨둔 잡지 꾸러미 속에서 넬리가 엄마에게 부치지 못한 편지를 발견하게 되고, 그 안에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리처드에 대한 분노로 복수심에 가득찬 넬리는 엄마 엘시가 알려준 방법으로 아이를 지우게 되고 리처드가 심장 발작을 일으켜 죽도록 만든다. 결과만 보면 완벽한 시나리오로 남편을 살해하고도 멀쩡한 넬리의 완전범죄를 그린 내용같지만, 엘리스가 네이트와의 갈등을 해결해나가는 과정 속에서 서서히 넬리의 불행했던 결혼생활이 그려져서 그런지 그렇게 잔혹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사회가 바라는 여성상이 크게 달라졌다. 이제는 성별을 구분하여 특징짓는 용어조차도 사용하기를 거부하는 이들이 많아지는 상태이다. 불과 50년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달라졌다. 이제는 그 누구도 여성이 결혼을 하면 집에서 아이를 키우고 남편 뒷바라지를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과거에 당연히 용인되어 부당한 대우를 받던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가 만연한 모습에서 우리가 반추해 볼 수 있는 것은 그들이 그렇게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을 몰랐던 것이 아니라 알면서도 자신을 희생하고 견뎌왔다는 사실이다. 그런 인내의 희생의 시간 덕분에 우리는 양육되고 성장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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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일을 헤매고, 해내고 - 오늘을 포기하지 않는 우리들의 이야기
임현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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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주 아나운서의 [우리는 매일을 헤매고, 해내고]를 읽었다. 10여년 전에 고가의 고어텍스 기능이 장착된 등산 자켓이 유행이었다. 비가 오는 날에도 거추장스레 우산을 쓸 필요없이 무심히 자켓에 연결된 모자를 뒤집어 쓰기만 하면 되는, 그리고 빗방울은 마치 유리창에 흘러내리듯이 자켓에 스며들지 않아 처마 밑에서 툭툭 떨어내면 언제 비를 맞았냐는듯이 뽀송뽀송해지는 그런 마법의 자켓 말이다. 그런 박스형의 자켓이 어울리지 않아 한 벌도 없었는데, 유럽에서 몇년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생전처음 고가의 고어텍스 자켓을 샀다. 글세, 영국이나 독일 즈음의 어느 나라였다면 안성맞춤이었겠지만 내가 지냈던 이탈리아는 앞서 말한 나라들처럼 찔끔찔끔 비가 내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처럼 세차게 내려서 아무리 뛰어난 기능의 고어텍스 자켓이라고 해도 비맞은 생쥐꼴이 될 것이 뻔하기에 우산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눈씻고 찾아봐도 그런 레인코트와 같은 옷을 입고 우아하게 돌아다니는 이탈리아노들은 거의 없었다. 저자가 프랑스 여행 중에 갑작스럽게 비를 맞은 이야기를 읽다가 고어텍스 자켓에 대한 생각이 떠오른 것이다. 


“다음 날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나오는데 비가 쏟아졌다. 파리의 변덕스러운 날씨에 적응하지 못한 나는 깜짝 놀라 급히 가방 속 우산을 뒤졌다. 하지마 어디로 갔는지 우산을 찾을 수가 없었다. 비를 피하려 뛰기 시작하는데, 주변 사람들은 여전히 천천히 걷고 있었다. 그렇게 걷다가 잠시 비를 피할 곳을 찾으면 슬쩍 비를 피하는 게 전부였다. 이곳에선 잠시 비를 맞는 게 전혀 어색할 게 없는 것처럼 보였다. 

비가 언제 그치나 하늘을 살피는 나와 달리, 내 옆의 사람들은 바쁠 것 없다는 듯 여유로워 보였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이런 마음이겠구나. 꼬여버린 상황을, 이해하기를 멈추는 것.’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생각할수록 상황에 대한 원망만 커질 뿐이었다. 그저 비가 오면 잠시 비를 맞고, 비를 피할 처마를 발견하면 비가 지나가기를 잠시 기다리면 된다. 비는 언젠가 그칠 테니까.(224-225)


납득하기 힘든 일들이 연속된다. 평소의 나보다 억지로 몇 배의 아량을 늘려 이해하려고 해도 ‘이건 아닌거 같은데’라는 생각이 자꾸 머릿속에 맴돈다. 그렇다고 욕을 한참 해봐야 시원한 느낌도 별로 들지 않는다. 자꾸만 이런 비합리적이고 이치에 맞지 않는 상황이 연속되는 일로부터 벗어나고만 싶다는 비겁한 생각이 든다. 언젠가 비가 그치긴 하겠지만 비를 맞고 걷는 것도 비를 피해 어딘가 처마 밑에서 묵묵히 기다리는 일도 쉽지많은 않다. 이럴때일수록 무심히 힘을 빼고 기다려야 하는 것일까?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 항상 TV에 나오는 화려해 보이는 아나운서라는 직업을 가진 저자도 그가 속한 사회 조직 안에서는 일반적인 사람들의 직장생활과도 똑같은 고민과 어려움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저자의 솔직담백한 고백으로 어쩌면 사회생활을 비굴하게 하지 자신을 버려가며 하지 않고, 떳떳이 자신을 사랑하며 용기낼 수 있는 길을 알려주고 있다. 책의 부제가 ‘오늘을 포기하지 않는 우리들의 이야기’라고 붙인 것처럼 세상 모든 일을 헤매지 않고 능수능란하게 처음부터 잘해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매일을 헤매지만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는다면 매일을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저자의 말에 희망을 놓치 않으련다. 그런 의미에서 Coragg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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