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호로 역 광시곡 마호로 역 시리즈
미우라 시온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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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우라 시온의 [마호로 역 광시곡]을 읽었다. 마호로 시리즈 세 번째이자 마지막 이야기이다. 일본에서는 2006년, 2009년, 2013년 이렇게 몇 년의 간격을 두고 출간되었기에 어쩌면 다다와 교텐의 사연이 가물가물 해질 무렵 다시금 마호로 역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말 번역본은 시리즈 세 권이 한 번에 출판되었기에 다다와 교텐 이외의 등장인물도 어렵지 않게 떠올리며 스토리를 따라갈 수 있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시리즈는 여러 개의 에피소드가 나열된 구조를 이루고 있다면 이번 마지막 시리즈는 그동안의 등장 인물들의 사연을 한 번에 아우르며 기나긴 이야기가 펼쳐진다.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함에도 마지막 권은 전 편들보다 더 큰 감동을 선사해주었다. 특히나 다다와 교텐의 투닥거리면서도 몇 년간 쌓아온 정은 서로가 서로를 구원하며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 준다. 


다다 심부름집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마호로 역 인근에 사는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의 의뢰를 받아 근근히 연명해가고 있다. 쿄텐은 어느덧 마호로 주민들에게 다다 심부름집의 조수로 알려졌지만 여전히 제멋대로 일터를 벗어나거나 한가롭게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해서 다다의 속을 애태운다. 그렇게 일상을 이어가던 차에 쿄텐이 정자만 기증해서 태어난 딸 하루의 엄마 나기코는 다다에게 아이를 한 달 반 동안만 맡아줄 것을 부탁한다. 이미 전편에서 쿄텐이 어린 아이에게 이상반응을 보이는 것을 알게 된 다다는 그것만큼은 할 수 없다고 완강히 거절하지만 나기코 또한 물러서지 않고 하루를 꼭 맡아달라고 한다. 동성 커플인 나기코는 미국으로 한 달 반 동안 연수를 다녀올 예정이라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그리고 자신의 삶을 위해서 하루와의 이별을 감내하고자 한다. 사실 이 부분은 조금 이해가 되지 않는 설정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단지 나기코가 자신의 경력을 쌓기 위한 선택이라기 보다는 비록 부부관계로 태어난 것은 아니지만 생물학적 아버지에 해당되는 쿄텐이 딸 하루와 친분을 쌓기를 바라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우여곡절 끝에 하루를 맡게 된 다다는 하루를 보면서 예전에 떠나보낸 자신의 아들을 떠올리며 괴로워한다. 혹시나 이번에도 하루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자신은 더 이상 살아 있을 수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앞서지만 하루와 보내는 일상은 하루가 오기 전에는 알 수 없었던 소소한 행복감이 밀려온다는 것을 알게 된다. 쿄텐 또한 다다가 하루를 맡게 되었다는 사실에 기겁하며 루루와 하이시의 집으로 피신하지만 이내 현실을 받아들이게 되고 하루가 자신의 생물학적 딸임을 알게 된다. 그래도 쿄텐은 다다처럼 하루를 살뜰히 보살피지 못한다. 쿄텐이 하루와의 친분을 쌓아가고 다다는 전편에 등장했던 미망인 아사코와의 관계도 조금씩 진전을 보인다. 다다와 쿄텐의 일상의 오선지에  하루가 변화를 이끌어내는 단조의 역할을 했다면, HHFA라는 이름의 ‘가정과 건강식품협회’의 등장은 다다와 쿄텐의 삶을 광시곡의 정점으로 치닫게 만든다. 무농약 채소의 중요성을 홍보하며 외식이 가능한 식당의 영업도 방해하는 무리는 어이없게도 밤에 몰래 농약을 뿌리며 채소를 길러왔다. 이들 단체의 본거지는 사이비 종교 단체에서 비롯되었으며 여기에 속한 부모들은 때로는 자녀들이 강제로 밭일을 하게 만드는 학대를 일삼곤 한다. 어이없게도 오카야마파의 보스의 손녀가 학교에서 그 채소를 사용한 음식을 먹는다는 사실 때문에 야쿠자는 뒷골목 양아치 호시에게 HHFA가 홍보를 그만두도록 만들라는 지시를 내린다. 호시는 다다에게 거부하지 못할 의뢰를 맡기게 되고 HHFA와의 갈등은 로터리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절정에 달하게 된다. 자신들의 홍보 활동이 저지되자 흥분한 단체원 중의 하나가 낫을 휘둘러 하루가 위험에 처하게 되자 쿄텐은 20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똑같은 손가락이 잘리는 위험천만한 일을 당하면서도 하루를 지켜낸다. 그리고 쿄텐이 아이를 싫어했던 이유가 바로 사이비 종교 단체와 관련된 부모의 학대에서 비롯되었고 그로 인해 고등학교 내내 말 없는 학생으로 지냈던 사연이 밝혀진다. 


쿄텐이 다다와 아사코의 관계가 발전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병원에서 도망쳐 사라진 몇 개월의 시간은 다다에게 많은 것을 일깨워주었다. 미국에서 돌아온 엄마 나기코와 집으로 돌아간 하루의 빈자리와 더불어 쿄텐의 부재는 다다에게 아들을 잃은 죄책감에서 벗어나 행복을 누릴 수 있음을 환기시킨다. 어이 없게도 다다와 연인이 될지도 모를 아사코의 집에서 몰래 머물던 쿄텐은 새해를 맞이하기 직전에 다다의 사무실로 돌아오게 되고 다다는 그가 쿄텐과의 우연한 만남을 통해서 구원받았음을 깨닫게 된다. 다다와 아사코의 관계가 어느 정도 진전되었는지는 나오지 않지만 다다와 쿄텐이 산타할아버지와 루돌프 대행 의뢰를 받아 완수하는 마지막 장면은 우리 삶에서 행복이란 정말 별 개 아니라는 만고의 진리를 다시 한 번 일깨워준다. 가슴이 따뜻해지는 소설이다. 


“이 세상이 광기로 넘칠 리가 없다. 사랑과 신뢰가 어째선지 때로 사람을 속이기도 하고 타인을 상처 입히는 흉기가 될 때도 있는, 잔혹하고 웃긴 사실이 존재할 뿐이다. 그 사실만으로 사랑과 신뢰 전부를 부정하고, 세상을 조소하고 자기 속에 있는 선과 미를 추구하는 마음을 봉인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박힌 흉기를 빼내어 한 번 더 자신의 상처를 도려내는 거나 마찬가지다.(257-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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