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이엔 오해가 있다 총총 시리즈
이슬아.남궁인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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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아 * 남궁인 작가의 [우리 사인에 오해가 있다]를 읽었다. 두 작가가 1년간 지속해온 서간문의 모음집이다. 책이 나올 무렵부터 익히 보아온 제목이지만 선뜻 손이 가지 않아 읽을 기회를 놓쳤다가 이번에도 김소영 작가의 [무뎌진 감정이 말을 걸어올 때]를 통해서 만나게 되었다. 카톡과 DM과 댓글이 넘쳐나는 순간접속의 시대에 서간이라니 마치 지하철 공사를 위해 땅을 파다가 우연히 마주친 고대 유물의 흔적처럼 이미 인간의 역사에서 저만치 사라진 기억을 작가들만의 전유물처럼 지속해온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요즘은 군대에 가서도 부모님께 편지를 쓰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훈련소를 비롯한 부대의 장교들의 중요한 일과 중의 하나가 사병들의 안위를 가족들이 볼 수 있도록 카페나 블로그와 같은 형식의 웹사이트에 업로드 하는 것이라고 하니, 그리고 무엇보다도 일과가 끝난 후에는 자유롭게 개인 휴대폰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하니 대체 편지를 쓸 이유를 찾을 수 있을까? 계속 이런 식이라면 진짜 편지는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갠톡이든 단톡이든 톡방에서 메시지를 주고받다 보면 가끔은 상대방의 메시지에 대한 오해가 생길 때가 있다. 특히어설프게 아는 사이라면 더욱 그렇다. 반대로도 마찬가지라서 행여나 공격적인 감정의 요소가 담기지 않을까 염려하며 진중하게 메시지를 보내기도 한다. 그냥 통화하면 편할텐데, 메시지에 길들여지면 나도 모르게 폰포비아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통화는 바로 연결되지 않아도 메시지를 남겨 놓으면 언제든 여유가 생길때 대답을 해줄테니 그것 또한 편리한 소통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점점 더 직접적인 통화의 어려움이 커져간다. 단답형의 인스턴트 메시지에서는 이런 오해가 빈번히 일어날 수 밖에 없지만, 1년에 걸쳐 정성스럽게 쓴 서간문을 주고받은 작가들의 책 제목마저 [우리 사이엔 오해가 있다]니 어쩌면 이 책의 주된 요지인 ‘오해는 흔하고 이해는 귀하다’는 말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일깨우는 것이 아닌가 싶다. 


사실 몰라도 되는 사전 정보이겠지만 두 작가가 주고받은 편지를 읽다보니, 두 분은 서로 어떻게 알게 된 것일까? 책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배를 타고 함께 한 여행은 무엇이었을까? 궁금해졌다. 일간 이슬아를 시작으로 전업작가의 대열에 들어선 이슬아 작가와 의사이자 응급의학과 전문의인 남궁인 작가의 만남은 어쩌면 시작부터 화제가 될 수 밖에 없는 구조이다. 어찌보면 각자의 자리에서 핵인싸인 두 분이 이렇게 솔직담백하게 불호령을 내리고 변명을 하고 용서를 하고 이해하고 또 다름을 주장하는 서간의 연속은 물리적으로 떨어진 누군가에게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편지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편지를 쓰며 편지를 받은 수신자를 생각하다보면 어느덧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 볼 수 있게 된다는 말과 수신자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려고 자기 자신을 생각하다보니 수신자를 비롯한 다른 사람을 생각하게 된다는 말은 정반대이면서도 닮아 있다. 


