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황보름 지음 / 클레이하우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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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름 작가의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를 읽었다. 서점 어플에 뜬 광고 문구에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잡화점, 백화점, 편의점, 이번엔 서점이다” 뜬금없이 무슨 소리인가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그동안의 베스트셀러가 떠올랐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달러구트 꿈 백화점], [불편한 편의점] 그리고 이번 작품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까지. 잡화점과 백화점은 판타지 요소가 들어가 주인공들에게 놀라운 일상이 펼쳐진다면, 편의점과 서점은 너무나도 일상적인 주인공들의 평범한 모습 속에서 판타지 못지 않은 변화를 그려내고 있다. 


10여년 전 쯤 도서 정가제가 실행될 무렵에 더 이상 싼 가격에 책을 구입할 수 없다는 사실이 못내 아쉬웠다. 그런데 그 이후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독립 서점들의 발전을 지켜보며 도서 정가제가 실행되길 정말 잘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대형 서점들이 떨이 판매를 하듯이 묶음으로 처분하는 것과 동시에 인터넷 주문으로 책을 구입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동네 서점은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간간히 작은 서점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독립 서점이라는 이름으로 여느 서점들처럼 베스트셀러 위주가 아닌 책방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개성이 담긴 책 선정이 특징적이다. 특히나 소설에 나온 것처럼 서점은 더 이상 책을 팔고 사는 공간만이 아니라 저자와의 만남 또는 다양한 이벤트를 통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재발견되고 있다. 인터넷의 넘쳐나는 플랫폼과 콘텐츠의 바다 속에서도 아날로그 감성이 듬뿍 담긴 종이책을 여전히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꽤나 있다는 사실이 고무적이다. 

로마에 처음 도착했을 때는 해가 저물어가는 시간이었다. 아마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처음 유럽에 가면 비슷한 느낌을 가질 것 같은데, 바로 ‘아니 여긴 왜 이렇게 어두워’라는 반응이다. 가장 큰 이유는 우리나라처럼 백색 형광등을 사용하지 않고 주광색 백열등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최근 뉴스에서는 아무래도 전기세가 이유일텐데, 백열등을 형광등으로 교체하겠다는 정부의 의견에 시민들이 반대하고 있다는 내용을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아마 형광등이나 LED등으로 교체한다고 해도 절대로 백색등은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처음에는 낯설고 어둡게만 느껴지던 주광색 백열등에 한 번 매료되면 오히려 우리나라에 돌아와서 백색 형광등에 대한 거부감이 생긴다. 아마도 주광색이 주는 따뜻함 때문일 것이다. 

퇴근길 지친 발걸음으로 한숨과 푸념으로 오늘 하루는 간신히 마감했다는 생각으로 힘없이 걸어가는 도중에 집 근처에 은은한 주광색 불빛을 내비치며 누군가 고요히 책을 읽고 있고, 그 앞에는 가만히 커피를 내리고 있는 서점을 발견한다면 무언의 위로를 받게 되지 않을까? 나도 그곳에 동참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잠시라도 머물수 있다면 방전된 나의 헛헛한 마음도 어느 정도는 충전될 수 있지 않을까? 저자가 만들어낸 가상의 공간 휴남동 서점은 나름대로의 사정과 상처가 있는 이들이 자신의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 볼 수 있도록 기다려준다. 재빠르게 흘러가는 세상의 시간처럼 어서 빨리 추스리고 일어나 너의 몫을 해내라고 채근하지 않는다. 내가 지금 좋아하는 일을 해서 행복한 것인지, 그냥 주어진 일을 해서 행복하지 않은지, 불협화음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지, 화음이 좋은 시기를 보내고 있는지 그저 묵묵히 따뜻한 불빛으로 나를 기다려준다. 어쩌면 우리가 바라는 진짜 행복은 그렇게 말없이 기다려주는 누군가를 만나는 하루를 보내는 것일지 않을까. 그렇게 정성들여 만든 하루들이 모여 우리의 일상을 적지 않게 채워간다면 성공과 성취라는 목표와는 무관하게 나를 의미있는 존재로 인정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책을 읽으면 세상을 보는 눈이 밝아진다고 하잖아요. 밝아진 눈으로 세상을 더 잘 이해하게 되고요. 세상을 이해하게 되면 강해져요. 바로 이 강해지는 면과 성공을 연결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강해질 뿐만 아니라 고통스러워지기도 하거든요. 책 속에는 내 좁은 경험으론 결코 보지 못하던 세상의 고통이 가득해요. 예전에 못 보던 고통이 이제는 보이는 거죠. 누군가의 고통이 너무 크게 느껴지는데, 내 성공, 내 행복만을 추구하기가 쉽지 않아지는 거예요. 그래서 책을 읽으면 오히려 흔히 말하는 성공에서는 멀어지게 된다고 생각해요. 책이 우리를 다른 사람들 앞이나 위에 서게 해주지 않는 거죠. 대신, 곁에 서게 도와주는 것 같아요. 
그래서 결국 우리는 다른 면에서 성공하게 되는 거예요. 조금 더 인간다워지는 거요. 책을 읽다 보면 자꾸 타인에게 공감하게 되잖아요. 가만히 있으면 절로 성공을 향해 무한질주 하게끔 설계된 이 세상에서 달리기를 멈추고 주위 사람들을 돌아보게 되는 거죠. 그러니 책 읽는 사람이 늘어나면 이 세상이 조금이나마 더 좋아질 거라고 전 생각해요.(55-56)”

