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소감 - 다정이 남긴 작고 소중한 감정들
김혼비 지음 / (주)안온북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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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혼비 작가의 [다정소감]을 읽었다. 부제는 "다정이 남긴 작고 소중한 감정들"이다. 이미 [아무튼 술]과 [전국축제자랑]을 통해서 깨알같은 유머와 불현듯 훅 치고 들어오는 감동을 받았던 기억 때문에 기대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번 책은 정말 좋았다. 어떤 문장은 읽는 순간 '아 이 글을 쓰기 위해서 저자가 얼마나 오랜시간 심혈을 기울였을까, 이런 문장은 얼마나 고뇌했기에 가능한 것일까.' 란 감탄과 더불어 독자가 한 번 쓱 읽고 지나가는 한 줄, 한 페이지를 위해서 작가들은 그 몇 십배, 몇 백배에 해당되는 숙고의 시간을 보낼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내용이 많았다. 그래서 읽는 동안 이런 감정의 소감을 나눠줘서 고맙다는 말이 절로 나올 지경이었다. 특히나 프롤로그에서 "글 쓰는 일이란 결국 기억과 시간과 생각을 종이 위에 얼리는 일이어서 쓰면서 자주 시원했고 또한 고요했다.(8)"는 내용은 페이지를 멈추고 가만히 단어 하나하나를 음미하기에 충분했고, 글을 쓴다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가장 투명하게 비춰볼 수 있는 계기라는 성찰을 가져다 주었다.


근래에 '츤데레'라는 말이 유행한다.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쌀쌀맞고 인정이 없어 보이나, 실제로는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을 이르는 말"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위키백과에는 "일본의 인터넷 속어로 새침하고 도도한 모습을 나타내는 의태어인 츤츤, 부끄러워하는 것을 나타내는 일본어 의태어 데레데레의 합성어"라고 말한다. 요즘에는 더불어 MBTI가 유행하면서 외향적인 E성향과 내향적인 I성향에 대한 얘기도 많이 떠돌고 있다. 아무래도 사회생활을 하는데 있어서는 외향적인 E성향이 도움이 많이 되지 않을까 싶다. 낯을 가리지 않고 흔히 '살갑다' 혹은 '곰살맞다'라는 말로도 표현될 수 있는 친근한 행동들은 타인의 경계를 쉽게 무너뜨리고 긴장감을 완화시켜 함께 있는 시간과 공간을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하지만 과도한 친한척은 이해관계가 우선시되는 공적인 만남에서는 오히려 마이너스의 효과를 가져오기도 하기에 천성적으로 외향성이 강하고 어색한 기류가 흐르는 것을 못 견디어 하는 사람들은 '사람이 가볍다'라든지 '믿음이 가지 않는다'라는 말로 본심이 오해받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지 현대 사회에서는 '츤데레'와 같은 사람을 선호하는 것 같다. 아주 오래전의 시골인심과는 정반대로 서울깍쟁이와 같은 경계태세가 기본이 되어야 하는 시대를 살다보니 사회생활의 관계에서는 어느 정도 본래의 모습을 감추고 사무적이고 딱딱한 태도를 갖춰야 신뢰를 줄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하지만 몇 번의 안면을 트고 나면 처음의 드높은 경계심은 어느 정도 사라지고 상대방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기 마련이다. 향후 지속적으로 만남을 가져야 한다면 아마 이런 기대와 궁금증은 더욱 커질 것이기에, 이후에 불쑥불쑥 드러나는 원래 모습을 감추기란 쉽지 않다. "처음에는 그렇게 쌀쌀맞아 보이더니 알고 보니까 아주 다정한 사람이었어."라는 말들은 결국 그 사람은 꽤 괜찮은 사람인 것 같아, 앞으로도 계속 신뢰를 갖고 만나도 될 것 같아 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특히나 연인 사이라면 아무한테나 친절하고 다정한 사람보다는 오로지 나한테만 숨겨진 다정함을 보여주는 츤데레 같은 사람을 원하게 된다. "아 이 사람은 내면 깊숙한 곳에 담아준 다정함을 오직 나에게만 보여주는구나, 나를 그렇게 많이 아끼는구나" 라는 뿌듯함을 갖게 해준다. 그런 면에서 일반적인 다정함이 아닌 사골을 우려내듯이 찐득한 다정함은 고이고이 간직해서 바닥을 치고 있는 소중한 이에게 선물처럼 내어주어야 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든다. 