아마도 몇 주간에 걸쳐 주고 받은 서간의 내용을 읽다보니 자연스럽게 두 작가의 일상도 엿볼 수 있었는데, 과연 사람에게 바쁘다는 말이 통용될 수 있는 것일까란 의문이 들었다. 앞서 말한 사전 정보에 해당되는 부분일텐데 두 작가는 서로가 서로의 글을 모조리 다 읽어서 그런지 지나온 삶의 흔적들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두 분 다 보통 바쁘게 사는 사람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아무리 구독료를 받고 쓴다고 해도 매일 매일 독자들을 만족시킬 일정 분량의 글을 쓴다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이래저래 다른 일도 분명 있을테고 사람도 만나고 휴식도 취해야할텐데 말이다. 글을 쓰는 것에 마치 중독된 사람처럼 말하는 또 다른 저자는 의사이고 그것도 응급실에서 근무를 하는데 퇴근을 하고 파김치가 된 몸으로 이렇게 많은 글을 쓸 수 있다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이슬아 작가의 남궁이 작가의 강인한 체력을 칭송하며 전업작가로 살아가기 위해 필수적인 코어의 힘을 강조한다. 체력의 재분배를 통해서 하고 싶다고 해서 다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담념할 수 있다는 것은 앞으로도 지속적인 좋은 글을 쓰기 위한 현명한 선택이 아닌가 싶다. 특히나 서간의 마지막에 이르러 이슬아 작가의 통계 논문과도 같은 서로의 서간문을 비교하는 내용은 누군가 내가 보낸 편지를 이토록 정성들여 분석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동적이면서도 약간은 뒷통수를 맞은듯한 느낌을 선사한다. 두 작가의 이전 작품과 앞으로 나올 새로운 책들이 기대되며 서간문의 매력에 흠뻑 빠진 시간이었다. 


“지난 크리스마스에도, 새해 첫날에도 저는 응급실에 있었습니다. 그런 날들의 응급실은 어떨 것 같습니까. 병원 밖 보통 사람들은 행복한 날이지요. 대신 응달에 남겨진 사람들은 얼마나 처절하게 불행에 떠는지 모릅니다. 모두가 들뜬 세상의 변방에서 벌어지는 파괴와 고독을 목격하는 일입니다.(73)”


“아무래도 자신의 사연이 소진될 때가 글쓰기의 진정한 시작일 겁니다. 글을 쓰는 사람은 자신의 세계를 확장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무엇을 말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우리는 조금 더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의 입장에 설 수박에 없습니다. 반성하고 주위를 되돌아보고 읽고 이해하는 것이 글쓰기를 계속하는 행위니까요.(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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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현수동 - 내가 살고 싶은 동네를 상상하고, 빠져들고, 마침내 사랑한다 아무튼 시리즈 55
장강명 지음 / 위고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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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 작가의 [아무튼, 현수동]을 읽었다. 부제는 “내가 살고 싶은 동네를 상상하고, 빠져들고, 마침내 사랑한다”이다. 아무튼 시리즈 55번째 책이다. 내가 기억하는 첫 번째 집에는 화장실이 없었다. 그래서 늦은 밤에는 어린 나만 작은 플라스틱 대야에 응가를 처리했고, 낮이면 주인집에 있는 퍼세식 화장실의 문을 빼꼼 열어놓고 신나게 노래를 부르며 응가의 대사를 치뤘다고 한다. 나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재래식 화장실이 무서운데 그 어린 나이에도 아닌척 허세를 떨며 노래를 불렀던게 아닌가 싶다. 지금 사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기에 이미 철거되어 다른 모습을 띄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찾으려고 한다면 그 집이 있던 흔적이라도 찾을 수 있을텐데, 한 번도 시도하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전 어쩌면 태어난 도시를 떠나 처음으로 오래 살았던 타국의 도시를 십년 만에 다시 방문하게 되었다. 몇 번이나 그 나라를 방문했음에도 그 도시만큼은 따로 시간을 내서 찾아가야하는 만큼 기회를 얻지 못했다. 십년이 넘었는데도 성인이 된 다음의 기억때문인지, 아니면 낯선 타국에서 지낸 첫 번째 도시여서 그랬는지 그곳의 삶을 마무리하며 나름 정든 장소를 갈무리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기만 하다. 


정말 아름다운 곳이다. 어쩌다 손님이 찾아오면 노을이 질 무렵 때를 맞춰 잔잔한 강물이 흐르는 오래된 다리에 데리고 가곤 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여기가 바로 프로포즈에 딱 맞는 핫스폿이라고 마치 이곳에 내 지분이 어느 정도는 있는 양 자랑스럽게 추천하곤 했다. 사실 그렇게 거들먹거리며 허세를 떨었던 이유는 그 다리의 정경이 나에게는 너무나도 아픈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림같은 절경을 품은 그 다리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온전히 감내해내야만 했던 고독의 시간들이 트라우마처럼 남아 있어서 왠지 모르게 그 다리를 건너면 가슴 한 구석이 아파왔다. 밤이 되어 사진을 찍게 되면 주광색 조명과 붉은 벽돌이 자아내는 로맨틱한 분위기에 휩싸여 대충 찍어도 작품 사진처럼 나온다. 그때 그곳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면 타임랩스를 되감는 것처럼 순식간에 그때의 내가 돌출되는 듯 하다. 그래서 이번 방문은 어쩌면 그 트라우마를 치료하기 위한 기회였는지도 모르겠다. 따로 기차표를 사고 숙박을 정해야 했음에도 그곳을 가자는 나의 권유에 친구는 이렇게 답해주었다. “그래, 나도 네가 살았던 곳에 한 번 가보고 싶었어.”라고. 