“지미의 말처럼 원두는 무한대의 경우의 수로 블렌딩할 수 있었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방식으로 재배해도 원두 맛은 달라지고, 같은 원두라도 커피 맛은 달라진다. 자연이 하는 일이라서 그렇고, 사람이 하는 일이라서 그렇다. 책을 읽는 일과 커피 내리는 일은 비슷한 점이 꽤 있는 것 같았다. 누구나 쉽게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이 그렇고, 하면 할수록 더 빠져든다는 점이 그렇고, 한번 빠져들면 쉽게 헤어나오지 못한다는 점이 그렇고, 점점 더 섬세함이 요구된다는 점이 그렇고, 결국 독서의 질과 커피의 질을 좌우하는 건 미묘한 차이를 이해하는 데서 비롯된다는 점이 그렇다. 결국 독서가와 바리스타는 독서하는 그 자체, 커피 내리는 그 자체를 즐기게 되는 듯했다.(122)”

“좋은 사람이 주변에 많은 삶이 성공한 삶이라는 생각. 사회적으로 성공하진 못했을지라도 매일매일 성공적인 하루를 보낼 수 있거든, 그 사람들 덕분에.(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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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호로 역 광시곡 마호로 역 시리즈
미우라 시온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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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우라 시온의 [마호로 역 광시곡]을 읽었다. 마호로 시리즈 세 번째이자 마지막 이야기이다. 일본에서는 2006년, 2009년, 2013년 이렇게 몇 년의 간격을 두고 출간되었기에 어쩌면 다다와 교텐의 사연이 가물가물 해질 무렵 다시금 마호로 역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말 번역본은 시리즈 세 권이 한 번에 출판되었기에 다다와 교텐 이외의 등장인물도 어렵지 않게 떠올리며 스토리를 따라갈 수 있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시리즈는 여러 개의 에피소드가 나열된 구조를 이루고 있다면 이번 마지막 시리즈는 그동안의 등장 인물들의 사연을 한 번에 아우르며 기나긴 이야기가 펼쳐진다.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함에도 마지막 권은 전 편들보다 더 큰 감동을 선사해주었다. 특히나 다다와 교텐의 투닥거리면서도 몇 년간 쌓아온 정은 서로가 서로를 구원하며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 준다. 


