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일을 헤매고, 해내고 - 오늘을 포기하지 않는 우리들의 이야기
임현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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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주 아나운서의 [우리는 매일을 헤매고, 해내고]를 읽었다. 10여년 전에 고가의 고어텍스 기능이 장착된 등산 자켓이 유행이었다. 비가 오는 날에도 거추장스레 우산을 쓸 필요없이 무심히 자켓에 연결된 모자를 뒤집어 쓰기만 하면 되는, 그리고 빗방울은 마치 유리창에 흘러내리듯이 자켓에 스며들지 않아 처마 밑에서 툭툭 떨어내면 언제 비를 맞았냐는듯이 뽀송뽀송해지는 그런 마법의 자켓 말이다. 그런 박스형의 자켓이 어울리지 않아 한 벌도 없었는데, 유럽에서 몇년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생전처음 고가의 고어텍스 자켓을 샀다. 글세, 영국이나 독일 즈음의 어느 나라였다면 안성맞춤이었겠지만 내가 지냈던 이탈리아는 앞서 말한 나라들처럼 찔끔찔끔 비가 내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처럼 세차게 내려서 아무리 뛰어난 기능의 고어텍스 자켓이라고 해도 비맞은 생쥐꼴이 될 것이 뻔하기에 우산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눈씻고 찾아봐도 그런 레인코트와 같은 옷을 입고 우아하게 돌아다니는 이탈리아노들은 거의 없었다. 저자가 프랑스 여행 중에 갑작스럽게 비를 맞은 이야기를 읽다가 고어텍스 자켓에 대한 생각이 떠오른 것이다. 


“다음 날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나오는데 비가 쏟아졌다. 파리의 변덕스러운 날씨에 적응하지 못한 나는 깜짝 놀라 급히 가방 속 우산을 뒤졌다. 하지마 어디로 갔는지 우산을 찾을 수가 없었다. 비를 피하려 뛰기 시작하는데, 주변 사람들은 여전히 천천히 걷고 있었다. 그렇게 걷다가 잠시 비를 피할 곳을 찾으면 슬쩍 비를 피하는 게 전부였다. 이곳에선 잠시 비를 맞는 게 전혀 어색할 게 없는 것처럼 보였다. 

비가 언제 그치나 하늘을 살피는 나와 달리, 내 옆의 사람들은 바쁠 것 없다는 듯 여유로워 보였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이런 마음이겠구나. 꼬여버린 상황을, 이해하기를 멈추는 것.’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생각할수록 상황에 대한 원망만 커질 뿐이었다. 그저 비가 오면 잠시 비를 맞고, 비를 피할 처마를 발견하면 비가 지나가기를 잠시 기다리면 된다. 비는 언젠가 그칠 테니까.(224-225)


납득하기 힘든 일들이 연속된다. 평소의 나보다 억지로 몇 배의 아량을 늘려 이해하려고 해도 ‘이건 아닌거 같은데’라는 생각이 자꾸 머릿속에 맴돈다. 그렇다고 욕을 한참 해봐야 시원한 느낌도 별로 들지 않는다. 자꾸만 이런 비합리적이고 이치에 맞지 않는 상황이 연속되는 일로부터 벗어나고만 싶다는 비겁한 생각이 든다. 언젠가 비가 그치긴 하겠지만 비를 맞고 걷는 것도 비를 피해 어딘가 처마 밑에서 묵묵히 기다리는 일도 쉽지많은 않다. 이럴때일수록 무심히 힘을 빼고 기다려야 하는 것일까?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 항상 TV에 나오는 화려해 보이는 아나운서라는 직업을 가진 저자도 그가 속한 사회 조직 안에서는 일반적인 사람들의 직장생활과도 똑같은 고민과 어려움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저자의 솔직담백한 고백으로 어쩌면 사회생활을 비굴하게 하지 자신을 버려가며 하지 않고, 떳떳이 자신을 사랑하며 용기낼 수 있는 길을 알려주고 있다. 책의 부제가 ‘오늘을 포기하지 않는 우리들의 이야기’라고 붙인 것처럼 세상 모든 일을 헤매지 않고 능수능란하게 처음부터 잘해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매일을 헤매지만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는다면 매일을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저자의 말에 희망을 놓치 않으련다. 그런 의미에서 Coragg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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