때마침 응근히 기대했던 크리스마스 마켓도 구경하고 배도 채워서 그런지 친구는 피로함을 호소하며 조금 쉬겠다고 했다. 그런 시간을 기다렸던 것인지, 그런 시간이 오지 않았으면 했던 것인지 호텔방에 잠시 누워있다가 용기를 내서 그 다리를 혼자 걸어보기로 했다. 지난날의 내가 매일 산책했던 시간과 비슷한 때에 찬바람을 맞으며 무작정 그때의 그 길을 걸었고 다리에서 강물을 내려다 보았다. 어디선가 그때 자주 마주치던 사람들이 나타나지 않을까 두리번 거리며 지금도 가슴 한 구석이 아려오는지 가만히 손을 대어보았다. 


장강명 작가가 가상의 동네로 명명한 현수동에 대한 책을 읽으며 왜 갑자기 그때의 감상이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나와 비슷한 시기를 겪었을지 모를 후배에게 그곳을 다녀왔다고 하니 눈가에 애처로움이 담아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형은 그곳에 가도 아무렇지 않지요. 저는 아직은 그곳을 가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아요.”라고. 누군가에게는 귀한 시간을 내고 비싼 값을 치뤄 아쉬움을 남기고 오는 곳이 누군가에는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을 만큼 상처를 준 곳이라는 아이러니가 새삼 달갑지 않게 다가온다. 어쩌면 그래서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만족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겠지 라는 수용적 자세에 대한 동의와 더불어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각자의 자리를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생각의 오고감이 반복되는 게 삶이 아닐까. 


“무언가 장엄한 것, 신비로운 것을 체험하며 살고 싶다. 영성을 알고 싶다. 때로는 계몽시대 이후의 현대인은 근본적으로 이런 소망을 이룰 수 없는 것 아닌가 두렵기도 하다. 그러나 시야가 탁 트인 곳에서 하늘을 가득 채운 구룸이 시시각각 모양을 바꾸다 점점 붉게 물들어가는 모습만 한참 보고 있어도 압도적으로 거대하고 아름다운 불가사의를 얼마간 경험하게 된다. 풍성하게 살고 싶다면, 그런 체험을 정기적으로 꼭 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71)”


“밤섬은 무엇을 상징할까. 자연의 놀라운 복원력? 억눌러야 할 인간의 파괴력? 기술문명과 환경이 유지해야 할 적당한 거리? 20세기 한국에 살았던 약자들의 아픔? 우리가 저지르는 잘못을 후손들이 바로잡아줄지도 모른다는 희망? 우리 역시 아버지들이 저지른 죄의 대가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것을 바로잡으려 노력해야 한다는 책임감? 인간의 이해를 훌쩍 초월한 섭리와 예상치 않은 구원?

밤섬은 그 모든 것의 상징이고, 우리는 자연의 힘을, 우린 안에 있는 파괴적인 욕망과 우리가 소유하게 된 기술을, 인간의 강함을, 인간의 약함을, 사람들의 고통을, 과거를, 현재를, 미래를, 시간이 해내는 일들을, 아이러니와 불가사의를, 복잡하고 연약하고 중요한 연결들을, 세계의 질서와 그에 대한 우리의 무지를 무섭게 여겨야 한다는 게 내 대답이다.(87-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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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몰 플레저
클레어 챔버스 지음, 허진 옮김 / 다람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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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어 챔버스의 [스몰 플레저]를 읽었다. 사람들은 흔히 누군가에게 삶에 대한 조언을 건낼 때, 자기 자신이 행복한 것이 중요하고 원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렇게 외적 요소와는 무관하게 자기 자신만을 위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마도 거의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신의 선택과는 상관없이 주어진 삶의 무게를 짊어지느라 원하는 삶을 택하지 못하고 견디며 살아갈 것이다. 혹자는 용기가 없어서라고 지금 당장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쉽게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부모를 비롯한 가까운 사람들에 대한 책임을 배제한 이기적인 선택이 과연 행복을 가져다 준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양심의 소리를 듣게 된다. 선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어제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갈망이 뼈와 피 속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불현듯 나타나 이기적인 모습에 질타를 던진다. 어느 누구도 나의 귀에 대고 ‘그런 선택은 옳지 않다고, 왜 너 밖에 모르냐고’ 비판을 가하지 않아도 샤워를 하다가 잠을 자려고 뒤척이다가 자기 자신의 법정을 세우게 된다. 오늘 나는 왜 그런 말과 행동을 한 것일까? 


