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황보름 지음 / 클레이하우스 / 2022년 1월
평점 :
품절


황보름 작가의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를 읽었다. 서점 어플에 뜬 광고 문구에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잡화점, 백화점, 편의점, 이번엔 서점이다” 뜬금없이 무슨 소리인가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그동안의 베스트셀러가 떠올랐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달러구트 꿈 백화점], [불편한 편의점] 그리고 이번 작품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까지. 잡화점과 백화점은 판타지 요소가 들어가 주인공들에게 놀라운 일상이 펼쳐진다면, 편의점과 서점은 너무나도 일상적인 주인공들의 평범한 모습 속에서 판타지 못지 않은 변화를 그려내고 있다. 


10여년 전 쯤 도서 정가제가 실행될 무렵에 더 이상 싼 가격에 책을 구입할 수 없다는 사실이 못내 아쉬웠다. 그런데 그 이후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독립 서점들의 발전을 지켜보며 도서 정가제가 실행되길 정말 잘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대형 서점들이 떨이 판매를 하듯이 묶음으로 처분하는 것과 동시에 인터넷 주문으로 책을 구입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동네 서점은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간간히 작은 서점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독립 서점이라는 이름으로 여느 서점들처럼 베스트셀러 위주가 아닌 책방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개성이 담긴 책 선정이 특징적이다. 특히나 소설에 나온 것처럼 서점은 더 이상 책을 팔고 사는 공간만이 아니라 저자와의 만남 또는 다양한 이벤트를 통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재발견되고 있다. 인터넷의 넘쳐나는 플랫폼과 콘텐츠의 바다 속에서도 아날로그 감성이 듬뿍 담긴 종이책을 여전히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꽤나 있다는 사실이 고무적이다. 

로마에 처음 도착했을 때는 해가 저물어가는 시간이었다. 아마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처음 유럽에 가면 비슷한 느낌을 가질 것 같은데, 바로 ‘아니 여긴 왜 이렇게 어두워’라는 반응이다. 가장 큰 이유는 우리나라처럼 백색 형광등을 사용하지 않고 주광색 백열등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최근 뉴스에서는 아무래도 전기세가 이유일텐데, 백열등을 형광등으로 교체하겠다는 정부의 의견에 시민들이 반대하고 있다는 내용을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아마 형광등이나 LED등으로 교체한다고 해도 절대로 백색등은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처음에는 낯설고 어둡게만 느껴지던 주광색 백열등에 한 번 매료되면 오히려 우리나라에 돌아와서 백색 형광등에 대한 거부감이 생긴다. 아마도 주광색이 주는 따뜻함 때문일 것이다. 

퇴근길 지친 발걸음으로 한숨과 푸념으로 오늘 하루는 간신히 마감했다는 생각으로 힘없이 걸어가는 도중에 집 근처에 은은한 주광색 불빛을 내비치며 누군가 고요히 책을 읽고 있고, 그 앞에는 가만히 커피를 내리고 있는 서점을 발견한다면 무언의 위로를 받게 되지 않을까? 나도 그곳에 동참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잠시라도 머물수 있다면 방전된 나의 헛헛한 마음도 어느 정도는 충전될 수 있지 않을까? 저자가 만들어낸 가상의 공간 휴남동 서점은 나름대로의 사정과 상처가 있는 이들이 자신의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 볼 수 있도록 기다려준다. 재빠르게 흘러가는 세상의 시간처럼 어서 빨리 추스리고 일어나 너의 몫을 해내라고 채근하지 않는다. 내가 지금 좋아하는 일을 해서 행복한 것인지, 그냥 주어진 일을 해서 행복하지 않은지, 불협화음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지, 화음이 좋은 시기를 보내고 있는지 그저 묵묵히 따뜻한 불빛으로 나를 기다려준다. 어쩌면 우리가 바라는 진짜 행복은 그렇게 말없이 기다려주는 누군가를 만나는 하루를 보내는 것일지 않을까. 그렇게 정성들여 만든 하루들이 모여 우리의 일상을 적지 않게 채워간다면 성공과 성취라는 목표와는 무관하게 나를 의미있는 존재로 인정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책을 읽으면 세상을 보는 눈이 밝아진다고 하잖아요. 밝아진 눈으로 세상을 더 잘 이해하게 되고요. 세상을 이해하게 되면 강해져요. 바로 이 강해지는 면과 성공을 연결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강해질 뿐만 아니라 고통스러워지기도 하거든요. 책 속에는 내 좁은 경험으론 결코 보지 못하던 세상의 고통이 가득해요. 예전에 못 보던 고통이 이제는 보이는 거죠. 누군가의 고통이 너무 크게 느껴지는데, 내 성공, 내 행복만을 추구하기가 쉽지 않아지는 거예요. 그래서 책을 읽으면 오히려 흔히 말하는 성공에서는 멀어지게 된다고 생각해요. 책이 우리를 다른 사람들 앞이나 위에 서게 해주지 않는 거죠. 대신, 곁에 서게 도와주는 것 같아요. 
그래서 결국 우리는 다른 면에서 성공하게 되는 거예요. 조금 더 인간다워지는 거요. 책을 읽다 보면 자꾸 타인에게 공감하게 되잖아요. 가만히 있으면 절로 성공을 향해 무한질주 하게끔 설계된 이 세상에서 달리기를 멈추고 주위 사람들을 돌아보게 되는 거죠. 그러니 책 읽는 사람이 늘어나면 이 세상이 조금이나마 더 좋아질 거라고 전 생각해요.(55-56)”

“지미의 말처럼 원두는 무한대의 경우의 수로 블렌딩할 수 있었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방식으로 재배해도 원두 맛은 달라지고, 같은 원두라도 커피 맛은 달라진다. 자연이 하는 일이라서 그렇고, 사람이 하는 일이라서 그렇다. 책을 읽는 일과 커피 내리는 일은 비슷한 점이 꽤 있는 것 같았다. 누구나 쉽게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이 그렇고, 하면 할수록 더 빠져든다는 점이 그렇고, 한번 빠져들면 쉽게 헤어나오지 못한다는 점이 그렇고, 점점 더 섬세함이 요구된다는 점이 그렇고, 결국 독서의 질과 커피의 질을 좌우하는 건 미묘한 차이를 이해하는 데서 비롯된다는 점이 그렇다. 결국 독서가와 바리스타는 독서하는 그 자체, 커피 내리는 그 자체를 즐기게 되는 듯했다.(122)”

“좋은 사람이 주변에 많은 삶이 성공한 삶이라는 생각. 사회적으로 성공하진 못했을지라도 매일매일 성공적인 하루를 보낼 수 있거든, 그 사람들 덕분에.(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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