다다 심부름집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마호로 역 인근에 사는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의 의뢰를 받아 근근히 연명해가고 있다. 쿄텐은 어느덧 마호로 주민들에게 다다 심부름집의 조수로 알려졌지만 여전히 제멋대로 일터를 벗어나거나 한가롭게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해서 다다의 속을 애태운다. 그렇게 일상을 이어가던 차에 쿄텐이 정자만 기증해서 태어난 딸 하루의 엄마 나기코는 다다에게 아이를 한 달 반 동안만 맡아줄 것을 부탁한다. 이미 전편에서 쿄텐이 어린 아이에게 이상반응을 보이는 것을 알게 된 다다는 그것만큼은 할 수 없다고 완강히 거절하지만 나기코 또한 물러서지 않고 하루를 꼭 맡아달라고 한다. 동성 커플인 나기코는 미국으로 한 달 반 동안 연수를 다녀올 예정이라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그리고 자신의 삶을 위해서 하루와의 이별을 감내하고자 한다. 사실 이 부분은 조금 이해가 되지 않는 설정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단지 나기코가 자신의 경력을 쌓기 위한 선택이라기 보다는 비록 부부관계로 태어난 것은 아니지만 생물학적 아버지에 해당되는 쿄텐이 딸 하루와 친분을 쌓기를 바라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우여곡절 끝에 하루를 맡게 된 다다는 하루를 보면서 예전에 떠나보낸 자신의 아들을 떠올리며 괴로워한다. 혹시나 이번에도 하루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자신은 더 이상 살아 있을 수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앞서지만 하루와 보내는 일상은 하루가 오기 전에는 알 수 없었던 소소한 행복감이 밀려온다는 것을 알게 된다. 쿄텐 또한 다다가 하루를 맡게 되었다는 사실에 기겁하며 루루와 하이시의 집으로 피신하지만 이내 현실을 받아들이게 되고 하루가 자신의 생물학적 딸임을 알게 된다. 그래도 쿄텐은 다다처럼 하루를 살뜰히 보살피지 못한다. 쿄텐이 하루와의 친분을 쌓아가고 다다는 전편에 등장했던 미망인 아사코와의 관계도 조금씩 진전을 보인다. 다다와 쿄텐의 일상의 오선지에  하루가 변화를 이끌어내는 단조의 역할을 했다면, HHFA라는 이름의 ‘가정과 건강식품협회’의 등장은 다다와 쿄텐의 삶을 광시곡의 정점으로 치닫게 만든다. 무농약 채소의 중요성을 홍보하며 외식이 가능한 식당의 영업도 방해하는 무리는 어이없게도 밤에 몰래 농약을 뿌리며 채소를 길러왔다. 이들 단체의 본거지는 사이비 종교 단체에서 비롯되었으며 여기에 속한 부모들은 때로는 자녀들이 강제로 밭일을 하게 만드는 학대를 일삼곤 한다. 어이없게도 오카야마파의 보스의 손녀가 학교에서 그 채소를 사용한 음식을 먹는다는 사실 때문에 야쿠자는 뒷골목 양아치 호시에게 HHFA가 홍보를 그만두도록 만들라는 지시를 내린다. 호시는 다다에게 거부하지 못할 의뢰를 맡기게 되고 HHFA와의 갈등은 로터리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절정에 달하게 된다. 자신들의 홍보 활동이 저지되자 흥분한 단체원 중의 하나가 낫을 휘둘러 하루가 위험에 처하게 되자 쿄텐은 20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똑같은 손가락이 잘리는 위험천만한 일을 당하면서도 하루를 지켜낸다. 그리고 쿄텐이 아이를 싫어했던 이유가 바로 사이비 종교 단체와 관련된 부모의 학대에서 비롯되었고 그로 인해 고등학교 내내 말 없는 학생으로 지냈던 사연이 밝혀진다. 


쿄텐이 다다와 아사코의 관계가 발전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병원에서 도망쳐 사라진 몇 개월의 시간은 다다에게 많은 것을 일깨워주었다. 미국에서 돌아온 엄마 나기코와 집으로 돌아간 하루의 빈자리와 더불어 쿄텐의 부재는 다다에게 아들을 잃은 죄책감에서 벗어나 행복을 누릴 수 있음을 환기시킨다. 어이 없게도 다다와 연인이 될지도 모를 아사코의 집에서 몰래 머물던 쿄텐은 새해를 맞이하기 직전에 다다의 사무실로 돌아오게 되고 다다는 그가 쿄텐과의 우연한 만남을 통해서 구원받았음을 깨닫게 된다. 다다와 아사코의 관계가 어느 정도 진전되었는지는 나오지 않지만 다다와 쿄텐이 산타할아버지와 루돌프 대행 의뢰를 받아 완수하는 마지막 장면은 우리 삶에서 행복이란 정말 별 개 아니라는 만고의 진리를 다시 한 번 일깨워준다. 가슴이 따뜻해지는 소설이다. 