이 소설이 1950년대 영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에 주인공 스위니 진은 39살의 미혼 여성이지만 꽤나 나이가 지긋한 중년으로 그려진다. 당시에 비해서 평균 수명이 상당히 길어진 지금에 견주자면 39살은 여전히 활기가 넘치고 관리를 잘했다면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으로도 보일 수 있기에, 진에 대한 사회의 평균적 시선에 대한 괴리감에 비해 진이 하워드를 만나 느끼는 감정은 시대가 달라진다 해도 여전할 것이라는 인간에 대한 동질감을 느끼게 해 준다. 당시의 유럽의 많은 사람들이 전쟁으로 인해 가족들과 흩어지거나 전사로 인해 이별을 감당해야 했던 것처럼, 진 또한 전쟁의 직접적인 여파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엄마와 단둘이 살아간다. 지방의 작은 신문사의 기자로 일하는 진은 어느 날 뜬금없는 제보를 받게 되고 ‘처녀생식‘이라는 믿기 힘든 취재를 맡게 된다. 진은 처녀생식을 주장하는 그레첸을 만나게 되고 그녀가 그러한 주장을 하게 된 이유와 배경을 알게 된다. 그레첸의 주장만으로는 기사화할 수 없기에 사실 검증을 위한 취재가 시작되고, 진은 엄마를 돌보고 신문사에서 기사를 작성하는 지루한 일상 속에 그레첸의 가족사에 개입하여 균형이 깨진다. 


진에게 보인 그레첸의 친밀함은 그녀의 처녀생식의 결과라고 생각하는 딸 마가릿과 그레첸의 주장을 알고도 결혼한 남편 하워드까지 확장된다. 진은 취재를 빌미삼아 그레첸의 가족과 만나는 기회가 늘어나고 그럴수록 자신의 부재를 못견뎌하는 엄마와의 긴장상태는 높아지기만 한다. 소설을 읽는 내내 진이 엄마를 돌보기 위해 신문사 사람들과의 소소한 모임조차 참석하지 못하는 상황이 몹시도 답답하게 느껴졌다. 숨통이 막혀오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 정도로 진의 엄마는 진의 희생을 받아들이기 보다는 신경질적인 말투로 진을 더욱 압박해오기만 한다. 이웃집에 사는 멜섬 부인의 방문을 이용하지 않으면 여가 시간을 활용할 수 없는 진의 처지는 몹시 안타까우면서도, 만일 자기 만족을 위해 엄마를 혼자 버려둘 경우 진이 감당해야 할 양심의 가책은 어쩌면 진 혼자만의 고민이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특히나 진의 부재 중에 엄마가 물에 담가둔 손수건을 널다가 넘어져 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섬망 증세까지 보일 때, 오히려 진에게는 자유로운 시간이 주어졌음을 만끽하며 느끼게 되는 죄책감은 우리가 결코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임을 증명하고 있다. 엄마의 퇴원이 조금이라도 늦춰져 하워드와의 꿈같은 시간이 지속되기를 바라는 소소한 욕망을 과연 누가 탓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진은 순간 순간 그러한 생각에 빠지는 자신을 질책한다. 