'가식에 관하여' 편에서는 그동안 위선에 대해서 당연히 느껴왔었던 부정적인 생각들을 뒤집는 전환이 있었다. 위선을 포기하고 솔직하게 진실을 드러낼 때 오히려 재앙 같은 일이 벌어지게 된다는 말은 지속적인 위선을 유지하는 것은 웬만큼 노력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고 오히려 솔직함을 빙자해 책임을 놓아버리는 행동이 타인에게 더 큰 상처와 아픔을 줄 수 있음을 일깨워준다. 특히나 직장 생활에서 위선적인었던 팀장과 정반대의 직설적인 팀장과의 일화는 가식과 위선의 시대성을 반영하고 있다. 위선에 대한 저자의 긍정적인 해석은 분명 불완전한 존재로서의 자기 자신을 인식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기에 그동안 위선적인 자신을 탓해왔다면 오히려 조금씩 아주 조금씩 괜찮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마치 큰바위 얼굴을 닮은 사람을 찾고자 헤매였던 소년 자신이 그 얼굴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더 스퀘어> 영화에서 등장인물이 자신과 타인에게 커다란 상처를 주거나 해를 입혀 결국 파국을 맞는 순간은, 사람들의 위선이 벗겨진 순간 그러니까 누구도 더 이상 위선을 부리지 않고 있으며, 부릴 의지도 없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만약 끝까지 약자를 배려하는 척, 정의로운 척 위선이라도 부렸더라면 누구도 다치지 않고 넘어갔을 일이, 꼭 위선을 벗는 바람에 큰 문제가 된다.(54-55)"


'문 앞에서 이제는' 편에서는 학교에서 외톨이였던 반 친구 M과의 일화를 전하고 있다. 아마도 같은 또래의 친구들과는 어울리기 힘든 취향과 생각을 갖고 있었을 그 친구에게 다가갔던 저자는 다정함을 건네며 M이 고립되었던 시간을 구원한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다른 반이 되고 다시금 홀로 된 M이 홀로 점심시간을 견디는 모습을 보고 저자는 다가가 수다를 떨며 M의 웃음소리를 기억하게 된다. 갑작스럽게 전학을 가며 편지를 남긴 M의 마음을 읽으며 저자가 펑펑 울었다는 내용은 전혀 알지 못하는 M이 보냈을 어쩌면 그렇게 외톨이로 살아가는 많은 이들의 외로움이 느껴져서 그런지 눈시울이 붉어지게 만들었다. 


"M은 끝내 오지 않은 내가 너무 미워서 전학 가는 걸 미리 알려주지 않은 것으로 복수한다며 '메롱'을 의미하는 혓바닥 그림을 그려 넣었는데, 그 그림은 편지 전체에서 유일하게 M답지 못한 부분이었다. 그게 또 오래 가슴에 걸렸다. 작은 기대일지라도 번번이 좌절될 때 조금씩 바스러지는 마음에 대해, 이루어지지 않는 무언가를 바라는 순간 받게 되는 상처에 대해 나 역시 잘 알고 있었기에 M의 아픔은 다시 나의 아픔이 되었다. 정말 미안해. 미안해, M.(135)" 


마지막으로 어쩌면 이 책의 다정함의 절정을 보여준 '한 시절을 건너게 해준' 편에서는 앞서 저자의 직장생활에서 지옥을 경험한 내용을 예고했기에 그 내용이 어디에 나올까 궁금했었는데, 한 사람이 어떤 상황에 의해 그리고 누군가에 의해 얼마나 크게 무너질 수 있는지 자세히 그려낸다. 사랑하는 연인조차 저자의 무너진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할 때 친구 J의 집에서 보낸 시간은 어찌보면 구원의 동아줄과도 같은 다정함의 끝판왕이 아니었나 싶다. 


"한 입 두 입 계속 먹을 때마다 몸속을 세차게 흐르는 뜨겁고 진한 국물에 심장에 박혀 있던 비난의 가시들이 뽑혀나가는 것 같았다. 마음의 틈새마다 눌어붙어 있던 자괴와 절망이 녹아 내리는 것 같았다. 국물이 흘러들어오고 눈물이 흘러나가면서 내 눈에 옮아 있던 날 선 눈빛들이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았다.(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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