“이 세상이 광기로 넘칠 리가 없다. 사랑과 신뢰가 어째선지 때로 사람을 속이기도 하고 타인을 상처 입히는 흉기가 될 때도 있는, 잔혹하고 웃긴 사실이 존재할 뿐이다. 그 사실만으로 사랑과 신뢰 전부를 부정하고, 세상을 조소하고 자기 속에 있는 선과 미를 추구하는 마음을 봉인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박힌 흉기를 빼내어 한 번 더 자신의 상처를 도려내는 거나 마찬가지다.(257-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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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 강의 이름 모를 여인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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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욤 뮈소의 [센 강의 이름 모를 여인]을 읽었다. 해마다 연말이 되면 기욤 뮈소의 신작이 출간되었는데, 2021년 말에는 신작 소식이 없어서 궁금하던 차에 새해를 시작하며 새로운 소설을 마주하게 되었다. 원작도 작년에 출판되었는데 1년도 안 되어 번역본인 우리말로 출판되는 걸 보니 우리 나라에서 기욤 뮈소의 인기는 꽤 대단하고 한류 덕분인지 종종 우리 나라가 언급되곤 하는데 이번 작품에도 제주 귤차가 나와서 반가웠다. 출시 예고 내용에 항공기 사고로 사망한 여인이 센 강에서 알몸으로 발견되었다는 내용을 보고 이번에는 어떤 판타지 요소가 들어가 있을까 기대가 되었다. [종이 여자]를 계기로 기욤 뮈소의 전작을 거의 다 본 것 같은데 그의 소설에는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판타지가 자주 삽입되어 소재로 사용되곤 했다. 그런데 이번 소설에서는 센 강에서 발견된 알몸의 여인은 사망한 여인이 되살아나거나 도플 갱어도 아닌 너무나도 사실적인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 특이했다. 


어떤 연유인지 알 수 없지만 이번 작품은 강제 휴직 위기에 처한 록산 몽크레스티앙 경감과 그의 상사인 소르비에 대장과의 대화로 시작된다. 록산은 상궤를 벗어나는 사건들을 담당하는 부서로 좌천당해 그곳에서 전임자였던 마르크 바타유라는 강력계 형사가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음을 알게 된다. 록산이 새로 부임한 곳인 기이한 사건들을 담당하는 부서이기에 센 강에서 알몸으로 발견된 여인이라는 소재는 앞뒤가 맞아 떨어지는 소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부서가 더 이상 제대로 된 역할을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센 강에서 발견된 여인은 경찰 간호실에서 빈틈으로 노리고 도망치게 된다. 그리고 그 여인이 차고 있던 레조낭스 시계는 엄청난 고가이며 원래 주인이 마르크 바타유 형사의 아들인 라파엘 바타유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이 사건에 흥미를 갖게 된 록산은 다시 재기할 수 있는 기회라 여기며 비공식적인 수사를 이어간다. 센 강에서 발견된 여인의 머리카락과 소변으로 DNA 검사를 의뢰하게 되고 놀랍게도 그 여인은 이미 1년 전에 항공기 추락 사고로 사망한 피아니스트 밀레나 베르그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죽은 사람이 되살아 난 것일까? 아니면 시신 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일까? 록산은 수사를 통해 밀레나 베르그만이 사망한 것이 확실하며 그녀와 라파엘이 연인 관계였다는 것을 알아낸다. 그렇다면 라파엘이 숨기고 있는 비밀은 무엇일까? 

이번 작품은 특이하게도 추리의 묘미를 더하기 위해서인지 등장 인물의 사진을 넣었다. 사건과 관련된 인물의 신문 기사에 나온 밀레나의 사진은 19세기 프랑스에서 죽은 여인의 얼굴이 너무나도 아름다워 데스 마스크를 떠서 집에 걸어두었다고 전해지는 이야기를 더욱 그럴듯하게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록산의 추리와 수사가 지속되는 동안 마르크의 딸이자 라파엘의 여동생인 베라가 어떻게 죽게 되었는지에 대한 내용은 한 사람의 잘못과 실수가 나비효과가 되어 얼마나 큰 파장을 일으켰는지 보여주었다. 라파엘은 평소와는 다르게 일찍 집에 돌아와 엄마가 바람피는 현장을 목격하게 되고, 가족을 지키기 위한 생각으로 상대방인 치과의사 남자에게 협박문이 담긴 편지를 보낸다. 누군가 자신들의 불륜을 알게되었다는 사실에 혼비백산한 라파엘의 엄마는 어린 딸 베라는 차에 태우고 유치원에 내려주지 않은 채 뜨거운 태양아래에 방치하여 죽게 만든다. 이후 마르크와 라파엘이 어떻게 삶을 견뎌냈을까? 라파엘은 아버지 마르크가 폐암에 걸리고도 항암 치료를 받지 않으려 하자 여자 친구가 생겼다는 거짓말을 하게 되고 그 여인은 아버지가 좋아하는 피아니스트인 밀레나라는 거짓말을 덧붙인다. 아버지가 치료를 받고 삶의 의지가 생겨나자 라파엘은 연극 배우를 통해 밀레나의 대역 연기를 부탁하게 된다. 하지만 실제로 밀레나의 동성 애인이었던 연주가는 라파엘의 거짓말 때문에 자동차로 카페를 들이받아 무고한 희생자가 나오게 된다. 

