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나 (양장) 소설Y
이희영 지음 / 창비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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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영 작가의 [나나]를 읽었다. ‘나’에게서 ‘나’로 돌아갈 시간, 단 일주일! 이라는 뒷표지의 문구처럼 제목 [나나]는 바로 자기 자신을 뜻한다. 지금은 때와 장소에 따라서, 아니 웬만해서는 멍석을 깔아줘도 ‘진지빤다’는 요샛말처럼 ‘삶의 의미’와 같은 철학적인 내용을 담은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어쩌면 극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고는 내 마음을 잘 표현하지 않아서 새로운 친구 관계가 형성되지 않는 것은 아닌가 싶다. 그런데 고등학생 때에는 의외로 심각한 얘기를 하는 것을 좋아했다. 성당 고등부 교리 시간에 어떤 주제를 중심으로 각자의 의견을 나누는 시간이 많았다. 이사를 가고 성당이 바뀌면서 교리반 친구들이 모두 바뀌어서 어색하고 재미없었고 무엇보다도 양아치 같은 애들이 너무 싫었다. 친해진 애들이 거의 없었음에도 꾸준히 교리반을 나갔다. 그리고 나눔 시간이 되면 다른 애들이 말을 하던지 말던지 나의 솔직한 생각을 조리있게 말하기 위해 머리속으로 미리 준비하곤 했다. 심지어 어서 내 차례가 와서 나의 생각을 다른 이들에게 전해주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인간에 대한 공부를 시작하면서 오히려 반대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실없는 말과 행동이 절반이고 나머지는 엉뚱한 상상의 나래를 펴느라 어린 철학자의 모습의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앞으로 과학이 얼마나 발전할지 모르겠지만 인간의 영혼에 대한 검증은 절대로 완벽하지 이루이지 않을 것이다. 형이상학적 존재에 대한 완벽한 수학적 결론이 날 수 없는 것처럼, 우리의 육체적 죽음 이후에 인간 영혼에 대한 문제는 논리적 접근이 불가능하기에 우리는 신앙이라는 또 다른 길로 다가설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신을 믿지 않는다는 불가지론자들도 귀신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나 재수와 운명을 따르는 기복적인 행태를 보이곤 한다. 그리고 도저히 우리가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참담한 상황을 접하게 되었을 때, 절대자에 대한 간절한 마음이 자신도 모르게 생겨나곤 한다. 믿음이라는 것은 때로는 잘못된 신념이 되어 인간관계를 망치고 기함을 금치 못하는 만행을 저지르는 원천이 되기도 하지만,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야만 하는 우리에게 믿음은 신뢰의 바탕이 되고 내가 편히 기댈 수 있는 존재 하나만으로 죽음의 구덩이에서 벗어날 힘이 솟아나기도 한다. 


살아있는 영혼을 사냥하는 ‘선령’이라는 신선하면서도 섬뜩한 조력자를 등장시켜 주인공 한수리와 은류가 자기 자신을 찾아나서는 일주일 간의 에피소드는 10대 때의 에너지 넘치는 모습이 떠오르게 만든다. 완벽한 여고생이라고 말할 수 있는 수리는 공부도 잘하고, 친구들과도 잘 지내고, 유행에도 민감하다. 남들이 보기에는 부러울 정도이지만 실제로 수리는 보여주기 위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닌가란 회의감이 밀려온다. 은류는 동생 완이를 먼저 떠나보내며 자책하는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다 영혼을 잃어버리게 된다. 어릴때부터 아팠던 완이를 돌보는 엄마를 위해 일찌감치 철이 들어 예스맨이 된 류는 자기 자신에게도 노우 라는 말을 하지 못한다. 크리스마를 앞둔 일주일 동안 수리와 류는 영혼이 떠난 육체만 남은 수리와 류 자신을 바라보며 영혼과 육체의 만남을 가로막는 결계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서서히 깨달아 나간다. 


유체이탈이라는 신비로운 경험을 하지 않고서는 자기 자신을 완전히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는 없다. 내가 누군가를 험담하고 비판하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나를 바라본다면 쥐구멍이 당장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비겁한 나와 부끄러운 나의 모습을 모르고 사는 게 편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자주 든다. 하지만 선령을 통해 자기 자신을 찾은 수리와 류의 이야기가 보여주듯이, 편한게 좋다고 남의 눈치 볼 필요 없다고 뻔뻔하게 자기 행복만 찾으면 된다며 생각하고 선택한 삶은 결국 언젠가 자신의 영혼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영혼이 1도 없다’라는 요샛말이 진짜 나의 삶이 되면 안되겠지!


“인간은 느낌을 사실로 여기는 멍청한 오류를 자주 범해. 귀신이 나올 것 같으면 멋대로 흉가라고 단정 짓고, 맛있어 보이는 음식이 입에 맞지 않으면 속았다고 해. 나랑 통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으면 쓸데없는 배신감을 느끼지. 모두 사실이 아닌 느낌인데 그 느낌이 진실이라 굳게 믿는다고.(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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