진은 그레첸이 병원에서 딸과 마가릿과 함께 의사들에게 검사를 받아 과학적 검증을 받을 수 있도록 안내하는 과정 중에 그레첸이 마가릿을 갖게 된 시기가 심한 관절염으로 병원에 몇 달 동안 입원했던 기간임을 알게 된다. 여자 아이들만 입원한 병동에서 그리고 간호사들과 수녀님들의 주의집중 가운데 남자를 만나 성관계를 갖게 된다는 것은 표면적으로 불가능해 보였기에, 진은 그레첸과 함께 입원해 있던 다른 소녀들을 취재하기 시작한다. 그레첸과 가장 가까웠던 마사를 찾게 되고 그레첸에게 마사의 소식을 전해주고 나서 이야기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지금도 일부 사회에서는 터부시되는 동성애를 감추고 있던 그레첸은 마사와의 재회를 통해 하워드와의 결별을 선언하게 되고 딸 마가릿을 배려하지 못한 그레첸의 이기적인 선택은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남기게 된다. 그레첸은 처음에는 상냥하고 다정한 사람으로 그려졌지만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는 앞 뒤 가리지 않는 폭주를 감행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변용되어, 아무렇지 않은 듯 예전의 상태로 돌아가고 싶다는 어처구니 없는 요구를 진에게 부탁한다. 


젊은 시절 유부남과의 철없던 불장난으로 불법 낙태까지 감행했던 상처깊은 진은 첫인상과는 다르게 점점 더 매력적이고 사려깊은 하워드에게 속 깊은 비밀까지 털어놓으며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레첸의 뜻밖의 커밍아웃은 진에게 하워드와 사랑할 수 있는 기회의 문을 열어주지만,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는 당시의 빡빡한 사회적 시선을 감당하기 힘들었던 진은 어처구니 없는 그레첸의 요구를 받아들이기로 결심한다. 만일 하워드가 이미 아내로서 여자로서 받아들 수 없는 그레첸과의 부부 생활을 다시 시작할 수 밖에 없다고 했다면, 진은 아마도 완전히 무너져 내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워드는 그레첸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용기를 내어 진과의 사랑을 멈추지 않을 것임을 알린다. 하지만 진이 그레첸의 주장처럼 마가릿의 탄생은 처녀생식이 아닌 숨겨져 비밀을 드러낸 것처럼, 진을 만나러 가는 하워드의 발걸음은 비극적 반전으로 마무리 된다. 소설을 마지막 장을 읽고 나면 어쩔 수 없이 첫 번째 페이지로 넘어갈 수 밖에 없는 극적 반전은 첫 페이지의 내용은 도대체 왜 이런 기사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일까의 의아함이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러서야 해소되는 묘한 매력을 담고 있다. 


“개인 전화기를 쓸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짐에 따라 점점 더 소란스러워지는 우리의 삶에서 편지 쓰기의 기술은 곧 사라질 위험에 처할지도 모른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사려 깊게 잘 쓴 편지는 받는 사람에게 어마어마한 기쁨을 가져다주고 전화 통화와 달리 읽고 또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도어 매트에 봉투가 떨어지는 소리와 친한 친구나 먼 친척의 필체를 알아보는 전율은 그 무엇도 비할 수 없다. 

전화기는 새된 소리로 외치면서 이래라저래라 시키는 감독관이다. 전화는 떼를 쓰는 아기처럼, ‘당장 나를 어떻게 좀 해!’ 라고 비명을 지른다. 반면에 편지를 읽고 답하는 -혹은 답하지 않는- 것은 순전히 받는 사람의 편의에 달려 있다. 그리고 우푯값으로 겨우 3페니만 내면 랜즈엔드에서 존오그로츠까지 편지를 보낼 수 있으니 누군가의 하루를 기쁘게 만들기에 이보다 더 저렴하거나 좋은 방법은 없다.(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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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은 조금만 - 자부심과 번민의 언어로 쓰인 11인의 이야기
이충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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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걸 작가의 [질문은 조금만]을 읽었다. 부제는 "자부심과 번민의 언어로 쓰인 11인의 이야기"이다. 인터뷰이가 되어 자신의 이야기를 잘 모르는 인터뷰어에게 털어놓게 되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누군가 나에게 지나온 삶의 여정을 물어봐주고 지금까지 이룬 일에 대한 칭송과 더불어 그러한 개인적 또는 공적 과업을 이루기까지의 지난한 시간들이 어떠했는지 묻게 되는 것 말이다. 사람들을 개인적으로 만나 차를 마시거나 밥을 먹거나 술을 한 잔 하게 되면 아주 어색한 관계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자기 얘기를 들어주기를 바라게 된다. 누가 물어본 것도 아닌데 마치 마법에 걸린 것처럼 안물안궁의 TMI까지 낱낱이 얘기해주는 사람도 있다. 듣고 있다보면 대체 왜 나한테 이런 사적인 얘기까지 해주는 것일까란 의아함과 더불어 약간의 지루함이 더해질 때 쯤, 자신의 얘기에 더 집중하라는 듯이 저 깊은 마음의 심연 속에 담아두었던 말을 툭하니 던지는 경우가 있다. 마시던 술이 홀딱 깨듯이, 마시던 물에 사래가 들리듯이 깜짝 놀라게 되지만 상대방의 눈을 보니 어렵게 진심을 토로하는 것이 보여 '뭐라고요' 라는 반응도 보이지 못한 채 몇 알 남지 않은 집중력을 끌어모아 집중력을 발휘하게 된다. 


