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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가다 칸타빌레 - '가다' 없는 청년의 '간지' 폭발 노가다 판 이야기
송주홍 지음 / 시대의창 / 2021년 3월
평점 :
송주홍 님의 [노가다 칸타빌레]를 읽었다. 부제는 "'가다'없는 청년의 '간지' 폭발 노가다 판 이야기"이다. 일드이자 일본만화인 '노다메 칸타빌레'를 오마주하여 얼핏 노가다를 노다메로 봐서 다시 한 번 눈길을 끄는 작전이 성공한 듯한 제목은 원작인 클래식과 변주곡인 노가다와의 엄청난 간극이 표면상으로 느껴짐에도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지금까지 내가 몇 번의 클래식 공연보다 훨씬 더 극적으로 다가왔다. Cantabile는 원래 이태리어로 '음악적인, 노래같은, 부드럽게 움직이는' 뜻을 가진 단어다. '노가다'라는 거친 활동이 우리를 감동에 젖어들게 만드는 칸타빌레의 결과물을 가져오는 것은 어쩌면 매일 매일 먹고 살기 위한 일환으로 선택한 노동을 성실히 임한 이들 덕분에 편안함 주거지가 생긴 것을 뜻함이 아닐까.
저자의 책에서도 수없이 나오는 노동 현장의 단어들은 대부분 일본에서 쓰던 말이 그대로 차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특별히 노가다를 해보지 않은 사람도 군대를 다녀온 남자들은 노가다의 대표적인 용어들을 심심치 않게 들어왔다. 언젠가 일제의 잔재를 없애기 위해서라도 노동 현장에서 일본어로 된 용어들을 쓰지 말자는 말을 들었었는데, 저자의 글을 보니 아마 지금까지 써온 용어들이 우리말로 대체되는 일은 쉽지 않을 것 같다. 카페에서 계피가루 말고 시나몬을 뿌려달라는 어이없는 상황을 진짜로 겪은 적이 있다. 요즘 오트 라떼가 유행이라 한 번은 카페 라떼를 주문하면서 우유를 귀리 우유로 바꿔달라고 했다. 그러자 점원이 못 알아들은 듯이 네? 라고 반문하기에 다시 귀리라고 해도 알아듣지 못했다. 그래서 오트 밀크요. 라고 하자 네 알겠습니다라는 대답이. 그러니 삽질 좀 해봤다는 남자들 사이에서도 '아시바'가 뭔지는 알아도 그게 우리말로 '비계'인지는 모르는 경우가 왕왕 있다.
책을 읽는 내내 마치 내가 건설현장에서 쌍욕을 들어가며 어리바리 행동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전국 어디를 가도 아파트 건설 현장을 볼 수 있다. 이전까지는 대체 저 많은 아파트에는 누가 살게 될까라는 생각이 들었자면, 이제는 아 저 많은 아파트 건설현장에 오늘 내가 읽은 노가다꾼들이 일하고 있겠구나 라는 감탄이 밀려왔다. 세상사 쉬운 일이 어디이겠느냐만은 매일 책상에 앉아서 뱃살만 키우는 입장에서 새벽부터 고된 노동을 하는 이들에게 나는 얼마나 우스워보일까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특히나 저자가 기자에서 콘텐츠 기획자로도 일한 경력이 있는데, 오히려 노가다를 시작하면서 불면증과 우울증이 사라지고 격한 노동 후에 꿀잠에 빠지는 내용은 인간이 땀을 흘려 일하는 것이 신성하다는 옛말을 떠올리게 했다.
공사판일을 막일이라고 폄하하는 표현들이 많았는데 막상 저자가 소개하는 노가다 현장의 내막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 안에서 어느 직업군 못지 않은 질서와 요령이 필요함을 알게 되었다. 특히나 요즘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상당수 건설 현장에 투입된다고 하니, 저자가 건설 노조 편에서 강력히 주장한 내용 '불법 다단계 하도급' 시스템이 하루 빨리 개선되기를 바란다. 그래야 얼마전에 사고로 희생된 분들과도 같은 비극적인 일이 사라지지 않을까. 지난해 읽었던 이혁진 작가의 [관리자들]에서 공기를 당기기 위해 제대로 된 절차를 밟지 않고 공사를 강행하다가 결국 희생자가 발생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저자가 지적한 것과 마찬가지로 겉으로 보여지는 안전 대책 만으로는 결코 해결되지 않음은 정확한 지적이라고 생각된다.
"<몇 시간이고 책상에 앉아 고작 몇 줄을 쓰는 그 지지부진한 시간이 나를 살아 있는 사람으로 살게 했다>라는 최은영 소설가의 말에, <어! 나랑 똑같네. 하하>하고 감탄하는 사람이 될 순 없었겠지. 노가다 판에서 흙먼지 뒤집어쓰면서도 <아, 오늘 컨디션 좋은데? 힘이 넘치는데?> 하면서 농담하는 사람이 되진 않았겠지. 친구들 만나서 <야, 나는 낮에는 집을 짓고, 밤에는 글을 짓는 살마이야. 라임 죽이지 않냐?>라면서 낄낄거리는 놈이 될 순 없었겠지.(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