서서히 범인의 윤곽이 드러나게 되고 록산은 디오니소스를 숭배하는 이들의 악한 의도가 마지막 희생 제물로 라파엘을 선택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야기는 열린 결말로 맺어졌기에 혹시 다음 작품이 아직 생사가 결정되지 않은 라파엘과 마르크와 갸랑스 드 카라덱의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은 아닐까 기대된다. 총을 맞기 전까지 이미 세상을 떠난 여동생 베라와 대화하는 라파엘의 심리적인 불안 상태는 독자들을 마음 아프게 하며, 나의 작은 실수와 잘못들이 누군가에게 큰 상처와 아픔을 준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해 준다. 후편이 나온다면 라파엘이 베라를 잃은 아픔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본다. 

“아버지가 가끔 슬픔의 심연 속으로 깊숙이 침잠하는 게 오히려 삶을 지키는 안전판이 되어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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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호로 역 번지 없는 땅 마호로 역 시리즈
미우라 시온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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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우라 시온의 [마호로 역 번지 없는 땅]을 읽었다. 마호로 시리즈 두 번째 이야기이다. 일본에서 출판된 년도를 살펴보니 2009년이라고 나오는데, 첫 번째 이야기 이후 3년이 지난 후에야 두 번째 이야기가 펼쳐지고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특히 마지막 부분에 교텐의 갑작스러운 광기어린 행동이 궁금증을 자아내며 그의 과거에 과연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란 생각에 세 번째 이야기에서는 그 모든 비밀과 사연이 드러날 것인지 기대가 된다. 주인공이 다다 게이스케와 쿄텐 하루히코인 것은 변함없지만 새로운 에피소드가 펼쳐지면서 첫 번째 시리즈에 나왔던 인물들이 다시 등장하며 마치 점선으로 그들의 인생이 얽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특히 아직 야쿠자라고는 할 수 없는 사탕 장수 호시는 이번 편에도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난폭한 장면을 그려냈다. 마호로 시리즈는 다다 심부름집이라는 평범하고 소시민적인 삶을 살아가는 아이를 잃은 경험이 있는 평범한 남자의 삶을 그려내는 것 같이 시작하지만, 막상 그 안에서 호시와 같은 인물을 맞닥뜨리게 되면 피가 낭자한 잔인한 일이 발생되는 하드보일드함을 갑작스럽게 그려내는 특징이 있다. 


아무튼 전편에서는 호시는 그냥 못돼 처먹은 양아치에 불과한지 알았는데, 엄마와 만나서 조금씩 드러나는 그의 모습은 좋은 대학을 들어간 모범생이라는 양면의 모습을 감추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지막 권에서 호시가 약 장수의 길에 들어선 이유가 드러날까? 또한 유라 라는 꼬맹이도 또 다시 등장하는데 쿄텐과의 어이없는 하루가 호시의 난폭함과는 정반대의 명랑함을 느끼게 해 준다. 그리고 이번 편에서 꽤나 큰 비중으로 나오는 소네다 할머니는 치매 증세가 완화되어 산책을 나간 길에 다다와 쿄텐에게 자신의 러브스토리를 들려준다. 1945년이 우리나라에 광복을 가져왔다면 일본은 패전국이 되어 한동안 전후의 어려운 상황이 소네다 할머니의 이야기에 담겨 있었다. 소네다 할머니의 삼각관계에 해당되는 남자는 야쿠자로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정혼한 남자가 패전 후에도 돌아오지 않자 야쿠자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그와의 밀회를 즐기던 와중에 정혼한 남자가 돌아와 곤란한 상황들이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일본 소설을 읽을 때마다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나라의 조폭에 해당되는 야쿠자의 존재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때로는 공권력을 가진 경찰도 그들을 어쩌지 못한다는 정황이다. 이탈리아에서 마피아를 인정하듯이 일본에서도 야쿠자를 인정하지 않고서는 치안이 유지되지 않는 것일까? 어찌되었든 야쿠자인 소네다 할머니의 남자를 로맨틱하게 그려내는 저자의 의도는 조금 거부감이 들기도 한다. 