어쩌면 우리가 바라는 인터뷰는 대중들이 듣고 싶어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보다는 인터뷰이가 하고 싶은 말을 맘편히 할 수 있는 분위기와 장을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책의 제목처럼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다른 인터뷰집과는 다르게 구성조차도 통상적인 인터뷰어의 이름과 질문에 이어지는 인터뷰이의 이름과 대답이라는 형식이 아니라 마치 인터뷰어인 저자 개인의 에세이의 중간에 인터뷰이의 생각과 의견을 인용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저자가 어떤 주제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다가 불현듯 인터뷰이가 했던 말이 떠올라 그 내용을 삽입하고 또 다시 자신의 생각을 펼쳐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부제에 쓰인 것처럼 이번 인터뷰집에는 최백호(지금의 노래), 강백호(마운드의 토르), 법륜(다름의 평등함), 강유미(마음속의 완구 공장), 정현채(파도 속의 영원), 강경화(최초의 이름), 진태옥(백자의 마음), 김대진(캠퍼스의 호로비츠), 장석주(소년의 심장), 차준환(얼음의 꽃), 박정자(죽음의 왈츠)님 등 총 11명과의 대화가 실려 있다. 연예인, 예술가, 운동선수, 공무행정가, 디자이너, 교수, 종교인에 이르까지, 20대의 청년에서 80대의 노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직업군과 연령대를 넘나든 인터뷰가 담겨 있다. 


인터뷰이들은 모두 우리나라에서 이미 이름을 알린 유명한 분들이고, 나이가 많은 분들은 그동안 이룬 업적들이 많고 놀라워 아마도 꽤 많은 이들이 롤모델로 삼고 있을 것이다. 어떤 특정한 분야에서 성공한 유명한 이들을 보면서 아주 단순하게도 그들과 나는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들은 나처럼 재능이 없지 않다거나, 나처럼 게으르지 않았다거나, 나처럼 운이 나쁘지 않았다거나 하는 지극히 주관적이고 아무 근거없는 생각 말이다. 어째서 이런 편견이 자리잡게 된 것일까 생각해보니 그들이 이룬 성과의 현재의 명성을 막연히 부러워해서 작은 터럭이라도 묻은 흠을 내고 싶은 편협한 마음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이렇게 자신의 삶에 대한, 지금까지 이룬 성과에 대한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한, 지금의 직업을 대한 생각을 토로하는 내용들을 읽다보면 결국 그들과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 아니라는 너무나도 자명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나와 똑같은 고뇌와 방황의 시기를 보내고, 못나 보이는 자신을 한탄하는 세월을 보낸다. 그리고 사람들이 사적인 자리에서 자신의 어떤 부분을 인정해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툭하니 내뱉는 것처럼 인터뷰이들은 인터뷰어의 질문의 의도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스스로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과 그 일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도록 버텨온 자신을 날것의 말로 들려준다. 이러한 자기 일에 대한 만족과 자신감은 상세히 묘사하지 않아도 그가 어떻게 지금까지 성실히 살아왔는지를 보여준다. 인터뷰이들의 삶에 대한 성실함과 진실함이 인터뷰어의 문학적 묘사와 곁들어져 있기에 부제에 담긴 '자부심과 번민의 언어'라는 표현이 우리 삶에 정말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있다. 


