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우리에게 닿기를 - 어느 이탈리아 가이드 가족의 팬데믹 일상을 여행하는 방법
김민주 지음 / 제철소 / 202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민주 작가의 [우리가 우리에게 닿기를]을 읽었다. 부제는 "어느 이탈리아 가이드 가족의 팬데믹 일상을 여행하는 방법"이다. 얼마 전 '아무튼 출근'이라는 프로그램에 나온 저자 가족의 일상을 본 적이 있었다. 팬데믹 상황으로 전 세계가 마비만 상태에서 여행은 그야말로 언감생심이니, 여행 가이드의 일상이 어떻게 변해버렸을지는 말해 뭐하겠는가? 로마에 살 때 남쪽을 가보고 싶긴 한데, 개인적으로 가는 게 엄두가 안나서 자전거 나라의 남부 투어를 신청한 적이 있다. 그동안 일명 패키지 여행을 통해 몇 번 경험한 가이드로 인해서 인지, 기대를 별로 안하는 편이었는데, 버스를 타고 가며 쉴세없이 이탈리아와 일정에 대한 설명을 전해주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동안 내가 만났던 가이드와는 완전히 다른 진짜 가이드를 만난 기분이었다. 특히나 아직도 잊히지 않고 오랜 시간 기억에 남는 말을 전해주었던 가이드! 아말피 해안도로에 들어섰을 때, 수신기를 통해 김동률의 '출발' 노래를 들려주며 전해주었던 말은 아주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아름다운 곳을 볼 때마다 떠올랐다. 그리고 감동에 젖은 나를 순식간에 무너뜨리기를 작정이라도 한듯이 '거기 오만식 닮으신 분'이라는 말에 화들짝 놀랐던 기억도~ 내가 만났던 가이드가 이 책을 쓴 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렇게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생계의 위협을 느끼는 가운데에도 로마의 삶을 이어나가고 있음에 응원을 보내드리고 싶다. 


유튜브 '로마 가족'을 통해서 한산한 로마 시내를 볼 때면 팬데믹이 가져온 그 여유로움이 너무나도 신기하게 다가온다. 새벽 시간이 아니고서는 그렇게 한산한 로마 시내를 걸어본 적이 없었는데, 그리고 바티칸 박물관의 복도에서 주저앉아 그림을 그릴 수 있다니, 이건 정말 기적같은 일이 아닐까? 멋지고 아름다운 곳과 유서깊은 유적을 보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사람에 치이다보면 어서 빨리 그곳을 벗어나고만 싶어지니 말이다. 우리나라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단계별로 시행하기는 했어도 봉쇄라는 상태까지는 가지 않았기에, 한 달 넘게 집에 갇혀 외출이 불가능했던 이들이 어떻게 이 시기를 견뎌냈는지 감히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드디어 봉쇄가 풀리고 집 앞의 BAR가 열리는 소리를 듣고 뛰어내려갔다는 말에 '그렇지'라고 무릎을 칠 수 밖에 없었다. 이탈리아에 살면서 BAR가 없는 삶을 상상할 수나 있을까? 카페와 카푸치노와 꼬르네또 없이 아침을 맞이할 수 있을까? 너무나도 일상적이고 당연했던 수순들을 단숨에 앗아가버린 바이러스의 만연은 누구에게라도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게 만든다. 


특히나 이번 사태를 통해 아시아인들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넘어서는 폭력이 발생했다는 뉴스 보도를 들을 때마다 어쩌면 체면과 우월함이 가득한 자만에 감춰진 배타적이고 공격적인 의식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터져나온 것은 아닐까 우려가 되곤 했다. 인종 차별적인 말투와 작은 행위에도 막상 그 대상이 될 경우에는 꽤나 큰 상처를 받게 되는데, 거기에 생명에 위협을 가하는 폭력까지 당할 때에는 그야말로 패닉 상태에 이르게 될 것이다. 저자의 가족이 이탈리아에 사는 이방인으로서 언제든 당할지 모를 아시아인들에 대한 혐오의 두려움을 고백한 내용은 점차 이주민이 늘어나는 한국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그런 혐오의 마음과 행동을 한 적은 없었는지 돌아보게 만들었다. 


팬데믹이라는 불가항력의 시간을 통해 오히려 온전히 자기 자신에게 제대로 된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다는 내용은 이 어려운 시기가 단지 고통만을 주는 것은 아니라는 희망을 갖게 만든다. 


"코로나19는 지금 누구나 겪고 있는 일이잖아. 바꿀 수도 없고 바뀔 수도 없는 사실이야. 그런데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우리의 시간과 속도로 살 수 있는 순간이 아닐까? 우리가 등반할 준비가 되었음을 믿어 보자. 어려움과 함께 머물 용기가 있음을 믿어야 해. 자, 그럼 네가 지금 하고 싶은 것은 뭐야? 후회도 두려움도 없이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게 뭐지? 멀리, 빨리 날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름답게 날기 위해 지금 네가 도전하고 싶은 것이 뭐야?(19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