두 번째 시리즈의 막바지에 이르러 다다에게 새로운 사랑이 싹트는 만남이 생긴다. 죽은 자의 집을 정리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방문한 빌라는 살던 사람의 개인적 일상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기이한 수집품만이 가득했다. 집 정리를 부탁한 사람과 죽은 사람은 어떤 관계일지 전혀 예상할 수 없었고 의뢰자가 연락이 되지 않아 쿄텐은 호시에게 정체를 알아봐 달라는 부탁을 하고 집 정리를 의뢰한 사람은 마호로의 거대한 식당 체인업 주인임을 알게 된다. 가시와기 아사코는 아버지뻘의 나이의 남자와 결혼하며 지내다 남편이 죽기 2년 전에 갑자기 집을 나가서 지내고 싶다고 하기에 바람이라도 난 줄 알았지만 남편은 갑작스럽게 아무런 말도 없이 세상을 떠나게 된 것이다. 다다와 쿄텐과 집정리를 하던 아사코는 그제서야 남편의 죽음을 인식하며 울음을 터트리고 슬플을 토로하게 된다. 다다는 아사코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끼며 그 안에서 다시금 사랑이 생겨나는 것은 아닐까 의아해 하고 쿄텐의 다다의 감정을 눈치채고 다다와 아사코를 연결해주려고 그녀가 운영하는 식당을 애써 방문한다. 세 번째 시리즈에서는 다다의 사랑이 이루어질까? 


"<남자 둘과 여자 하나의 삼각관계는 남자 하나와 여자 둘의 삼각관계에 비해 알 만하잖아. 전자가 결론을 빨리 내리기 쉽지. 어느 남자를 고르는 게 득인지 여자는 바로 판단해서 결정하고, 남자 둘은 서로 눈짓하다 적당한 시점에서 한쪽이 발을 빼지. 내 여자를 그 녀석에게 양보했다고 생각하면, 발을 때도 남자의 자존심은 상처 입지 않으니까.> 

쿄텐은 끄덕거렸다. 정말로 알아들었나, 이 인간, 하고 다다는 생각했다. 

<그런데 후자는 어때, 질질 끄는 일이 많지. 남자는 혼자 정하지 못하고 여자는 절대 결탁하지 않기 때문이야. 남자를 완전히 자기 것으로 할 때까지, 상대 여자가 항복하고 물러날 때까지, 조용히 치열하게 싸우지.>(124)"


"시시한 고집 싸움으로 소중한 것을 간과하고 있다. 그러나 어쩌면 나도 비슷할지 모른다. 오카 부인은 생각했다. 이미 남편과는 너무나도 오랜 세월 함께 시간을 보낸 탓에 남자와 여자가 아니라 부부라는 사실조차도 무뎌졌다. 하지마 마음속에 있는 등불 같은 것은 꺼지지 않는다. 남녀나 부부나 가족이란 말을 넘어서 그저 뭔지 모르게 소중하다는 느낌. 저온이지만 끈질기게 지속되는, 조용한 기도와 비슷한 경지. 

포기와 타성과 사명감과 아주 약간의 따스함. 소소하게 매일 일하고 자기 역할을 다할 때의 심정과 같은 느낌으로 가늘게 맺어져 있다. 그런 관계를 한마디로 표현할 말은 없다. 없어서 당혹스럽다. '아내와 남편'으로 끝내고 안온하게 지내는 남편에게 짜증 난다. 그러나 같이 있는 것을 그만두고 싶지는 않다. 

그 이유를 사랑이라고 한다면 아주 간단하지만.(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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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가다 칸타빌레 - '가다' 없는 청년의 '간지' 폭발 노가다 판 이야기
송주홍 지음 / 시대의창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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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주홍 님의 [노가다 칸타빌레]를 읽었다. 부제는 "'가다'없는 청년의 '간지' 폭발 노가다 판 이야기"이다. 일드이자 일본만화인 '노다메 칸타빌레'를 오마주하여 얼핏 노가다를 노다메로 봐서 다시 한 번 눈길을 끄는 작전이 성공한 듯한 제목은 원작인 클래식과 변주곡인 노가다와의 엄청난 간극이 표면상으로 느껴짐에도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지금까지 내가 몇 번의 클래식 공연보다 훨씬 더 극적으로 다가왔다. Cantabile는 원래 이태리어로 '음악적인, 노래같은, 부드럽게 움직이는' 뜻을 가진 단어다. '노가다'라는 거친 활동이 우리를 감동에 젖어들게 만드는 칸타빌레의 결과물을 가져오는 것은 어쩌면 매일 매일 먹고 살기 위한 일환으로 선택한 노동을 성실히 임한 이들 덕분에 편안함 주거지가 생긴 것을 뜻함이 아닐까. 