"어떤 세계 안에서 누군가를 알고 싶다면 그의 결핍을 들추어야 할 것이다. 각자는 자기가 맛본 세계의 유일한 중심체, 그가 겪은 것을 경험하지 못하는 한 완전한 이해는 없다. 그 마음의 극단으로 다가가 더 깊이 엿본다 해도 모든 글자는 감상적인 암호에 불과할 것이다. 그는 타인이 그리는 사람이 아니고, 그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도 아니니까.(8)"


#질문은조금만 #이충걸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6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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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소감 - 다정이 남긴 작고 소중한 감정들
김혼비 지음 / 안온북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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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혼비 작가의 [다정소감]을 읽었다. 부제는 "다정이 남긴 작고 소중한 감정들"이다. 이미 [아무튼 술]과 [전국축제자랑]을 통해서 깨알같은 유머와 불현듯 훅 치고 들어오는 감동을 받았던 기억 때문에 기대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번 책은 정말 좋았다. 어떤 문장은 읽는 순간 '아 이 글을 쓰기 위해서 저자가 얼마나 오랜시간 심혈을 기울였을까, 이런 문장은 얼마나 고뇌했기에 가능한 것일까.' 란 감탄과 더불어 독자가 한 번 쓱 읽고 지나가는 한 줄, 한 페이지를 위해서 작가들은 그 몇 십배, 몇 백배에 해당되는 숙고의 시간을 보낼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내용이 많았다. 그래서 읽는 동안 이런 감정의 소감을 나눠줘서 고맙다는 말이 절로 나올 지경이었다. 특히나 프롤로그에서 "글 쓰는 일이란 결국 기억과 시간과 생각을 종이 위에 얼리는 일이어서 쓰면서 자주 시원했고 또한 고요했다.(8)"는 내용은 페이지를 멈추고 가만히 단어 하나하나를 음미하기에 충분했고, 글을 쓴다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가장 투명하게 비춰볼 수 있는 계기라는 성찰을 가져다 주었다.


근래에 '츤데레'라는 말이 유행한다.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쌀쌀맞고 인정이 없어 보이나, 실제로는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을 이르는 말"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위키백과에는 "일본의 인터넷 속어로 새침하고 도도한 모습을 나타내는 의태어인 츤츤, 부끄러워하는 것을 나타내는 일본어 의태어 데레데레의 합성어"라고 말한다. 요즘에는 더불어 MBTI가 유행하면서 외향적인 E성향과 내향적인 I성향에 대한 얘기도 많이 떠돌고 있다. 아무래도 사회생활을 하는데 있어서는 외향적인 E성향이 도움이 많이 되지 않을까 싶다. 낯을 가리지 않고 흔히 '살갑다' 혹은 '곰살맞다'라는 말로도 표현될 수 있는 친근한 행동들은 타인의 경계를 쉽게 무너뜨리고 긴장감을 완화시켜 함께 있는 시간과 공간을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하지만 과도한 친한척은 이해관계가 우선시되는 공적인 만남에서는 오히려 마이너스의 효과를 가져오기도 하기에 천성적으로 외향성이 강하고 어색한 기류가 흐르는 것을 못 견디어 하는 사람들은 '사람이 가볍다'라든지 '믿음이 가지 않는다'라는 말로 본심이 오해받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지 현대 사회에서는 '츤데레'와 같은 사람을 선호하는 것 같다. 아주 오래전의 시골인심과는 정반대로 서울깍쟁이와 같은 경계태세가 기본이 되어야 하는 시대를 살다보니 사회생활의 관계에서는 어느 정도 본래의 모습을 감추고 사무적이고 딱딱한 태도를 갖춰야 신뢰를 줄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하지만 몇 번의 안면을 트고 나면 처음의 드높은 경계심은 어느 정도 사라지고 상대방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기 마련이다. 향후 지속적으로 만남을 가져야 한다면 아마 이런 기대와 궁금증은 더욱 커질 것이기에, 이후에 불쑥불쑥 드러나는 원래 모습을 감추기란 쉽지 않다. "처음에는 그렇게 쌀쌀맞아 보이더니 알고 보니까 아주 다정한 사람이었어."라는 말들은 결국 그 사람은 꽤 괜찮은 사람인 것 같아, 앞으로도 계속 신뢰를 갖고 만나도 될 것 같아 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특히나 연인 사이라면 아무한테나 친절하고 다정한 사람보다는 오로지 나한테만 숨겨진 다정함을 보여주는 츤데레 같은 사람을 원하게 된다. "아 이 사람은 내면 깊숙한 곳에 담아준 다정함을 오직 나에게만 보여주는구나, 나를 그렇게 많이 아끼는구나" 라는 뿌듯함을 갖게 해준다. 그런 면에서 일반적인 다정함이 아닌 사골을 우려내듯이 찐득한 다정함은 고이고이 간직해서 바닥을 치고 있는 소중한 이에게 선물처럼 내어주어야 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든다. 


