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호로 역 번지 없는 땅 마호로 역 시리즈
미우라 시온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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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우라 시온의 [마호로 역 번지 없는 땅]을 읽었다. 마호로 시리즈 두 번째 이야기이다. 일본에서 출판된 년도를 살펴보니 2009년이라고 나오는데, 첫 번째 이야기 이후 3년이 지난 후에야 두 번째 이야기가 펼쳐지고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특히 마지막 부분에 교텐의 갑작스러운 광기어린 행동이 궁금증을 자아내며 그의 과거에 과연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란 생각에 세 번째 이야기에서는 그 모든 비밀과 사연이 드러날 것인지 기대가 된다. 주인공이 다다 게이스케와 쿄텐 하루히코인 것은 변함없지만 새로운 에피소드가 펼쳐지면서 첫 번째 시리즈에 나왔던 인물들이 다시 등장하며 마치 점선으로 그들의 인생이 얽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특히 아직 야쿠자라고는 할 수 없는 사탕 장수 호시는 이번 편에도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난폭한 장면을 그려냈다. 마호로 시리즈는 다다 심부름집이라는 평범하고 소시민적인 삶을 살아가는 아이를 잃은 경험이 있는 평범한 남자의 삶을 그려내는 것 같이 시작하지만, 막상 그 안에서 호시와 같은 인물을 맞닥뜨리게 되면 피가 낭자한 잔인한 일이 발생되는 하드보일드함을 갑작스럽게 그려내는 특징이 있다. 


아무튼 전편에서는 호시는 그냥 못돼 처먹은 양아치에 불과한지 알았는데, 엄마와 만나서 조금씩 드러나는 그의 모습은 좋은 대학을 들어간 모범생이라는 양면의 모습을 감추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지막 권에서 호시가 약 장수의 길에 들어선 이유가 드러날까? 또한 유라 라는 꼬맹이도 또 다시 등장하는데 쿄텐과의 어이없는 하루가 호시의 난폭함과는 정반대의 명랑함을 느끼게 해 준다. 그리고 이번 편에서 꽤나 큰 비중으로 나오는 소네다 할머니는 치매 증세가 완화되어 산책을 나간 길에 다다와 쿄텐에게 자신의 러브스토리를 들려준다. 1945년이 우리나라에 광복을 가져왔다면 일본은 패전국이 되어 한동안 전후의 어려운 상황이 소네다 할머니의 이야기에 담겨 있었다. 소네다 할머니의 삼각관계에 해당되는 남자는 야쿠자로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정혼한 남자가 패전 후에도 돌아오지 않자 야쿠자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그와의 밀회를 즐기던 와중에 정혼한 남자가 돌아와 곤란한 상황들이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일본 소설을 읽을 때마다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나라의 조폭에 해당되는 야쿠자의 존재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때로는 공권력을 가진 경찰도 그들을 어쩌지 못한다는 정황이다. 이탈리아에서 마피아를 인정하듯이 일본에서도 야쿠자를 인정하지 않고서는 치안이 유지되지 않는 것일까? 어찌되었든 야쿠자인 소네다 할머니의 남자를 로맨틱하게 그려내는 저자의 의도는 조금 거부감이 들기도 한다. 


두 번째 시리즈의 막바지에 이르러 다다에게 새로운 사랑이 싹트는 만남이 생긴다. 죽은 자의 집을 정리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방문한 빌라는 살던 사람의 개인적 일상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기이한 수집품만이 가득했다. 집 정리를 부탁한 사람과 죽은 사람은 어떤 관계일지 전혀 예상할 수 없었고 의뢰자가 연락이 되지 않아 쿄텐은 호시에게 정체를 알아봐 달라는 부탁을 하고 집 정리를 의뢰한 사람은 마호로의 거대한 식당 체인업 주인임을 알게 된다. 가시와기 아사코는 아버지뻘의 나이의 남자와 결혼하며 지내다 남편이 죽기 2년 전에 갑자기 집을 나가서 지내고 싶다고 하기에 바람이라도 난 줄 알았지만 남편은 갑작스럽게 아무런 말도 없이 세상을 떠나게 된 것이다. 다다와 쿄텐과 집정리를 하던 아사코는 그제서야 남편의 죽음을 인식하며 울음을 터트리고 슬플을 토로하게 된다. 다다는 아사코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끼며 그 안에서 다시금 사랑이 생겨나는 것은 아닐까 의아해 하고 쿄텐의 다다의 감정을 눈치채고 다다와 아사코를 연결해주려고 그녀가 운영하는 식당을 애써 방문한다. 세 번째 시리즈에서는 다다의 사랑이 이루어질까? 


"<남자 둘과 여자 하나의 삼각관계는 남자 하나와 여자 둘의 삼각관계에 비해 알 만하잖아. 전자가 결론을 빨리 내리기 쉽지. 어느 남자를 고르는 게 득인지 여자는 바로 판단해서 결정하고, 남자 둘은 서로 눈짓하다 적당한 시점에서 한쪽이 발을 빼지. 내 여자를 그 녀석에게 양보했다고 생각하면, 발을 때도 남자의 자존심은 상처 입지 않으니까.> 

쿄텐은 끄덕거렸다. 정말로 알아들었나, 이 인간, 하고 다다는 생각했다. 

<그런데 후자는 어때, 질질 끄는 일이 많지. 남자는 혼자 정하지 못하고 여자는 절대 결탁하지 않기 때문이야. 남자를 완전히 자기 것으로 할 때까지, 상대 여자가 항복하고 물러날 때까지, 조용히 치열하게 싸우지.>(124)"


"시시한 고집 싸움으로 소중한 것을 간과하고 있다. 그러나 어쩌면 나도 비슷할지 모른다. 오카 부인은 생각했다. 이미 남편과는 너무나도 오랜 세월 함께 시간을 보낸 탓에 남자와 여자가 아니라 부부라는 사실조차도 무뎌졌다. 하지마 마음속에 있는 등불 같은 것은 꺼지지 않는다. 남녀나 부부나 가족이란 말을 넘어서 그저 뭔지 모르게 소중하다는 느낌. 저온이지만 끈질기게 지속되는, 조용한 기도와 비슷한 경지. 

포기와 타성과 사명감과 아주 약간의 따스함. 소소하게 매일 일하고 자기 역할을 다할 때의 심정과 같은 느낌으로 가늘게 맺어져 있다. 그런 관계를 한마디로 표현할 말은 없다. 없어서 당혹스럽다. '아내와 남편'으로 끝내고 안온하게 지내는 남편에게 짜증 난다. 그러나 같이 있는 것을 그만두고 싶지는 않다. 

그 이유를 사랑이라고 한다면 아주 간단하지만.(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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