저자의 책에서도 수없이 나오는 노동 현장의 단어들은 대부분 일본에서 쓰던 말이 그대로 차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특별히 노가다를 해보지 않은 사람도 군대를 다녀온 남자들은 노가다의 대표적인 용어들을 심심치 않게 들어왔다. 언젠가 일제의 잔재를 없애기 위해서라도 노동 현장에서 일본어로 된 용어들을 쓰지 말자는 말을 들었었는데, 저자의 글을 보니 아마 지금까지 써온 용어들이 우리말로 대체되는 일은 쉽지 않을 것 같다. 카페에서 계피가루 말고 시나몬을 뿌려달라는 어이없는 상황을 진짜로 겪은 적이 있다. 요즘 오트 라떼가 유행이라 한 번은 카페 라떼를 주문하면서 우유를 귀리 우유로 바꿔달라고 했다. 그러자 점원이 못 알아들은 듯이 네? 라고 반문하기에 다시 귀리라고 해도 알아듣지 못했다. 그래서 오트 밀크요. 라고 하자 네 알겠습니다라는 대답이. 그러니 삽질 좀 해봤다는 남자들 사이에서도 '아시바'가 뭔지는 알아도 그게 우리말로 '비계'인지는 모르는 경우가 왕왕 있다. 


책을 읽는 내내 마치 내가 건설현장에서 쌍욕을 들어가며 어리바리 행동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전국 어디를 가도 아파트 건설 현장을 볼 수 있다. 이전까지는 대체 저 많은 아파트에는 누가 살게 될까라는 생각이 들었자면, 이제는 아 저 많은 아파트 건설현장에 오늘 내가 읽은 노가다꾼들이 일하고 있겠구나 라는 감탄이 밀려왔다. 세상사 쉬운 일이 어디이겠느냐만은 매일 책상에 앉아서 뱃살만 키우는 입장에서 새벽부터 고된 노동을 하는 이들에게 나는 얼마나 우스워보일까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특히나 저자가 기자에서 콘텐츠 기획자로도 일한 경력이 있는데, 오히려 노가다를 시작하면서 불면증과 우울증이 사라지고 격한 노동 후에 꿀잠에 빠지는 내용은 인간이 땀을 흘려 일하는 것이 신성하다는 옛말을 떠올리게 했다. 


공사판일을 막일이라고 폄하하는 표현들이 많았는데 막상 저자가 소개하는 노가다 현장의 내막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 안에서 어느 직업군 못지 않은 질서와 요령이 필요함을 알게 되었다. 특히나 요즘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상당수 건설 현장에 투입된다고 하니, 저자가 건설 노조 편에서 강력히 주장한 내용 '불법 다단계 하도급' 시스템이 하루 빨리 개선되기를 바란다. 그래야 얼마전에 사고로 희생된 분들과도 같은 비극적인 일이 사라지지 않을까. 지난해 읽었던 이혁진 작가의 [관리자들]에서 공기를 당기기 위해 제대로 된 절차를 밟지 않고 공사를 강행하다가 결국 희생자가 발생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저자가 지적한 것과 마찬가지로 겉으로 보여지는 안전 대책 만으로는 결코 해결되지 않음은 정확한 지적이라고 생각된다. 


"<몇 시간이고 책상에 앉아 고작 몇 줄을 쓰는 그 지지부진한 시간이 나를 살아 있는 사람으로 살게 했다>라는 최은영 소설가의 말에, <어! 나랑 똑같네. 하하>하고 감탄하는 사람이 될 순 없었겠지. 노가다 판에서 흙먼지 뒤집어쓰면서도 <아, 오늘 컨디션 좋은데? 힘이 넘치는데?> 하면서 농담하는 사람이 되진 않았겠지. 친구들 만나서 <야, 나는 낮에는 집을 짓고, 밤에는 글을 짓는 살마이야. 라임 죽이지 않냐?>라면서 낄낄거리는 놈이 될 순 없었겠지.(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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