'가식에 관하여' 편에서는 그동안 위선에 대해서 당연히 느껴왔었던 부정적인 생각들을 뒤집는 전환이 있었다. 위선을 포기하고 솔직하게 진실을 드러낼 때 오히려 재앙 같은 일이 벌어지게 된다는 말은 지속적인 위선을 유지하는 것은 웬만큼 노력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고 오히려 솔직함을 빙자해 책임을 놓아버리는 행동이 타인에게 더 큰 상처와 아픔을 줄 수 있음을 일깨워준다. 특히나 직장 생활에서 위선적인었던 팀장과 정반대의 직설적인 팀장과의 일화는 가식과 위선의 시대성을 반영하고 있다. 위선에 대한 저자의 긍정적인 해석은 분명 불완전한 존재로서의 자기 자신을 인식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기에 그동안 위선적인 자신을 탓해왔다면 오히려 조금씩 아주 조금씩 괜찮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마치 큰바위 얼굴을 닮은 사람을 찾고자 헤매였던 소년 자신이 그 얼굴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더 스퀘어> 영화에서 등장인물이 자신과 타인에게 커다란 상처를 주거나 해를 입혀 결국 파국을 맞는 순간은, 사람들의 위선이 벗겨진 순간 그러니까 누구도 더 이상 위선을 부리지 않고 있으며, 부릴 의지도 없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만약 끝까지 약자를 배려하는 척, 정의로운 척 위선이라도 부렸더라면 누구도 다치지 않고 넘어갔을 일이, 꼭 위선을 벗는 바람에 큰 문제가 된다.(54-55)"


'문 앞에서 이제는' 편에서는 학교에서 외톨이였던 반 친구 M과의 일화를 전하고 있다. 아마도 같은 또래의 친구들과는 어울리기 힘든 취향과 생각을 갖고 있었을 그 친구에게 다가갔던 저자는 다정함을 건네며 M이 고립되었던 시간을 구원한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다른 반이 되고 다시금 홀로 된 M이 홀로 점심시간을 견디는 모습을 보고 저자는 다가가 수다를 떨며 M의 웃음소리를 기억하게 된다. 갑작스럽게 전학을 가며 편지를 남긴 M의 마음을 읽으며 저자가 펑펑 울었다는 내용은 전혀 알지 못하는 M이 보냈을 어쩌면 그렇게 외톨이로 살아가는 많은 이들의 외로움이 느껴져서 그런지 눈시울이 붉어지게 만들었다. 


"M은 끝내 오지 않은 내가 너무 미워서 전학 가는 걸 미리 알려주지 않은 것으로 복수한다며 '메롱'을 의미하는 혓바닥 그림을 그려 넣었는데, 그 그림은 편지 전체에서 유일하게 M답지 못한 부분이었다. 그게 또 오래 가슴에 걸렸다. 작은 기대일지라도 번번이 좌절될 때 조금씩 바스러지는 마음에 대해, 이루어지지 않는 무언가를 바라는 순간 받게 되는 상처에 대해 나 역시 잘 알고 있었기에 M의 아픔은 다시 나의 아픔이 되었다. 정말 미안해. 미안해, M.(135)" 


마지막으로 어쩌면 이 책의 다정함의 절정을 보여준 '한 시절을 건너게 해준' 편에서는 앞서 저자의 직장생활에서 지옥을 경험한 내용을 예고했기에 그 내용이 어디에 나올까 궁금했었는데, 한 사람이 어떤 상황에 의해 그리고 누군가에 의해 얼마나 크게 무너질 수 있는지 자세히 그려낸다. 사랑하는 연인조차 저자의 무너진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할 때 친구 J의 집에서 보낸 시간은 어찌보면 구원의 동아줄과도 같은 다정함의 끝판왕이 아니었나 싶다. 


"한 입 두 입 계속 먹을 때마다 몸속을 세차게 흐르는 뜨겁고 진한 국물에 심장에 박혀 있던 비난의 가시들이 뽑혀나가는 것 같았다. 마음의 틈새마다 눌어붙어 있던 자괴와 절망이 녹아 내리는 것 같았다. 국물이 흘러들어오고 눈물이 흘러나가면서 내 눈에 옮아 있던 날 선 눈빛들이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았다.(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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