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떠나온 세계
김초엽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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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엽 작가의 [방금 떠나온 세계]를 읽었다. 저자의 두 번째 소설집으로 “최후의 라이오니”, “마리의 춤”, “로라”, “숨그림자”, “오래된 협약”, “인지 공간”, “캐빈 방정식” 이렇게 7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전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의 소설집에서도 그랬듯이, 김초엽 작가의 소설은 우주와 물리학의 소재들이 대부분이라 어려울듯 하지만 과학의 문외한이라도 이야기의 맥락을 따라가는데에는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우주와 과학에 대한 소재들로 마치 공상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소설의 배경들은 신선한 매력을 느끼게 해 주었다. 


아직 인류는 지구를 벗어나 달에 발을 딛어 본 것 외에는 그 어떤 우주의 공간에서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없다. 그저 막연한 상상으로 우주의 어딘가에 우리와 비슷한 인지 능력을 가진 새로운 종이 존재하지 않을까 그려볼 뿐, 그래서 그런지 SF영화에는 유독 새롭게 발견한 행성에 인간의 모습과 유사하지만 귀나 눈이 이상하게 생긴 우주인이 등장하곤 했다. 그렇게 만난 우주인과 갈등을 겪기도 하며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기도 한다. 우리는 아직 그 누구도 그 가상의 존재를 마주한 적이 없기에 그저 우리와 비슷한 모습으로 우주인을 그려낼 뿐이다. 


이번 소설집에도 지구와 아주 멀리 떨어진 어느 행성의 이야기가 배경이 되는 이야기가 나온다. 공통적으로 지구는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되어버렸고, 지구를 기억하는 사람마저 다 죽게 되어 소설의 등장 인물들은 도서관과 같은 곳에서 자료를 통해서만 희미해져 가는 지구를 기억해 낼 뿐이다. 사실 요즘처럼 환경오염과 자연재해가 빈번해지는 것을 보면 영화에서처럼 우리가 더 이상 지구에서 살지 못하는 때가 오는 것이 아닌가란 두려움이 생겨난다. 특히나 “숨그림자”라는 단편에서 원형 인류라는 말이 나오고, 인류는 더 이상 지표면에 살지 않고 지하의 어느 곳에 머물며 숨그림자의 사람들은 더 이상 소리를 통해 소통하지 않고 입자를 통해 의미를 해석한다는 설정이 무척 독특했다. 단희와 조안의 안타까운 우정의 만남은 비록 의미통역기를 통해서만 가능했지만, 원형 인류에 해당되는 조안이 입으로 소리를 내고 냄새를 맡은 입자의 의미가 단희에게 특별한 기억으로 남을 수 있다는 사실은 공통된 인간 본성으로부터 비롯된 유사한 감각들을 소유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은 아닐까? 


저자가 다른 “오래된 협약”에서도 이정과 노아의 안타까운 이별을 그려내는 근원 또한 전혀 다른 종의 모습으로 우주의 어딘가에서 만난다 하더라도 소통이 가능하고 관계를 맺을 수 있다면, 인식이 불가능한 여타의 비인간 종들과는 다르게 소멸되는 순간까지 서로를 기억하려고 할 것이다. 오브의 행성인 벨라타에 살고 있는 노아와 같은 이들이 일찍이 생을 마감하고 마지막에는 정신적 착란의 고통을 겪으면서도 그들이 처한 상황에 순응하는 이유는 그들에게 삶의 공간을 내준 오브와 공존하기 위함이었음을 끝내 이정에게 설명하지 않는다. 


“캐빈 방정식”은 작년에 테마 소설집[시티 호텔]에서 한 번 읽었던 것이었음에도 현지와 현화 자매의 이야기는 여전히 마음 한 구석이 아려왔다. 그 자매의 이야기는 우리가 같은 시간을 살고 있음에도 누군가에게 무미건조하고 쓸모없이 흘려보낸 시간들이 누군가에게는 정말로 육체적 생존을 위한 전쟁과도 같은 시간이 될 수 있음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도 이제는 분명히 알겠어. 난 여기 속할 수 없는 사람이야.

네가 우주로 떠나서, 다른 인간종을 만나면. 다른 세계로 가면. 그러면 그곳에는 속할 수 있을 것 같아?

단희가 따져 물었다. 조안은 입을 꾹 다물었다. 

어떻게 그걸 확신해? 어차피 우린 다 비슷한 본성을 지녔어. 어떤 세계가 너를 받아주는 게 아니야. 그저 그곳에 너를 받아주는 어떤 사람이 있는 거야. (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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